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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에 대한 책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호불호를 가리기엔 내 전공이 아닌 분야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출간한 한유미 선생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녹차 생산자를 대상으로 차 심평 수업을 했다.

그동안 인사동에서 만나지 못해 궁금했는데 이번에 큰 책을 내었다.고전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한다.

고전 <다경>을? 한유미 선생께 전화를 해보았다.? 왜 어려운 책을 내었냐고, - 돌아온 답변은 그동안 차를 모르는 사람이 번역해 왔다는 취지다. 아래 글은 보도자료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올린다. 독자가 가려서 보기 바란다.

저자의 집필 의도
다경(茶經) 동다송(東茶頌)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독보적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차 문화를 상징하는 그 위상과 달리 두 책에 대한 연구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 학자들의 일방적인 견해를 옮겨 놓기에 급급한 실정이고 보면 연구서라 할 만한 책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새로 나온 책 육우다경과 동다송은 이러한 국내 차계에 경종을 울리는 첫 연구서로 저자가 6년여의 담금질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차의 가공과 심평의 전문인으로, 차 품평에 대해 공식적으로 ‘심평(心評)’이란 용어를 알렸던 저자는 두 책의 출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시 시중에는 다경의 번역서가 1~2 권쯤 유통되고 있었으나 그나마 일본학자 누노메의 영향권을 벗어난 책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경』을 출판하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은 이미 연구실이 꾸려져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다 어느 대학원에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관성 있는 수업을 이어갈만한 교재가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경 서문)

“차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기관이 없고, 학습능력을 검증할 만한 시스템이 없는 문화의 변방에서 어깨 너머로 배웠거나 시류에 흘러다니는 단편적인 말들을 주워 모아 스스로 정리하고 판단하여 세력을 만들어 사는 사람들, 기본 생존능력이 차에 대한 학습능력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동다송』을 등에 업고 초의의 차 사상이 중정(中正)이라고 외치다 못해, 아예 우리나라의 대표적 차정신이라고 수십 년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동다송 서문)

책의 특징
다경은 1,200여년 전에 나온 차 문명의 시발점이 된 책이다. 따라서 다경의 연구 또한 그 시대의 언어 습관과 생활상, 정신세계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당대 차 문화를 향유하던 지식인층은 물론이고 『다경』을 세상에 내놓은 육우의 정신세계를 알지 못하는 한 겉핥기에 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경』이 육우라는 인물을 아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고, 그밖에 다른 기록도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차 지식은 단순하고 변화가 없어 우리가 필요한 몇 가지만 보충하면 육우 시대의 차도 똑같은 차일 뿐이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육우의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자면 그가 영향을 받아 정신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한 바탕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여 파악하자니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다경』의 해석은 죽은 육우와의 싸움이었다. 그가 생각하고 마시고 읽고 본 것을 똑같이 해야만 했다.”(다경 서문)“

그가 생각하고 마시고 읽고 본 것을 똑같이 해야만 했다”는 고백처럼 저자는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고집스럽게 집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다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지명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토씨 하나에서 시작된 의문을 당대의 생활상으로 확장시키고 육우의 정신세계로까지 연결 짓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더구나 차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누노메(일본)의 학설을 반박하는 저자의 새로운 시각은 연구실에서 익힌 지식과, 차 가공과 심평의 전문인으로 차와 더불어 살아온 일반적인 차인(茶人)이라는 사람들의 시선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다.

육우 차 정신의 백미를 수중(守中)이라 단언함에 있어서 ‘배꼽이 긴 차솥’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치밀함이나, 가끔씩 던져 놓는 한국 차계를 향한 고언(苦言) 등을 보면 차와 하나 된 삶을 살아온 차인의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또 필요 이상으로 포장되어 한국의 차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선사의 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동다송』은,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한국 차계에 던지는 돌직구나 다름없다. 거침없는 직설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육우다경과 동다송은 한국 차계에 크나큰 선물이다.

주요 내용
제1장 주)37 - 야생이 좋고(野者上): 육우는 야생차(산에서 나는 차)가 가장 좋다고 했으나 , 지금시대의 차는 야생차보다 다원에서 자란 것이 더 우수하다. 현실적으로 야생의 경계도 불분명할 뿐더러 채엽하기가 어렵고, 변종도 많고, 영양의 불균형이 높아 다원(茶園)에서 잘 관리된 찻잎 품질이 우수하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차 지식에 대한 부족하여 원료가 차 품질의 전부인 것처럼 말들 하지만, 차에서는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 가공기술이다.

