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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강서성 다예사양성 센터, 필기시험.

강서성 다예사 직업 기능 양성 센터는 중국에서 공인된 성급 인력자원과사회보장청(人力资源与社会保障厅)의 허가로 설립된 전문적인 다예사 양성센터 기관이다.

2000622일 강서성 다예사직업기능양성센터(江西省茶艺师职业技能培训中心)가 설립되었으며, 중국다예사직업기능표준을 제편한 기관으로, 전국 직업 기능 등급 인정교재 다예사를 편찬하고, "다예사 직업 기능 인정 국가 문제"를 집필한 기관이다.

2021128일 한국의 많은 차인들에게 중국 차문화를 정통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한국에 있는 중국다예연구중심(승설재)을 강서성 다예사 직업 기능 양성센터로의 인가를 통보받았다.

강사:

한국--김영숙 박사

중국여열(余悅) 교수 외 기타 단체 교사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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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사김영숙 다예표연(행다법)

철관음(Tieguanyin):
무성계, 관목형, 중엽류, 만생종, 이배체

철관음은 6대 다류 중 오룡차 즉 청차에 속하며, 불발효차인 녹차와 완전발효차 홍차의 제다과정을 잘 조합하여 만든 반발효차 이다.

철관음은 상품명이자 차나무 품종명이며, 원산지는 중국 천주시(泉州市) 안계현(安溪县) 서평진(西坪镇)이다. 중국의 저명한 차학자 진종무(陈宗懋)의 <중국다엽대사전(中国茶叶大辞典)>의 철관음 조항에 "위음종(魏饮种), 홍심관음(红心观音), 홍양관음(红样观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723년 위음이 모수철관음을 처음 발견한 후 그 차나무에서 무성번식한 후대의 품종과 변이종 등 다양한 철관음 품종이 있다. 정통철관음 품종은 싹이 붉은 자주색의 "홍아왜미도(红芽歪尾桃)" 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된 정총철관음(正枞铁观音) 품종의 차향기는 황계향(黄桂香), 지란향(芝兰香)등 부드러고 은은한 유향(幽香)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순수한 정통철관음 품종 중에서의 변종인 홍영관음(红英观音) 품종이 있으며, 부드러운 우유향과 밀란향, 푸릇한 꽃향과, 잘 익은 철관음의 음운향 등이 있다. 오늘날 전통철관음은 안계지역에서 생산되는 철관음 품종의 찻잎으로 오룡차 만드는 제다법에 의해 완성된 반발효차를 일컫는다.

그밖에도 복건성 민남의 다른 지역과 민동, 민서지역에서도 철관음 품종을 이식, 재배하여 원산지인 안계지역 보다도 현저히 많은 양의 철관음을 생산하고 있다.

**위설
청나라 초기 안계현(安溪县) 서평진(西坪镇) 요양(尧阳) 송림두촌(松林头村,현 서평진 송암촌)에 위음(魏荫1702~1775) 이라는 농민이 있었다. 위음의 다른 이름은 승음(承荫)이고, 자는 내수(乃树), 호과일(号科鎰)이며, 청 강희41년(1702) 임오년 음력9월 10일 안계현 숭신리(崇信里) 하착보(贺厝堡) 송림두촌(松林头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으며, 차나무를 심어 조석으로 물을 끓여서 차를 우린 후 제일 먼저 관음보살께 올리고 차 맛을 보았다. 어느날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타석갱(打石坑) 석벽이 있는 곳에 좋은 차나무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위음은 너무도 신기하여 관음보살이 알려준 곳으로 갔더니 신기하게도 꿈속에서 보았던 그 차나무가 있었다. 서평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관음 모수 차나무이며, 천주시에서 보호하는 "闽茶N-Q001"호로 등록되어 있다.

오늘날 위설의 9대 계승자인 위월덕(魏月德)은 위음명차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조상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위음명차유한공사에서 생산되는 철관음 중 위십팔(魏十八)은 모수 철관음 차나무에서 무성번식한 것으로 차나무의 수령은 약 100년 이상된 전통철관음(싹이 자주색인 철관음품종) 품종 488그루의 차나무에서 찻잎을 채다하여 18과정의 제다방식을 거쳐 수제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위음명차유한공사의 최고급 철관음이다.

