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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1 동양 차문화 2,000년 특별 다구 유물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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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 소장가 김성태 선생은 당대(唐代)의 다기들(618-907)을 당시의 차문화와 연계해서 설명을 해준다. 

부산차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한 이번 특별 다구 유물 전시회는 중국 유물로서 다시 볼 수 없는 연대기별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점에서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운 전시라고 생각한다. 소장자의 유물에 대한 감식 안목이 뛰어난 것을 마음 속 깊이 탄복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훌륭한 작품을 만났을 때 소장할 수 있는 눈의 힘, 경제적인 힘 등이 한 번에 작용하였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감동스러웠던 점은 지금까지 필자가 궁금했던 차도구의 맥락을 실지로 유물을 통해 검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고반 천목다완은 필자가 2005년 일본 나라 지역에서 천목다완 특별전에서도 만나지 못하였기에 더욱 반가운 전시품이고, 더 나아가 필자가 두근거린 가슴을 안고 지켜본 것은 그림에만 나오는 탕병이었다. 물론 그 재질이 철로된 것인지 아니면 도자기로 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같은 형태의 형상만을 확인한 것으로 커다란 성과였다. 송대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불속에 직화로 물을 끓이는 것으로 실물확인과 사진작업을 할 수 있었다.

3년전 김성태 소장자의 댁에서도 촬영을 한 번 하였지만 그 때는 작업여건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공개된 장소라서 현품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와 사진 작업이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특히 요나라의 철병을 실물로 본 것이 필자에게 큰 행운이었다.

[사진 왼쪽에서 4번째, 요나라 때의 철병]
철병에 물 끓이는 그림을 앞에 두고 전시를 하여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시기간 2011년 9월 30일-10월2일/부산시민회관 대소공연장 및 대 전시실

------------ 석우.
아래
차의 시원(始原)과 근본에 대하여는 김성태 선생의 기고문이다.

- 2천년 전 인간과 차가 만나게 된 연원(淵源)
동양에서 차(茶)는 2천년 전(漢代) 한의학에서 약제를 다루는 최초의 약학서인 신농본초(神農本草經)에 약제로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부터 인류와 차의 만남이 시작된다.

인간과 차가 만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의학에서 의거한 바와 같이 차가 지닌 기운을 인간이 얻어 활용하기 위함이었는데 인간의 삶 속에서 고뇌나 많은 상념들로 인하여 인체의 에너지(氣運)가 상체부분으로 몰렸을 때 나타나는 머리의 무거움이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차를 마심에 있어서 차의 기운은 사람의 상체부분으로 올라와 있는 기운(上氣)을 내려가게 해주는 기운으로서 차를 마시면 두통이 해소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원리였는데 그 후 400여년 동안 약제로 사용되어 오면서 임상적 경험을 통하여 사람들은 평상시에 차를 마셔도 머리가 맑아진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었다.

이 무렵의 5-6세기경 중국에 도래된 선종불교(禪宗佛敎)의 선승(禪僧)들은 선 수행에 임하기전 차를 마시면 자신의 정신을 더 맑게 격상되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학문을 탐구하는 학자들이나 선비층에서도 이와 같이 차를 활용하는 풍조가 생겨나며 차마심을 일상화 되어 갔다.

이 시기 선승들이나 선비들이 차마심을 통하여 얻으려했던 주목적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차마심을 통하여 얻으려했던 주목적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차마심의 본질인 양 추구하는 색(色), 향(香), 미(味)가 아니었으며 차가 지닌 기운(氣運)을 얻어 자신의 정신을 청정해지도록 활용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부분이 바로 가장 중요한 최초 차 마심의 근본적 본질이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대의 기득권을 지닌 자들의 가장 큰 속성은 과시용이었다.

권세가들은 자신들이 지닌 물질적 풍요와 귀족적이며 권위적인 위상과 더불어 수행자들이나 선비 학자들이 지닌 지적면모까지도 지니고 싶어 하면서 흉내 내어 차를 마셨지만 그들에게 차는 정신음료가 아니었으며 보편적 과시의 한 수단이었다.

차를 마심에 있어 그들은 기운을 중시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 또한 지식인들이 고상하게 늘 접하고 있는 차를 자신들도 즐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으로서 호화롭고 비싼 고급 다구를 사용하며 격식을 중시하는 차문화로 변모시켰다.

차문화는 역사 속에서 이러한 계층들의 과시적 욕망에 의해 항상 본질을 잃고 타락하고 반복되는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음용기와 전체시대의 다구 유물들은 시대별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의 변화는 곧 차문화의 시대별 변화되었던 모습을 뜻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따라서 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는 이러한 시대별 풍부한 유물들을 통해서 차문화의 시원(始原)과 역사 속에서 끓임없이 변모해온 변천과정을 냉철하게 고찰하여 현재의 차문화에 반영하고 그 교훈으로 미래의 차문화를 가꿀 수 있어야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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