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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일기 주인 집

 

한국과 중국의 차 문화를 단순하게 비교해보면 제가 느끼기에 한국은 지나치게 엄숙해서 탈이고 중국은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탈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어떤 찻자리에 가보면 마치 벌을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차맛은 천리만리!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속으로는 아따마 고귀하고도 고귀한 행사 지들끼리 하지 괜한 사람들 초대해 놓고 무슨 꿇어 앉아 쇼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잡놈인 제가 얼떨결에 참석했다가 언제 마치나 하고 발을 저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론 한복 곱게 차리고 다소곳 앉은 새빨간 입술연지를 바른 사모님이 찻잔에 물든 루주를 이리 할고 조리 할타먹는 요상한 광경을 감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거 뭐 아무리 차 마시는 일이 밥 먹는 것과 진배없다는 나라지만 일상다반사 다반사일상입니다. 한손엔 담배 한손엔 찻잔 들고, 담배 손 찻잔 손 바꿔가며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 찻물로 갸르륵 입 행구는 사람, 이런 사람과 차를 마시다보면 차맛은 역시 천리만리!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중국의 일부 차인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양국 차 문화의 전체적인 특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전통적으로 더 희한한 차 문화들이 많습니다. 때론 목숨 걸고 차를 마셔야 됩니다...

 

동양의 정적인 차 문화는 대체로 경직된 부분이 있는 반면에 서양은 동적인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는 점수를 매겨서도 안 되고 꼭 어느 것이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각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발전 소멸하는 것이 문화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차 문화도 마찬가지로 발전해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의 문화가 생성 또는 소멸되고 있습니다.

오운산이 생각하는 차는 한마디로 맑음에 있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차입니다. 정적인 것에도 동적인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양 극단을 아우를 수 있는 차 문화를 추구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차는 인류가 개발한 최상의 음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음식에는 약간의 잡스러움이 있습니다. 오미로 대표되는 자극적인 맛이 어울림을 통해 좋은 맛으로 새롭게 탄생하지만 음식은 평생을 먹어도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만든 차를 집중해서 마시면 일체의 잡스러움이 사라지고 경건한 느낌마저 듭니다.

 

육체와 정신을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 한줄 알지만, 굳이 구분을 해보면 일반적 음식이 육체를 살찌우는 것이라면 차는 정신을 보전하는 음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타 음료를 포함한 모든 음식은 섭취할 때는 각종 맛과 향기로 인한 즐거움이 있고 식후에는 포만감으로 인한 편안함과 행복한 느낌 또한 따라옵니다. 그러나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경건함은 세상의 어떤 음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경건함의 정체는 특히 고수차에서 두드러지는 회운(回韻)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고수차를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 회운 때문입니다.

 

흔히 회감(回甘)이라고도 하는데, 회운이란 차를 마시고 난 후 서서히 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으로 올라오는 은은한 향기를 말합니다. 오랫동안 차를 마신 분들도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회운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차는 마실 때의 달고 쓰고 떫은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시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속 깊은 여향을 남깁니다.

 

어떤 분은 하루 이틀 동안 지속된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경지 까지는 아니고 다른 음식을 먹고 나면 그냥 멈춥니다...

 

아직 회운의 정체를 잘 못 느끼시는 분들은 오운산차 한번 드셔보세요. 아니아니, 다른 분들이 만든 좋은 고수차 드셔도 됩니다...

 

차를 마신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방금 마신 차의 흐름을 관찰하다보면 저절로 회운의 정체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번 느끼고 나면 다음부터는 차를 마실 때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면 차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차 마시는 것을 도를 닦는 행위와도 비교한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저는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문구에 갇힌 듯한 엄숙한 차 생활도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일상과 함께 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늘 가까이에서 삶의 향기를 불어넣어주는 차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냥 무심으로 마시는 차가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보면서 한잔!

한가한 오후에 먼 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잔!

늦은 밤 TV를 보거나 독서를 하다가 갈증을 느껴 한잔!

