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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20 - 위조(萎凋 찻잎 시들리기)

 

차산에서 채엽해 온 찻잎은 가공하는 초제소에 도착하면 바로 넓은 돗자리 등에 펼쳐서 널어줍니다. 차나무에서 찻잎이 분리되는 순간부터 일단 찻잎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더 이상 뿌리에서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쉽게 말해서 말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채엽하다보면 먼저 채엽한 찻잎은 광주리 아래에 짓눌려 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 갇혀 있거나 눌려 있으면 더욱 많은 열이 발생하여 점점 색깔이 검은색 계통으로 변하여 맛과 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차농들은 한두 시간 채엽을 하고는 차밭 사이사이 원두막처럼 지어놓은 공간에 수시로 찻잎을 부려놓고 다시 채엽을 하곤 합니다.

 

이곳은 갑자기 비가 오면 대피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점심 등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차산을 오르다보면 종종 스콜성 소낙비를 만나곤 하는데 그때마다 달려가서 피하곤 합니다. 허름한 오두막에서 흙냄새 맡으며 차산에 솟아지는 빗방울들을 감상하노라면 기분이 참 야릇합니다.

 

어릴 적 읽었던 단편소설 소나기생각도 나고 옛날 옛날의 그녀도? 그런데 채엽하던 할머니라도 한분 같이 있게 되면 참 난감합니다. 이거뭐 길 잃은 별도 아니고, 언덕 위의 하얀 집도 아니고..말도 안통하고, 할 말도 따로 없고, 서로 멀뚱히 하늘, 땅만 처다 보고 있다가 비 그치면 그냥 수그리고 나옵니다...비가 오면 채엽 작업은 바로 중단합니다.

 

물이 묻은 찻잎은 잘 마르지 않아서 자칫 가공도 하기 전에 부패하기 쉽고 비가 올 때는 가공하기도 어렵습니다. 위조의 목적은 가마솥에서 살청을 하기 전에 찻잎의 수분을 줄여주고 차맛을 부드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시들리기 시간은 보통 두세시간 정도인데 오운산은 최소 여섯시간 이상 하고 있습니다. 홍차나 백차의 경우는 더욱 길게 하는데 보이차는 제작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위조나 살청 시간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위조 시간을 길게 하면 쓰고 떫은맛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단맛이 좋아서 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먹기에도 좋은 차가 됩니다.

 

저희 오운산의 경영이념인 당년호차(當年好茶)의 이념에 맞게 제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경년신차(經年新茶) 즉 세월이 흐르면 매년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 오운산이 추구하는 보이차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차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라고 그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변한 것은 사람들이겠지요! 가장 큰 변화는 바빠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하여 위조도 살청도 쇄청도 모두 너무 빨리 끝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의 발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운산은 보이차의 옛맛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들리기를 하고 있는 찻잎을 한웅큼 움켜쥐고 향을 맡으면 상큼한 풀 비린내가 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단내가 올라옵니다.

 

여섯시간 이상 시들리기를 하자면 오후 늦게 들어온 찻잎은 밤늦게 살청을 시작하게 되는데 찻잎이 많이 들어온 날은 새벽까지 살청이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모차 생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원료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가공 방법도 중요합니다. 요즈음처럼 한창 찻잎이 생산될 땐 자칫 가공이 소월해지기 쉽습니다. 어떤 차농은 아예 위조를 하지 않고 바로 살청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수차에서 다소 자극적인 쓴맛과 떫은맛이 드러나면 위조 시간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차 생산 과정에서 시들리기는 다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진정한 명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것 한 가지라도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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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차산

 

멍하이 일기 19 - 채엽(采葉)찻잎따기

 

징마이(景邁)로우강(糯崗)이라는 지역에 있는 단주(單株) 26그루를 계약하고 오늘 직원들이랑 빼이징에서 오신 손님 그리고 며칠 전에 감시병으로? 들어온 마눌님이랑 같이 채엽 행사에 동참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현장에 가서 채엽하는 장면 등을 촬영하고 감독만 하려고 했는데 차철이라 일손이 부족하여 직접 나무에 올라 하루종일 채엽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단주라고 하지만 천년 수령의 거목은 아니고 오백년 전후의 고수차라서 사다리나 보조 기구 없이도 차나무에 올라가서 큰 어려움 없이 채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차왕수급의 나무는 대부분 울타리를 처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채엽의 편리함과 채엽시 가지의 부러짐 등을 방지하기위해 나무 주위로 대나무 등을 엮어서 채엽 보조대를 설치한곳도 많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나무의 가치를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최근엔 너도나도 단주단주를 외치고 있어서 당분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모든 노동이 그렇듯이 막상 시작하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늘 지켜만 보다가 막상 대나무 질통을 걸머지고 가느다란 차나무 가지에 온몸을 의지한 채 한잎한잎 차싹을 움켜쥐고 채엽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굉장한 중노동입니다. 땅에서 채엽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닙니다.

