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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6 [신간] 차와 차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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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 씨의 신간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차도구를'바라보는 시각은 필자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동다문화론을 강의하면서 ‘차문화 독립운동’을 말해온 저자의 인문학적인 사고를 바라볼 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차문화, ‘전통’과 ‘다도’(茶道)의 개념을 되짚어보다

차문화에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힘, 막강한 전파력이 담겨 있다. 중국의 차에는 유장한 역사와 웅장한 전통이 응축되어 있어, 흔히들 한번 맛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예술성과 약리적 효험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이 1500년 넘게 차문화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정교한 인문철학이 집약된 일본의 차문화는 사무라이의 거친 정신에 중국 차문화의 넓고 깊은 지혜를 융합시켜 변용해낸 이성적 창조물이다. 차는 음식의 한 가지로서 정신과 심성을 형성하고,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그릇은 그 사회의 의식을 담는 산물이며, 차법은 전통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자본, 기술, 경영의 산물인 현대의 커피나 탄산음료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 응집체라는 의미다.

또한 차는 매우 미묘해서 단순히 유행과 이윤을 따르기보다는 생산국의 의식구조와 역사인식 등 철학적 가치와 영향력에 더 따르게 된다. “차를 아는 민족은 흥하고 차를 모르는 민족은 노예가 된다”거나, “군대 없이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신 전쟁의 무기가 바로 차”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주로 학자, 예술인, 상류사회의 부유층, 주체의식 강한 지성인 등 사회 주류 인사들이 차를 즐겨왔다는 역사를 보더라도 차가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과 일본 정부가 100여 개국의 중국대사관을 통해 중국 차문화를 전략적인 문화상품으로 활용하고 주재국 국민들에게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차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모방과 종속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차 식민지’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차문화와 전통을 말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전통이란 일정 단위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그 공동체의 생활을 지속시키는 정신적, 물질적 양식이다. 또한 현재의 생활과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통차는 ‘전통’ 개념을 함부로 끌어다 붙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저한 역사의식과 논리가 결핍돼 있다.

흔히 말하는 ‘다도’ 또한 그러하다. ‘다도’라는 말은 1960년대에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다. 일본 차문화의 고유 명칭인 ‘차도’와, 차를 끓이고 끓인 차를 손님 앞에 내놓거나 차를 마시는 ‘행다’(行茶)를 배우면서부터다. 신라 중엽에 중국의 차문화가 처음 알려졌으나 ‘茶道’라는 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고려 때도 송의 차문화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茶道’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차’라는 말 외에 ‘茶道’라는 글자가 따로 사용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적 외교나 공식 행사, 왕실과 귀족, 사대부들이 차를 마셨다는 기록에도 ‘차’만 있을 뿐 ‘
茶道’는 없었다. 한국의 다도는 일본 차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말이다. 차를 끓이고 마시는 방법 모두 일본 차도를 근간으로 삼았다. 놀라운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 ‘다도’의 정체성과 독자성, 그리고 동아시아 차문화의 상징적 명칭인 ‘茶道’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계속돼왔다. 특히 한국의 다도는 중국과 일본의 ‘茶道’가 수천 년 시간을 겪으면서 확립해온 것처럼 보편성과 독자성을 인정할 만한 사료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차문화가 확립됐다. 여기에 따라 차문화와 전통을 말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첫째는 독자적으로 만든 차가 있어야 할 것, 둘째는 그 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 고유의 찻그릇을 갖출 것, 셋째는 차 마시는 법, 즉 차법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독자적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어야만 ‘전통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차문화는 어떠한가?

차(茶), 군대 없이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신 전쟁의 무기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차문화를 연구하고 발굴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 차문화와 그 역사가 똑바로 자리를 잡지 못해 마음 쓰린 지경에 처해온 것을 지켜보았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대사관의 문화원이 주관하는 차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대체로 중국차·일본차·한국차를 동시에 비교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세 나라의 차인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차회를 진행하고 문답 시간이 가질 때면, 주로 한국 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 차법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 차법과 매우 닮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한국 차로 볼 수 있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시드니,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모두 비슷한 질문을 받곤 했다. 행사 주관자가 중국과 일본의 대사관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이와 같은 행사를 주관한 일조차 없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실상 차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기호음료 ‘차’는 기원 이전부터 인류의 생활 속에 등장했다. 고대인들에게 차는 생존에 꼭 필요한 약으로 쓰였고, 더 폭넓게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중국 차문화가 전해진 6세기 이후로 차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 중반 이전 상류층 사람들의 기호음료가 되었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를 두루 마셨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한국 차문화에는 매우 상징적인 특징이 있다.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겸손 위에 차살림을 펼치는 행위가 그렇다. 좋은 차를 지성으로 달여 권하는 일을 통해 겸손의 덕을 기르고, 고마움,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차를 내는 사람은 위압적이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경제·사회의 위대한 지도자는 물론 문학과 예술에서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이들이 대부분 차에서 큰 힘과 영감을 얻었다.

고려시대에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신하가 중죄를 범해 사형이나 이에 준하는 엄한 판결을 받게 되었을 때 왕이 사헌부 관리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형벌 정도를 토론한 제도다. 판결이 엄정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이때 차는 냉철한 이성과 편향되지 않은 견해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다. 조선 중엽 사헌부의 ‘차시’(茶時)는 감찰들이 사헌부와 같이 감독하고 검열하는 관청에 모였다가 파하는 것으로, 이는 차를 마시고 파하는 것이었다.