제3장 주)7 - 지금의 엽차 가공과 날씨와의 관계를 보면 일단 비 오는 날 작업하는 사람은 없다. 흐린 날의 기준을 햇살이 가려진 정도라고 한다면, 맑은 날 가공한 녹차보다는 향기가 덜 난다. 그런데 구름이 끼었다고 육우 시대처럼 차 따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 정도의 날씨는 어렵지 않게 기술(정교한 가공)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서 볼 때 그 정도의 날씨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자가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고서는 찻잎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를 못하니 향기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그 가공기술을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심평(審評)이다. 기술(자연과학적 차 지식)은 차 가공에 있어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제4장 주)1 - 『다경』은 문명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책이다. 차에 대한 정의를 세우고, 차 만드는 도구를 제정하고, 만들기를 가르치고, 차의 새로운 법(法: 규칙)과 차 끓이는 그릇을 설정하여 바르게 끓이기를 지시하고, 제대로 끓이는 법에 대해 절실하고 간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풍로는 마치 예기(禮器)를 설정하듯 신성성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다경』의 출현으로 이전에 밥사발을 찻사발로 사용되었던 것들이 구별되었고, 차 또한 감로나 제호와 견줄 수 있는 음료라는 걸출한 사회적 신분을 갖게 되었다. 육우에게 성차(成茶: 차를 이루는 것)는 속된 차(혼합차)가 아니라『다경』에 기록된 대로 만들어 마시는 차이다.

제4장 주)23 - 솥의 배꼽을 길게 하는 것은 수중을 지키라는 뜻이니(長其臍 以守中也): 제(臍)는 솥의 배꼽이다. 솥의 배꼽을 ‘솥의 밑바닥 중심부’로 해석했다. 당대의 솥이 다 배꼽이 길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가스 불에서 사용하는 냄비와 같이 배꼽이 평평한 솥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우가 배꼽이 긴 차솥을 쓰라고 한 것은 바로 수중(守中)을 위해서이다.