 

고수차가 자라는 지역이 대부분 비탈진 곳이라 갈지자로 다리를 벌리고 한두시간 채엽에 집중하다보면 하체가 달달 떨립니다..이러다간 강원도 할머니처럼 한쪽다리가 짧아질 것 같습니다..보통 아침 6시 전후해서 차산을 오르는데 찹쌀로 만든 주먹밥 등을 준비해서 갑니다. 현장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늦게 돌아오는데 잘하는 사람은 하루에 고수차 생잎 15kg 정도를 수확합니다.

 

한그루당 찻잎의 수확량은 차나무의 수령에 따라 나무의 형태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향죽청 차왕수는 생엽으로 100kg이상 생산되고 노반장 차왕수는 5kg정도입니다. 저희들이야 완전 초보라서 잘해야 하루에 칠팔 키로 땁니다. 보통 일창이기(끄트머리의 뾰족한 잎을 창이라 하고 그 아래 펼처진 잎을 기라고 합니다 )를 채엽하는데 더러 일창삼기 사기도 있습니다. 소수차는 주로 일창일이기가 많고 고수나 단주차는 귀하기 때문에 일창삼사기까지 수확하곤 합니다.

 

소수차는 3월초부터 채엽하기 시작하지만 수령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잎이 늦게 나와서 고수차는 보통4월 달부터 수확합니다. 채엽은 간단한 작업이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잘못 채엽하면 내년의 수확량이 줄어 덜기도 하고 차맛에도 영향이 있습니다. 작년 찻잎이나 어엽(魚葉올해 나왔지만 작고 딱딱한 잎)을 잘못 채엽하면 살청이 잘되지 않고 말리면 누런색의 황편이됩니다.

 

나무에 올라가 채엽할땐 작은 벌레들이 많아서 토시등을 착용하는것이 좋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면 온몸이 간지러워서 잠못이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기 양양 차나무를 오르던 마눌님이 밤새 긁어대는 통에 저까지 잠못이루는 밤이되었습니다. 연녹색 새싹을 구부리면 가볍게 톡톡 끈어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양손에 움켜쥐고 계속 채엽하다보면 자꾸만 먼저 채엽한 입들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나무에서 내려와 주우면됩니다 ..그런데 생잎만 봐도 고수차인지 소수차인지 단박에 알수 있다는 도사?들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맛을봐도 어떨땐 헷갈립니다.

 

엽맥을 살핀다든지 문질러보곤 하는데 참고가 될수는 있지만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윈난의 차산엔 온갖 종류의 차나무도 있지만 온갖 종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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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해에 있는 석가명차

 

멍하이 일기 18 - 윈난 차여행 마무리 -

 

약 이주일 동안 린창으로 오신팀과 멍하이로 오신팀을 모시고 유명 차산지를 돌았습니다. 이번에 다닌 곳 이외에도 한국엔 아직 덜 알려졌지만 좋은 고수차가 나오는 지역은 많습니다.

 

멍하이 차취의 대표적인 곳은 멍송(勐宋)의 나카(那佧), 따멍롱(大勐龍)의 멍송(勐宋), 포랑산(布郞山)의 빠카롱(패카롱壩佧龍).파량(帕亮), 빠달(巴達)의 장랑(章朗).만마이(曼邁) 등이 있고 린창차취의 샤오후샤이(小戶, 동궈(동과懂過), 빠누어(패나壩糯), 샤오멍어(小勐峨), 바이엥샨(白鶯山), 따챠오샨(大朝山), 용더(永德) 이무차취의 만송(曼松), 부허탕(薄荷塘), 통칭허(同慶河), 완공짜이(만궁채彎弓寨), 이산무어(일선마一扇磨) 푸얼 차취의 쿤루샨(困鹿山), 미디(迷帝), 우량샨(無量山), 치엔지아짜이(千家寨), 샤오징구(小景谷) 등이 있습니다.

