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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차소식을 전하는 차밭

오늘이 3월 10일입니다. 멍하이의 이곳저곳에서 햇차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수차는 아직 이르고 양지쪽의 소수차나 매년 가지치기를 하는 대지 차밭의 차들입니다. 농밀한 회감은 없지만 그래도 햇차의 싱그러움이 있고 단맛이 좋습니다. 녹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차들은 첫물차를 우전 등으로 부르며 최고 등급으로 분류합니다.

보이차도 첫물차가 좋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고수차도 이곳에선 토우춘(頭春) 차라고 부르는 조춘 또는 첫물차가 맛도 좋고 가격 또한 가장 비쌉니다. 그런데 차나무가 위치한 지역과 수령에 따라 찻잎의 발아 시기는 각각 다릅니다. 운남의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두배정도 됩니다.

구름의 남쪽에서도 남쪽이라고 할 수 있는 멍하이 쪽이 가장 빠르고 점차 이무-임창-보이-보산 쪽으로 올라갑니다. 차나무의 수령도 비교적 어린 나무부터 발아하기 시작하고 해발고도의 차이, 음지와 양지에 따른 차이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생산되고 있는 차들은 운남에서도 남쪽, 해발고도가 낮고 양지쪽에 위치한 소수차들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차들은 첫물차라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고수차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수차들은 홀대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지역은 생산 단가조차 맞추기 어려워서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봄바람에 출렁이는 새싹을 바라보며 보이차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보이차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수차의 가치가 알려지고 폭등하기 시작한 건 십여 년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5년 전까지만 해도 보통은 고수차와 소수차를 구분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찻잎 모양이 이쁜 소수차가 대접받던 시기였습니다. 차의 유구한 역사와 현재 전 세계적인 차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보이차에서 노차라는 개념의 형성과 고수차의 폭등은 지극히 이래 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광조우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차를 마치 금융상품처럼 취급하고, 일부 노차는 천문학적인 가치로 폭등하는 등 차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다소 황당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세력들이 규합하여 이러한 풍조를 조장하고 그 세력들의 언저리에서 부하뇌동하는 무리들까지 합쳐져서 일종의 거대한 악순환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인데, 자본이 주가 되는 세상에서 사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이 만든 브랜드로 좋은 차를 생산해서 당당하게 차의 세계에 입성하고픈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보면 때론 참으로 암담합니다. 그러나 멀리 보면 아직도 보이차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는 마시는 것입니다.

주식도 아니고, 골동품도 아니고, 보배도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차는 여전히 마시는 음료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광풍이 아니라 누구나 마셔서 언제나 기분 좋은 차가 우리 곁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차는 여전히 차일뿐이지요! 햇차들도 지금처럼 일부 지역과 수령, 지명도에 과도하게 편중된 시각에서 점차 넓은 세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소수가 독점하는 상황에선 제대로 된 평가나 올바른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대중의 기호라는 용광로 속에서 결국 살아남는 차가 앞으로의 차 문화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박람회장 오운산 부스

문화 또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고급은 고급의 용광로가 작용하고 일반은 일반의 용광로가 작동할 것입니다. 그 용광로 속에 당년호차 경년신차(當年好茶 經年新茶)로 대표되는 석가명차-오운산을 던집니다. 훗날에 황홀한 맛으로 돌아온다는 말들로 포장된 쓰고 떫기만 한 차, 보이차는 원래 그렇다는 말들로 포장된 당장 마시기도 어렵고 나도 모르게 찡그리는 차가 아니라 당장 마셔도 순하면서도 달고 향기로운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일정한 세월이 경과하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껍데기는 사라지고 올곧은 것만 용광로의 주물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특히 보이차는 수많은 사람들의 논쟁 속에 있지만 갈릴레이의 한숨처럼 그래도 지구는 돌고, 수많은 차산을 돌고 돌면서 그래도 차맛은 언제나 정직하다는 믿음이 이제는 확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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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마이의 미국인

 

멍하이 일기 14 - 윈난 차여행 넷째날 경매 징마이의 미국인 -

 