어느 새벽 문득 홀로 깨어나 시름이 시름을 갉아 먹을 때

가슴 속 깊이 따스하게 스미는 한 잔의 차!

오운산이 꿈꾸는 차세상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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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점, 공동 초제소

 

이번 길에 그래도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흙 범벅으로 마을에 내려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배낭 속에 따로 준비한 옷을 갈아입고 마침 큰길 옆에 식당이 있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멍하이에서도 후난(호남성) 사람들이 소매점이나 식당을 하는 곳이 많은데 이곳도 주인이 호남성 사람입니다. 돼지갈비 복음, 민물고기 조림, 채소 탕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칭지아오투도스(靑椒土豆絲고추 감자 채) 푸른 고추와 감자를 얇게 쓸어 볶은 것인데 매콤하고 고소한 것이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이 요리는 중국 어디를 가도 웬만한 식당엔 꼭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비교적 잘 맞는 음식이니 여러분도 꼭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이곳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가 음식입니다. 이곳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고 각 민족마다 그들의 명절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하루건너 하루가 식사초대입니다.

 

무엇보다 차농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매번 참석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실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또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특별히 챙기고 제 앞으로 수북이 음식을 쌓아 놓습니다. 육해공군이 총출동한 고기차림인데 평소 육식을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 채소 몇 가닥만 들고 있자니 차린 성의를 봐서 미안하고, 억지로 먹자니 뒤탈이 두렵고 그야말로 대략난감입니다.

 

거기다 여기서는 대부분 집에서 만든 위미지우(옥수수 술)라는 50도짜리 술을 마시는데 잔도 소주잔의 세배정도 크기입니다. 평소에 소주만 마시다가 이 술을 주는 대로 홀짝홀짝 마셨다간 정말이지 큰일 납니다.

 

알코올 도수로 대략 계산해보면 한잔이 소주 한 병 이상입니다. 희한하게도 술 권하는 문화는 한국이나 어찌나 비슷한지 계속 권합니다. 쬐끔 마시고 내려놓으면 또다시 채우고 채우고를 반복합니다. 지금은 웬만큼 적응이 되었고 인연 있는 차농들은 대부분 저의 식성을 아는지라 무리하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반찬입니다. 산길을 그것도 미끄러운 흙탕길에 우산을 접었다 펼치기를 십여 번 하면서 내려온 길이라 순식간에 세 그릇 뚝딱입니다. 식당 아줌마가 우리 자동차에 적혀있는 오운산로고와 석가명차 글씨를 보고 차업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아는 사람이 조금 준 차라면서 마셔보라고 합니다. 눈이 번쩍 뜨입니다. 어디서 온 차냐고 물으니 그곳에서 50키로 정도 떨어진 산골에 사는 친척이 준 차랍니다. 바로 수첩 꺼내들고 메모 들어갑니다. 도부장은 여러번 격은 일이라 담담히 귀 기우리며 메모하기에 바쁜데 젊은 부부는 걱정이 많습니다.

 

직업병인지 좋은 차만 만나면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눈동자가 커집니다. 엉덩이가 털썩 털썩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확인 하고픈 마음이 앞섭니다.

 

너무 늦었다느니! 비도 오고 길이 험해서 지금 갔다가는 큰일 난다느니, 날 좋을 때 자기들이 먼저 가서 확인해보고 연락 한다느니 젊은 부부가 갑자기 바쁩니다. 부인 되는 사람은 울상이고, 젊은 남편은 연신 종아리를 만지작거리며 그곳에 가면 씻을 곳도 잠잘 때도 없답니다.