 

최근엔 변경 지대인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의 차산들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현제 저희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고수차는 236가지입니다. 아직도 제가 모르는 산지도 있을 것이므로 현제 고수차가 생산되는 지역은 어림잡아 수백 군데에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맛과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곳들도 탐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론 몇 시간씩 산행을 해야 되고 심심산골의 차농집에서 숙박할 각오도 해야 합니다. 막연히 별빛 찬란한 산골의 낭만적인 하룻밤을 생각하신다면 착각일 수 있습니다. 현장은 언제나 현실입니다. 때론 천 길 낭떠러지를 아슬아슬 건너야 되고 절벽도 기어 올라야합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산골에도 전기가 들어와 있지만 걸핏하면 정전이 될 수 있고, 차농의 집안으로 들어서면 대낮인데도 깜깜해서 잠시 눈동자의 초점 고르기를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일미터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별빛은 찬란하지만 소변이라도 볼라치면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잡기도 그렇고..아무튼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산골은 밤이 되면 조금 살살한데 아마도 일이년은 빨지 않은 것 같은 콤콤한 이불을 덮어쓰고 벼룩에 물려가면서 잠을 청하자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대부분 밤을 꼬박 새우기 일색인데 산골의 밤은 길고도 또 깁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깊은 철학이 있습니다...

 

그래도 경험해 보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기꺼이 초대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친구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고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여행오신 일행은 다행이? 한번도 비행기의 연착이 없었는데, 윈난은 비행기의 연착이나 결항이 비교적 자주 있음으로 만약을 대비한 일정을 준비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숙박지는 반드시 사전에 예약해야합니다.

 

특히 멍하이의 삼사월은 3개월전에 모든 호텔이 예약 완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차량이나 식당도 최대한 미리 챙기고 점검하는 것도 있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일정 중에서도 쿤밍 공항에서 1시간 30분가량 버스가 오지 않아서 속을 태운 적이 있습니다. 멀리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오신 손님들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다음 일정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다소 어수선한 중국이고 저희 또한 전문적인 여행사가 아닌지라 이해를 구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일 땐 좀 더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좋은 님들과 함께 바삐 움직이다가 모두 귀국하시고 쿤밍 공항에 홀로 남아 있으면 약간은 쓸쓸합니다. 머나먼 고국에서 저를 믿고 찾아 주신 귀한님들 좀더 잘 모시고 잘 챙겨드릴걸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저는 또다시 멍하이로 향합니다. 일년중 가장 중요하고도 바뿐 철이라 잠시라도 쉴 틈이 없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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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17 - 윈난 차여행 일곱째날 이무 가는 길 -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점점 나도 모르게 느긋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은 피고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때론 훌훌 날려버리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징홍은 멍하이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징홍은 평균해발500m 멍하이는1200m 정도 되는데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멍하이도 사월이 되면 차산은 그래도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일정의 편의를 위해 멍하이에서 징홍의 란창강변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기고 다음날 아침 이무로 출발합니다.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멍하이에서 이무 가는 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아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간단히 기념 촬영만 하고 지나갔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진상품(進上品)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베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을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易武鄕)이라는 대문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몇십 년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차창 흔적이 그대로 보호되고 있는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저희의 이무기지에 들러서 올해 생산된 이무차들을 몇 가지 시음합니다. 마침 부허당(薄荷塘)에서 가져온 고수차 생잎을 말리고 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1kg60만원입니다. 모차로 제작하면 1kg300만원 가까이 되는데 작년보다 50%정도 오른 가격입니다. 올해 이무에서 생산되는 차중에서 만송(曼松)차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궁금해 해서 맛이나 보려고 해마다 조금씩 구하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올해도 예상과 달리 모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아직 덜 알려진 지역까지 모차상들이 몰리면서 좋은 원료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필 제가 작년에 남몰래 점찍어 놓은 지역들이 집중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좋은 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일까요!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도 정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출시 가격을 생각하건데 자꾸만 치솟고 있는 가격이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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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삼년째 경매산 근처의 경익차창에서 손님들 환영식을 했습니다. 2015년 한국 손님들 40여분을 모시고 차산 여행을 할 때 위잉빙의 남편인 옌종의 제의로 우연찮게 이루어진 행사입니다. 태족, 하늬족, 포랑족, 라후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자발적으로 각 민족의 고유의상을 갖춰 입고 같이 즐기며 노는 한마당을 여는 것입니다.

