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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 유래설은 3가지가 전한다 김대렴의 차씨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다는 김대렴 전래설이 있고, 차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였다는 자생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수로왕비 전래설이다.

그 중에서 수로 왕비 전래설은 상현거사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 통사에 의거, 김해의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수로왕비인 허황옥(許黃玉, 33년 ~ 89년 /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라고도 한다)은 공주가 서기 48년에 그의 오빠 보옥선사(장유화상)와 함께 차씨를 혼수품으로 가져와 가야에 심었다는 설이다.

[왼쪽 사진]허황옥과 김해 장군차를 연계시켜 김해에서는 장군차라는 상품으로 홍보되는 이 지역의 차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조 인조(仁祖)때 발간한 김해읍지에 보면 황차가 금강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충열왕이 왜구정벌에 동원되어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차 김해에 들어 금강사(金鋼寺) 앞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이 차를 마시면 힘이 솟는다는 뜻에서 장군차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역사에서 허황후를 근거로 삼는다면 장군차라는 명칭의 근원은 가야국의 가야차(伽倻茶)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한다.

[200년 수령의 김해 장군차(將軍樹)] - 현지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차나무의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가야권인 원예시험장(부산 강동동)에서 우장춘 박사가 관리하였던 나무로서 허황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곳 수릉원으로 2008년 3월 16일 이식하였다. 김해 장군차는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封茶로 가져왔다는 설이 있고 고려 출렬왕께서 ‘將軍’이라는 칭호를 내렸으며 지금도 차와 관련된 지명, 자생군락지가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진설명,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학용(우리선문화원 부산센타원장)] 부산에서 차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김학용씨는 최근 차문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첫 번째로 김해 장군차의 역사를 찾아다니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전정현 선생님께서 초청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현장에 도착하니 차공부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많은 것도 생소해 보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다식판 , 베겟모 수집으로 알려져 있는 김길성씨, 도예가 김영성씨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모두 8명이 봉고차를 타고 허황후가 가야에 처음 도착한 용원에 있는 망산도앞 유선정에 도착하여 일정을 시작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경상남도 역사 해설가인 A씨의 집으로 가서 본인이 장군차 찻잎으로 떡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5개씩 묶은 것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떡차로 만들 수 있는 작은 틀도 여러 가지 자신이 만들면서 실패하고 한 것도 보여주었다.

허황후묘에 가서 관정다도원 전정현 원장님은 차를 준비해 오셔서 헌다를 하였다. 김길성 선생은 옆에서 보시며 정말 차 하시는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차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이런 곳에 오면 헌다 한 번 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와야 하는데” 하시며 오늘의 여행이 무언가 의미를 둘 수 있는 듯하여 보기에 좋았다.

이 날 하루를 동행해 보면서 느낀 점은 중국차에 대해서는 온갖 전설까지 공부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차의 유래에 대한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차에 대한 유래도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지역마다 여러 갈래의 유래담이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차나무 자생지의 입장에서도 지역적 분포가 많은 것이 사실이요, 차나무의 수령으로 따져보아도 그동안의 유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규모 차밭이 생긴 것은 조선조 말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였고, 그 유명한 보성이나 여러 차밭의 조성도 일본에 의한 플렌테이션의 형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차의 유래를 찾아도 그 뿌리가 초의선사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 가야의 역사, 백제의 역사, 그리고 통일 이전의 신라의 역사가 무척 궁금해지는 가야차, 아니 장군차의 답사현장의 느낌이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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