 

저도 그날 당장 갈 생각은 없었는데 멋모르고 따라 나섰다가 무작정 밀어 붙이는 저 때문에 고생한 젊은 부부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티엔 부취. 今日不去오늘 안 간다. 이 한마디로 바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처럼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은 차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직 직접 가서 차산의 환경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맛으로 봐서는 확실한 고수차이고 향이나 밀도가 아주 좋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 내내 감미로운 회감이 목안에 가득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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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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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모차 공급자

 

멍하이에 도착한지 며칠째 멍하이의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윈난성 시솽반나는 보통 5월말부터 9월말까지 우기가 이어집니다. 이곳 사람들이 ‘위라고 부르는 비의 계절엔 멍하이의 많은 가게들은 아예 문을 닫거나 가끔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곤 합니다. 그러나 오운산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설날과 추석을 빼고는 문을 닫지 않습니다. 일요일도 직원이 번갈아 가면서 쉬고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석가명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고 오운산은 아직은 신생 브랜드이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비수기 이지만 가끔씩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근처의 상인들이 놀러 와서 종종 밤늦게까지 차를 우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운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농 관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멍하이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온 저희와 인연이 있는 각 지역의 차농들은 반드시 오운산 가게를 들립니다. 별일이 없어도 늘 친절히 맞이해주는 저희 가게가 편한 것 같습니다. 이즈음 차농들은 대부분 집 주변의 공터에 채전을 경작하거나 사냥 등을 하며 여유를 즐깁니다.

 

이곳은 공원, 스포츠 경기장 등의 특별한 놀이시설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한들 차농들은 그런 것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사드문제 등으로 한중관계가 긴장일로인데 차농은 그저 농사짓기에 바쁠 뿐입니다. 밤에는 다른 가전제품은 없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꼭 있는 대형 TV 앞에서 연속극 보기를 즐깁니다. 뉴스 시간이 되면 그냥 TV끄고 잡니다...

 

사드가 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보수적이고 여유로운 세계관이 참 좋습니다.

 

멍하이에 정식으로 한국인 명의로 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장기 체류하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어킬수도 있는데 일체 묻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재일먼저 대장금이야기를 하거나 유명 아이돌 가수의 근황을 물어보곤합니다. 저는 뭐 그 유명하다는 대장금도 본적이 없고 아이돌 가수야 그들보다 더 모르는 한국 촌놈인지라 오히려 갸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되묻곤 합니다...

 

어떤 차농집에는 한국의 누구누구 가수라면서 벽면을 사진으로 도배해놓다시피 한 곳도 있습니다. ‘한류로 지칭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전파력이 이곳 중국의 변방 오지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문화의 전파력은 알게 모르게 생활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투하여 알게 모르게 그들의 일부가 되고 또 다른 창조를 일구어 내곤합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도 분명 하나의 문화입니다. 세계 각국엔 다양한 형태의 차문화가 존재합니다.

 

영국의 귀족 사교모임에서 비롯된 에프트눈 티그리고 일과 후 식사와 함께하는 서민 문화인 하이 티미국의 무더위 속 갈증 해소용으로 개발된 아이스 티추운 러시아에서 항시 따뜻하게 차를 우려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사모바르일본의 고도로 발달한 형식 문화인 고이차/우스차인도의 길거리 차문화인 마살라 차이 티등 각 나라마다 상황에 잘 맞는 문화들이 개발되어 향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차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중국만의 특별한 형식의 차문화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일상다반사처럼 너무 일반화 되어 있어서 특별한 형식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광동성 일대의 식당에서 아침과 차를 겸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닌 자오차(早)’ 문화가 있습니다만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멍하이의 차문화는 어떨까요! 천년의 차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제 전세계 보이차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지만 이렇다 할 대표적인 음차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위에 올리고 좋은 찻잎은 내다 팔고 황편 부스러기 등을 넣어서 물처럼 끌여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포랑족의 수안차(酸茶)’처럼 대나무통에 차를 넣고 땅에 묻었다가 귀한 날에 반찬으로 꺼내어 먹는 등의 소수민족 특유의 산골 차 문화들이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따름입니다.

 

문화란 원래 대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지역이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커다란 물결이 되기 위해서는 인류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차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운산이 늘 생각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생각하는 차의 정신을 오운산에 담아서 세계인에게 전달하고,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비록 멍하이의 조그마한 골방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의 이 노력들이 차의 역사에 한줄 기록으로 남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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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울 박람회장

 

710일 밤 비행기로 인천에서 쿤밍이로 들어와서 차창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정규 제품들과 주문 제작 차들의 생산 현황을 점검하였습니다.

