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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상태가 양호한 일점홍인

 

인급차를 대표하는 홍인은 현재 보관 상태에 따라서 3000만원에서 8000만원을 호가하는 차이다. 이런 홍인이 보관 과정에서 어떤 환경에 노출되었는지 모르고  무조건 건창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경우 대표와 호급차와 인급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유익한 내용이라 생각하여 김 대표에게 부탁하였다. 홍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석우연담에 올려 공유하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받아 보기로 했다.

 

보이차 퇴창 창고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

홍인은 1980년대 후반 돈황차루(敦煌茶樓)에서 먼저 차가 나왔다. 다음은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내용이다. “홍인을 구입하러 갔었는데 창고 바닥 한쪽에 종이를 열어 선풍기로 병면에 눅눅한 습기를 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상으로 미루어 보아 홍인이 우리가 건창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모든 홍인이 결코 건창으로 깨끗하게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0년 중반에 이르러 금산루(金山樓), 용문차루(龍門茶樓)등에서도 홍인이 창고에서 나왔다. 이때 나온 홍인은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된 차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1950년대에 지어진 가옥 구조에 따라 보관된 창고의 습기 노출 정도에 따라 홍인은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있었든 것이다. 통풍이 잘되든 곳에 있었던 차는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되어졌고 통풍이 잘되지 않은 장소에 있는 차는 습기에 노출되어 병면의 형태, 포장된 종이 등이 온전하지 못했다.

 

온전한 홍인 한 통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홍인중 일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입창과 동일한 결과물로 포장된 종이와 차의 상태가 습기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기에 딱히 입창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다만 보관된 창고의 특징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 가옥 고조의 특징상 바닷가 근처 습도가 높은 지역에 보관 창고를 지었다. 입구 쪽 문은 크게 하여 습도가 높은 해풍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으나 바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반대쪽 창문은 작게 지어진 구조였다. 창고 구조상 상대적으로 높은 습도가 창고에 그대로 머무는 구조였기에 홍인은 습기에 노출 될 수밖에 없었든 것이다.

 

현재 홍인은 인급 보이차를 대표하는 차로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대다수가 홍인을 건창차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신차를 만들면서 세월이 지나면 홍인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기 위해서는 홍인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 다음에 신차를 만드는 과정이나 보관과정에 적용 시켜도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의 맛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홍인과는 거리가 멀다. 단일지역에서 생산된 찻잎과 이른 봄에 채엽 한 찻잎으로 홍인을 만들지 않았다. 이른 봄 찻잎 여름 찻잎 가을 찻잎을 적절히 병배하여 차가 만들어질 당시 아주 강한 고삽미를 가진 차가 홍인이다. 보관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순수한 자연 상태의 환경에서 보관된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습도가 유지되는 창고에서 홍인은 보관된 차이다. 이렇듯 모차가 다르고 보관환경이 다름에도 홍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은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 보이차 시장의 절대 다수의 중국 유통 상인이나 소비자는 2005년 이후에 보이차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며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보이차를 접하기 시작한 시기는 호급 보이차, 인급 보이차, 숫자급 보이차중에서도 오래된 차는 가격이 비쌌고 차의 수량이 부족하여 접해볼 수가 없는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신차를 제작하여 유통한 것이다.

습기에 노출된 홍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차를 보관해서 발효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차를 두고 세월이 가면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무조건 신차가 좋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오래된 차나 잘 발효된 노차가 없으니 무조건 신차가 좋다고 한다. 보이차는 체질에 따라 신차가 맞는 사람 잘 발효된 차가 맞는 사람으로 엄연히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차가 나쁘다는 취지에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의 소지가 없어서면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좋은 차, 훌륭한 차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이차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좋은 모차를 사용하여야 하며, (이 부분은 오해의 소비를 없애기 위해서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풋풋한 향과 청아한 향으로 마실 차는 굳이 오랜 기간 보관해야할 이유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유의 향의 없어지면서 발효된 향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발효가 될 수 있는 보관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든 람인이 되든 훌륭한 차를 기대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부분은 건창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홍인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환경으로 습도가 낮은 곳에서 보관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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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의 종류