**왕설
왕설은 청대 건륭제(AD 1736~1795)때 왕사양(王士讓)이라는 이가 철관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건륭원년 봄에 왕사양이 서재 옆 돌계단에서 차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여 화원에 옮겨 심고는 정성껏 길렀다. 이 차나무의 잎으로 차를 만들었더니 그 향기와 맛이 훌륭했다. 건륭6년(1741) 직접 차를 가지고 상경하여 예부시랑 방포에게 드리니 건륭황제께 올려져 차 맛을 보게 되었다.

차의 맛을 보니 차의 향기와 맛이 아주 독특하고 뛰어났다. 건륭황제가 차를 마시고는 차의 맛과 향기, 색의 아름다움에 크게 칭찬한 후 찻잎의 생김새가 철처럼 무겁고, 관음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철관음"이라는 이름을 하사 했다고 한다.

오늘날 왕설의 13대 계승자는 왕문예(王文礼)이며, 1993년 팔마차업유한공사를 개업하고 왕설 철관음을 회복시켰다.
- 차박사 김영숙(내용 일부는 개화사 송강큰스님 페북에서 인용) 

**철관음 다예표연**

1.비구(备具): 차를 우리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기물을 깨끗이 준비한다.

2.온배결구(温杯潔具): 차호와 잔을 예열 하기도 하고, 깨끗하게 헹구어 준다.

3.상차(赏茶): 차를 다하에 덜어서 손님께 보여준다.

4.오룡입궁(乌龙入宫): 철관음 찻잎을 차호에 넣는다.

5.현호고충(懸壶高沖): 낮은 곳에서 물을 따른후 높여서 따른다.

6.춘풍불면(春风拂面): 차호 윗부분의 거품을 걷어낸다.

7.분차(倒茶): 우러난 차탕을 균일하게 품명배에 따른다.

8.한신점병(韩信点兵): 차호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차탕을 품명배에 한방울씩 따라준다.

유튜브 다석TV 철관음 다예표현 https://youtu.be/hioBSBuXHR8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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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차관 개업 초대장

 

안국동차관 개업 초대장

 

안국동차관 개업 초대장

 

이루향서원에서 안국동차관을 오픈하게 되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안국동차관 개업을 알리면서 1부 30명, 2부 30명을 초대한다.


초대의 날에 이루향서원 정진단 원장의 품향회가 있다.

중국 다예는 97년 중국 1기 다예사(차예사) 대회에서 전국 장원으로 뽑힌 '이설'의 다예 시연이 있다. 이설 씨의 다예 시연은 중국 다예사의 대표적인 기량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중국 악기 연주는 왕웨이(고쟁 연주), 공나(비파 연주), 왕닝(얼후 연주)이 1부 2부로 나누어 발표한다.

 

이번 초대 접수는 2015년 5월 27일 오전 10시부터 안국동차관 정숙영 관장 연락처로 직접 문자로 보내는 방법이다. 반드시 이름과 1부, 2부 중 하나를 선택하여 알려야 인원을 조정할 수 있다.

 

안국동차관 이전 글

2015/05/25 - 안국동차관의 바닥은 노동의 칠완가 

2015/05/25 - 안국동차관 현판 작업

2015/05/14 - 안국동차관, 기록을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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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차도구 책이 대학교 교재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7세기부터 20세기 까지를 차도구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2장에서는 모든 차도구는 말차용과 전차용으로 구분하였다. 제목은<차도구의 이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차도구 사진 481점

이 사용되었으며, 차도구의 사용법으로 중국은 중국에서 행다법(다예표연)을 정립한 동계경 전 절강대학교 교수, 일본은 오모테센케 다도 교수인 다치바나 선생의 말차 내는 방법을 담았다.
차도구는 茶가 생겨난 이후의 산물이다. 모든 기물(器物)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맞춰 만들어진다. 한·중·일의 다구들이 모양새가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구가 우리에게 전파된 것은 차를 접한 시기와 같다. 중국은 이미 당대에 육우의 「다경」을 통해 다구에 대한 규범이 확립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문화적 풍토 영향으로 진보보다는 전통 보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문화의 이동은 각기 민족적 특성과 역사적·이념적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중국의 차와 다구는 모든 면이 차라는 본질에 접근한 이후 발전되었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차도구의 형태는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완상용으로 자리 잡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실용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종교적으로 귀족용으로 자리 잡아, 이른바 계층적 사용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가진다.