 

올해 생산 되는 오운산의 정규 제품은 2017년 진.선.미를 포함하여 전부 12종류입니다. 주문 제작 차들은 현제 8가지입니다. 작년에 비하여 주문 제작차가 많이 증가 하였습니다.

 

오운산의 포장 디자인은 그대로 사용하고 상품명만 주문 제작자가 원하는 이름을 넣는 방식입니다. 회갑을 기념하여 제작하시는 분,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상호를 넣어서 생산하시는 분 등 다양한 형식의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최된 서울, 부산, 대구의 박람회에서 확인 하였듯이 한국에서는 벌써 오운산이 확실히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고도 두려운 마음입니다. 고마움은 저희의 노력을 인정하고 찾아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고객들의 마음을 만남에 있었고 두려움은 앞으로도 믿음을 견지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다짐에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고전중입니다만 이번에 참가한 한국의 박람회에서 참으로 많은 차인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차인으로 널리 알려진 님을 비롯한 많은 보이차 마니아들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소문으로 찾아오신 분들 특히 멍하이 일기를 읽어 보시고 보이차의 생산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며 오히려 감사하다고 덕담을 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석우연담 박홍관님의 제안으로 우연찮게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거쳐 많은 분 들게 전달 된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현장에서 그때그때 올리는 글이라 앞으로도 때론 오자들 투승이고 때론 사실 관계가 명확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제가 보고, 듣고, 만드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전한다는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멍하이 일기를 위해 큰 맘 먹고 최신형 핸드폰을 하나 새로 구입하였습니다...(사진 자료가 부족하다는 분들이 많아서 좀 더 좋은 사진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박람회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와서 보름여동안 여전히 바쁜 날들이었지만 모처럼 한국 음식도 실컷 먹고 된장찌개도 끼니때마다 먹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사실은 마누라 자식보다 된장찌개입니다...모국에서 잘 먹고 잘 쉬다보니 한 달 만에 체중이 2kg이나 불었습니다.

 

원래 체중 변화가 크지 않은 체질인데, 그만큼 타국 생활이 팍팍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또다시 쿤밍을 거처 어저께 멍하이로 왔습니다. 이곳은 지금 위지(雨季)라고 부르는 비의 계절입니다. 매일같이 비가 내립니다.

 

가끔 맑은 날에 위지차라고 부르는 여름차를 생산합니다만 향이나 맛이 현격히 떨어져서 숙차용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가격 또한 봄차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중엔 그래도 슬만한 모차들이 더러 있는데 오운산에서 생산한 숙차 속에도 포랑산 여름 고수차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아주머님이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해주셔서 아직도 곱씹고 있습니다.

차는 뭐로 만들어요?

차이파리로 만들어요!

차이파리는 어디에 열리나요?

차나무에 열려요!

차는 어떻게 만들어요?

차이파리 따서 만들어요!

차는 왜 마셔요?

그냥..

차는 어디에 좋아요?

몸에..

어느 몸에?

.

마음?

.

처음엔 별 생각 없이 그냥 대답했는데 생각할수록 재미있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해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훗날 좀 더 아름다운 답변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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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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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산 최해철 대표

 

그동안 보이차의 채엽부터 압병 포장까지 생산과정 전반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제가 오운산을 설립하고 그동안 막연히 알았던 과정들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좀더 보이차의 실상에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삼사년여 동안 이백여 군데의 고수차 산지를 직접 발로 뛰며 그 지역의 환경과 맛의 특징을 연구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직은 덜 알려 졌지만 환경과 맛의 특질이 살아 있는 지역들을 계속해서 발굴해나갈 것입니다.

 

오운산 경쟁력의 출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운산의 진정한 자산이랄 수 있는 그동안 맺어온 좋은 원료를 가진 차농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증진시켜나갈 것입니다. 제작 과정 또한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밝힐 것입니다.

