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TV에서 공부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다석TV에서 진행하는 일본 차문화 여행(향후 스리랑카, 홍콩)은 기존의 답사 형식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며, 강의록을 제공받습니다. 함께하는 다도 전문가는 현재 박순희 차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외래교수이며, 일본 차문화사 강의 등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사: 박순희 소장(문학박사)
사진: 박홍관_차문화기록가
2월 27일(화)
⓵ 공항에서 교토로 이동(버스)
⓶ さかい利昌の杜(대암다실견학)
⓷ 利休旧生家
④ 南宗寺(堺)
⓹ 호텔 귀가
2월 28일(수)
⓵ 호텔 조식
⓶ 고산사
⓷ 대덕사 금모각/ 열려진 절 한군데
④ 건인사
⓹ 호텔 귀가
2월 29일(목)
⓵ 호텔 조식 후 출발
⓶ 동대사
⓷ 나라국립박물관(八窓庵)
④ 서대사(大茶盛)
⓹ 호텔 귀가
3월 1일(금)
⓵ 호텔 조식 후 출발
⓶ 금각사
⓷ 간사이공항으로 출발
무일암 (無一庵)
사카이 리쇼노 모리(さかい利昌の杜)에 만들어진 다실. 키타노텐만구 앞에서 열렸던 키타노대차회때 토요토미히데요시의 다두였던 센노리큐가 만든 4조반 다실을 재현한 것.
고산사(高山寺)
토가노오(栂尾)지역에 있는 사찰 에사이선사가 이 절 주지였던 묘에스님에게 차씨를 주고 발아에 성공했던 곳. 일본최고의 다원이 있는 곳.
대덕사 법당・불전(첫 공개 이벤트,이 기간에만 가능 관람이 가능함)
[센리큐를 시작으로 차인들이 참선수행하였고,차노유문화와 인연이 깊은 임제종 대덕사파 대본산임.특별공개되는 법당(중요문화재)의 박력있는 천정화(雲龍圖)는狩野探幽가35세 때의 역작임.손바닥을 치면 용이 우는 것처럼 울리기 때문에‘우는 용’이라 칭한다.더불 어 공개되는 불전(중요문화재)은1665년에 재건된 것으로 대덕사의 본당에 해당하며,에도 막부4대장군 토쿠가와 이에츠나가 기증했던 석가여래좌상을 안치,재건 전의 불전에서 가 져온 것이라 전해지는狩野元信가 그린 천정화/天人散華圖가 남겨져 있다]
건인사(建仁寺)
에사이가 세운 절. 아주 옛날부터 사두다례(四頭茶禮)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절에 끽다양생기를 바탕으로 해서 차비와 뽕비가 세워져 있다
나라국립박물관(八窓庵)
에도 중기에 다인 후루타 오리베 코노미로 지어진 창이 많은 다실로 1892년 이곳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함. 이 八窓庵 다실과 흥복사의 六窓庵(현, 동경국립박물관 소재), 동경으로 이축했다가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동대사 사성방에 있었던 隱岐錄을 일컬어 야마토(大和)의 三茶室이라 한다. 다실 양식은 4조다이메/게자도코/초암풍이며, 팔작지붕의 띠집임.
서대사
성무천황이 平城京의 동쪽에 동대사를 창건하였고, 이후 성무천황의 딸이 궁의 서쪽에 가 람을 개창한 것이 서대사이다. 이후 平安京으로 천도를 한 이후 쇄락하였다. 가마쿠라시대가 되어 1235년 에이손(叡尊)상인이 이 절에 주지로 오면서 戒律振興이나 救貧施療 등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추진하여, 그것을 거점으로 하여 密・律研修의 根本道場으로 중세 사원으로서 재생하게 된다. 1239년 1월 16일 에이손 상인이 서대사의 부흥을 서원하여 하치만신에게 차를 받친 후 남은 차를 약를 민중들에게 나눠주었던 것이 유래가 된 차의례.
금각사(金閣寺)
무로마치 3대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만든 산장 옛 가이쇼가 있었던 곳이라 이해 되기도 한다.