홍인은 1950년대에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차이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다. 생산시기에 따라 조기홍인(早期紅印), 중기홍인(中期紅印), 후기홍인(後期紅印)으로 구분하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갑급홍인(甲級紅印), 일점홍인(日點紅印), 세자홍인(細字紅印)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단일 품목으로는 람인철병과 더불어 잔존 수량이 가장 풍부한 차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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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0 - 대익보이차 영웅준마 런칭

2014/01/18 - 중국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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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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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오늘날 인급 호급차를 제외하면 보이차 매니아에게는 아주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격 또한 인기만큼 높다. 그런데 이 차의 출생을 두고 여러 말이 분분하다. 73청병이라는 이름을 두고 연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러모로 말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현재 일부에서는 80년대차라고 하는 추측과 확신이 어우러진 상태이다. 여기에 김 경우 씨는 정식으로 반박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김경우 씨의 논거에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실제 제작 연도에 대해서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경우씨가 정리한 자료를 석우연담에 올린다. - <석우>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홍콩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이며 대만 옥호헌(玉壺軒)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유통한 차이다. 옥호헌에서 수입한 차는 7542(501)이라고 한다. 다음은 옥호헌 대표 황슬금(黃瑟琴, 72)씨의 구술 내용이다. “1973년 가계 오픈 후 처음에는 자사호를 수입하여 싱가포르, 태국 등지를 역 수출하는 영업을 하였다. 자사호 때문에 중국 의흥을 가기위해 늘 홍콩을 경유하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홍콩을 드나들 때 당시 대만은 오룡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 발효차인 보이차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오래된 호급이나 인급의 보이차가 창고에서 나오기 전이였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주로 10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 약간의 발효가 진행된 생차 내지는 숙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조금씩 가져다가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의안차장에 있는 7542(501)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돈을 합쳐 2000천만원(대만돈)을 투자하여 7542(501)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수입할 당시 자료가 부족하여 홍콩에서도 정확한 연도는 몰라 본인 생각과 홍콩 의안차창에서의 말을 종합하여 70년대 초반차라는 결론을 내리고 단순한 생각에서 생차 계통이니 73청병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는 73청병의 생산 연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때 73청병이 싸여진 바닥에 신문지가 있었는데 신문지의 날짜가 민국 73(서기 연도로는 플러스 11년을 하면 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기 1984년 생산 된 차로 언급되면서 인터넷이나 단행본에서 1984년 생산된 차로 사실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왜곡된 정보이다. 황슬금씨의 구술에 의하면 신문지와 민국 73년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알 순 없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73청병은 대만 옥호헌에서 홍콩의 의안차창에서 나온 차를 수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산의 녹백다장에서 수입하였다.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에 의하면 “73청병을 수입하기 위해 통표를 살펴보니 7542(50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73청병은 7542(503)이며 최윤석 대표는 73청병의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073청병(공칠삼청병)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남지역에서는 73청병을 073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3청병을 1975년에 만든 차로 추정하는 이유로는 황슬금 대표와 최윤석 대표의 구술 내용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내비에 표기된 글씨가 이를 뒷받침한다. 맹해차창에서 생산 된 차의 내비에는 서쌍판납태족자치주 맹해차창출품(西双版納傣族自治州 勐海茶廠出品)이라고 표기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출()자의 위쪽의 산()자가 아래쪽의 산()자 보다 좁아 뾰족하다. 이런 출자를 우리는 첨출(尖出)이라고 한다. 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쪽의 산()자와 아래쪽의 산()자의 넓이가 같은 것을 평출(平出)이라고 하며 평출내비는 1980년대 이후 생산된 차에서 나타난다.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73청병의 생산 연대는 1975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7542로서는 최초로 생산된 차에 속하며 1975년 이후 7542는 계속해서 생산 되었을 것이다.

