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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일기 주인 집

 

한국과 중국의 차 문화를 단순하게 비교해보면 제가 느끼기에 한국은 지나치게 엄숙해서 탈이고 중국은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탈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어떤 찻자리에 가보면 마치 벌을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차맛은 천리만리!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속으로는 아따마 고귀하고도 고귀한 행사 지들끼리 하지 괜한 사람들 초대해 놓고 무슨 꿇어 앉아 쇼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잡놈인 제가 얼떨결에 참석했다가 언제 마치나 하고 발을 저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론 한복 곱게 차리고 다소곳 앉은 새빨간 입술연지를 바른 사모님이 찻잔에 물든 루주를 이리 할고 조리 할타먹는 요상한 광경을 감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거 뭐 아무리 차 마시는 일이 밥 먹는 것과 진배없다는 나라지만 일상다반사 다반사일상입니다. 한손엔 담배 한손엔 찻잔 들고, 담배 손 찻잔 손 바꿔가며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 찻물로 갸르륵 입 행구는 사람, 이런 사람과 차를 마시다보면 차맛은 역시 천리만리!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중국의 일부 차인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양국 차 문화의 전체적인 특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전통적으로 더 희한한 차 문화들이 많습니다. 때론 목숨 걸고 차를 마셔야 됩니다...

 

동양의 정적인 차 문화는 대체로 경직된 부분이 있는 반면에 서양은 동적인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는 점수를 매겨서도 안 되고 꼭 어느 것이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각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발전 소멸하는 것이 문화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차 문화도 마찬가지로 발전해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의 문화가 생성 또는 소멸되고 있습니다.

오운산이 생각하는 차는 한마디로 맑음에 있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차입니다. 정적인 것에도 동적인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양 극단을 아우를 수 있는 차 문화를 추구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차는 인류가 개발한 최상의 음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음식에는 약간의 잡스러움이 있습니다. 오미로 대표되는 자극적인 맛이 어울림을 통해 좋은 맛으로 새롭게 탄생하지만 음식은 평생을 먹어도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만든 차를 집중해서 마시면 일체의 잡스러움이 사라지고 경건한 느낌마저 듭니다.

 

육체와 정신을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 한줄 알지만, 굳이 구분을 해보면 일반적 음식이 육체를 살찌우는 것이라면 차는 정신을 보전하는 음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타 음료를 포함한 모든 음식은 섭취할 때는 각종 맛과 향기로 인한 즐거움이 있고 식후에는 포만감으로 인한 편안함과 행복한 느낌 또한 따라옵니다. 그러나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경건함은 세상의 어떤 음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경건함의 정체는 특히 고수차에서 두드러지는 회운(回韻)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고수차를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 회운 때문입니다.

 

흔히 회감(回甘)이라고도 하는데, 회운이란 차를 마시고 난 후 서서히 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으로 올라오는 은은한 향기를 말합니다. 오랫동안 차를 마신 분들도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회운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차는 마실 때의 달고 쓰고 떫은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시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속 깊은 여향을 남깁니다.

 

어떤 분은 하루 이틀 동안 지속된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경지 까지는 아니고 다른 음식을 먹고 나면 그냥 멈춥니다...

 

아직 회운의 정체를 잘 못 느끼시는 분들은 오운산차 한번 드셔보세요. 아니아니, 다른 분들이 만든 좋은 고수차 드셔도 됩니다...

 

차를 마신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방금 마신 차의 흐름을 관찰하다보면 저절로 회운의 정체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번 느끼고 나면 다음부터는 차를 마실 때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면 차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차 마시는 것을 도를 닦는 행위와도 비교한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저는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문구에 갇힌 듯한 엄숙한 차 생활도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일상과 함께 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늘 가까이에서 삶의 향기를 불어넣어주는 차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냥 무심으로 마시는 차가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보면서 한잔!

한가한 오후에 먼 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잔!

늦은 밤 TV를 보거나 독서를 하다가 갈증을 느껴 한잔!

어느 새벽 문득 홀로 깨어나 시름이 시름을 갉아 먹을 때

가슴 속 깊이 따스하게 스미는 한 잔의 차!

오운산이 꿈꾸는 차세상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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