남종사(南宗寺)
다이린 소토가 개산이며 리큐풍의 다실 實相庵(실상암)이 있다. (1557년 센리큐가 참선수행을 했던 다이린소토를 주지로 개산, 1615년 소실되었던 것을 현재지로 옮겨서 沢庵宗彭에 의해 재건, 경내 국가지정 명승 카레산스이 정원 등 국가지정문화재 등 다수 있음, 센케 집안의 공양탑, 리큐코노미의 다실 實相庵 등이 있음)
2024년 1월 26일, 울산 ‘청미 다례원 홍차반' 애프터눈티 투어 2박 3일에 함께 동행 했다. 홍콩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여러곳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통을 자랑하는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페닌슐라 호텔 ‘더 로비’ 애프터눈 티에 가장 먼저 갔다.
이 곳은 홍콩 침사추이 솔즈베리 로드에 위치해 있으며, 호텔 1층 더 로비 라운지에서 오후 2시 ~ 6시까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이용 요금은 2인 기준으로 홍콩달러 688이며(원화 약 116,960원), 추가 인원이 있을 경우 1인당 한 세트(388홍콩달러)를 추가로 주문하면 된다.
애프터눈 티하면 오늘날 가장 먼저 영국을 떠올리게 하는 티타임 중 하나인데, 홍콩 애프터눈티 문화가 유명한 이유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1841년부터 1997년까지 홍콩은 156년간 영국의 식민지 또는 영국령으로 있었으며,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생겨난 애프터눈 티 문화가 홍콩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는 1928년 이 호텔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생겨나 역사가 깊다.
패닌슐라 더 로비 라운지에서는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손님들의 복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손님은 스포츠 복장인 조끼, 운동용 바지, 스포츠 레깅스, 샌들, 플라스틱 신발 등을 착용 할 경우 입장을 삼가 한다. 따라서 정장이나 우아한 의상을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
페닌슐라 호텔 본관은 빅토리아풍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본관 앞 하늘에는 아름다운 홍등이 드리워져 있다. 인공 분수대에서는 하얀 물 거품이 시원하게 솟아오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날은 홍콩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때문인지 더 로비는 한가로워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행운의 날이었다.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 더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착과 환영:
우리 일행은 호텔 정문으로 들어서자 정복 차림의 연세 드신 직원분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가 아닌 실내 중간 위치에 5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자리를 안내받았다.
2. 실내 인테리어와 음악:
더 로비의 실내는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콜로니얼 스타일로 장식되어 중후함과 품격이 있었다. 큼직하고 감각적인 푸른 식물들과 화분들이 실내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었고, 로비 2층에서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현악단이 클래식한 라이브 연주를 신나게 해 주었다.
3. 티 주문과 테이블 세팅:
테이블 매트에 기본 커트러리가 세팅되었다. 패닌슐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홍차, 화차, 우롱차,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각자의 기호에 맞게 1인 한가지의 티를 주문했다. 필자는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를 주문했는데, 차의 은은한 향기와 맛이 깊고 좋았다.
디저트와 티 웨어:
잠시 후 티와 함께 3단 트레이가 제공되었다. 티 웨어, 슈가볼, 화병은 티파니앤코의 순은 제품들로 1928년 호텔 오픈때부터 사용된 은식기 들이었다. 티 테이블은 실버 티팟과 티 웨어로 세팅되어 있어 영국 황실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디저트와 음료:
티 테이블 위의 찻잔 트리오와 밀크 저그, 그리고 3단 트레이의 접시는 페닌슐라 로고가 찍힌 특별 제작한 제품들이었다. 티 팟 손잡이는 뜨겁지 않게 예쁜 천으로 섬세하게 덮개를 씌워 놓았다. 국내의 티 라운지에서는 잘 제공되지 않던 슈가와 밀크가 제공되어 밀크티를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었다.
디저트 순서와 특이한 세팅:
전통을 추구하는 페닌슐라 더 로비는 3단 트레이에 세팅하는 순서와 방법이 조금 달랐다. 2단 접시에는 시그니처 샌드위치 4종류를 올리고, 1단 접시에는 정통 스콘을 올렸으며, 3단에는 달콤한 디저트 종류로 마무리했다. 오이 샌드위치는 특히 맛이 좋았으며, 필자는 차를 서빙해 주고 따라주는 직원분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특별한 매력:
티파니의 순은 제품 식기들과 함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이 페닌슐라 애프터눈 티의 특별한 매력이었다.