73청병은 홍콩의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로서 다른 차에 비해 높은 습도에서 보관된 차이다. 그러다보니 차에 따라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큰 차이다. 의안차장의 보관창고는 홍콩에서도 대표적으로 습도가 높은 창고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보관이 양호한 차와 습기에 노출된 차의 편차가 크고 바닥에 눌러져 있든 차는 매변이 심하게 발생한 차도 있다. -<끝>

 

1970~1980년대 생산 된 차들 대부분은 홍콩 보관창고에서 입창이 된 차들이다. 다만 입창의 정도에 따라 습기에 노출 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3청병은 대표적으로 입창이 강하게 된 차이다. 그래서 인지 습기에 노출된 차들이 많고 병면이 깨끗한 차들은 드물다. 습기에 노출됐더라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하게 거풍이 된 차는 농익은 맛으로 마시기에 편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관이 양호하고 병면이 깨끗한 차만 건창차로 인정되며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장 질서이다. 체질에 따라서 마셔야 될 차가 다르고 선호하는 차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10일 황슬금 대표와 김경우 대표

 

현재 보이차가 역 수출 되는 시점에서 가격 형성으로 본다면 73청병은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차가 분명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저평가된 차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보이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중국 유통상인들의 이해 부족과 73청병을 마셔보지 못해 객관적으로 품질대비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 마셔 본다면 동일한 연대에 생산 된 다른 종류의 차 보다 맛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고 오히려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따라 품질대비 가격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종류의 차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안타까운 차이다.

 

73청병의 병면 외형 찻잎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 생산된 7542 계열의 차보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 오히려 7532 계열의 차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숫자급 보이차의 병배방식을 1974년부터 만들어 적용하였지만 생산 초창기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의 무게와 찻잎의 크기가 7542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생산 된 7432, 7452, 7542, 7572, 7582 등등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찻잎의 크기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생산 10년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들어 온 차[보이 생차, 숙차]들은 위 말처럼 당시 대만의 주요 차류로 인정받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 80년 중반의 시기에 들어와 있던 7542(501)가 연도를 따져 73청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니 지금 시중에 퍼져 있는 80년대 차라는 인식은 충분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옥호헌 대표의 구술 내용처럼 직접적인 판매상의 증언이 있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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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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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중국 대익차의 공식통지문이 아니라 제목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수정하였다. 중국 기사내용은 대익차와 대리상 점주들간의 회의에서 희사측에 요구한 내용이 일방적으로 기사화 되어 중국 신문에 보도 되었다. 필자는 대익차 대표가 한국에 와서 한국보이차 시장을 10배 키우겠다는 발언을 언론을 통해 접하였기에 한국에서의 대익보이차에 대한 기사는 하나하나 중요한 사항이라 이를 전하게 되었다.

2015326일자로 중국 보이차 시장의 톱뉴스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대익보이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중국에서 대익차 본사 차원에서의 대응 통지가 나온 것은 전체 보이차 시장의 어려운 점을 대변해 준다 할 것이다.

ㅡ<아래 기사 내용은 중국 신문에 난 기사>

(생략)대익차(대익보이차)는 대리점에 통지를 보내 회사에서 장차 일련의 중대한 조정을 실시 시장변화에 적응코자함을 고지했다. 그중에 요점은 이렇다 : 숙차의 가격을 50% 하향조정, 수장(收藏)의 믿음을 드높인다, 다시는 강제적으로 상품을 출고하지 않는다, 매장에서 다른 차들을 판매할 수 있다, 다시는 전문매장에 대해서 심사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각 전문매장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복의 변화가 심했던 2014년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의 대익(大益)과 시장부서 업무에 대한 지지에 감사드리며, 현재 회사는 위로는 최고위층에서 아래로는 일반 직원 모두에 이르기까지 다들 주지하다시피 전문매장이 생존의 위험에 직면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경제가 불경기라서 허다한 업종 모두 생존의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측에서는 영업판매, 생산, 구조 등 각 방면에 걸친 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얼음 두께가 삼 척()인 건 결코 하루에 얼은 게 아니다.”란 사실처럼, 단시간 내에 이런 상황들을 개혁하자면 예측컨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이제 몇 가지 사항을 통지 합니다 : 2015년 회사정책 :

1.숙차 가격인하(거의 50%에 육박), 중점적으로 소매를 지지, 후기에 장차 부분 중기년도 숙차를 함께 분배 배급하되, 가격은 시장가격의 절반으로 한다.

2.생차, 정교하고 세밀하게 제작하는 것, 억제량, 회사는 다시는 재고품 등을 남기지 않는다, 점차적으로 수장하려는 믿음을 드높이도록 한다.