기록을 통해 차를 마시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업무를 보기에 앞서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 공정한 판단과 엄정한 일처리를 위해서 차를 마신 것이다. 명분과 체통을 목숨같이 여겼던 조선시대에 관료들이 차와 함께 정신을 다스려 소통하는 자리는 또 있었다. ‘사다’(賜茶), ‘사좌(賜座)의 예(禮)’도 정치적 소통 방법으로서 차가 훌륭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임금과 신하가 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여러 문제나 정치적 사안 또는 개인적 소견을 말하는 방법이었다.

동다와 차살림, 동다문화론으로 차문화의 독립을 외쳐오다

저자 정동주는 1966년 처음 차를 마셔본 이래 47년째 차와 더불어 살고 있다. 1980년에 처음 차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고, 중국차의 약효와 품격, 일본차의 멋과 맛에 비교해 한국차만의 특성을 밝히고 그 독자성을 구체화시키는 데 긴 시간을 보냈다. 숱한 곡절 끝에 1990년 무렵에 반 발효차의 약효와 차의 품격에 대해 안정된 확신을 얻었고, 중국과 일본의 오랜 차문화를 바탕으로 볼 때 여기에 견주기 위해서는 한국 차문화에만 사용하는 찻그릇과 차 마시는 법도까지 분명히 갖춰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연구를 쉬지 않은 저자는 도예가들과 긴 세월 토론을 거쳐 동다완(東茶碗)이라 불리는 우리만의 찻그릇 형태를 연구하고 만들어냈다. 고된 연구 끝에 동다완은 이제 안정된 형태와 빛깔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우리 차법을 정립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렸다. 일본과 중국의 차문화와 함께 놓고 볼 때 한국 차문화에 잘못 배어든 것, 즉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차문화가 중국과 일본의 ‘茶道’가 아니라 혹여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독자성을 평가할 만한 유산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랜 시간 추적해왔다. 유장하고 도도한 중국과 일본 ‘茶道’ 역사에 가려 아예 잊혔거나 희미하게 흐려진 한국 차문화의 원형이 없는지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토종 인문학이라 할 ‘동다문화학’을 창안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다도’와 ‘행다’ 행위를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인 것처럼 일컫고 가르쳐온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고, 이를 견디고 이겨내면서 매진한 연구였다.

차 한 잔에 담긴 ‘보태주기, 챙겨주기, 돌봐주기, 보살피기, 섬기기’의 미덕

본디 중국 당나라 승려 교연의 시에 처음 쓰인 ‘다도’가 일본에서 ‘차도’가 되고, 한국은 중국의 ‘차다오’와 일본의 ‘차도’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차법이 통용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다’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한 것이다. 일찍이 차에 탐닉하고 그 정신성을 높이 산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등 역사 속 인물과 기록의 자취를 따라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이렇게 바로 세운 ‘차’의 정신성을 되살려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맞춰 ‘차살림’으로 다듬었다. 내 몸을 살리고,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 일상에서 ‘보태주기, 챙겨주기, 돌봐주기, 보살피기, 섬기기’ 등을 구체적 방법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동다살림’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차문화사 전반에 걸쳐 폭넓은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차와 그릇에 관한 책을 6권 저술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3년째 강의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22가지다. 1 차살림론, 2 『백장선원청규』(百丈禪苑淸規), 3 육우의 『다경』(茶經), 4 초의의 『동다송』(東茶頌), 5 이목의 『다부』(茶賦), 6 다례사(茶禮史), 7 그릇의 사회사, 8 불교문화와 차, 9 비교차문화론서양의 차 의식, 한·중·일의 차문화 비교, 10 사림학파와 차문화의 계보, 11 차시(茶詩), 12 차의 효능과 약, 13 헌다의 미의식과 제사, 14 차와 불살생: 채식 세계, 15 찻그릇의 미학, 16 한국 잎차문화의 역사, 17 차와 명상, 18 제다론, 19 한국차문화론, 20 동다살림법 이론과 실제, 21 동다문화학, 22 중국·일본 차문화 체험과 비교론 등이다.

오랫동안 동다문화론을 강의하면서 ‘차문화 독립운동’을 말해온 저자는 차를 통해 우리나라 차문화가 바로서는 것뿐만 아니라 차가 그 자체로 토종 인문학의 씨앗이 되기를, 수입 학문의 열대우림 속에서 온대성 소나무 같은 학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은이 소개 정동주
1948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장편시 『순례자』로 ‘제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서사시 『논개』를 비롯해 대하소설 『백정』 『민적』 『단야』,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등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을 펴냈다. 마당극 『진양살풀이』와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글쓰기 방향을 전환하면서 민족 정체성 연구를 시작했고,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어머니의 전설』 『부처, 통곡하다』 등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책으로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랜 차 생활을 바탕으로 ‘한국의 차 문화’라는 새로운 인문학 분야를 개척했다. 이후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을 비롯해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한국 차살림』 『한국인과 차』 등 차와 도자기 문화를 비평적으로 탐구해 꾸준히 책으로 출간해왔다. 현재 한국 차문화학 연구에 매진하며 저술과 강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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