다석TV에서 공부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다석TV에서 진행하는 일본 차문화 여행(향후 스리랑카, 홍콩)은 기존의 답사 형식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며, 강의록을 제공받습니다. 함께하는 다도 전문가는 현재 박순희 차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외래교수이며, 일본 차문화사 강의 등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사: 박순희 소장(문학박사)
사진: 박홍관_차문화기록가
2월 27일(화)
⓵ 공항에서 교토로 이동(버스)
⓶ さかい利昌の杜(대암다실견학)
⓷ 利休旧生家
④ 南宗寺(堺)
⓺ 호텔 귀가
2월 28일(수)
⓵ 호텔 조식
⓶ 고산사
⓷ 대덕사 금모각/ 열려진 절 한군데
④ 건인사 ⓹ 호텔 귀가
2월 29일(목)
⓵ 호텔 조식 후 출발
⓶ 동대사
⓷ 나라국립박물관(八窓庵)
④ 서대사(大茶盛)
⓹ 호텔 귀가
3월 1일(금)
⓵ 호텔 조식 후 출발
⓶ 금각사
⓷ 간사이공항으로 출발
무일암 (無一庵)
사카이 리쇼노 모리(さかい利昌の杜)에 만들어진 다실. 키타노텐만구 앞에서 열렸던 키타노대차회때 토요토미히데요시의 다두였던 센노리큐가 만든 4조반 다실을 재현한 것.
고산사(高山寺)
토가노오(栂尾)지역에 있는 사찰 에사이선사가 이 절 주지였던 묘에스님에게 차씨를 주고 발아에 성공했던 곳. 일본최고의 다원이 있는 곳.
건인사(建仁寺)
에사이가 세운 절. 아주 옛날부터 사두다례(四頭茶禮)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절에 끽다양생기를 바탕으로 해서 차비와 뽕비가 세워져 있다
금각사(金閣寺)
무로마치 3대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만든 산장 옛 가이쇼가 있었던 곳이라 이해 되기도 한다.
현대 보이차의 소장과 투자에 대해서 전문가인 이강근 회장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지난번 자사호 도감과 같이 모두 개인 소장품이다.
천우공작 및 금색운상 시리즈나 헌원호 등은 한때 최고 가격을 갱신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킨 차들이다. 이런 차들 대부분 한 건 이상씩 소장하고 있다.보이차의 소장과 투자라는 두 가지 즐거움을 가진 소장품의 목록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이강근
출판 티웰
인쇄 230p 올컬러 고급 양장 재본
정가 55,000원
이강근(원제) 저자의 보이차 투자 원칙
보이차 애호가로서 출발하여 보이차 소장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개인이 만든 보이차는 맛으로 즐길 때는 상관없지만 재화의 가치로 변환이 다소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차창에서 고수보이차나 특정한 산지의 고수차를 만들면 차의 좋은 향과 맛을 즐기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런 차에 안전하게 투자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한 가치의 차는 대중의 투자를 이끌 수 없고, 맛을 보지 않고는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에, 투자에 있어서는 브랜드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보이차 투자 원칙에 따라 보편적인 가치는 지니면서, 차 맛을 즐기는 가운데 언제든지 재화로 바꿀 수 있는 차는 국제적으로 이름난 중국의 3대 차창이 주도하는 형편이다. 이것은 세계 최고의 보이차 유통 기업인 ‘동화’의 거래 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신뢰할 수 있는 보이차 유통을 주도하고 있는 동화유통공사를 알게되면서 소장과 투자를 병행하여 매수와 매도의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절묘한 타이밍을 잡고, 투자 범위를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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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6
보이차란 무엇인가 14
• 생차 15
• 숙차 15
• 긴압차 17
• 고차수와 고수차 20
• 보이차 제조공정(생차) 22
• 보이차 제조공정(숙차) 24
• 보이차의 가치와 평가 26
• 운남성 보이차 주요산지 30
• 양생 묘품 보이차 / 주홍걸 38
• 주홍걸 교수의 보이차 교과서 54
• 백년보이 흑번홍 72
• 보이차 산지 탐방과 컬렉터 80
• 차도구 감상 86
• 중국 도자기의 수도 경덕진 교령토 유적지 88