3.상품배합정책의 개성화, 즉 전문매장은 시장상황에 근거해서 상품배합을 적게 혹은 하지 않아도 된다.

4.여유롭고 개성화된 전문매장의 관리정책은 회사의 묵인아래 너무 큰 자본의 투입을 증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여분의 이윤을 증가한다, 즉 비보이차류의 기타 차를 판매할 수 있다(시장부에 보고해서 비치할 것, 억제비례는 20%를 넘지 말 것, 혁명적 노선을 밟지 않을 것)

5.전문매장의 경영상황에 대한 소리(梳理)통계를 진행하며, 유효한 방부(幇扶)계획을 제정한다.

6.전문매장에 대한 심사는 다시 진행하지 않는다[계수(係數)는 계약을 체결한 후에 전부 1번에 귀속시킨다]. , 판매 통계 수치는 정상적으로 제보(提報)할 것(실제 수치를 제보하되, 많게 제보해도 소용없다).

시장에 출현한 새로운 정황에 견주어서 대익(大益)은 적기에 변화와 조정을 실시했으니, 보이차 각 제조업자는 참고삼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이번 중국에서의 긴급 대응은 보이차 시장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것은 비단 대익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거품이 제거되고 새로운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보이차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국대리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대익차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주에게 얼마나 효율적인 방안이 적용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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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익보이차 여의도점 전경

중국차 가운데 보이차는 2000년대부터 중국이나 한국에서 최고의 이슈를 가지고 차 시장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에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차가 정식으로 수입되어 들어올 때 온갖 소문도 안고 들어왔다. 중국차를 마시면 크게 잘못되는 것처럼 언론에서 기사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몸에 좋은 차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중국의 명차를 소개했고, 녹차, 홍차, 흑차를 다루면서 보이차가 큰 화두가 되기도 하였다. 보이차는 그 역사만큼이나 말이 많았던 차다. 그런 한편으로 또 보이차는 고급차다’, ‘보이차는 몸에 좋은 차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수차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었다.

점심시간에 '타이버블보이차'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젊은 층이 '보이차 아이스크림', '타로버블보이차' 등을 즐길때 중년 층은 세월감 있는 보이차를 우려마신다

우리가 보이차에 대한 호불호를 논하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대익보이차가 차의 세계에서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기업에서 생산하는 차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잘 알면서도, 결국 시장 논리로 한국에도 한국총판이 설립되고, 지역별로 대리점이 개설되었다.전국적인 유통망이 형성되면서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과 홍대점은 다른 보이차 전문점에서도 그 추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보이차 맛을 아는 손님은 매장에서 주문하여 우려마시거나 소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차가 진열되어 있다

사실 이런 큰 규모의 매장이 잘 운영될까하는 우려의 시선도 함께일 것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한국 차 시장은 새로운 도약으로의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여의도점의 운영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어렵게 다가왔다. 우려했던 것처럼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필자가 초기에 방문했을 때의 걱정이 현실이었다.
보이차 아이스크림

프랑스에서 수입한 즉석 아이스크림 기계

망고빙수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보이차 아이스크림’,‘타로버블보이차' 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주변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보이차를 간접적으로 만나고, 그 고객의 일부는 보이차를 마시게 되는 역발상의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보이차 전문점의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기대를 하게 된다.

타로버블보이차와 보이차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손님들
보이차 아이스크림을 즉석해서 만든다(석우미디어 동영상)

보이차 아이스크림은 사실 그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 하지만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인해 연관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젊은 층으로 확대 보급되고, 결국엔 차 시장이 커피 시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한 축을 형성하여 성공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대익보이차 여의도점과 홍대점의 분발에 성원을 보내며,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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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익보이차 여의도점을 운영하는 명가원(대표 김경우)은 향후 별도 법인을 만들어 전국 체인점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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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익한국지사에서 대익보이차 회사 소개(사진, 서위)

2014년 청마해를 맞이하여 대익에서 말띠 기념차인 ‘영웅준마(英雄駿馬)’ 출시하고, 2월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를 기념하는 런칭 행사를 하였다. 이번 행사는 대익인터내셔널코리아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대리점외 3개 지점 공동 후원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차문화계 인사와 차 마니아 100명을 초청하여 진행된 행사는 대익한국지사에서 서위 부장의 대익보이차 회사 소개와 대익차 여의도지점 김경우 대표의 영웅준마 출시 배경 설명으로 진행되었다. 중식후 추가열 초청가수의 공연이 있었다. 대익 보이차 논차(論茶, 대익보이차 이름 알아맞히기)게임은 김정순 티월드페스티벌 위원장이 진행하였다.

