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조금씩 내리던 비가 그치고 어제부터 다시 채엽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속담에 농번기 한창 바쁠 땐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운남의 차산에는 일손을 못 구한 차농들 가슴이 가뭄처럼 타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막히면서 해마다 봄차철이면 미얀마 등지에서 들어왔던 일꾼들이 한명도 들어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임시방편으로 징홍 시내에 살고 있는 태족 아주머니들이 대거 동원되고 있지만 인건비는 점점 올라가는데 능률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들어왔던 채엽 일꾼들은 보통 한 지역에서 합숙을 하면서 활동하므로 비교적 안정적인 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내에 살고 있는 일꾼은 각자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이동 등에서 여러가지 불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찻잎은 피고 일손은 모자라고 채엽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차농들 마음은 그야말로 노심초사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채엽하고 위조 살청을 거처 쇄청까지 한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노동에 시달리는 차농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도 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차산을 방문할 때마다 잠시 홍보를 위한 촬영을 하고 틈나는 대로 일손을 거들고 있지만 서투른 일손이라 괜한 부담만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것저것 거들긴 하지만 오랫동안 숙련된 차농들의 눈으로 보면 어설프고 부담스러운 일손 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모든 차를 직접 생산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내가 만들고 싶은 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 좋은 차가 생산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숙련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채엽에서부터 살청 건조까지 그들에게 나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고 뜻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따름입니다.

예를 들면 채엽은 기준을 알려주고 반드시 일당제로 합니다. 그날 채엽한 찻잎의 무게로 노임을 책정하면 마구잡이 채엽이 되기 싶습니다. 살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결정하고 그 기간 안에 몇 솥만 하라고 해야 됩니다. 바쁘다고 손 빠른 일손으로 생산량만 늘려서는 결코 내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그들을 믿어주고 다만 응원하고 지원할 따름이지요. 바쁠수록 돌아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쁜데 일부러 돌아서 가는 바보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저것 준비 없이 서두르다가 자칫 실수를 범해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경계하자는 뜻인 줄 압니다. 그러나 바쁠 때는 당연히 지름길도 찾아보고 더 좋은 방식도 연구하며 더 열심히 개발해야 됩니다.

좀 더 능률적으로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다면 기계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기계와 사람 손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내 손에 무슨 귀신이 붙은 것처럼 손맛이 어쩌고 할만한 세계도 아닙니다.

사는 게 다 예술이고 세상에 예술 아닌 것이 없다고도 하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힘겨운 노동의 연속일 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에 즐겁게 하고 있고 때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엄연히 내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땀방울에 젖은 한 줌의 모차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차가 어느 날 누군가의 차 자리에서 온몸을 풀어헤치며 세상의 어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보다 황홀한 맛으로 다가올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결코 어쭙잖은 수식어로 치장될 수 없는 수많은 손들의 정직한 땀방울이 배여있다고 할 것입니다.

-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님의 운남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입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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