차와 관련한 논문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 요즘, 실질직으로 우리의 차문화가 불교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정확한 논고를 제시한 김봉건(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선생의 “차(茶)와 선종(禪宗)의 만남”논문을 필자가 여러번 읽어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연구자의 양해를 구하고 석우연담에 세 번에 나누어 올리고자 한다.

이 논문의 요지는 차와 불교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것이다. 차는 불교 선종과 만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불교의 선종 승려들은 차의 각성작용에 착안하여 마시기 시작하였으나 곧 선종 사원 내에서 구성원 상호간의 매개음료가 되었고 이어 불전에 바치는 공양구가 되고 선수행의 화두가 되기도 하고 선수행이 추구하는 최상승인 경지인 삼매와 동일시되기도 함으로써 차미와 선미가 동일한 경지라는 영예를 얻게 된다.

이러한 연고로 차는 인간의 정신경계에 있어서 곧 불교적 색채를 가장 많이 띠게 되었고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도 다선일미란 말이 보편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그와 동시에 불교는 차가 펼쳐지는 자리에서는 그것이 설령 종교적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불교, 그것도 특히 선종의 불교사상과 연관이 됨으로써 선종은 찻자리가 펼쳐지는 어디에라도 찻잔을 타고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홍보효과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차가 역사적으로 불교와 특별한 연관관계를 가지게 된 원인을 명석하게 밝혀내고 있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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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와 선종(禪宗)의 만남

 

                                                                                                             김 봉 건(동의대)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차의 등장

3. 차와 선종의 만남

1) ‘백장청규’

2) ‘끽다거’

4.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차(茶)는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니다. 차는 인체에 유익한 여러 가지 보건 기능을 지니고 있고. 다례 등을 통한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도 하며, 고도의 정신문화와도 관계하고 있다.

차의 보건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몇 가지 중요한 것만 들어 보더라도 혈당의 조절, 콜레스테롤 감소, 체액의 평형 유지, 신경과민의 억제, 항산화·노화방지, 항암·항돌연변이, 심신 조절, 사유(思惟) 촉진 등등....... 헤아리기 힘들다.

차가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이런 신체적인 보건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차는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적 영역에 깊이 관여해 왔다. 역래로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은 차를 마시고 차를 노래했다. 당(唐)의 유정량(劉貞亮)은 ‘차의 열 가지 덕’(茶善十德)을 읊었고, 노동(盧仝)은 ‘일곱 잔의 차노래’(七碗茶歌)를 불러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러나 차가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적 경계에 들게 된 것은 불교, 특히 선종(禪宗)과의 만남에서였다. 동시에 선종은 차를 만나 보건 기능의 도움을 받았고, 또한 간접적으로 교세의 확장에도 도움을 받았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차와 선종의 상호 관계를 주로 당대의 선승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청규(淸規)’와 조주종심(趙州從諗)의 공안 ‘끽다거(喫茶去)’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차의 등장

차의 고향은 중국 서남지역이라고 보는 것이 유력하다. 화양국지(華陽國志) 파지(巴志)의 기록에 의하면 주(周) 무왕이 주(紂)를 토벌할 때 파촉(巴蜀) 지방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때 이미 파촉 지역에서 주 천자에게 바치는 공물 안에 찻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인류가 차를 마신 역사는 3,000년 이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00년 전 육우가 《다경(茶經)》을 저술할 이미 파산(巴山)과 협천(陜川)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할 정도의 거목이 있었다고 하니 당대에는 차를 음용함이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차의 학명을 ‘Camellia Sinensis'라고 명명했는데, 여기서의 Sinensis는 라틴어의 중국을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중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가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차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뚜렷한 자료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차인들이 다성(茶聖)으로 추앙하는 육우는 인류가 차를 발견한 계기를 신농씨에다 부회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염제 신농씨는 인류의 생활을 채취경제에서 농경생활로 나아가게 한 인물이다. 그는 산야에 있는 뭇 식물들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맛을 보다가 하루에 70여 가지의 독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차 잎을 씹어서 해독을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차는 최초에 인류의 생활 속에서 약용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농식경(神農食經)》에서는 “차를 오래 마시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기재하고 있는데 이 책은 물론 신농에 가탁한 위서(僞書)이므로 문자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

육우가 쓴 《다경》〈칠지사(七之事)〉의 기재에 의하면 육우 이전에 씌어진 전적들에서 차의 약효를 다룬 다양한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신농의 《식경》 이외에도 화타(華陀)의 《식론(食論)》, 호거사(壺居士)의 《식기(食記)》, 도홍경(陶弘景)의 《잡록(雜錄)》, 동군록(桐君錄) 》, 《본초》의 〈목부(木部)〉, 《본초》의 〈채부(菜部)〉, 《침중방(枕中方)》, 《유자방(孺子方)》 등의 기록을 들고 있다.