 

현제 햇차나 노차나 불확실성이 보이차 유통의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여 그래도 많이 투명해진 편이지만 아직도 보이차 하면 가짜차, 비싼차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게로 환산하면 보이차는 아직도 다른 차에 비하면 저렴한 편입니다. 357g 병차 한편이 평균 5만원정도라고 보면 100g에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입니다. 물론 유명 지역의 고수차는 이미 많이 올라서 원료 가격이 100g에 십만원이 넘는 차도 더러 있습니다만 고급 녹차나 오룡차의 햇차 가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직은 마실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호급이나 인급의 정품 노차들은 맛과 가격을 떠나 희소성만으로도 이미 근접하기 어려운 차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가짜보이차는 어떻게 탄생 했을까요? 사실 보이차라고 출시된 차중에 보이차 원료가 아닌 가짜 보이차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짜보이차는 대부분 상표나, 제작년도, 원산지 표기에 문제가 있거나 가격이 가짜인 경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차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여러 사람들에 회자되기 전에는 가짜라는 말조차 없었지요, 아니 가짜차를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모든 상품들이 그렇듯이 수요가 있으면 만들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광조우 방촌 시장에 가보면 호급, 인급 차를 박스 단위로 쌓아 놓고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중국 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 한국이라면 당연히 욕먹을 짓이고 판매하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불리겠지만 여기서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당연히 가짜인 줄 알고 그렇게 거래합니다.

 

오히려 이거 진짜 맞아요? 라고 묻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정품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가격으로 구입하고 그런 차를 마시길 좋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교묘히 원료나 제작 시기를 속이고 또는 가짜 상표를 붙여서 진짜처럼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종류가 진짜 위험한 사람들이지요. 한국에서도 가끔 이런 종류의 차들을 접하는데, 판매하시는 분도 모르고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소비자에게도 이상한 차가 소개되고, 판매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햇차에서도 종종 이런 경우를 보는데, 가격이 비싼 유명 지역의 이름만 붙이고 원료는 다른 지역의 저렴한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심지어 노반장 한편에 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파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야 가격만 봐도 알지만 잘 모르는 여행객들을 어제 밤 꿈을 잘 꾸어서 횡재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운산에서는 2015년 창업 할 때부터 매년 그 지역의 진정한 맛을 소개하기 위해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조금씩 순료차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세 곳의 순료차를 출시하는데 정말 순료 맞습니다...(하도 가짜 순료들이 많아서...) 차를 공부하시는 분들은 한두 편씩 샘플로 구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지역의 순료차라고 해서 단주처럼 한그루의 나무로 생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차종의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습니다. 단지 단일 지역 즉 한 개 마을의 차를 모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마을의 평균적인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료차도 일종의 병배차인데 병배를 의도하지 않은 병배 즉 자연병배차라고 부릅니다.

 

20여년 차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차에 대해 문의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식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애초에 노차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햇차는 제가 늘 취급해 왔고 지금은 생산까지 하고 있으니 아는 만큼 답변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노차는 저보다 경험도 많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도 계시니 그분들에게 문의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차업 20년의 경험으로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노차는 결코 쉽게 만날 수도 살수 도 없는 차라는 것입니다.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시장경제 체제에서 수요가 있으면 제품은 언제 어떻게든 출연합니다. 결코 꿈 잘 꾸었다고 만날 수 있는 차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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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17 - 윈난 차여행 일곱째날 이무 가는 길 -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점점 나도 모르게 느긋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은 피고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때론 훌훌 날려버리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징홍은 멍하이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징홍은 평균해발500m 멍하이는1200m 정도 되는데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멍하이도 사월이 되면 차산은 그래도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일정의 편의를 위해 멍하이에서 징홍의 란창강변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기고 다음날 아침 이무로 출발합니다.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멍하이에서 이무 가는 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아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간단히 기념 촬영만 하고 지나갔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진상품(進上品)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베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을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易武鄕)이라는 대문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몇십 년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차창 흔적이 그대로 보호되고 있는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저희의 이무기지에 들러서 올해 생산된 이무차들을 몇 가지 시음합니다. 마침 부허당(薄荷塘)에서 가져온 고수차 생잎을 말리고 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1kg60만원입니다. 모차로 제작하면 1kg300만원 가까이 되는데 작년보다 50%정도 오른 가격입니다. 올해 이무에서 생산되는 차중에서 만송(曼松)차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궁금해 해서 맛이나 보려고 해마다 조금씩 구하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올해도 예상과 달리 모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아직 덜 알려진 지역까지 모차상들이 몰리면서 좋은 원료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필 제가 작년에 남몰래 점찍어 놓은 지역들이 집중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좋은 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일까요!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도 정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출시 가격을 생각하건데 자꾸만 치솟고 있는 가격이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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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도노채