어젯밤 늦게 도착한 린창기지에서 올해 생산된 햇차들을 시음하였습니다. 대체로 작년보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향기가 좋고 가공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음회중 교수님이 계단에서 발을 잘못 헛디뎌서 어깨부분의 팔이 빠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여행도중 물이 바뀌면서 복통을 호소하는 분들은 종종 있습니다만 이번 사고는 처음 경험하는지라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병원을 찾기도 어렵고 중국 대부분의 의료시설이 그렇듯이 국내에 비하여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제가 멍하이에 있으면서 몇 번 병원을 찾은 적이 있는데, 한번은 가온도 입지 않은 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혈액검사를 하더니 다짜고짜 맹장이라면서 바로 수술하자고 해서 도망 나온 적이 있습니다...다행이 샤오미 친척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 근처에 있어서 바로 달려가서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팔이 빠진 것이기 때문에 팔 거치대를 하고 하루 이틀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님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될까 노심초사하셨는데 병원을 나서시며 중국 병원도 그런대로 괜찮다며 밝게 웃는 모습을 뵈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솽지앙에서 네시간을 달려 징마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보이시 란창현 혜민향 경매산은 흔히 천년만묘고차원(千年萬苗古茶園)이라고 부릅니다.

 

한묘가 한국 평수로 200평 정도라고 계산하면 만묘는 약 200만평이 됩니다.

실제로 엄청난 차밭 면적을 자랑하는 경매산은 따짜이(大寨), 멍번(猛本), 망징(忙景), 노강(老岡), 윈지(翁基) 등의 수십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2000년 초부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비교적 잘 개발된 차산입니다. 보이차이지만 대엽종보다 중 소엽종이 더 많습니다. 경매 지역의 고수차를 가공하면 색깔이 비교적 검은 편이라 보기에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맛은 달고 순한 편입니다.

 

이무 지역의 차와 종종 비교되는데 이무차는 부드러움의 특징이 있고 경매는 맑고 달며 깨끗한 향기가 있습니다. 또한 팡세이지아오(방해각螃蟹脚)라고 부르는 경매산에서 특히 많이 불수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차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로서 영덕대게로 유명한 게의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주며 위장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경매산고차림이라고 부르는 경매산 정상에 위치한 고수차 밀집 지역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특히 차산에 내리는 비는 더욱 맑습니다. 아열대 지역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스콜처럼 보통은 잠시 내리곤 그칩니다. 용수(龍樹)라고 부르는 큰나무 아래에서 잠시 피하거나 차밭 중간 중간에 차를 채엽할 때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고수찻잎에 떨어지는 빗물을 감상하면 됩니다. 비가 개인 후 차숲에 들어가 뾰족이 솟아오르고 있는 차싹을 직접 따서 먹어보고 방해각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경매산 정품 방해각은 1kg에 백만원 가까이 합니다. 그러나 시중엔 고수차도 그렇듯이 다양한 가격이 있습니다. 저희처럼 전문적으로 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어떤 경우엔 정확히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일단 사람을 신뢰하는 쪽을 택합니다. 그 많은 모차들을 한상자한상자 열어서 전부 맛볼 수도 없고 감시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속이려는 마음이 생기면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 이쪽 세계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차농입니다. 그분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차를 만들고자하는 저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고 최선을 다해 모심으로서 비로소 좋은 원료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해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하고 원하는 가격에서 절대 깍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고비를 따로 챙겨 주기도 합니다. 경매산에 미국인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망징(忙景)이라는 마을의 엽공차업(葉貢茶業)이라는 곳입니다.

 

오바마를 닮았다는 이집 주인의 이름이 엽공이라서 엽공차업이라고 지었답니다. 이곳에서 브라이언이 포랑족 꾸냥을 만나 올해 118일에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브라이언이 윈난을 처음 방문한 해가 1995년이라니 벌써 22년이 흘렀습니다. 인류학자인 그가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쿤밍에서 우연찮게 지금의 스승을 만나면서부터라고 하는데 차를 우려내는 모습이 남자이지만 아주 우아합니다.

 

중국어도 아주 능통하고 문화 인류학적 지식이 남달라서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를 만나러 멍하이 가게를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마침 제가 출장 중이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여러 한국 분들과 함께 만나게 되어서 더욱 반갑다면서 진심으로 환영해줍니다. 귀한 만남이라면서 자기가 조금 소장하고 있는 80년대 7572 숙차를 우려 줍니다.

 

이곳에서 정품 노숙차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보관상태도 좋고 구감도 아주 좋습니다. 숙차도 오래두면 이렇게 좋은 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떠날 때에는 이번에 방문한 한국 손님들 모두에게 결혼식을 기념하여 200g 소병으로 찍은 병차를 나눠주었습니다. 작년 경매산 가을 고수차로 만들었다는데 멍하이 가게로 돌아와서 마셔보니 가을차 특유이 맑고 깨끗한 향기가 두 분의 아름다운 결혼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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