영웅준마 출시에 따른 상품 설명(김경우 대리점장)

대익차는 보이차의 대표적인 생산공장으로 알려진 맹해차창이 민영화로 전환되면서 이름이 변경 되었다. 맹해차장의 오랜 역사와 전통, 제다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대익차는 생산과 유통에서 연 매출 6000억 이상을 달성한, 세계 제 1의 보이차 회사로 변모하였다. 현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있는 보이차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품질뿐만 아니라 소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경영방침이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익차에서 매년 생산되는 띠별 시리즈는 중국에서도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은 차로 소장성이 높아 매년 가격이 꾸준하게 상승되고 있다고 한다.

대익보이차 논차 게임

올해는 청말띠의 해로서 ‘대익차’가 야심차게 준비한 차가 바로 “영웅준마”이다. “영웅준마”는 출시되기도 전부터 중국 소비자에게 품질을 인정받아 이미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차를 우리 한국 소비자에게도 공급하기 위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보이차의 품질 특징상 세월이 흘러가며 발효되는 과정에 따라 나타나는 맛의 변화를 함께 즐겨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사장에서는 영웅준마를 시음할 수 있도록 4명의 차 전문가들이 우려낸 차는 모두 테이블로 가져가 시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 경품행사는 준비한 선물이 많아서 많은 참석자들이 보이차를 경품으로 받아갔다.
이제 서울에는 동양의 대기업들이 차(茶. TEA)를 가지고 시장을 양분하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2013년 싱가포르에서 진출한 TWG TEA 샬롱은 청담동에 진출하여 홍차시장을 글로벌마케팅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부산에 본사를 둔 대익차가 서울로 한국지사를 옮겼다. 

대익보이차 논차 게임 참가자의 시음(사진 왼쪽 양흥식, 오미정, 송양희) 

대익보이차 전국 대리점주와 대익보이차 서울지사 직원

보이차의 세계에서 이번 영웅준마의 런칭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소장용 보이차가 한가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보이생차 시장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향후 한국시장에서 대익차가 소장용 보이차에 힘을 실어가며 지속적인 성장가능성은 3월 15일 영웅준마의 소비자가 15만원이 3년 뒤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 따라 시장은 새롭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석우미디어(동영상)] 대익보이차 논객 게임 준비 과정 동영상 보기, 화면속의 삼각형 클릭!!
첫 화면에 보이차 우려서 게임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김영숙(한중다예연구중심)원장

대익차는 2010년 호랑이 해에는 서호정상 (瑞虎呈祥), 2011년 토끼 해에는 보토영재(寶兎迎財), 2012년 용 해에는 용등성세(龍騰盛世), 2013년 뱀 해에는 영사헌보(靈蛇獻寶)를 출시하였다.

대익차의 성장은 중국차가 한국 차시장을 잠식한다는 시각보다는 국내 기업도 함께 경쟁하며 전체 차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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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생산, 대익보이차 칠성인월(용인 8582)

중국에서 보이차 생산 차창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대익(구, 맹해차창)에서 칠성인월(용인)고급 선물용 세트가 발매되었다. 시중가 100만원. 실제 이 상품을 들어보면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무게와는 전혀 다르다. 건장한 남자가 들 수 있는 무게로서 안의 내용물은 2단 포장이다.

차 이름은 ‘용인 8582’ 2013년 생산품이다. 한국에서는 선물용 세트 형식으로 만든 보이차는 판매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구매해 오는 것은 있겠지만 보이차 전문점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이번에 이 상품이 ‘차도구옥션’www.tauction.net 에서 시작가 450,000원부터 경매가 시작된다.(사진 참조) 2단 중앙에 보이는 차는 메인차로서 357g 그 외는 100g이다.