 

멍하이 일기 10

 

석가명차가 어떻게 윈난에서 오운산이란 상표로 유한공사를 오픈 하게 되었는지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처음 윈난 땅을 밟은 것은 2002년경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강육발교수 대구의 오상윤교수님 등과 쿤밍에서 보이차 관련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하면서 부터입니다.

 

막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던 시기에 구미의 다랑무역 사장이 동행을 권유해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시장을 둘러보면서 이차 저차 닥치는 대로 시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후에 고객들의 요구가 있어 조금씩 보이차를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징의 마렌다오, 광조우의 팡춘시장 등을 기회 닿는 데로 오가면서 따이공이라고 부르는 보따리상을 통해 제품을 들여오곤 했습니다.

 

고객들의 믿음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물량이 늘어나고 2009년 노반장으로 유명한 진승차창의 한국 총대리를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보이차업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미호’ ‘해만차창’ ‘하관차창등의 한국 총대리를 겸업하면서 자주 중국 윈난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봄 진미호 대리상 회의에 참석차 멍하이에 왔다가 진미호에서 잡아 준 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절강상무주점이란 호텔인데 당시 봄차철이라 멍하이에서 가장 큰 호텔인 국위호텔에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묵게 된 호텔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당시엔 몰랐습니다...호텔 1층 상가에 제법 규모가 큰 모차 판매점이 있어서 시간 있을 때마다 내려가 각 지역의 모차들을 시음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곳에서 우연히 란창고차라는 중국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수차 브랜드의 심천 대리상을 운영하는 젊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허지라는 친구인데 저희가 한국의 명은아트 은제품을 중국에 소개하면서 알게 된 사람입니다. 아직 어린 친구인데 차업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라 보여서 몇 가지 은제품을 특별 가격에 공급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마웠는지 이후 종종 연락이 와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저의 사정도 비교적 상세히 알게 되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나이를 떠나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윈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모차상을 운영하는 위잉빙이라는 태족 여인의 오랜 고객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오랜만에 만난 정담을 나누고 다음 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다시 멍하이를 찾게 되었는데 봄에 묵었던 호텔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여전히 1층 모차 가게에 들러 이런 저런 차들을 시음 했는데 전에 왔을 때보다 대접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귀한 모차들만 골라서 우려주고 식사 대접까지 해줍니다. 아침까지 챙겨 놓고 올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며칠간 극진히 대접해주고 친지 결혼식에 초대까지 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그동안 대접 받은 것이 미안하고 고맙기도 해서 홍빠오’(좋은 날에 조금씩 돈을 넣어 전달하는 빨간 종이봉투)1000위안을 넣어서 전달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 가게에서 다시 보았으면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갔더니 봄에 가게에서 만났던 심천의 젊은 친구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뜸 가게를 그냥 주고 모든 원료를 제공할 테니 같이 브랜드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정식으로 제의를 합니다. 처음엔 저의 중국어 실력이 아직 시원치 않아서 뭘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했습니다. 당시 곁에서 내 일을 도와주던 상하이의 형님에게 다시 묻고 나서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호텔의 건물주이자 모차 가게의 주인이기도 한 위잉빙은 이천년 초부터 모차 장사를 시작하여 멍하이 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성공한 모차상입니다. 징마이 근처에 경익이란 차창이 있고 멍혼에는 대형 창고 그리고 징마이, 파사, 반펀, 포랑산에 초재소(찻잎을 따서 가공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 대부분이 그렇듯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글을 잘 모릅니다.