차와 차도구의 민간 사용이 미미했음은 현존 자료의 부재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다만 이 두 시기는 도구에 대한 차별성만 있을 뿐이다. 도구 사용보다는 茶가 우선시 되었던 중국과 는 반대로, 일본은 도구 사용을 중요하게 여기며 차와 함께 존재했다. 그들은 옛기물(古器)의 형태를 정형으로 생각하고, 진보적인 형상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다완을 통한 말차의 풍습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茶 하나로 역사, 문화, 민속, 사회적 관찰을 할 수 있기에, 「차 도구의 이해」에서는 기물의 용도를 단순히 사용에 두지 않고, 내면 깊이 숨어 있는 그 '이유'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또한 한·중·일 3국의 차 생활에서 다기의 사용법은 서로간의 특징을 가지고 잇다. 다기의 소임은 바로 쓰임(用)에 있으므로 차도구의 사용례는 무척 중요한 귀결점이며, 차도구의 완성이라 하겠다. 이에 한·중·일의 가장 기본적이며 필요 충분한 도구 사용 과정을 촬영하여 도구 사용의 모범을 보이고자 한다.


차문화의 중심을 차(茶)라고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차문화의 가장 큰 중심은 사람이며, 그 사람들이 남기고 간 차도구들이 그 다음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음용 후 없어져 버린 찻잎들은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넘어서서 차문화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증거로 차도구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 에필로그에서 필자

목차

PART Ⅰ 차도구의 형성과 발전
문헌에서의 차도구 /10 제7세기 / 12 제8세기 / 16
제9세기 / 34 제10세기 / 44 제11세기 / 48
제12세기 / 56 제13세기 / 74 제14세기 / 88
제15세기 / 98 제16세기 / 106 제17세기 / 120
제18세기 / 136 제19세기 / 144 제20세기 / 162


PART Ⅱ 말차용 다구
1. 풍로(風爐) / 184
2. 로(爐) / 186
3. 솥 / 188
4. 다완 / 191
5. 차시 / 213
6. 차입(茶入, 차이레)과 조(棗, 나츠메) / 220
7. 사복(仕覆, 시후쿠) / 220
8. 물 항아리(水指, 미즈사시) / 221
9. 퇴수기(建水, 겐스이) / 221
10. 차선(茶, 차센) / 222
11. 뚜껑받침 (후따오기) / 222
12. 숯바구니 / 223
13. 병작(炳, 히샤쿠) / 223

PART Ⅲ 전차용 차도구
1. 불 피우는 차도구 / 228
2. 물 끓이는 도구 / 230
3. 차 우리는 도구 / 233
4. 차 마시는 도구 / 256
5. 그 외 차도구 / 261
6. 본래의 용도가 전용되어 사용되는 차도구 /276
7. 파손된 차도구 복원 / 278

PART Ⅳ 차실용 차도구
1. 글씨와 그림 / 282
2. 한국적인 화로와 풍로 / 287
3. 윤회매(輪回梅) / 288
4. 물 항아리 / 288
5. 찻상과 차탁 / 290
6. 향로(香爐) / 292

PART Ⅴ 한·중·일 행다법
한국 행다법 / 296
중국 행다법 / 300
일본 차노유 / 306

티마스터나 티 소믈리에 자격증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와 같이 공부하면 중국차에 대한 초심자부터 심화 과정의 학생들에게도 유용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책의 본문에서 자사호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체적이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다. 이미 절판된<박홍관의 자사호 이야기>와는 다른 형식으로 초보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국내외에서 유행하고 있는 '티마스터' 또는 '티 소믈리에'과정의 학생들에게는 단편적으로 글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차 문화를 바라보는 심미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자사호란 무엇인가

자사호(紫砂壺)는 중국의 도자기사(陶瓷器史)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의흥(宜興)은 현재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의흥시 정촉진 태호 서안(太湖 西岸)에 위치하며, 자사라고 하는 것은 “자주빛 모래흙”이라는 뜻이며, 자주색의 특이한 자사토(紫砂土)로 만들어진 다기를 자사호라 부른다. 자사호를 만들 때 순수하게 한가지 흙으로만 만들게 되면 단니법(單泥法), 두 가지 이상의 흙으로 만들게 되면 교니법(絞泥法)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니법이나 교니법은 자사호를 만들 때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는 것이며 흙을 배합하는 병배의 의미와는 다르다. 자사호에 장식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한 가지 흙으로 장식할 수도 있고 두가지 이상의 흙으로도 장식이 가능하다.