• 차도구 컬렉터 90
• 보이차 소장가의 차실 96
• 주홍걸 교수와 함께한 찻자리 98
• 현대 보이차의 소장과 투자 100
• 보이차 투자 원칙 102
연송 이강근 대익 보이차 소장품
•맹해차창 106
• 1997년 수남인 107
• 2001년 운남대엽 야생청병 108
• 홍대익 7502 109
• 2001년 이무정산 야생차 103 110
• 2001년 홍대익 간체운 7542 111
• 2001년 등중등인 7542 112
• 2001년 홍대익 7542 113
• 2002년 상산청병 114
• 2002년 반장 특제정품 청병 115
• 2003년 맹해 사성반장 116
• 2003년 홍인청병 117
• 2003년 운남 맹해조춘 교목원차 119
• 2003년 녹색 생태청병 120
• 2003년 7542 303 121
• 2003년 홍대익 7542 122
• 2003년 은대익 123
• 2003년 맹해 홍띠 타차 124
• 2003년 홍대익 일편엽 125
• 2004년 황대익 126
• 2005년 백포조 간체 7542 501 127
• 2005년 7542 502 128
• 2005년 8582 129
• 2005년 7542 506 130
• 2005년 월진월향 7742 131
• 2006년 7742 601 132
• 2006년 금색운상 133
• 2006년 남라공작 601 134
• 2006년 8582 601 135
• 2007년 7742 701 136
• 2007년 7542 701 137
• 2008년 고산운상 138
• 2008년 맹송공작 139
• 2008년 포랑공작 801 140
• 2008년 남라공작 801 141
• 2008년 맹해공작 801 142
• 2008년 맹송공작 801 143
• 2009년 이무정산 901 144
• 2009년 7542 901 145
• 2010년 7542 146
• 2010년 황금세월 001 147
• 2011년 7742 101 한글판 148
• 2011년 서호정상 149
• 2011년 8582 150
• 2011년 신해혁명 (생차) 151
• 2011년 신해혁명 (숙차) 152
• 2011년 금대익 153
• 2012년 금색운상 201 154
• 2012년 용인 155
• 2012년 암운 156
• 2012년 은대익 157
• 2012년 고산운상 158
• 2012년 포랑공작 159
• 2013년 7542 6년 160
• 2013년 금색운상 1301 161
• 2013년 맹해조춘교목원차 6년 162
• 2013년 맹해조춘교목원차 301 163
• 2013년 7542 164
• 2013년 8582 165
• 2013년 7742 9년 166
• 2014년 맹해공작 167
• 2014년 영웅준마 168
• 2014년 옥윤천향 169
• 2014년 대익전세 170
• 2014년 이무정산 171
• 2015년 자대익 172
• 2015년 진운청병 173
• 2015년 대익전기 174
• 2015년 남라 175
• 2016년 난운 176
• 2016년 장미대익 숙차 177
• 2016년 진장공작 178
• 2017년 고산운상 179
• 2017년 헌원호 180
• 2017년 금대익 181
• 2018년 7542 182
• 2018년 천우공작 183
• 2018년 왕세 184
• 2018년 황금갑 185
• 2018년 파리묘운 186
• 2019년 밀운 187
• 2019년 7542 188
CONTENTS
• 2019년 전심 189
• 2019년 고산운상 190
• 2019년 국보궁 191
• 2020년 군봉지상 192
• 2021년 금색운상 193
• 2022년 역개천지 194
• 2023년 고운금향 195
연송 이강근 일반 보이차 소장품
우림고수차 198
• 2014년 철옥 199
• 2017년 연륜 200
• 2017년 노차두 201
• 2019년 천황육수 202
• 2017년 반장오채 203
• 2019년 노반장 203
하관차창 204
• 2014년 병지운 205
• 2011년 황금운원차 206
• 2011년 홍인 207
• 2014년 금과철마 208
• 2010년 고원성 209
진승차창 210
• 2010년 노반장 211
• 2011년 노반장 212
• 2012년 노반장 213
진순아호 214
• 1996년 진순아호 215
• 2001년 진순아호 215
• 2014년 진순아호 217
진미호 218
• 2016년 진미호 대채 218
• 2016년 낙수동 219
맹고 융씨차창 220
• 1999년 맹고청병 220
• 2002년 맹고 야생차 221
• 2005년 맹고춘첨 222
• 2007년 맹고춘첨 223
의방차창 224
• 1999년 만송 224
용생차창 225
• 2007년 운남 용생 보이차 225
마치며 226
맹해차창(대익)
보이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그 역사에 대해서 알고자 하면 맹해 차창의 존재를 반드시 알게 된다. 보이차는 1729년 공차(貢茶)로 지정되어 200년간 황실에 공납되면서 최대의 번영기를 맞았다가 청말 중화민국 초기에 관료들의 부패와 과중한 세금, 혼란한 치안과 질병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한동안 쇠퇴기를 겪었다.