대익보이차 칠성인월 고산운상
칠성인월 301, 순향사계

대익보이차에서 출시된 칠성인월 시리즈 중에 '칠성인월 단청' 차는 시중가 60만원 경매 시작가 250,000원이다. 그 아래급으로는 칠성인월 '고산운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거래될 수 있는 것은 '칠성인월301' 순향사계(醇香四季) 말리청병(茉莉青饼)으로 전체 세트 중량은 537g으로 운남 맹해 대엽종 쇄청모차엽원료로 하였다.

차우리나라 정서와는 좀 다르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보이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제조회사에서는 서로 경쟁이 되는 가운데 좋은 아이디어로 즉시 즉시 신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런 선물용 세트는 중국에서는 연말에 기업체 선물용을 준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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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급(號級) 골동 차사전(茶事典) /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流變)

보이차에 관한 전문 책은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다. 그 중 대만에서 골동 보이차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기에 오늘날 보이차 광풍에 어울리는 책이 발행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보이 생차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는 가운데 인급 호급 보이차의 폭등은 무엇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임을 대변해 준다.

평소 보이차를 마실 때, 맛으로 마시거나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마신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책이겠지만 보이차로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거나 혹은 보이차를 투자의 대상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호급보이차를 모르고는 논할 수 없다. 오늘날 보이차 홍인이나, 동흥호, 강성, 송빙, 경창, 복원창 등과 같은 차를 논할 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본인이 마셔보지 않았거나 모르면 모두 가짜라고 치부해 버린 그 차들이 현재 차를 현금으로 바꾸는데 가장 빠른 차가 되어 있다.
[책 표지, 호급 골동 차사전]

홍콩 보이차 시장과 대만 시장은 우리나라와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해놓은 질서가 모두 정직한 모범 답은 아니겠지만 보이차에 관한 그들의 손에 의해 질서가 잡히는 부분에서 상당부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은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호급 골동보이차에 대한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 석우연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의 글 일부와 저자의 서문을 번역하여 올린다.

편집자 서

오행도서공사가 일직이 2003년에 곧바로 착수해서 편집을 추진한 ≪호급차사전(號級茶事典)≫이 거의 십 년간에 걸친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자료수집 끝에 ≪호급보이차사전≫이 마침내 2012년 연중에 출판될 예정이다. 본서의 저작자인 양개(楊凱)는 2005년에 ≪다예·보이호예(普洱壺藝)≫의 칼럼리스트를 담당하였는데, 본인과 그는 똑같이 이공계 출신이라서 그의 이공치학(理工治學)적 엄근(嚴謹)한 합리적인 추론을 이용한 아울러 거의 실전하다시피 한 운남보이차 역사에로의 환원(還原)적 관점에 대해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의 앞서 지은 ≪대청(大淸)에서부터 중차(中茶)까지≫를 발표하는 동시에 본인은 바로 그와 함께 공동으로 ≪호급보이차대사전≫을 집필할 것을 요청하였으니, 그의 실사구시하는 치학태도를 빌어 보이차 역사를 명백하게 본서에서 드러내고자 기도하였다. 게다가 장차 이 책이 전 보이차시장을 지탱할 고단(高端)적인 지주가 되길 미리 예측해본다. 이 시점에서 바라건대 본서가 당신의 가장 유력한 전문적인 공구서사 되길 바라마지 않는바, 이는 곧 본서 편집부에서 이 책을 출판한 최대의 기대치인 것이다.

호급 골동 차사전 본문

* ≪호급 골동 차사전—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 안건이 마침내 최종적으로 결정나다!

2010년 초, 오행도서공사의 량준지(梁俊智) 선생이 본인과 함께 보이차 공구서를 새로 한 권 쏘내자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흥분해서 즉시 불철주야하다시피해서 문헌자료를 찾고, 지인들을 탐방하며 구도를 구상하고, 문자들을 어찌 구성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본인 자신이 중국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차문화연구는 단지 그저 아마추어적인 개인적 애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모든 건 각고 면학하여 일분일초 짬을 내어가며 겨우 완성해낸 것이다.