문제는 중(中)에 대한 해석이다. 여러 해석 중에 필자는 중(中)을 마음(心)과 비슷한 내면(內面)으로 해석했다. 내면으로 해석하면 수중은 중정(中正)이며 중정은 무위(無爲)의 도(道)이다. 수중은 전형적인 도가(道家)의 용어이며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마음의 상태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 근원(뿌리)의 바탕이 되는 현상’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더욱 더 외부를 향해서 발전하고 만물이 더욱 더 흥성하기 때문에 사람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중은 득차(得茶)의 경지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 표현이다. 차에 대한 육우의 궁극적 목표이자 우리의 목표이기도 한 득차의 실체는 향기와 맛으로 나타난다. 필자는 수중(守中)을 육우 차 정신의 결정(結晶)으로 본다. 차 정신은 장생불사(영원히 죽지 않는 것)와 연결된다. 그러나 정신이란 것은 검증되는 것이 아니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배꼽이 긴 차솥을 지정하는 육우의 차 지식이, 정신의 도구로 활용되어 외부로 발전하며 직접 표현된 것을 통해서 그의 차 정신과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다경』은 득차를 위한 전제 조건인 성차(成茶: 자연과학적 관점의 물질적인 차를 이루는 것)를 위한 책이다. 득차(내면)의 열망이 외부의 발전을 불러일으킨 물증을 수중(守中)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수중은 성차의 완결이다. 이 완결이 차(탕)의 근본을 지키는 일을 향해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육우의 의중(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제5장 주)21 - 첫 번째 찻물이 끓으면(第一煮水沸): 누노메의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일비(一沸)와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비는 차가루가 들어가 있지 않은 물의 끓음이며 그 물이 전영이라고 해석했다. 초비(初沸)일 때도 그는 이 부분과 같이 일비로 해석을 했다. 그러나 과정은 엄연히 다르다. 국내의 어느 책은 그나마 모순을 발견했으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이비(二沸)에서 두 번의 과정이 있음을 간과했기에 생긴 혼란스러움으로 생각한다. 이 문장“第一煮水沸”는 이비 중에서 두 번째 과정인 차가루를 넣고 난 이후의“첫 번째 끓는 차탕(찻물)”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이비 중 첫 번째 과정은 끓는 물을 숙우에 덜어놓는 것이었다. 누노메와 국내 다른 책들의 해석대로 첫 번째 끓은 찻물(煮水)이 일비라면, 지극히 맛있고 좋은 전영(雋永)이 소금물이라는 말과도 같다. 소금물은 맛이 아니며 간을 봤으면 더 보지도 말고 버리라고 한 육우의 말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제5장 주)27 - 검(儉): 일본의 『다경』 연구자들에게 육우의 차 정신은 검(儉)으로 정론화 되었다고 한다. 중국 학자들 역시 의심 없이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차(사물)의 실용적 가치에 과도한 정신작용을 부여하다보면『다경』의 본질적 의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실용적 가치를 가벼이 여겨 역사적으로 손실이 많았다.『다경』의 의의와 사물의 실체를 제대로 보려면 차(茶)의 실용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차(茶)의 성질이 검한 것은 그 자체의 본질이지 육우가 부여해 준 도덕성이 아니다. 물론 양생(사실 양생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의 의술과 양생에 대한 것도 불교의 영향이 있다)을 위하여 검한 것이 인문학적 관점, 차를 대하는 태도와 연관된 정신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검이 양생을 위해 차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음식에 대해서도 많이 먹지 않는다는 보편적 정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차 정신을 검이라고 과도하게 생각하여 본질을 왜곡할 우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차의 성질이다. 외부적 환경이 아니라 차 자체가 갖고 있는 찬 성질, 몇 모금만 먹어도 열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찬(쓴맛) 바탕(質)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전해내려 오는 통치자의 미덕은 검소였다. 아마도 이 문제는 문화와 문명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화의 관점으로 차를 본다면 차를 마시고 다루는 사람들의 정신적 자세를 중요시하게 되는데, 보편적인 것을 너무 숭상하여 부담이 느껴질 정도라면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과도한 부자연스러움에서 일본 다도(기예)를 연상하게 됨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경』은 득차(得茶)의 경지를 갈망하는 육우의 실행정신이 빛나는 실용적인 차 전문서이지, 도덕적 행동규범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차라는 사물에 대해 서술해 놓은 책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차 정신이 검이라는 학문적 유행을 따라가야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제6장 주)11 - 차의 대중화를 선불교(禪宗)의 발흥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그러나 차가 남쪽에서 올라오는 물건이었다는 것과, 또 북쪽의 사찰에서 차(茶)농사를 짓지 는 한 그 많은 대중이 먹는 양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임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사찰에서 그 많은 양을 다 조달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는 먹지 않으면 안 될 물건이 되어 사 먹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필자의 관심은 ‘그렇게 퍼지기까지’의 과정이다.…

현종은 전국의 각 주(州)에 개원사(開元寺)라는 국립사원을 짓도록 명령했고 황제의 생일이나, 축하불공, 국가의 중요행사를 모두 국립사원에서 치르도록 했다. 그 국립사원 중 하나가 산동의 태산인데 중요한 행사를 잘 치루기 위해 조정에서는 승려를 파견하고 사찰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 하사했다. 하사품을 전해줄 조정의 대신이 해마다 파견되었다. 승려들은 조정의 후원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생계를 꾸릴 필요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차(茶)도 그 하사품 중의 하나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이 꼭 차가 생산되는 곳이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비록 시기는 차이가 좀 있지만 황제의 하사품 속에 차(茶)가 들어있었던 것을 본 외국승려도 있었다. 오히려 북쪽에서 마시기가 보급되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였다.

이러한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사찰에서 차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어 세상에 퍼진 것이 아니라, 왕의 공덕 표시인 하사품으로 사찰에 파급된 것이 먼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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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유미는 중국에서 심평(차 품질 심사평가)을 배웠다. 십여 년이 넘게 차 가공과 심평, 최초의 차 전문서적인 중국의 고전『육우다경』과 우리나라 초의의 다시(茶詩)인『동다송』을 가르치고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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