 

돈은 어느 정도 벌었고 남들처럼 자기도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던 중에 몇 년 전 대만 상인을 만나 모차를 제공하고 합작 제의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대만 상인이 모차만 가져가고 소식이 없답니다. 그래서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용케 제가 당첨된 것입니다...제가 어딜가나 인복이 있는 편이지만 이번일은 순전히 심천의 젊은 친구가 만든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차업을 하는 누구나의 소망일 수 있는 자기 브랜드를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현지에서 직접 경영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여 저의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초재소와 가게, 공장 등은 이미 준비 되어 있는 시설을 이용하기로 하고 모차도 제공 받기로 했습니다. 다만 박람회 참가비용 및 홍보비용, 홈페이지 구축 등 기타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허가의 편리를 위해 회사의 명의는 위잉빙의 이름으로 하고 브랜드의 지분은 반반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영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제가 가지기로 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합의하고 운남의 차산을 깨닫는다는 의미로 오운산고차라는 회사를 창업하였습니다. 201510개 지역의 고수 순료로만 만든 첫 제품을 출시하고 의욕적으로 중국 대도시 대부분의 박람회에 참가하며 홍보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동안 위잉빙으로부터 모차를 수매하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던 업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남는 모차를 조금씩 제품으로 만들어 출시하는 것은 괜찮지만 정식으로 브랜드 홍보를 하며 박람회에 참가하는 것은 자기들 하고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후로는 위잉빙의 모차를 수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일년 모차 판매량만 한화로 백억이 훨씬 넘는 위잉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차 판매를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만 전념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그동안 다져온 세월과 고객들을 자칫 전부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저 또한 방관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서 고민 끝에 위잉빙은 그냥 모차 판매상으로 남고 제 명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합작 제의를 위잉빙이 했고 발생한 문제도 위잉빙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위잉빙은 미안한 마음에 모든 조건을 저에게 유리하도록 결정해 주었습니다.

 

한국 석가명차 최정민 실장과 함께

 

각 지역의 초제소를 내가 필요할 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현제의 가게도 거의 무료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로서도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지라 합리적은 방법으로 모든 것은 정리하였습니다. 회사 이름은 한국과 같이 석가명차차업유한공사로 바꾸고 로고는 오운산으로 이미 많은 홍보를 해 왔으므로 제 명의로 이전한 다음 계속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위잉빙의 적극적인 협조아래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하는데 약 2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담당 공무원들마다 윈난성 시솽반나 멍하이 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최초로 설립되는 차업 관련 유한공사라서 모든 것이 생소한 업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여권 공정 및 중국대사관 인증서, 은행잔고 증명서 등의 서류와 중국에서 이력서 등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60여 가지의 서류를 준비해서 영업집조’(사업자등록증)을 내려 받기까지 정말이지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드문제까지 겹쳐서 될 일도 미루는 지라 속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멍하이 공상은행에서 한국인 명의의 회사 통장도 처음 만드는 일이라 하고 국세, 지방세 등의 처리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모든 것이 운명처럼 정리 되었고 앞으로는 오로지 저의 노력만으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한편으로 힘은 들지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정신을 담은 차를 만들기에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쭉 서술하다보니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을 쓰는 것 같습니다...

늘 바쁘게 살다보니 때론 장자의 호접몽처럼 현실 속의 내가 마치 꿈속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멍하이의 나른한 저녁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의 일기를 마칩니다.

