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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차(茶) 심포지엄 발표자 : 오영순

"대만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사례" 발표가 지난 2007년 9월 8일 서울유스호스텔 대회의실, 서울 차 심포지엄에서 오영순(소슬다원 대표)씨의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 사례 연구”에서 이 시대의 차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혼동하기 쉬운 목책철관음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발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발표문 가운데 목책철관음의 유래와 홍배(烘焙)에 대해서 요약해보면, 다음돠 같다. 5만 년 전 중국 대륙의 땅덩어리와 맞붙어 있었던 때부터 대만에는 토착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한족의 이민을 장려하면서 한인들이 “날짜와 문자”를 가지고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토착민족은 고지대에 고산족과 평지에 살았던 평포족으로 나뉘는데, 지금의 목책지구 부근의 신디엔[新店]계곡 상류에 고산족이던 태아족이 살고 있었다. 청 강희 말년에 복건성 안계에 민란(民亂)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 고씨, 임씨, 장씨족들이 泉州府 안계현 大坪에서 민란을 피하여 지금의 목책지구 안쪽의 景美 계곡에 대단위로 거주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원주민인 태아족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경미계곡 오른쪽(현재 도남교)부근에 촌을 이루고 살면서 나무 말뚝을 박아서 울타리를 만들어 이들을 방어하였다고 다. 이것이 오늘날 목책(木柵)이라는 지명을 얻게된 유래인 것이다.

제조공정에서 발표자는 공정의 순서를 차청(茶菁), 채적(採摘), 일광위조, 실내위조, 살청, 초유, 초건, 복유(覆揉) 또는 포유, 홍배(烘焙)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 공정인 홍배가 중요한데, 목책절관음에서는두가지로 구분한다.

1) 탄로(炭爐) 홍배

목책의 장지장씨 집에는 증조부가 만든 100년이 넘는 탄로가 있는데 전통부뚜막식 홍배실로서 상사수(相思樹)로 숯 재료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목탄 홍배는 다농으로 하여금 너무 고된 작업으로서 열이 아래쪽에서만 올라오니까 고르지 못하여, 30분 마다 뒤집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농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고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2) 열풍기계식 홍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목책 철관음은 목탄 홍배에서 올라오는 탄배향 때문에 아무리 차가 좋아도 소비자의 취향에 부합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계식 열풍 홍배기를 사용하면 장시간 홍배시에도 비교적 맛이 깔끔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농들은 최근에 이 홍배기로 대체하여 차를 제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10일에서 20일에 걸쳐서 장시간 정밀 배화를 하는 다농이 많기 때문이다. 1회에 24시간 홍배하고 3일 정도 차를 쉬어 주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5회에 걸쳐서 100시간 이상 홍배를 하는 다농이 많다. 이 과정 중에 차를 담아 방치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후숙이 조금 일어나기도 하며, 맛이 좋아지고 차엽의 선택이 진한 암갈색으로 100~110℃사이에서 홍배를 진행한다. 여기서 철관음의 청기가 사라지고 쓴맛 이 제거되기에 이른다.

쓴맛은 교반하고 포유과정에서도 산실되지만, 홍배과정에서 차엽속에 잔존하는 카페인 성분이 대량으로 기화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줄어들어 마셔서 편안한 차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남아 있던 잔여 수분이 홍배를 인하여 최저치로 감소하고 차잎은 더욱더 긴밀하게 오므라들면서 엽저가 쪼글쪼글해진다. 따라서 완성품의 차를 다호에 넣을 때 옥구슬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상기의 발표문에서 보면 우리가 대만차 가운데 메니아들이 즐겨 마시는 목책철관음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소화해서 나오는 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중국차 제조 공정을 촬여해 보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중국차가 앞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각 차의 종류마다 홍배의 기술이 오랜 세월 각 농가의 축적된 노하우로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장 경제에 맞추어 내는 점이다. 우리는 기술적인 표준이 안되어 있어면서도 늘 손 맛이 좌우한다는 어정쩡한 답변 만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차로서는 선직국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다농들의 삶을 오랜기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함께 한 시간이  이러한 내용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발표자의 발표문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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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주의 2007년 3월 찻자리

일시: 2007년 3월 17일(토) 오후 6시 - 12시(공식 6-10시)
장소: 대구 수성구 지산동 찻집 <자연주의>
인원: 15명 (손님 13명, 운영자 부부)


찻자리의 전체적인 분위기

보이차란 과연 무엇인가? 골동 보이차엔 어떤 마력이 있길래 전국적으로 보이차 열풍이 생기는가? 최근들어서 경기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차 상인들은 보이차의 판매가 급증하고 보이차를 찾는 손님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드물게 공개적으로 10만원의 참석비를 내고 마시는 찻자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골동 보이차의 참 맛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마니아 층은 많은 인구가 아닌 극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 여파는 큰 것이다.


