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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열은 2010년 3월 9일부터 14일까지 부산 영광갤러리와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경인미술관 아뜰리에서 천목 다완 전을 펼친다.

김동열의 작품은 다른 사기장들이 거의 분청작업을 하는 반면 도자기 유약 중에서도 과학적인 시유분석이 있어야만 발색과 화변의 합리성을 가지는 흑유다완 만을 고집한다.

[2009년 김동열 作, 천목 다완]

특히 흑유 다완의 단순한 흑유 시유만을 통한 다완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흑적색이 혼재된 작품들은 작가의 창의적인 작품으로 가마에서 소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발색을 요변을 통하여 창조해 내었다. 따로 시유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그릇의 가장자리 변색은 바로 불이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며 그에 대한 데이터 작업으로서, 작가의 정열과 고뇌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장작가마 작업이 아니면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넌센스 속에서 현대적 기술과 감각으로 송대에 유행한 천목다완(天目茶碗)을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로 만든 김동열 사기장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전통다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준다.

단순히 유약의 변화가 아니라 오로지 불을 다룰 줄 아는 작가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김동열의 천목 다완은 찻그릇을 사용하는 차인들에게 이 시대의 천목다완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찻잔 이야기 (양장)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0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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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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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도구(茶道具)에서 금이나 은을 사용하여 만든 다기가 유행하고 있다. 마치 최고급 다기인 양 자태를 뽐내며 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정체성이 무엇이며, 한계가 보여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근간 20년을 돌이켜보면서 지속적으로 도자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듯한 모습 때문에 다양성이라는 점은 존중하지만, 그 반면 차도구로서 외도(?)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도자기 기술은 세계수준이었다. 그 당시의 작품들이 아직도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다. 손쉬운 재료, 빠른 요령을 가지고, 최고 수준의 작품을 모방하기 [일본 다니구찌 유끼오 作, 銀有情碗, 박창식 소장]      보다는 도자의 본질을 이해하고 선조들의 바른 정신과 지혜를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전통을 이어나가는 바른 길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전통 공예의 흐름 속에 금과 은을 이용한 도구와 그릇들을 볼 수 있다. 종교적 권위로서 금을 사용하거나, 특별한 장소의 품위를 위해 은을 사용하였다. 때로는 조선조 왕실에서 잔 안쪽이 금으로 장식된 도자도 나왔었다. 특수한 용도와 권위에 맞는 품위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진 도구와 그릇들은 용도가 정해져 있었으며, 제한된 생산과 사용으로 희귀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차에 대한 차도구로서 금과 은의 사용은 차의 정신과 곧바로 정면 충돌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현재에 이르러 은탕관(銀湯)과 은을 사용한 다구들이 많아졌다. 웰빙 바람도 있었지만 은은 그나마 사람들이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범위에 있었기에 지금도 거리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탕관(湯罐)이나 정수(淨水)를 위한 은사용은 호감을 갖지만 잔의 안쪽을 은으로 처리한 경우는 무언가 어색함이 있었다. 이 유행이 4~5년 전의 일이었으나 지금 다완 안쪽을 금으로 마무리하여 고가로 거래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차도구는 나름의 영역이 있다. 다른 도구를 침범하거나 다른 도구들이 차도구의 영역안에 드나듦에도 넘지 않는 선이 있다. 도자의 효능과 도자의 특징이 가장 많이 운용되는 것이 차도구이다. 다시 말 해 도자의 본질이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사용되는 것이 차도구이기 때문이다. 차를 담은 그릇이 숨을 쉬지 못하는 차도구는 이미 차도구가 아니라 색이나 그릇 자체를 상하지 않게 하는 코팅이라고 밖에는 생각지 못하고, 더구나 이런 식의 그릇제작은 술잔이 대표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니, 결국 차도구의 영역이 아닌 정체모를 도구라 하겠다.

차도구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행검덕(精行儉德)이다. 찻자리는 현람함이 아니다. 부를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반대로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찻자리는 앉은 이들이 서로 공평한 입장이며 부자도 빈자도 없다. 나누어 주는 이에게 감사하며, 찾아와 같이 앉은 이가 고마운 자리이다. 검덕을 버린 차인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차의 정신도 차도구의 근본도 벗어나 사람과 도구가 차의 색. 향. 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금으로 만든 찻잔에 차를 따르게 되면 그 빛과 향이 그대로일까?

금과 잔과 사람과 정신과 맛이 서로 달리 노니는 찻자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근본을 벗어 났다면 바로 자리를 되짚어 잡아야 할 일이다. 금과 은을 사용한 귀금속 공예는 그 나름의 길과 영역이 있다. 공예에서의 작품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만 찻물이 담겨져 도자의 생리와 함께하는 차도구에서 만은 근본을 벗어난 퓨전이 그 자체의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었기에 잠시간의 유행으로 끝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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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2009년 4월 부산차인연합회(회장 허충순) 20주년 기념으로 만드는 책(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기고한 글이다. 이 책은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비매품으로 발행되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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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완의 명칭은 급조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도자의 명칭과 같이 오랜 세월 속에서 명칭이 정형화된 것이기에 새로이 명칭을 만든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그 명칭은 사용 용도와 형태를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형태에 있어서의 명칭은 그 기물의 용도와 맞물려 명명함에 있어 전형적인 기준을 가지기 마련이다. 요즘 정호다완, 교맥다완, 두두옥다완 이라보다완의 형상을 빌려, 자신만의 특별한 흙과 유약으로 기물을 제작하여 다른 이름을 붙히는 형향이 있다. 예를들면, 00정호다완, 신정호다완 등의 이름을 붙히는 것은 이는 잠시 별칭으로 명명될 수는 있지만 사용 용도가 같고, 형태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분류되고 명칭함에 있어서는 근본을 넘지 않게 된다.

즉, 자신만의 재료로 새로운 정호다완을 만들었다고 선언하면서 00정호다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서 정한 규범속에 들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명칭이 새로워 질 수 있는 조건은 용도를 달리하던가, 아니면 형상이 달라져야 한다. 같은 형상, 용도로 다른 이름이 붙는 것은 "별칭"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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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연담에서 차도구 명칭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합니다. 뜻있는 분은 댓글로  참여바랍니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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