이때 보이차의 중심은 이무(易武)에서 맹해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면서 맹해 차창은 자연스럽게 원차(圓茶)를 생산하는 최대의 차창이 되었다. ‘맹해’에서 ‘맹’은 태족어( 族語)로 지방을 가리키며, ‘해’는 ‘대단한’ 혹은 ‘용감한’이란 뜻이다. 맹해란 곧 ‘용감한 자가 거주하는 지방’이란 의미다.
대익보이차의 숫자
대익 보이차의 숫자 보이차의 이름을 붙일 때, 어느 산에서 딴 찻잎으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차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 차산의 이름을 따서 차의 이름을 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무이정산, 반장대수차, 노만아 고수차 등이 바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차다.
그러나 지역이나 품종이 아닌 7542, 7572, 8582 등 숫자로 이름을 붙인 보이차 역시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숫자로 이름이 되어있는 차를 중국에서는 ‘맥호차’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숫자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 숫자는 수출의 편의를 위해 1976년 운남차엽공사에서 만든 것으로 차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숫자의 조합이다. 앞의 두 자리 숫자는 보이차의 찻잎을 혼용하는 방법인 ‘배방’이 만들어진 해를 의미하고, 세 번째 숫자는 쓰인 찻잎의 평균 등급, 네 번째 숫자는 생산 차창의 고유번호다. 맹해차창의 대표 상품인 7542를 예로 들면, 1975년에 만들어진 배방으로 평균 4등급의 원료를 사용해, 고유번호 2번을 사용하는 맹해차창에서 생산했다는 의미이다.
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주 보고 존재하는 매개이자 문화형태이다. 이러한 차문화의 공간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록에서 나타나는바 신라 화랑들의 일화에서는 야외에서 나타나고, 조선조 기록에서는 규방과 사랑방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조선조 건축규범 속에서 나타나는 실내외의 공간은 창과 문, 그리고 연결의 구조와 독립의 구조로 나타나며 이른바 작은 앞 마당의 화초도 순서가 있고 방향이 있었다.
차를 즐길 수 있었던 당시 공간의 아름다움은 매우 정갈하고 빈틈없이 꾸며진 공간이었음은 다산 정약용의 기록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그리고 고구려와 발해라는 역사 속에서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내려오는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은 이미 벽화나 다른 역사유적 속에 보여지고 있는 바, 현대에 이르러서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차와 함께 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말하고자 한다.
이번 책은 20년 간의 차관련 기록물 중에서 『차, 공간에 담기다』라는 테마로 1편을 편집하기로 하였다. 이유는 바로 사람이 차를 즐기고 그에 따라 완전한 자리를 만드는데 있어 정점을 이루는 것이 바로 공간, 즉 장소이기 때문이다. 20년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 다석(茶席)은 공간에 중점을 두어 구분하거나 비교한 것이라 오늘날의 다석 문화에 공간적 개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주를 이룬다.
이전의 우리네 조상들이 향유했던 공간과 이제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차를 음미하는 공간의 비교도 될 것이다. 아니면 아마도 이후의 세대들이 2000년대 살던 한국의 다석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었는가에 대한 자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이 책에 나오는 기록물은 단순히 취재를 위한 기물과 장소에 대한 사진들이 아니라, 실제 필자와 나눈 다석을 기준으로 그 대상을 선별하였음을 밝힌다.
우리나라 다석에서 전통적 공간과 현대적 공간의 차이는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가 전통 혹은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만 있을 뿐이다. 저자 박홍관.