 

작년엔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에서 오신 손님까지 합하여 10여개 민족이 함께하는 자리가 연출되었습니다. 모두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라서 서툴고 진행 또한 허술하지만 다함께 즐긴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가 더해갈수록 조금은 세련되게 연출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아직은 춤도 노래도 그야말로 동네가수입니다. 때론 춤추는 중간에 음악이 꺼져버리고 노래를 하다가 부끄러워서 웃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함께하기에 즐겁습니다.

 

매년 시솽반나 최대의 축제날인 포쉐이지에(물뿌리기 축제) 415일을 전후하여 거행하였는데 올해는 한국 손님의 일정에 맞추어 조금 빨리 하게 되었습니다. 경매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대문 입구에 오색 찬란한 복장의 소수민족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각종 악기를 요란하게 울리며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저는 몇 번 경험하는 일이라 웃으며 들어갑니다만 다른 분들은 웬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두리번 우쭐우쭐 입구로 들어갑니다.

 

널찍한 차창 마당에 저녁 햇살이 비취고 노동에 지치고 그을린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하나 둘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맑고 밝게 웃으며 마당을 돌고 춤추며 노래합니다. 한국 손님들도 답사로 마당으로 나와서 한판 놀아보라고 합니다. 마침 저희 오운산 한국 대리상인 모여사님의 민요 실력이 가수 못지않다고 소문이 자자한지라 박수로 모셨습니다. 밀양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한 답가가 박수 속에 그칠 줄 모릅니다...마지막엔 마당 중앙에 커다란 화분에 심은 차나무를 세워 놓고 손에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가며 라후족의 단결댄싱을 추어봅니다. 댄싱 스텝을 밟으며 빙빙도는 춤인데 처음엔 자꾸만 스텝이 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익숙해집니다.

 

매년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주는 옌종에게 뭐라 감사 표시를 하고 싶은데 같이 노는데 무슨 비용이 필요하냐는 한마디로 딱 자릅니다. 내년에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 모셔오면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다음날은 저희 오두막으로 먼 길 오신 손님들을 모셨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붕에 중국 국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사드문제 때문에 이번 여행 내내 말씀들은 안하셔도 불편한 심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다행이 우려했던 상황들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곳의 대부분인 소수민족들은 대도시와는 달리 정치적 현실에 무관심한 편입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대도시 사람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혹여 사드문제 등을 거론하더라도 당당히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제 논리의 주체는 항상 사람입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나와는 크게 상관도 없는 일시적 정세에 일희일비 하고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저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가 원하는 정직한 차 열심히 만들어 국적 불문하고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과 향기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도 완성이 덜된 초제소 마당에 둥근 탁자 몇 개 놓고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며칠간 입맛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 억지로 드시느라 고생하신 것 같아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상을 차렸는데 너무너무 잘 드십니다. 다락방차모임 회장 사모님은 망고를 얼마나 열심히 먹었던지 입 주위까지 노랐습니다...중국이 음식 천국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윈난의 요리는 향신료가 비교적 강한 편이라서 여간해서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한지 삼년이 되어 가는 저도 소수민족의 식사 초대에 기꺼이 응하지만 아직도 불편한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적응하려해도 한국 사람인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가게 냉장고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두고 식사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고 있습니다.

 

마을 주위에 있는 저희의 생태 차밭에서 채엽해서 그늘에서 적당히 말린 찻잎들로 각자 돌아가면서 살청(殺靑) 체험을 합니다. 비비기를 해서 널따란 광주리에 널어두고 맑고도 깨끗한 윈난 햇살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찻잎들의 비틀기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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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반장 마을 입구

 

멍하이 일기 15  

 

린창으로 와서 향죽청, 석귀, 빙도, 경매산 등을 견학하고 귀국하신 팀을 뒤로하여 곧바로 멍하이 지역을 견학하고자 오신 팀을 맞이하였습니다. 부산여대에서 차를 공부하시는 분들과 오운산의 한국대리상 그리고 78세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신 모회사 회장님 등 20여분입니다. 마침 멍하이 가게로 직접 찾아오신 한국 분들과 중국의 오운산 대리상 등 나중엔 30여분이 같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봄차철이되면 전세계에서 보이차매니아들이 멍하이로 몰려듭니다. 린창과 푸얼, 이무, 지역을 찾는 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현제 보이차의 중심은 멍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왔다가도 반드시 멍하이는 들렸다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이 노반장 지역을 비롯한 고수차밭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고 차창과 각종 보이차 관련 시설 또한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3000여개로 폭증하였습니다.