[본산녹니와 주니로 만든 자사호]

한가지의 흙으로 장식을 하게 되면 단색법(單色法), 두 가지 이상의 흙으로 장식하게 되면 다색법(多色法)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사호는 옛날 전통적인 방식은 전혀 포광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근래에 와서는 좋은 자사를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점차 시장수요에 따라 포광처리를 하게 되었다.

자사호가 등장하는 시기를 구분할 때는 송나라부터이지만 유물로 남아 전해진 것은 명나라(明代) ‘시대빈(時大彬)’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군부터이다. 명·청 때부터 중화민국까지 자사니의 채굴과 가공은 개인적인 당호(塘戶)를 위주로 이루어졌다. 작은 갱도를 몰래 파서 채굴한 광석토를 어깨에 짊어지거나 조그마한 수레로 운송해 마방(磨坊, 방앗간)에 팔아 가공해 생니(生泥)를 만들었다. 이것을 다호를 제작하는 예인들에게 제공해서 사용토록 했다.

오늘날 까지 산차(散茶, 잎차)를 다호에 넣고 뜨거운 물을부어 우려내는 도구로서 한·중·일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사호(紫砂壺)는 중국 강서성 의흥에서 생산되는 자사(紫砂)로 만든 다호(茶壺)를 말한다.

다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니료가 반드시 필요하며, 니료를 가공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사의 원광석을 노천에 두어 비바람과 햇볕에 노출시키면 풍화작용이 일어나 자연스레 분쇄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것을 비닐에 밀봉해 6개월 이상 보관하면 점력이 좋아지고, 입자는 윤택해져 소조(塑造)에 용이해진다. 니료에 붉은 빛깔이 도는 것은 산화철 성분을 다수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기 있는 광택을 발산하는 성분(석영질)들은 다호를 제작했을 때 반짝이는 외관적 특징을 가지게 한다.

자사호는 실용과 유희, 그리고 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실용기물로, 수많은 공예품 중에서도 단연 실생활에서 주목 받고 있다. 경덕진에서 제작된 자기(瓷器)로 만든 다호와는 전혀다른 독특한 재질의 의흥 자사는 차를 우려내면 향을 머금고 통기성이 좋아 차맛을 더욱 좋게 한다. 중국 차 문화에서 자사호의 등장은 도자기에서 벗어나 차를 음용할 때 실질적인 즐거움을 준 획기적인 사건으로, 중국 도자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사는 재료 면에서 주니(朱泥), 자니(紫泥), 단니(團泥)로 세분화되며, 황니(黃泥), 청니(靑泥), 본산녹니(本山綠泥) 또는 녹니(綠泥), 백니(白泥), 흑니(黑泥) 등으로 사용된다. 백니류는 산출양이 극히 적어 호(壺) 형태로는 만들지 못하고 표면에 글이나 그림을 채색할 때 조금씩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17세기, 은원 선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자니호가 오늘날까지 전차용 다기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중국의 의흥 자사호를 급수(急須, 큐스) 또는 다병(茶甁, 차헤이)이라 한다.

청나라 때의 김정표 품천도

품천도는 건륭황제의 명에 의해서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속에서 반죽(班竹)으로 만든 죽로에 숯을 넣는 모습과 의흥 자사호가 물을 바로 끓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필자의 저서
2012/08/22 -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2011/07/11 -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판) 발행
2010/06/05 - 박홍관의 자사호 이야기 출간
2010/02/12 - 중국차 견문록이 출간되었습니다
2007/11/23 - 찻잔이야기 개정 증보판 출간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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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기 휘주상인의 차문화 연구”로 2012년 8월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오명진 선생의 논문은 중국 명청기(明淸期)의 차문화와 연관된 휘주상인(徽州商人)들의 활동을 통해 그들의 차문화사상(茶文化史上)의 위상을 조명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 차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는 흥미있는 논문이라서 소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중국 명청기의 차문화와 연관된 휘주상인들의 활동을 통해 그들의 차문화사상의 위상을 조명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해 당시 중국에 형성된 차문화를 분석하고 그를 통해 차 산업 및 휘주상인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논문의 주된 범위이다.