이날은 보이차가 큰 화두였다. 오른쪽 두번째 짱유화 교수의 열강

국내에서 2002년 만해도 중국에서 보이 청병을 만들어 와서 국내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려고 하는 상인을 보고 그런 것은 보이차도 아니다 하면서 그 차를 부정하는 상인들이 이제는 누가 더 진짜라고 우기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중국에서 차를 주문하여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속에 자연주의 찻집에서 오래전에 준비해둔 품질이 극 상품으로 보유한 차를 한 달에 한 번 신청한 접수 순으로 짜르고 찻자리를 만든다. 벌써부터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찻자리를 만드는 것이 벤치 마킹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김천에서 올라 오신 최길동 선생님, 80년대 차이야기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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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팽주 역을 한 박창식 선생님



서울에서 내려오신 보이차 마니아, 김해준 전무


한국인과 똑같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짱유화 교수 - 차 이야기


차를 마신 후 자차로 마시기 전에 차의 옆저를 돌려가면서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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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생활이 보편화 되어 있는 대만의 경우, 술이 아니라 차로써 축하를 하고 차(茶)에 대해 큰 돈을 지출한다. 만약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연한 일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겨우 일반화 되는 차생활에 입문하는 단계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차생활이 위와 같은 찻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일반적인 찻자리와 마니아의 찻자리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보편적, 발전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 - 자차법으로 차를 끓이고 있다>


 버섯과 쇠고기


행사내용

2006년 10월부터 가진 ‘자연주의 찻자리’가 벌써 6회째가 되었다. 첫모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째 주 토요일을 기다렸고, 그 날이 오면 KTX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대구로 내려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번 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학기부터 서울에서 차도구학 강의가 있는데 그 학교는 토요일에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5시에 수업을 마치고 6시 동대구행 KTX를 타고 내려서 택시로 수성구에 위치한 자연주의 찻집에 도착하니까 8시가 되었다.


 왼쪽 첫번째 <자연주의 주인> 이정미 씨. 오른쪽 남자 6회 연속 참석자

문을 열고 들어서니 팽주는 이집의 바같 주인인 박창식 선생이 맡아 있었고, 무언가 열심히 보이차에 대한 해설을 하시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알고 보니 고천 짱유화 교수가 아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팽주 오른 쪽 상석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차인’ 편집장, 그 옆 자리에도 서울에서 내려온 김해준 전무님이 함께 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아닐 수 없다. 골동 보이차를 마시는 찻자리가 이제 많이 알려졌다. 이번 모임에서 새롭게 만난 분은 또 있다.

지방에서 오셨다고 하는 치과의사였는데 심오한 얼굴을 하고 보이차에 대한 또다른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 같았다. 그 외는 늘 오시는 분들과 최근 연속으로 오시는 분들이다. 가장 어른이신 매다옹 주인 안재한 선생님, 경주에서 찻집을 경영하시는 ‘아사가’ 주인과 김천에서 수학 학원을 하시는 최길동 선생님,  인터넷상에서 활동을 많이 하시는 율리님, 직장 생활을 충실하게 하시면서 보이차를 알고자 수업료(?)를 많이 낸 (?)님 등등이 참석하였다.


오른쪽, 율리님의 와인 따르기 와인을 받는 사람은 찻자리 단골 참석자

18시 - 18시 20분 / 차회 시작을 기다리며
18시 20분 - 19시 20분 / 잣죽으로 요기하고 등심구이와 함께 와인 한잔 나누며
(간단한 자기소개로 서로 인사)
19시 20분 - 20시 20분 / 대만 청차 (2006년 목책 철관음 동차 특등) 품다

짱유화 교수의 오룡차 이야기는 오늘 마신 일등급 목책 철관음을 마신 후 목책철관음 만이오늘날에도 옛날 전통 방식으로 고수하고 만드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대우령 차인 경우 실제로 대우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정도이기 때문에 고산오룡으로 대우령 30년 40년된 차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말에 참석자들의 눈은 더욱 커져갔다. 오룡차 이야기를 하다가도 보이차에 대한 역사적 접근 방법이 상당히 학자적인 면모로 다가갔기 때문에 우수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대구 매다옹 주인 안재한 선생님

처음 참석하신 손님인데, 차향을 음미하고 즐기는 수준

그 다음으로 필자는 매번 15분~20분 정도 ‘차도구 이야기’라고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나무로 만든 말차 숟가락인 차시와 그 차시를 만들고 마무리하는 시점에 억세풀을 이용하여 완성한 차시(茶匙). 소나무를 소재로 요즘 같으면 로구로 같은 방식으로 조선시대 김홍도의 그림에도 나오는 나무 깍는 것을 물레를 이용하여 만들고 생옻칠을 한 다식 그릇을 가지고 간략하게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져다.


소나무를 물레로 깍아 만든 것임.

20시 20분 - 22시 / 1935년 이전 老 동흥원차 품다하며
(2개의 자사호에 각각 40g의 차를 넣고 2개의 숙우에 우려내어 음다)
12회 우려내고 난 찻잎을 감상하고 하나의 은주전자로 자차 4회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

22시 - 23시 30분 / 동창황기 남원차 품다
(2개의 자사호에 각각 30g 을 넣고 8회 음다)
동흥자차에 황기남원차의 찻잎을 같이 넣고 다시 4회 자차 음다 후 공식적인 찻자 리를 마침

23시30분 - 01 30분 / 보이차에 대한 의문과 질문에 짱유화 교수의 해설은 최근들어 차에 관한 강의로는 최고 수준의 강의를 듣고 입과 귀가 호사한 하루였다.

금일 행사는 차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충족한 시간이었고, 차의 이름만으로 마무리 되지 않고 깊은 지식과 함께 이해를 도운 찻자리였다. 그야말로 차꾼들이 진정한 찻자리를 만들어 냈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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