 

포랑산 노반장을 오르는 길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고속도로입니다. 주변의 신반장, 노만아, 반분, 하개 등과 더불어 일종의 보이차 실크로드를 형성하고 있는데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행렬이 옛날의 마방행렬과 대비되곤 합니다. 30인승 버스를 임대하여 노반장을 올랐습니다. 반분에서 노반장까지의 길이 아직은 흙길이라서 처음엔 대형버스가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만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노반장 대문에 도착하자 다들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직도 노반장촌민위원회와 계약 관계에 있는 진승차창에서 일억여원을 들여 작년 시월에 완공하였다는 기록이 대문에 새겨져 있습니다. 2008년 진승에서 노반장을 개발할 때부터 진승의 한국총판을 했음으로 저는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번 노반장을 올랐습니다. 제 기억에 이번이 네 번째 바뀌는 노반장 대문입니다. 찻값이 올라가면서 대문도 점점 크고 화려하게 변해갔습니다. 마을 입구에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산골 은행이 들어서고 옛날의 고즈넉하던 하늬족 촌은 산중의 별장마을이 되었습니다.

 

노반장 대문 앞에 버스를 세우고 걸어서 20여분 마을을 반바퀴 돌아 차왕수를 친견합니다. 천이백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차왕수와 왕후수가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탐방객이 너무 많아서 차나무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지만 웬지 저는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잠시 후 군복 비슷한 차림의 한 남자가 철조망에 채워진 열쇠를 열고 차왕수 곁으로 다가갑니다. 촬영 기사가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던 그가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디서 왔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왔다니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알고 보니 차왕수의 주인입니다. 때마침 와주어서 일행 모두가 차왕수 가까이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차왕수 경매 입찰 가격은 1kg에 약 육천만원으로 팔각정 상표로 알려진 차창의 협조 상인 양선생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녀간 다음날인 330일에 채엽 행사가 있었는데 차왕과 차후수를 합하여 생엽으로 12kg이 생산되었습니다.

 

가공을 하면 약 3kg의 모차가 만들어 지는데 3kg에 일억팔천만원입니다. 그야말로 조상 잘 만난 덕에 이 주인은 차나무 한 그루로 평생을 경제적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나무가 죽지 않는 한 자손 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회장님이 올해 생산된 차왕수 차를 조금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십니다. 이젠 많이 남지 않은 인생 사람들이 최고로 좋다고 하는 차 한번 맛이라도 보고 싶답니다.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습니다.

 

올해 78세이지만 회장님 건강 상태를 보니 앞으로도 30년은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의 차왕수 경매에 참여할 방법도 문의 하셨는데 홍보를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지출한 비용에 비하여 월등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석가명차 오운산의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상념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노반장 121호인 파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동안 노반장을 오르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집들과 인연이 있습니다. 파투는 2014년 오운산을 오픈할 때부터 알게된 친구로서 노반장132가구중에서도 단주즉 수령이 오래된 차나무를 가장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15년 저희가 출시한 노반장 차왕수 차가 그의 집에서 10여그루 단주를 선택하여 생산한 것입니다. 작년에 파사 지역의 꾸냥과 결혼하여 이제 갓 삼개월된 아기를 키우고 있습니다.

 

노반장에 사는 강아지도 1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 돈이 몰리면서 이혼율의 급증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파투는 정직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던 배우려는 열의가 있습니다. 종종 저희 멍하이 가게를 방문하여 보이차 시장의 정보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묻곤 합니다. 현제 노반장 지역의 한가구당 년 소득은 평균 사억 정도로 추정되는데 중국 물가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잘 쓰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특별한 노력 없이 생긴 돈은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파두 집에서 올해 생산된 노반장 고수차를 마십니다. 노반장이 유명해진 이유는 쓴맛, 떫은맛, 단맛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고 빠르고 화려한 회감까지 있으니 진정한 노반장 차를 한번 맛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모두들 묵직한 노반장의 매력에 흠뻑 빠진 모습입니다. 몇 분이 구매를 부탁하는데 이런 경우 솔직히 참 난감합니다. 저희 같은 업자와 일반인들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파두 집은 저희의 오랜 친구로서 특별한 가격에 주는데, 손님들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옵니다. 저희를 믿고 이억만리를 날아오신 손님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봉사가격으로 드려야겠지만 파두 입장에서는 원가가 오픈되면 곤란하다고 합니다.