논문의 초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명청기’로 통칭되고 있는 16세기 이후부터 청말까지의 중국은 생활관습이나 사회제도, 상품경제 등을 통해 볼 때 마지막 봉건시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오늘의 중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문화, 생활관습, 친족제도 등이 형성되었던 때로,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이다. 특히 차문화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제다법과 음다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초제차(炒製茶)와 포다(泡茶)방식의 차문화가 완성됨으로써 오늘날 중국 차문화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청기는 상품경제 및 수공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자본주의맹아(資本主義萌芽)’의 시기로도 주목 받았는데, 그만큼 인구이동과 밀집현상, 市․鎭의 발달, 사치풍조와 질서이완, 기유취상(棄儒就商)과 같은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한 다양한 사회변화가 일어났다. 그러한 사조는 유통업의 발달과 상인계층의 대두를 초래하였으며, 지연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상인집단이 탄생되어, 중국역사에서 10대 상방이라 불리는 상인 집단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논문에서는 밝히고 있다.

논자가 그 중에서 휘주상인에 주목하였던 것은 그들이 중국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인 사대부의 문화영역으로까지 역할 범위를 확대하였던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였던 많은 숫자의 휘주차상이 존재하였던 점이 연구의 동기를 자극하였다.

휘주차상들은 처음에는 휘주 토산의 차로 원거리 교역을 시작하였는데 여러 자본을 모아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대규모 차업을 제일 먼저 일으켰고, 역사상 가장 늦은 시기까지 휘주상방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말하자면 휘주상방의 여러 아이템 가운데 차상이 휘주상방을 탄생시키는 모체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상방을 지탱하던 분야도 차무역이었던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 시대의 차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차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과 더불어 산업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가정아래 이들 휘주상인이 명청시대 차산업과 차문화 상에서의 활동과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찰하였다.

첫째, 16세기 사회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상업계의 최고의 상방으로 대두되었던 휘상이 형성된 과정과 업종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가.

둘째, 휘주지역 차업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명대 중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휘주상인에 의하여 휘주의 차업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셋째, 휘주상인의 기본적인 업종은 염업․전당업․차업․목재업으로 일컬어지는데, 이 중에서 차업의 경우는 어떤 형성과정을 거치며, 휘주상인들이 도자업까지 진출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넷째, 휘주상인이 대두한 16세기부터 청 말 쇠퇴의 길을 밟게 되는 시기까지 차문화 측면에서 보여주는 특성과 그 역사상 의의는 무엇인가.

이상의 시각에서 명청기 휘주상인의 탄생 배경과 연원, 휘주의 차와 차상인의 차업, 그리고 휘주상인의 차문화 활동에 이르기까지 개괄적인 접근과 동시에 세부적인 분석을 수행하였다. 결과적으로 본고에서 밝히고자 했던 휘주 차 상인의 활동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휘주상인들은 휘주 산출의 송라차를 발전시켜 초제차의 기본을 다졌고, 송라차를 중국녹차의 대명사로 그 위상을 끌어 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블랜딩 기법을 통해 대량생산과 품질의 균일화를 이루었고, 이로써 새로운 제다법을 정립하였다. 또한 이를 모체로 둔록․무록․안차 등 수많은 명차를 탄생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둘째, 휘주차상들은 다양한 형태의 명차를 창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차문화를 풍부하게 하였다. 오늘날 세계 3대 홍차의 하나인 기문홍차와 황산모봉·손의순안차(孫義順安茶) 외에도 환남차구권(晥南茶區圈)에 속하는 태평후괴․경정녹설․용계화청․노죽대방 등 각종 명차들이 탄생되는 과정에 휘주차상의 영향력이 있었다.

셋째, 휘주상인들은 차와 뗄 수 없는 관련 도자업에도 진출하여 차문화를 풍부히 하였다. 휘주상인들이 경덕진 백자와 자사호가 차도구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생산과 유통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경덕진 백자를 모델로 삼아 연구를 거듭한 결과로 도자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휘주상인이 미친 세계적 영향력의 일면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넷째, 휘주상인들은 儒商으로 불리었던 만큼 역사상 처음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경영이념으로 도입 활용했다고 평가된다.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을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도덕과 신의 방면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상업에서 도덕과 신의로 임하고자 했던 휘주차상의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유용하다.

