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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관련된 중국 다서(茶書)로 고전연구를 하는 심수연학회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찻자리를 재현하는 행사를 유건집 교수의 주관으로 경기도 포천시 소재 하린재(대표 정찬오)에서 4월 10일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재는 평소 조선시대 차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유건집 교수의 정신과 사상이 담긴 찻자리를 펼치고자 한 것으로, 차와 술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였다고 하는 것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즉, 차마시고 술마시는 분위기가 아닌, 주차문화(酒茶文化)로 술을 먼저마시고 차를 마셨다는 것을 그 당시의 찻자리로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사진, 유건집교수 차 따르는 모습]

나는 서울 청담역에서 일행들과 만나 동석하여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1부에서 천부(荈賦)강의를 1시간 하였다. 이 강의는 심수연학회 수업의 하나로서 장소를 바꾸어 강의시간과 행사를 같이한 것 같았다. 천부는 현전하는 차와 시를 중심으로 지어진[專門 茶歌]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晉代의 차문화를 유추 할 수도 있고,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설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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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건집 교수 강의, 선비 찻자리 시연에 앞서 심수연학회 회원 천부 강의]

2부에서는 ‘하린재’ 마당에서 술과 차가 있는 한국의 찻자리가 진행하였다. 사회자가 없이 유겁집 교수의 간단한 변을 듣고는 자리에 앉아서 매실 담은 술을 분청 병에 담아 술잔에 따르면서 시작되었다. 대금과 장고가 함께하면서 정옥희 선생님의 다시 낭송은 언제나 여성스러운 차임새로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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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에서 술과 음악과 차를 즐기는 시연]

술자리에서 안주로 나온 것은 생밤을 깍아 그 위에 금가루를 얹었고, 육포위에 잦가루를 올리고, 호두전과가 준비되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한 다식은 송화다식과 흑임자 두가지다. 이것은 첫 번째 녹차를 준비한 이옥란 선생님의 준비였다. 그 뒤에 반발효차와 대용차를 각각 준비하여 단상의 무대에 앉은 분(유건집, 정옥희, 대금연주자, 장고반주자)에게 대접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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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주 이옥란, 우리나라 반야로 녹차를 내는 모습]

이 글은 이번 행사에서 진행의 미숙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가 심수연학회 회원들만이 즐기는 자리가 아니고, 평소 유건집 교수의 우리나라 현대 찻자리에 대한 냉혹한 비평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조선시대 우리 선비를의 찻자리는 어떤 자리였을까하는 생각과 새로운 찻자리의 비젼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며 참석하신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이런 찻자리가 심수연학회 회원들의 조선시대 찻자리의 연구결과를 자체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 일을 주관하신 유건집 교수님의 자리에 다른 분이 앉고, 유건집교수는 하나하나 순서에 맞게 설명하면서 참석하신 손님과 술과 차가 하나되는 자리였다면, 비록 진행상의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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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린재 외벽]

이번 행사가 예전의 찻자리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을 찾아본다면.

1. 차(茶)가 중심이 되는 자리에서 술을 먼저 마시고 차를 마셨다.
2. 옛날 선비들은 술이 먼저고 그 다음이 차였다면, 그 차는 결코 좋은 차는 아니였을 것이다는 생각.
3. 맑은 정신으로 차를 마실 때 좋은 차 운운할 수 있지만, 술 마시고 난 뒤에 차를 마신다면 차를 음미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점.
4. 술 한 병마시는 자리에 차를 내기 위해서 세 팀(6명)이 각각 팽주와 시자로 구성되어 차와 다식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차공부는 왜하는가? 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될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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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에 참석한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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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발효차를 내는 모습]

우리는 늘 찻자리에 대한 고민을 해오고 있다. 어떤 모습이 잘된 모습이라고 딱 잘라 말 할 수 없지만, 우리 정서에는 맞아야 할 것 같다. 선조들의 詩나 문집에서 술마신 뒤에 차를 마시든 술마시면서 차를 마시든 지금은 그때 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차를 공부하기위해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이 만들어진 현실 세계를 등질 수는 없지 않는가?

술을 노래한 詩篇들에서
"술에 취하지 않고 흥(興)에 취하기를 즐긴다”고 한 주객 지훈(芝薰)은 “오욕칠정의 잠재된 모든 감정을 술로 풀려는 것은 술의 사도(邪道)”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애주가들은 그 사도에 탐익하여 자기감정을 노래하고 춤추며 발산했다. 술이란 원래 우리 영혼에 비를 내려 잠재우기도 하고, 기름을 부어 열정을 불태우기도 한다. 흥에 젖든 울분을 토로하든 술을 마시는 까닭이 같지 않으니, 그들이 남긴 시문도 각각 색깔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일 배포한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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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린재 갤러리]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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