 

현제 노반장의 시세는 1kg에 5000~8000위안 사이에 거래되고 있는데, 단주라고 불리는 특별히 오래된 차나무는 보통 일반 시세의 두 세배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고수차의 비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고 또 파는 사람에 따라서도 차이가 납니다. 어떤 손님은 집요하게 저희가 구매하는 가격을 물어보십니다. 제가 얼마라고 이야기해도 다음날 다시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답니다...매사한 철저한 성격은 좋은 것이겠지요...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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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마이의 미국인

 

멍하이 일기 14 - 윈난 차여행 넷째날 경매 징마이의 미국인 -

 

어젯밤 늦게 도착한 린창기지에서 올해 생산된 햇차들을 시음하였습니다. 대체로 작년보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향기가 좋고 가공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음회중 교수님이 계단에서 발을 잘못 헛디뎌서 어깨부분의 팔이 빠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여행도중 물이 바뀌면서 복통을 호소하는 분들은 종종 있습니다만 이번 사고는 처음 경험하는지라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병원을 찾기도 어렵고 중국 대부분의 의료시설이 그렇듯이 국내에 비하여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제가 멍하이에 있으면서 몇 번 병원을 찾은 적이 있는데, 한번은 가온도 입지 않은 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혈액검사를 하더니 다짜고짜 맹장이라면서 바로 수술하자고 해서 도망 나온 적이 있습니다...다행이 샤오미 친척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 근처에 있어서 바로 달려가서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팔이 빠진 것이기 때문에 팔 거치대를 하고 하루 이틀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님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될까 노심초사하셨는데 병원을 나서시며 중국 병원도 그런대로 괜찮다며 밝게 웃는 모습을 뵈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솽지앙에서 네시간을 달려 징마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보이시 란창현 혜민향 경매산은 흔히 천년만묘고차원(千年萬苗古茶園)이라고 부릅니다.

 

한묘가 한국 평수로 200평 정도라고 계산하면 만묘는 약 200만평이 됩니다.

실제로 엄청난 차밭 면적을 자랑하는 경매산은 따짜이(大寨), 멍번(猛本), 망징(忙景), 노강(老岡), 윈지(翁基) 등의 수십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2000년 초부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비교적 잘 개발된 차산입니다. 보이차이지만 대엽종보다 중 소엽종이 더 많습니다. 경매 지역의 고수차를 가공하면 색깔이 비교적 검은 편이라 보기에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맛은 달고 순한 편입니다.

 

이무 지역의 차와 종종 비교되는데 이무차는 부드러움의 특징이 있고 경매는 맑고 달며 깨끗한 향기가 있습니다. 또한 팡세이지아오(방해각螃蟹脚)라고 부르는 경매산에서 특히 많이 불수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차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로서 영덕대게로 유명한 게의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주며 위장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경매산고차림이라고 부르는 경매산 정상에 위치한 고수차 밀집 지역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특히 차산에 내리는 비는 더욱 맑습니다. 아열대 지역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스콜처럼 보통은 잠시 내리곤 그칩니다. 용수(龍樹)라고 부르는 큰나무 아래에서 잠시 피하거나 차밭 중간 중간에 차를 채엽할 때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고수찻잎에 떨어지는 빗물을 감상하면 됩니다. 비가 개인 후 차숲에 들어가 뾰족이 솟아오르고 있는 차싹을 직접 따서 먹어보고 방해각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경매산 정품 방해각은 1kg에 백만원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시중엔 고수차도 그렇듯이 다양한 가격이 있습니다. 저희처럼 전문적으로 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어떤 경우엔 정확히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일단 사람을 신뢰하는 쪽을 택합니다. 그 많은 모차들을 한상자한상자 열어서 전부 맛볼 수도 없고 감시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속이려는 마음이 생기면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 이쪽 세계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차농입니다. 그분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차를 만들고자하는 저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 최선을 다해 모심으로서 비로소 좋은 원료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해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하고 원하는 가격에서 절대 깍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고비를 따로 챙겨 주기도 합니다. 경매산에 미국인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망징(忙景)이라는 마을의 엽공차업(葉貢茶業)이라는 곳입니다.