다섯째, 휘주상인들은 商과 儒를 넘나들며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하였고 그 문화․예술 활동에서 차는 매개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휘주상인들의 활동은 명청기 차문화를 풍부하게 발전시키는데 이바지 하였다고 본다.

명청기의 제다법과 음다법 뿐만 아니라 각종 명차는 오늘날의 차문화에 계승되었으며, 그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명청기의 차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휘주상인들은 商과 儒를 넘나들며 한아적 정취와 정신세계를 추구하였던 문인들과 명청기 차 문화를 공유하고 만들어 갔던 주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 차 무역과 도자무역을 통해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인식시켰으며, 전 세계에 걸쳐 차생산지와 차산업이 일어나는 토대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휘주상인은 명청기 차문화의 변화와 발전의 중요한 요소였다.

[사진설명, 공부사보의 옥서외(玉書碨) 안우섭 소장]본 논문에는 명청대에 유행했던 공부차와 관련된 공부차사보(工夫茶四寶)를 비롯한 오룡차가 유행했던 시기의 개완, 세시풍속으로서의 연차(年茶), 소설 홍루몽 등과 같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명진 선생은 동양차예연구소를 운영하며 중국다예표연과 “차예사와 평차사”자격증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2012 현재 다예사와 평차사 자격은 “다예기사, 고급평차사(茶藝技師 高級評茶師)”이다.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seoku.com/523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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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예사, 평차원(차품평) 필기시험]

동양차예연구소(소장 오명진) 주관으로 북경동방국예 국제차문화교류중심(北京東方國藝 國際茶文化交流中心) 에서 대행한 다예사(茶藝師), 평차원(評茶員) 시험이 한국 충무로 T갤러리에서 시행되었다.

북경동방국예 국제차문화교류중심(대표 웅지혜 熊志惠)에서 2010년 8월에 다예사, 평차원(차품평)시험 중급 과정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한바있다. 이번 응시자에 워커힐호텔 박윤경, 강원랜드 박영숙은 회사 차원에서, 그 외는 각 차회 소속으로 서울과 포항, 천안에서 시험에 참여하였다. 한국에서 취득할 수 있는 시험이었지만 중국 현지에서 발급받는 것과 동일한 조건과 내용, 자격 시험이기에 중국차와 다예, 차품평에 관심가진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험 방식은 필기시험과 다예시연, 차 종류 구분, 차품평순으로 한다. 사진은 다예시연 

제2기 응시자는 박윤경. 최수진, 김윤희, 김영희, 이지연, 유인종, 정혜원, 이옥이, 천경신, 박진옥, 박영숙
강원랜드에서 참가한 박영숙은 지난해 다예사 시험에만 응시하여, 평차원 시험만 응시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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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예사 시험을 치루려면 중국에 가서 1주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이젠 한국에서 직접 시험을 치루는 상황이 되었다, 본 글은 북경에서 온 북경동방국예 국제차문화교류중심(北京東方國藝 國際茶文化交流中心)(대표 웅지혜,熊志惠) 1기 다예사 시험을 한국에서 직접 시험을 보는 현장에서의 일이다.

중국 북경에서 한국의 다예사와 평차원(評茶員, 품평사) 중급 시험을 치루는 날, 오전에 이론시험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심사관들과 식당에 갔었다.

마침 내 앞에 앉은 젊은 프라자 호텔 직원이 스마트폰을 꺼내길래 기종이 무어냐고 물었다. 나는 이틀 전인 8월 20일“SK올댓다도”가 완성되었고 그것은 아이폰용이 아니라 구글의 안드로이드 방식이기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마침 갤럭시s 라고 한다.

나는 앞에 앉은 분께 제가 이번에 다도용의 앱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면서 제목을 물었고 즉시 검색하여 다도가 나오자 유료 1,000원인데도 아랑[사진 웅지혜 심사위원, 박영숙]곳하지 않고 구매버튼을 누르자 창이 뜨면서 표지가 나왔다. 그는 재미있어 하면서 여기저기를 들어가 보았다. 나는 그것을 옆 테이블에 앉은 중국인 심사관에게 보여줬다. 작은 화면이 이렇게 밝고 깨끗하게 한국의 다도를 볼 수 있는 것에 역시 한국은 IT 강국이다는 표현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중국차 사진을 보면서 감동받는 모습을 지었다. 식사 후 강의실에서 다시 한 번 갤럭시s를 구동하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면서 순간적으로 화면이 바뀌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태평후괴 찻잎이 유리에 담겨 있는 투명하고 청명한 화면에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같았다.

