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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앞에서 설명하는 도일스님, 왼쪽 보광사 주지 도오스님]


송광사 성보박물관 초대전[오른쪽 작품은 송광사에 기증]


송광사 율학승가대학원장인 도일스님의 산수화 전시가 4월 28일부터 8월31일까지 송광사 성보박물관 초대전으로 열린다.. 필자가 스님의 작품세계의 깊이를 잘 모르지만 늘 차와 함께 사시는 분이시라 차실에 어울릴 수 있는 그림도 생각하며 짧은 눈으로 본 리뷰를 남긴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스님이 계시는 율원으로 올라갔다.  이 날은 전시회 때문에 스님 방에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계셨고, 또 스님 친구 분도 만나뵐 수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스님의 좋은 이야기를 들고 박물관이 문닫는 시간 때문에 부산 보광사 주지 도오 스님과 다른 일행들도 함께 스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위해 박물관으로 향했다.

 

2007년에 작업한 운연공양도(雲煙供養圖), 발묵과 구륵법을 써서 장대천의 화법이 반영된 그림 취봉첩장도(翠峰疊嶂圖), 스님의 초기작품인 방극노인첩(倣極老人帖), 방석도책(仿石濤冊)등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필자는 송광사를 내려왔다. 

[방석도책(仿石濤冊) 사진 위]

 

필자는 늘 율원에서 나올 때 언제나 풍족한 마음으로 내려왔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스님의 “칠현금경”책과 더불어 “산수화”전을 보고 한 분야에서 각각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스님을 보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산수라고 하는 것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불사들이 지어질 때 산수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 그것이 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불사나 암자가 자리를 잡는 것은 그곳에 기운이 강한 터라는 것, 따라서 기암괴석은 양보할지라도 풍수와 관련한 모든 지식이 동원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연, 즉 산수이다.

우리의 진경산수이자 수도하기 위한 터전으로서의 산수이다. 때문에 평온한 들판과 큰 산맥을 그려낸 것이 아니었다. 또 한가지 특징은 남종화의 특징을 가진 채색산수인 것도 흥미로왔다. 다름 아닌 도일스님의 안목을 작품으로 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식 산수에서 보이지 않는 대륙적인 기상이 느껴지는 산수들은 마치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보는 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며 느끼는 웅장함 그 자체였다.

불교에서도 중시한 것이지만 그것은 조선조 유가에까지 영향을 가지고 공유되었던 풍수적 요건이었던 산수. 조선조에서는 그 산수의 영역이 마치 유가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었지만 무엇보다 먼저 세월을 같이 지내온 불가에서의 산수는 같이 살아 숨쉬는 바탕임에, 도일 스님의 기운 찬 산수작품에 잘쓰지 못하는 싯귀로 필자의 감흥을 나타내고자 한다.

저녁엔 외로운 바우 하나 해를 넘겨 보내고
새소리 들리면 그 바우는 해를 맞이한다
그늘진 자태는 아랫집들을 보듬어 주고
사이 흐르는 물은 서로 인사하며 흐르네
해가 넘어가려느냐
외로운 바우는 그저 고개 끄덕일 뿐
다시 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밥짓는 중생들의 굴뚝연기 굽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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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스님의 불교와 산수화의 전통에 대한 글 / 불교와 산수화의 전통

산수화는 처음부터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 그림이나 인물화의 배경의 장식으로 그려졌다.불교그림의 보고인 돈황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진(晋)나라의 화가인 종병(宗炳)에 의해서이다. 종병이 지은 글에 의하면 자신이 산수를 좋아하여 천하의 명산들을 찾아다니다 나이가 들어 몸을 움직이기가 힘이들자 방의 사방 벽에 자신이 다녔던 산을 그려서 걸어두고 자신은 그 가운데서 칠현금을 타면서 그 소리가 메아리치기를 바랐다는 기록이 있다.

종병은 당시 여산(
廬山)에 살던 혜원(慧遠)스님에게 귀의한 제자로 염불로 수행을 삼았고 산수를 즐겨 찾았던 까닭 가운데 명산에 있는 절을 참배하려는 목적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산수화는 이처럼 불교적 영향아래서 시작되었으며 사찰에서도 산수화를 벽화로 제작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나라에 와서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왕유가 수묵을 위주로 산수화를 즐겨 그렸는데 유는 명나라의 동기창에 의해 남종화의 시조로까지 추앙되었다.

남종화는 중국 각 시대의 지식인들에 의해 전승되는데 이들은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수양의 일환으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이다. 동기창 자신도 그의 서재를 그림으로서 참선하는 방이라는 뜻의 화선실(畵禪室)이라고까지 이름 지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많은 화가들은 불교신자이거나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였다.

스님들도 많은 그림을
남기고 있는데 송대에 산수화로 유명했던 거연스님과 옥간스님, 인물화에 뛰어났던 인타라 스님, 묵계스님등의 작품은 지금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또한 명대의 석도, 팔대산인과 은 황실 출신의 스님들의 산수화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고, 장대천, 번천수, 육엄소와 같은 현대 중국의 명화가들이 이 스님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추사 김정희도 석도와 팔대산인의 그림을 극히 높이 평가하며 성품이 고고하지 않으면 이런 품이 나올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일본에서도 스님들의 그림은 일본문화 가운데서 중요한 품들로 여겨지고 있는데 송대에 유행하던 수묵산수의 전통을 이은 것이 많으며 그 가운데서 설주(雪舟)스님은 세계적인 화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은 중국과 일본 스님들의 작품들은 취미를 뛰어넘어 예술성과 정신성이 겸비된 훌륭한 것들이다. 산수화는 실경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을 일컬어 사의와(寫意畵)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옛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마치 선사들의 시와 언어를 통해 깨달음을 표현하듯이 사의화로서 가슴속의 경험과 인식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도일스님 소개
1973년 양산 미타암에 입산하여 75년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78년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서양의 여러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원조각성스님께 전강을 받고, 범일보성스님께 전계를 받았다. 현재 송광사 조계총림 율학승가대학원 원장으로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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