 

오바마를 닮았다는 이집 주인의 이름이 엽공이라서 엽공차업이라고 지었답니다. 이곳에서 브라이언이 포랑족 꾸냥을 만나 올해 118일에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브라이언이 윈난을 처음 방문한 해가 1995년이라니 벌써 22년이 흘렀습니다. 인류학자인 그가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쿤밍에서 우연찮게 지금의 스승을 만나면서부터라고 하는데 차를 우려내는 모습이 남자이지만 아주 우아합니다.

 

중국어도 아주 능통하고 문화 인류학적 지식이 남달라서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를 만나러 멍하이 가게를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마침 제가 출장 중이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여러 한국 분들과 함께 만나게 되어서 더욱 반갑다면서 진심으로 환영해줍니다. 귀한 만남이라면서 자기가 조금 소장하고 있는 80년대 7572 숙차를 우려 줍니다.

 

이곳에서 정품 노숙차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보관상태도 좋고 구감도 아주 좋습니다. 숙차도 오래두면 이렇게 좋은 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떠날 때에는 이번에 방문한 한국 손님들 모두에게 결혼식을 기념하여 200g 소병으로 찍은 병차를 나눠주었습니다. 작년 경매산 가을 고수차로 만들었다는데 멍하이 가게로 돌아와서 마셔보니 가을차 특유이 맑고 깨끗한 향기가 두 분의 아름다운 결혼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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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도노채

 

멍하이 일기 13 - 린창 차여행 셋째날 빙도 빙다오 -

 

어제 저녁 만찬이 늦어지면서 방동에서 출발하여 솽지앙(双江)에 있는 저희 린창기지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두시 정도입니다. 도로공사중인 곳이 많아서 더욱 늦어 졌습니다. 현제 보이차가 생산되는 지역은 어디를 가나 공사 중입니다. 특히 고수차가 생산되는 지역은 원료 가격이 폭등하고 자금이 생기면서 차농들이 처음으로 하는 것이 주택 개량입니다.

 

노반장, 빙도 등은 이미 산중의 신도시가 되었고 기타 지역도 덩달아 춤추듯 집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새로 지은 차농들의 집들을 방문해보면 대부분 콘크리트로 비슷비슷하게 지은 2층 양옥집입니다. 3층은 초제소 즉 솥에서 가공한 찻잎을 말리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지붕엔 스레트처럼 생긴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덮어서 비가 올 때도 찻잎을 말릴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용도에 맞게 설계한 것이지만 집안으로 들어가면 생활하는 방식은 예전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커다란 거실에 덩그러니 TV하나가 놓여 있고 벽에는 가족사진을 비롯한 차나무 사진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간혹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현관 입구의 빈 공간에 주방 기구들을 놓아두고 그때그때 손닿는 데로 사용하곤 합니다.

 

솽지앙의 저희 린창기지는 5층으로 지어진 신식 건물입니다. 지금은 샤오미(小米)라고 부르는 이집의 막내딸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주 싹싹합니다. 80년대부터 맹해차창에 원료를 납품하기 시작했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쌍둥이 누나, 오빠까지 네명의 형제자매 전부 차업을 하고 있습니다. 쌍둥이 누나는 시집가서 한명은 푸얼시에서 한명은 멍하이에서 차업을 하고 있고 오빠와 부모님은 린창기지에서 찻잎 가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샤오미는 일찍이 베이징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간호사로 일하던 중 남편을 만났는데 부모님의 요청으로 함께 하산하여 차업에 열중하게 되었답니다.

 

남편은 약간 내성적이지만 술한잔 하면 노래를 아주 멋있게 잘 부릅니다. 운전도 너무 잘해서 깎아지른 산길을 쏜살같이 달립니다. 앞에 앉으신 분들은 일정 내내 불안불안 하셨으리라 짐작됩니다...산길도 자주 다니다보면 익숙해져서 평길처름 비교적 빨리 다닐 수 있습니다.

 

한번은 멍하이 저희 오두막에서 바이주를 거나하게 마시고는 앞으로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 해서 꿀밤을 먹인 적이 있습니다. (삼촌이나 형님이라고 하라고...) 예전부터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만성이 될 법도 한데 가끔 내가 보기엔 나보다 한참 늙어 보이는 촌로들이 나를 할아버지 취급해서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육십대가 저를 형님으로 부르는 분도 계십니다...물론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가끔 남몰래 거울을 들여 보기도 한답니다.