오후 다예사 시험을 치루는 시간, 조선호텔 직원이 다예표현을 할 때, 다른 여성은 아이폰을 꺼내어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촬영한 본인이 다예를 할 때는 먼저 시험본 여성이 그 아이폰으로 촬영을 해 주었다.

두 사람은 친한 관계로 한 명의 폰으로 두 가지를 촬영하고 나중에 메일로 보내준다고 한다. 카메라에 대한 메카니즘은 전혀 모르지만 스마트 폰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예시험을 다 마치고, 전체 시험본 내용의 감평시간이다. 맨 앞에 앉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자 그 뒤에 사람도 자연스럽게 꺼내어 감평시간 전체를 녹화하고 있었다.

예전의 심사장 풍경은 함부로 카메라도 못 꺼내 들만큼 엄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몹쓸 옛것이 된 기분이다. 핸드폰의 카메라기능은 이제 어느 장소나 시간을 막론하고 전혀 거리낌 없는 카피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폰을 가지고 있는데도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별종이 되는 듯하다. 정보에 대한 마인드가 삼엄해지는 요즘, 그 정보의 공유에 대한 사람들의 의지도 크다. 중국에서의 스마트폰 사용, 일본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은 정보의 절제보다는 정보공유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음을 안다. 더구나 이제는 보여주는 공연, 시연을 막론하고 스마트폰으로 그들만의 정보망을 구축한다.

세월이 지난 것이다. 아마도 더 세월이 지나면 이 풍경이 아주 후진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 때는 더욱 혁신적인 방법을 가지고 새로운 기기들이 나와 있을 터이니 말이다.

크고 밝은 화면에 그토록 명징한 사진들이 무리없이 획획 움직이고 그것들이 컨텐츠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을 넘어서서 이제 앞으로는 얼마나 멋진 세상이 다가 올 것인가 기대를 가지게 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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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 김종희 作

금번 석우연담에서는 한국의 차문화에 대한 동향을 고찰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은 4가지의 현안에 대하여 여러분의 신실한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4가지 현안은 현재 우리 차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이며, 4가지 중에서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 차문화와 그에 관한 관련사업으로서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에 여러분들의 고견을 취합하여 무언가 한국 차계와 한국차문화, 그리고 관련산업의 활로를 모색하고, 올바른 방향설정과 더불어 한국차문화가 바르게 정립되어 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음 4가지 현안 제목과 간단한 설명에 대하여 문서 하단에 있는 양식에 의거, 작성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헌다(獻茶) 규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차문화에서 헌다에 대한 규범이 궁궐에서는 왕실의 규범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가 또는 불전에서 헌다하는 방식은 개별적인 전례는 있으나 확실한 규범은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다도(茶道)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 차문화는 많이 발전, 확산되었다고는 하지만 모든 단체가 각각 개별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의 헌다형식과 규례 등에 대한 정확한 규범사항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부터 모든 문헌적인 자료, 사실적인 현재의 헌다사례 등 총체적인 모든 문헌 사료들까지 총망라하여 여러분으로부터 문헌자료, 헌다에 대한 좋은 이야기, 발전적인 방안 등을 서로 함께 제시하며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2. 한국 다기가 나아갈 길은 어느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70년대 다기는 1세대 사기장에 의해서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다기는 <뿌리깊은나무, 대표 한창기>에 의해 우리나라 다기의 원형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성하여 백자로 만든 다기(대표적인 사기장, 김대희)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꼭 장작가마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적설비가마를 이용하여 우리나라 보성, 하동 지역의 녹차를 우려마시는 붐을 조성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전통장작가마 작품이 유행을 하는 시기로서 전국적으로 다기만드는 것이 붐이었습니다. 특히 양산 지역에서는 신정희(고인), 문경에서는 김정옥(중요 무형문화재 105호), 천한봉(경북 무형문화재 사기장), 경주에는 정점교 사기장이 큰 활동을 하였습니다. 당시부터 찻자리라는 개념을 일본 ‘다도(茶道)’와 ‘전차도(煎茶道)’를 보고 비슷한 찻자리가 유행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한국 다완을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 하며 정호다완(이도다완, 井戶茶碗), 대정호다완(大井戶茶碗), 이라보다완(伊羅保茶碗), 두두옥다완(斗斗屋茶碗)을 중심으로 재현한 작품을 수입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수요 덕분에 한국내에서는 다완 작업이 유행하였습니다.

