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의 병배에 대하여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병배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병배란 기본적으로 섞는다는 의미입니다. 보이차에 있어서는 다양한 원료를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섞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도가 지역을 속이거나 불순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면 나쁜 병배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의미에서 좀 더 경쟁력 있는 좋은 차를 생산할 목적이라면 건전한 병배라고 할 것입니다.

 

저도 멍하이 현지에서 차를 생산하면서 매년 여러 지역의 고수차 원료들을 조금씩 구입하여 병배 실험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석가명차-오운산 멍하이 중국본점 가게에는 이백여 지역의 샘플 차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국본사에는 올해 윈난의 각 지역에서 생산된 보이차 이백여 가지가 샘플로 들어와 있습니다. (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시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6년여 수천 번의 병배 실험을 반복해온 저의 생각을 한마디도 말씀드리자면 '병배를 하지만 병배는 없다'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동안 다소 은밀하게 논의되었던 병배의 비밀이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에서입니다.

 

2012년 저희가 해만차창 한국총판을 할 때 서울차박람회에 참가하며 추병량대사를 한국에 초대했었습니다. 박람회를 마치고 석가명차 본사를 방문하셨고, 제주도 오설록 등 전국을 돌며 강연회 및 세미나를 주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열흘 정도 추대사님과 같이 머물면서 차에 관한 여러가지 질문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병배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사님은 일관되게 병배의 특별한 비밀은 없다고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엔 병배란 각 차창이 가진 일급비밀이고 노하우라서 쉽게 말씀하시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제가 윈난성에서 오운산을 창업하고 직접 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병배 실험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축적될수록 오히려 더 모르겠고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둔한 저를 탓하며 병배로 인한 피로가 극도로 쌓이던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병배란 따로 없구나.

그냥 좋은 원료끼리 섞어 면 좋은 차 되고, 나쁜 원료가 들어가면 그만큼 차가 나빠지는구나!.

7542 등 대형차창의 맥호 차들은 생산량과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이산저산의 원료를 모았을 뿐이지 처음부터 일정한 맛과 향기를 위해 지역을 안배한 병배는 아닙니다. 다만 어린잎과 다 자란 큰 잎을 등급별로 나누고 제품의 앞뒤로 섞는 비율을 결정하여 맥호로 구분하였을 뿐입니다.

 

고수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특별한 비방 같은 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차맛이 좋기로 알려진 지역의 고수차를 선택해서 잘 가공하여 제품화하면 맛있는 차가 됩니다. 고수차는 같은 지역이라도 수백년 동안의 변이에 의한 다양한 품종이 섞여 있습니다. 세밀히 분류하면 차 나무마다 각각 맛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지역, 한마을, 한 집의 차를 생산해도 다양한 맛이 존재하므로 순료차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엄밀한 의미의 순료차는 다원에서 한 품종의 차나무를 무성생식으로 식재하여 생산한 차를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지역에서 생산된 고수차를 '고수순료자연병배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차를 몇 그램씩 병배해서 실험하다 보면 그때그때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물론 그 지역의 전체적인 특징은 여러번 시음하다 보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배를 위한 기초 자료로 삼기에는 변수가 너무도 많습니다.

 

차 맛은 일기 등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지역의 차라도 해마다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료를 구매할 때는 반드시 박스마다 시음을 해야 합니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평소에 좋은 차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좋은 차를 생산하고 마실수 있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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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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