 

셋째날 드디어 빙도를 오릅니다. 빙도(氷島)의 원래 이름은 병도(丙島) 이었는데 이름을 바꾸고 나서부터 이름에서 오는 신비감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래서 찻값도 올랐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고 빙도차는 가격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 고유한 특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르는 중간에 빙도호라는 제법 큰 규모의 저수지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들이 산재해 있는 골짜기를 돌아 나온 물이 모였음으로 물맛도 맛있고 비쌀 것 같다고 농담을 던져봅니다.

 

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도 있는데 시간이 허락하면 물길을 헤치며 빙도차의 진정한 깊이를 가늠해보고 싶습니다. 임창시 맹고현에 있는 빙도는 빙다오라오짜이(빙도노채氷島老寨), 난포(남박南迫), 디지에(지계地界), 나우(나오糯伍), 빠와이(패왜壩歪) 다섯 개 마을을 말합니다. 해발 1750미터 빙다오라오짜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네게 마을을 포함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를  일반적으로 빙도차라고합니다.

 

빙도라오짜이라고 부르는 본마을은 70%정도가 라후족이며 56가구 300명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많이 알려지면서 봄차철에는 매일 300명 정도가 방문할 정도로 붐비는 촌이 되었습니다. 마을 주변에 2000여 그루의 고수차가 있는데 봄차  생산량은 1톤정도입니다. 적은 집은 열 몇 그루 많은 집은 이백여 그루의 고차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외지인들에게 임대로 차밭을 빌려주고 있는데, 나무 한 그루당 임대비용은 일년에 천만원 전후입니다.

 

모차 가격은 봄차 일키로에 사백만원 기을차 백오십만원정도인데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했더니 방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진짜 고수차는 없어서 못 판다고합니다. 마침 저희가 방문했을 때 광동성에서 온 상인이 현장에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채취해주는 조건으로 단주차 생엽1kg을 이백만원에 구입하는 것을 목격 하였습니다.

 

매년 맛이나 보려고 조금씩 모차를 수매하는 차농집에서 식사 대접을 받고 고수차는 아직 일러서 중수차 2kg을 이백만원에 구입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수차(수령 백년전후)1kg에 이백만원인데 멀리 한국에서 와서 사업하시느라 고생한다면서 특별히 절반 가격에 준답니다( 매년 좋은 가격에 줘서 고맙긴 한데 올 때마다 왠지 사기 당하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빙도 다섯 개 마을중에서 옛날부터 공수(貢樹나라에 바치는 차나무)로 지정된 일곱 그루의 차나무가 있는데 (빙다오라오짜이1,디지에3,난포1,빠와이1)수령이 약 천년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주변의 네 군데 마을 중에선 난포의 생산량이 그중 많고 나머지 마을은 비슷한데 빙도 다섯 개 마을의 고수차 생산량을 다 합하면 10톤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세 번째 방문하는 띠지에의 맛이 가격이나 맛의 품격 면에서 오히려 빙다오라오짜이를 뛰어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해발 고도도 1850m로 높고 길이 나빠서 다른 마을에 비하여 개발이 더딘 것이 오히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희의 린창기지에서 이곳에 초재소를 짓고 있는데, 올 가을이면 직접 생산한 빙도차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빙도차의 특징은 맑고 달며 삶은 콩 향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혹자는 기운이 좋다고들 하는데 저는 도무지 기운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순환이 잘되어서 그런지 어께 부분이 약간 따뜻해지고 많이 마시면 머리가 띵한 정도를 느낄 뿐입니다.

 

하산 길에 빙도호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송어 회와 민물 칠갑상어 탕을 먹었습니다. 빙도를 올 때마다 매번 들리는 집인데 빙도호 댐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양식장의 맑은 물길 속에 노니는 송어를 그물로 건저 올려 즉석에서 회를 썰어 줍니다. 잘 익은 복숭아 속살처럼 발그레한 살점들를 한입 베어 물때마다 신선하면서도 쫀득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웁니다.

 

윈난에서 제가 유일하게 회를 맛보는 집입니다. 작은 칠갑상어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는 탕으로 제격입니다. 중국에서 천연 기념물로 보호하는 종이라는데 양식을 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궁물 맛이 구수하고 육질이 단단해서 씹는 맛이 아주 괜찮습니다.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근처의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잠시나마 여행의 피로를 풀 수도 있습니다. 혹시 다음에 빙도를 방문하고픈 분들이 계시면 이집은 꼭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빙도차보다 이집이 더 기억에 남을 수 있겠습니다...ㅎㅎ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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