2000년대부터 차회(茶會)의 확산과 사설교육기관, 정규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에 차예절교육이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차도구 제작업이 유행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장작가마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판매가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정교한 백자보다는 분청다기가 만연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2006년 정도 까지 이어졌습니다.

2007년부터는 중국차 붐이 불면서 한국 녹차 시장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차를 우려마시는 다기의 수요가 급감하는 것으로 중국 자사호가 시장을 넓혀갔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현대적 설비인 가스가마로 완성해도 되는 수준의 작가들까지 모두 장작가마를 고집하고, 더 나아가 다완을 만들어야 수준이 높은 줄 아는 소비자들 덕분에 오히려 도태되는 작업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사기장은 이제 자신만의 작품을 단단하게 만들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현실로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식 다반을 우리식으로 변형하면서도 우리 정서에 맞게 만들고 있는 것, 다관 작업도 독창성이 돋보이는 형태를 구현하는데 이제 그 공통점은 어설픈 장작가마 작품이 아니라 작품에 맞게 불을 다룰 줄 아는 모습으로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의견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2010년에 이르러 우리가 직면한 한국 차도구에 대하여 어떤 방향과 또 어떤 형태로의 발전이 필요할 것인가 하는 것과 함께 한국의 다기가 다기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또 한국 다기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 등입니다.

위의 시간적 변천을 참고하시어 향후 우리 다기의 미래적인 모습과 함께 발전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자사호의 선택과 구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2번 연관)
우리나라 차도구 시장이 최근 5년 사이에 서서히 무너지는 것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 차도구를 무시하고 우리나라에서 전통장작가마로 만든 다기가 우수하다고, 차도구명장, 명인이 만든 것이 대단하다고 하는 사이에 차문화의 주류가 중국차로 많은 부분이 침식당하였고, 결국 우리나라 차도구의 위치가 상실되어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여러 상황 속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고, 결국은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러 상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조건 중국차 특히, 보이차(푸얼차 普洱茶)는 못 먹는 차이고 의흥 자사호는 맹독성이 혼합된 것이라고 우기는 오보, 허보 등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2. 우리나라 다기와 비교 하려면 중국에서 이름만 유명한 사람의 것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니료가 좋은 것을 가지고 비교를 하든가 비판이 되어야 하는데 이름만 유명한 사람의 것을 비교하든가 저급한 수준의 것을 가지고 비교하면서 사용해도 된다, 안된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3. 중국 의흥에는 자사 광석이 폐광되고 좋은 원석은 고갈되었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것도 자원이기에 중국 정부에서 통제받고 있는 실정이며, 아주 상급의 좋은 니료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가로 니료가 거래되기 때문에 희귀할 뿐,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자사호에 대한 여러분의 실제 경험과 그에 따른 여러 현실들을 여러분들의 의견과 더불어 가감없이 나누고 싶습니다. 성실한 제안을 기대합니다.

 

4. 다예사제도의 한국내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의 다예사 제도에 2003년부터 모든 차 단체가 줄을 서서 자격증을 따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규범이라도 만들거나 총체적인 입장에서 정리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각에서는 생활다례, 접빈다례 같은 것은 이미 다 해놓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설득력 없는 행다법이다 보니까 눈길은 중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예사[?]제도가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제도가 자리를 잡으려면 어떤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우리의 다예사 품평의 기준은 과연 어떤 것들로 이루어 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여러분의 진정된 의견을 구합니다.

 

답변자 성명 :
답변자의 현재 종사직업 :
차와 함께 한 시간 :

접수 : teadic@gmail.com

 다음 제목에 대하여 답변자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헌다(獻茶) 규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한국 다기(차도구)가 나아갈 길은 어느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자사호의 선택과 구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4. 다예사제도의 한국내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관심분야에 따라 4 중 택 1, 또는 모두 답변해 주셔도 좋습니다.
** 분량은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 동영상자료 제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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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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