당시 량준지 선생과 본인과의 약정은 2010년 11월에 이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각가인 락봉봉(駱芃芃) 여사가 본서를 위해 제자를 써주셨기 때문에 ‘경인봉봉(庚寅芃芃)’이란 글자가 있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다시 홍콩과 이무(易武), 석병(石屛), 하관(下關) 등지에 가서 대량으로 일차적인 자료들을 찾아내고 인물들을 찾아 담론하면서, 단속적으로 이미 완성한 원고의 일부 글자와 도편의 수정하였으나, 본서의 구조가 이미 설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내용은 이 책속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구조 틀 안에서 역사와 문화부분은 본인이 맡아 썼고, 노차도록은 오행도서가 도맡아했다. 그러나 도록 중에 대한 글에 대해선 본인은 그래도 객관적으로 설명을 했다.

≪대청에서부터 중차까지-가장 진실한 보이차≫의 창작경험을 흡수하여, 본서 가운데에 문헌인용문에 대해서는 정간(精簡)하고 적당한 해설을 붙였으며, 아울러 대량의 원시 파일도편은 책속에 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용문의 가신도(可信度)를 증가했을 뿐더러 또한 그 인용문에 대해 의문이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히 원시파일도편을 참조해서 스스로 해독하고 발굴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독도(讀圖)시대에 독자의 시각적 인상과 역사체험을 풍부하게끔 하는 것 역시나 필자의 조그만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반드시 승인할 건, 본서는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학술적인 전문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 본서의 대다수 내용은 엄격한 비평을 견뎌낼 거라 믿는다. 이 또한 필자가 역사학자인 림초민(林超民) 선생께 서문을 부탁드린 진심이기도 하다.

2010년 3월, 한국학자인 짱유화 교수가 본서의 한 교정본을 보고서는 매우 놀라 뛸 듯이 기뻐하며 귀국 전에 밤을 새워가며 통독하면서 번체자의 교정을 도왔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바, 이는 절대로 짱 교수의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인가내진 애호인 바이다.

본서의 출판 이전에 특히 세계 차문화 교류협회 명예회장인 하작여(何作如) 선생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필히 인정할 것은, 본인의 노차지식 대부분은 등시해(鄧時海) 선생, 하작여 선생, 소영신(蘇榮新) 선생 세 분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로서, 이들 세 분의 호자급 노차는 나한테 뭇 평론가들과 감정인들과는 다른 독립적인 보이차 가치관을 우러나게 해주었다.

하 선생은 일직이 나를 대신해서 대만에 가서 차수(茶壽, 108세를 이름) 노인 리불일(李拂一) 선생을 위문하였으며, 나와 함께 홍콩과 이무의 노차인(老茶人)과 노차장(老茶莊)을 방문하기도 했고, 나한테 아주 선심 써서 모든 노차들을 개방해주었다. 그는 또한 전화로 항상 장시간동안 함께 학술을 토론하기도 하였는데, 더욱이 그가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더욱 진한 향내가 나다는 매커니즘을 밝히고자 60여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식물생리학과 매제제공정(酶製劑工程), 미생물발효기술 등 고삽(枯澁)하고도 전문적인 고도의 깊은 학문을 학습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욱 그에 대해 충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본서의 창작은 또한 허다한 각기 다른 시기에 친히 보아차 생산과 연구 및 판매에 참여했던 이들과 국내외 오랜 경력의 마니아들의 두터운 사랑에 힘입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자신 한 완전한 보이차관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게다. 그야 물론 운남에서 재스민의 대량 식목과 이용을 개척한 나의 후배 로명(魯明) 선생과 일직이 나한테 대량의 자료를 제공해준 역사학 석사 류연(劉燕) 양, 그리고 나의 가족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정어린 정중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교를 말하건대, 1982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대학 입학증을 동시에 받았다. 기이하게도 나는 장춘광기(長春光機, 광학정밀기계)학원(學院)이란 전문범위가 극히 작은 반공반리(半工半理)의 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4년 후에 나는 다시 업종을 바꿔 출판업계에 뛰어들어 아동도서 편집을 도맡았다. 고개 돌려 사방을 바라봄에 나의 아주 많은(전부는 아닌)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전공과 무관한 영역에 몸을 담았다. 예컨대: 경찰, 회계사, 고고학자, 한의사, 음악교수, 대형트럭 운전사, 밀수범, 관료, 기업가, 변호사 등등, 학생인구수의 비례로 말하자면, 이 학교는 졸업 후의 취업경향이 제일 기특하고 궤도가 아주 다양한 학교일게 틀림없을 거 같다.