 

*내일부터 한국 손님들 일곱 분을 모시고 빙도와 봉경 향죽청 차왕수 친견 등의 일정을 함께합니다. 멍하이 에서 빙도까지 자동차로 여덟시간 거리입니다. 향죽청까지 다시 세시간 손님들 잘 모시고 일주일 쯤 후에 다시 멍하이 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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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명차 맹해 본점

 

멍하이 일기 3

 

2017년 햇차가 벌써부터 출시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좋아서 일주일 정도는 빠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출시되는 차는 대부분 대지차이고 일부 양지바른 쪽의 생태차들도 있습니다.

 

차농들은 흔히 대지차를 "쉬우지엔차" 가지치기를 한 차라고 부릅니다. 대단위로 조성된 차밭은 일부 농약 비료를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기타 차들에 비하여 보이차는 아직 정도가 심각한 편은 아닙니다. 대지차라도 첫물차는 농약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가격은 보통 1kg100위안 전후인대 한국돈으로 17000원 정도입니다 물론 더 싼 것도 있지만 먹기가 좀 그렇습니다...오운산은 고수차만 구한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멍하이 가게로 대지차를 셈플로 들고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처음 가게를 오픈 했을 땐 한국 사람이 멍하이에서 처음으로 정식 오픈한 보이차 회사라서 그런지 사람 구경도 할 겸 테스트 삼아 이상한 모차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다행히 보이차업 20년의 경험과 눈치? 진승ᆞ, 진미호, ᆞ노동지ᆞ, 하관 등의 한국 총판을 하면서 쌓은 이력이 헛되지 않아서 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차농이 가지고 온 차중에서 열개중에 일곱 여덟게 정도는 산지를 맞춘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오히려 자기가 생산한 차의 품질을 물어 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괜한 자랑 같아서 조금  쑥스럽습니다.)


아무튼 멍하이에서 보이도사 소리도 듣고 이런 저런 테스팅은 무사히 통과한 것 같습니다...이곳이 보이차가 생산되는 현장이고 각종 보이차 관련 생산시설 또한 집결된 곳이지만 예상 외로 보이차 관련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은 드문 편입니다. 오히려 외지에서 온 사람들 중에 가끔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차의 매력에 반해서 매년 봄만 되면 찾아온다는 체코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일찍부터 보이차 산지를 두루 섭렵한 선쩐의 젊은 친구는 특별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이차를 직접 생산하는 차농이 차를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맛의 기초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저 손으로 대충 들어보고 좀 무겁다 싶으면 고수차! 가벼우면 생태차, 대지차 정도로 구분하는 편입니다. 차맛은 결국 여러 종류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대부분의 차농은 그 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맞은 애시당초 잘 보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마시는 차는 대부분 황편들이며 다른 지역의 차를 구해서 자기 집 차와 맛을 비교해보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보기 좋은 것들은 팔고 등외품은 남겨 두었다가 마시는 정도입니다. 모차상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지금은 대부분 개완셋드 정도는 갖추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이 오면 꺼내올 뿐 아직도 평상시엔 여전히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장작불에 올려 물을 끓이고 언제 만든지도 모르는 차를 한줌씩 넣어 숭늉삼아 마실 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낭만적이기도 합니다...

차맛이라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요! 그저 사람들이 마시는 일종의 음료 일 뿐이라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엽집. 엽집을 기웃거리며 몇 가지 햇차들을 맛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자기집에 와서 차를 마셔주어서 너무나도 고맙다는 표정입니다. 한국과 조금 다른 차문화중의 하나인데 원료 생산지라서 그런지 멍하이에서는 어느집이나 편하게 들어가서 마음껏 차를 마셔도 절때 구매 강요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기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아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다소 싱거운 느낌! 늘 고수차만 마시다가 대지차를 마시면 그냥 달근한 물마시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는 제법 회감까지 갖춘 차도 있습니다이럴 때 제가 자주 사용하는  중국어가 있습니다.


"우메이지아리엔"
여러분도 중국 가게에서 쇼핑하실 때 점원이 어떤 제품을 구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건은 좋은데 가격은 처량한...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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