차의 의료 작용에 대해서는 당대 이후에도 계속 탐구되었다. 당대에는 ‘차약(茶藥)’이라는 말을 곧잘 썼고, 송대에는 ‘차는 곧 약’(茶, 則藥也)이라고 논단했다. 당(唐)의 진장기(陳藏器)는 “차는 만병을 고치는 약”이라 강조했고, 명(明)의 우신행(于慎行)은 차를 일러 “백병을 모두 고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명의 전춘년(錢椿年)은 “사람이 진차를 마시면 갈증을 멈추게 하고, 소화를 돕고, 가래를 제거하고, 잠이 적게 오고, 소변이 쉽고, 눈을 맑게 하고, 생각을 이롭게 하고, 번뇌를 적게 하고, 기름기를 제거한다. 사람에게 하루라도 차가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교적 총체적으로 차의 효능을 기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청 시기에는 의학의 관점에서 차의 약리 작용을 기재한 본초류의 서적들이 많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일용본초(日用本草)》·《본초원시(本草原始)》·《식물본초(食物本草)》·《구황본초(救荒本草)》·《야채박록(野菜博錄)》·《본초경소(本草經疏)》·《본초도해(本草圖解)》·《상의본초(上醫本草)》·《본초봉원(本草逢原)》·《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식물본초회찬(食物本草會纂)》·《본초구진(本草求眞)》·《수식거음식보(隨息居飮食譜)》 등이 그것이다. 중국 역대의 대표적 의서(醫書)의 하나인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에는 차의 약리 작용에 대해서 “머리와 눈이 맑지 못한 것은 열기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쓴 것으로써 열을 씻으면 오른 것이 맑아진다.

또 차의 체성은 가볍고 뜨는 것이라서 차의 잎이 처음으로 싹터 봄기운이 오를 때에 따야 한다. 맛이 비록 쓰더라도 기운은 엷다. 이것이 곧 음(陰) 가운데 양(陽)이라 오르게도 하고 내리게도 한다. 머리와 눈에 좋다는 것은 대개 이와 같은 데에 근본한다.”고 하여 차의 약리작용에 대해서 한의학의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현대(1983년 이래)의 의학자들은 ‘차료(茶療)’라는 새로운 단어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여러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 있어서 차학(茶學)이란 그것이 곧 의학이요 약학이란 말과도 직통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차학에는 이 외에 또 다른 안목으로 접근한 통로가 있다. 《다경》 〈칠지사〉에는 위에서 열거한 전적들 외에도 《신이기(神異記)》, 《속수신기(續搜神記)》, 《이원(異苑)》, 《광릉기로전(廣陵耆老傳)》 등의 기록도 기재하고 있는데 여기서 차는 어느 사이엔가 기이한 고사들과 함께 신비의 색채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위진남북조 시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다른 면에서는 차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회적 덕성과도 관련된 매우 영험한 식물(食物)로 서서히 자각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명확히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와 결합하는 일은 불교의 선종(禪宗)과 만나고서부터이다. 선승들은 처음 차의 약리적인 각성작용에 착안하여 선 수행 시 수마(睡魔)를 이기기 위해 차를 마셨다. 그러나 차는 곧 선원 내에서 인화(人和)의 매개체가 되었고 다례의식을 통하여 장엄구(莊嚴具)가 되었다.

선종의 일상생활에서 차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고, 동시에 차는 선종을 만나 바야흐로 문화(文化)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차문화의 전파와 불교의 발전은 상호 촉진의 교호관계에 놓이게 된다.

당대(唐代) 이래로 남방의 사원에는 절마다 차를 심어 “명산이 있으면 명차가 있다”(有名山有名茶)거나, “중이 없으면 차가 없다”(無僧不茶)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선승들은 사전(寺田)에 차를 심어 스스로 가꾸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마시면서 차의 제조와 품음(品飮)의 방식을 강구하였고, 글을 쓰고 시를 지으며 차문화를 선양했다. 차는 초기에 약용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당대에 이르러 차의 생산량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당 중엽에는 차가 민간에서도 일반적인 기호음료로 이용되고 있었다. 다성(茶聖) 육우가 차 마시는 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풍속에 차츰 젖어들어 당나라에 들어와 성대하게 행하여졌다. 두 국도(國都)인 장안과 낙양, 그리고 형주(荊州)와 투주(渝州) 지방에서 차는 집집마다 아끼고 즐기는 음료가 되었다.”고 한 말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기사이다. 이와 같이 민간에서도 차가 기호음료로 보편적으로 애호되는 상황에서 선풍(禪風)이 이 차문화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일반에 전염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선종의 교세 또한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론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1. 석우의 생각

    Tracked from teakey's me2DAY 2010/03/14 17:55

    김봉건 논문, 차(茶)와 선종(禪宗)의 만남① 차와 관련한 논문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 요즘, 실질직으로 우리의 차문화가 불교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정확한 논고를 제시한 김봉건(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선생의 “차(茶)와 선종(禪宗)의 만남”논문을 필자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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