상업 공간은 차를 팔고 거래하는 현장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찻집이라면 손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되고, 차 전문점이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공간이 된다. 다석의 격은 품격일 수도 있고 자격일 수도 있다. 의미 없는 다석은 없다. 어느 자리든 다석에서는 응당 목적도 있고 그에 대한 과정도 있는 법이다.
끽다거라는 조주 선사의 아무 조건없는 다석은 종교철학의 맨 꼭대기에 존재한다. 그러나 일상의 찻자리는 다르다. 모든 찻자리는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그 자리의 격식이 잘 차려졌는지 부족한지에 대한 평가는 서로 보면서 가감해 나가야 한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찻자리 문화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 보고자 노력하였다.
아사가차관 송년 차회는 16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시작되었다. 참여 인원은 36명, 접수순으로 정해지고, 대부분 참석자들이 10분 전에 자리를 메운다. 원로 차인 이정희 선생님과 김은호 회장님도 참석하여 행사 전에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송년 차회의 모습이다.
나는 경주세계차문화축제 이후 처음으로 방문하였기에, 차회 회원들의 건강한 모습만 보아도 반가웠다. 송년 차회는 김은호 회장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하여 89년 강성전차, 83년 동정오룡, 2020년 백호은침, 진사제 대홍포, 80년 7542가 나왔다.
팽주 두 사람이 탁자 맨 앞에서 차를 우리고 왼쪽에 앉은 회원이 보조하여, 모든 회원이 똑같은 수준의 차를 마실 수 있게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이런 방식으로 40명, 50명의 손님을 치른 경험이 누적되면서 오늘날의 아사가차관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차회의 방식이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정착되고 있는데, 아사가차관의 차회는 경주 시내에서부터 시행된 차회가 150회를 넘기면서 또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런 차회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주인의 정성과 열정을 통해, 아사가차관의 차회는 단순히 경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차관 문화를 보여주는 곳으로 평가된다.
12월 10일 겨울 같지 않은 화사한 날씨에 일화다원 송년 차회가 열렸다. 벌써 5주년이 된 일화다원은 보기 드물게 개업 후 전국의 차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지명도를 높이면서 방문객을 늘리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주인장의 품성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가끔씩 만나 차 한 잔 나누다 보면 차를 보는 눈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보이차, 백차, 무이암차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2시에 만나 식당으로 이동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와서 대기하였다. 1시 30분 종소리가 울리자 주인은 오늘 차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 한국 녹차인 지리산 피아골 홍류동 계곡에서 자란 올해 첫물 차를 내었다. 그 다음 차는 2012년 복정 백차를 마시며 백호은침의 극품을 경험하게 하였다. 복정 백차에 대한 부연 설명이 있었다. 뒤 이어서 무이암차인 우란갱육계를 마시고, 내가 잘 아는 60년대 공첨을 마셨다.
화과자와 집에서 준비한 잣죽을 먹고 5시 30분에 종료하였다.
차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오늘 주인인 유승완 선생이 기획하고 차를 내었다. 한국에는 현재 다양한 형식의 차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초음차회는 주인의 호를 따서 만든 차회인 만큼 세심한 준비로 한국식 차회의 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진주는 지리적으로 지리산의 하동과 산청에 인접하여 차를 마시는 음차 문화가 오래토록 계승 중흥되어왔습니다. 올림픽을 전후로 전통문화의 발굴과 계승이 강력하게 요구될 때, 선뜻 차를 생업生業으로 하겠다며, 삼십 대 초반 하던 일을 접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찻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는 맑고 고요하며 텅 비어 있습니다. 대나무와 어울리는 기상을 지녔습니다. 차 한잔을 대할 때면 반듯한 사람처럼 믿음이 갔습니다. 더구나 차를 마시고 다루는 일에서 느끼는 정갈함과 선연함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끌렸고 단순 음료 이상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유행하던 커피숍보다는 전통 찻집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인간은 일상의 삶에서 새로운 인연을 짓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불법을 통해 알에 되었습니다. 나날이 향상된 삶을 사는 일, 나도 남도 유익한 삶의 방식에 관심이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맑은 차의 길이 평생의 길임을 알았습니다. 차나무가 가진 특별한 기질氣質을 알고는 더욱 차의 길이 사무쳤습니다. 차의 맑은 정신을 삶으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진주의 선고 차인들이 새롭게 부흥시킨 차문화를 실천하며 계승해 나가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물질을 통해 정신세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싶어서 마냥 의욕과 열정을 앞세웠습니다.