나는 우리들의 야만적인 생장을 윤허해준 청춘의 지난 나날들을 그리워하는 바이다.

본서의 결함에 대해서는, 그건 바로 차관(茶館)의 문화사에 대해서 그리고 탐방 중에 접촉했던 이들의 펄펄 살아 숨 쉬는 운명에 대한 관심부족인바, 이것들은 아무래도 나중에 다른 책에서 묘사해낼 작정이다.

2012년 4월 1일 새벽녘에 곤명(昆明)에서 양개(楊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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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생산한 노반장과 노만아]

우리나라는 최근 노반장(老班章)이라는 차에 대해서 맹목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보이생차는 노반장을 기준으로 해서 가격을 조절하고 노반장을 보유하고 있거나 마시고 있어야 보이차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한다.

노반장을 선호하는 추세에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비교하자면 무이암차 시장에서 대홍포가 수선이나 육계 품종이 얼마나 많이 섞였는가 따라 질과 맛이 다른데도 일반인은 모두 대홍포라고 생각하고 비싼 가격에 마시고 있는 것처럼, 노반장도 그 인근에 있는 노만아(老曼峨) 의 찻잎을 섞어도 외관상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혼돈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노만아가 노반장보다 아(芽)의 색상에서 황금빛이 더 돌고 전체적으로 찻잎이 더 좋아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반장과 노만아의 순료를 자주 접해보면서 일정 비율 병배된 노반장을 마시고 있고, 괄풍채 순료와 그리고 라오스에서 채엽한 차들을 비교해서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노반장은 자신들이 취급하고 있거나 믿을만한 큰 회사에서 생산한 것만으로 우기기에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 또한 '보이차의 부작용'은 여러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정직하지 못한 차의 유통도 잘 못 만든 차로 인해 보이차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어 보이차 자체를 불신하는 현상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반장을 생엽 거래가격 이하로 차가 거래된다고 하면 값이 싼 것이라기 보다는 한 번쯤 생각할 여지가 많은 차다. 노반장 찻잎의 가격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2007년 이전에 만들어진 노반장과 2009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에서도 맛과 향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07년 이전에는 찻잎을 많이 채엽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찻잎을 채엽할 수 있었지만 노반장이 인기를 끌고 진승차창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하면서는 보이차 노반장은 채엽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구별은 전문가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전문가인가를 찾는 것도 차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다.

이젠 00차장에서 만든 것이 최고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 00차창에서 몇 년도에 만든 것이 라고 할 수는 있어야 차에 대한 맛과 향을 조금 구분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감별은 라오스 등의 변경차가 괄풍채 차와 혼합되어 생산되어도 일반적인 애호가는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상인의 말을 가려서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점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애호가는 모든 고수차에 관심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관심 분야를 넓히는 만큼 고수차에 대해서 알아가는 지식은 더욱 미약해 질 뿐이다.

쓴 맛만 강하게 나오거나 회감에 있어서 쓴맛에서 단맛으로 돌아오는 미세한 차이, 경험이라는 것이 무시 못할 일이며, 가격이 폭등하는 노반장에 대한 평가가 좋기는 하지만 그 산업과 그 마을에서의 채엽상황이 어찌 될 것인가에 따라 또 노반장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보이차는 노반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평가받지 못한 어떤 차들이 또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특정 보이차를 쫓아가는 막차의 차인이 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즐기고 또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발견하는 것처럼 좋은 보이차를 찾아 자신의 차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차인이요, 더 나아가 차꾼인 것이다.

필자는 보이차 도감을 제작하는 과정에 보이생차에 대해서 엄선한 차를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서 조금씩 익혀나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아름다운차도구> 3권, 4권을 통해서 발표를 해왔으며, <아름다운 차도구> 5권에서도 보이생차 특집으로 보이고사(대표 박정호)에서 제작한 2012년 노반장과 노만아, 서경호(대표 허동창)에서 제작한 2009년 '노반장'과 2005년 생산한 경매 전차, 2012년 진미호에서 생산한 노만아 등으로 비교 사진이 공개된다.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www.seoku.com/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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