죽향 찻집을 개업(1997년 8월 8일)했던 당시에는 진주에서 활동하던 차회는 몇 안 되었습니다. 69년 결성되어 최초로 차회 활동을 시작했던 진주차인회와 학술적 탐구로 진주차풍의 역사와 차문화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강우차회, 그리고 여성차인회, 김정차회(현 오성다도)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차회 활동들을 통해 차의 덕성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미풍 양속을 계승해 나가고자 애쓰시는 차인들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선임 차인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대중 찻집을 하는 사람으로서 체계적인 차 공부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업과 동시에 찻집 일과 차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의 차문화가 진주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시는 무작정 서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실 차 공부도 공부였지만 서울이란 대도시의 생태, 서울 중심의 차문화를 체험할 수 있겠다 싶어 서울로 발걸음을 들였습니다.
그해 97년도부터, 서울시 성북동 (사)명원차문화원에서 2년의 사범 과정을 시작으로 차 공부의 여정이 시작됐습니다(97~99). 차와 차문화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과 차를 다루는 과정을 숙련케 하는 공부가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선대(先代) 여성차인으로서 일가一家를 이룬 故명원 김미희 선생의 자취를 따님 김의정 이사님으로부터 제대로 배우게 되면서 차 공부며, 차 업이며, 차문화 활동까지 열심히 하게 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2001년 강우차회 10주년 기념행사 “진주시민과 차생활”의 행사에서 ‘중국 생활차법’을 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청되신 반야로 차도문화원의 채원화 본원장님을 만났고 반야로의 공부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선생님을 뵙는 순간, 차 공부의 목적과 방향과 내용 등,차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과 삶의 가치가 일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5년에 걸쳐 진주와 서울의 인사동을 오가며 반야로차도를 공부했습니다(2001~2006). 채원화원장의 강의는 치문淄門을 시작으로, 원효스님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그警文을 읽는 것으로 차 공부뿐만 아니라 불법의 심지心志를 세우는 공부까지 아우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환희심으로 서울을 오르내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사이, 국립목포대학교의 조기정교수님께서 진주에 있는 덕암과 무정 등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차와 진주문화에 관심을 두고 차실을 자주 왕래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차생활의 대중화와 학문적 체계화 등, 그 필요성을 서로 논의하며 학과 개설에 의욕을 내셨습니다. 차마시는 일이 대 유행이었던 2004년에 국립목포대학교에 대학원과정 국제차문화학과를 개설했습니다. 차학과 주임교수가 되신 조기정교수님과 호남차인들과 맺은 인연으로 대학원을 1기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체계적인 차학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목포를 오가며 석사 수료(06년)하고, ‘죽향미인’ 제다를 통해 느꼈던 수제차의 위해요소에 강한 의구심을 느끼며 위해요소 검증과 더불어 그 기준을 제시한 《전통 수제녹차에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적용을 위한 연구》로 09년에 석사 졸업을 했습니다. 현재 《진주지역의 차문화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 과정 중에
있습니다.
2000년 YWCA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차도와 생활예절을 가르치는 “차도와 예절” 과정을 개강하며 차도 강사의 첫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차를 알고자 하는 사람과 차생활을 통해 멋과 여유를 즐기고자 차를 배우겠다는 회원들이 계속 늘었습니다. YMCA와 국립진주박물관은 어린이와 청소년 차도 체험반을 개설했으며, 국립과학기술대와 국립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차도 지도사 배출을 목적으로 “차와 차예절 지도사” 반을 개설하여 강의를 맡았습니다. 곳곳에서 개설되는 전통 차도 교육으로 찻집일 보다 차도 강의로 바빴습니다.
전문 차도강의실의 필요성으로 2005년, 죽향 3층에 전문 차도강의실 ‘죽향차문화원’이 개관되었고 바야흐로 차도무문茶道無門의 장場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차도교양반, 명상차반, 차예절지도사반 등 다양한 차도 강의들을 시작했습니다. 차 공부의 요체가 차라는 물질의 정확한 이해와 차를 다루는 올바른 행위의 방식들을 체화하는 것이므로 茶와 茶道 라는 큰 주제를 두고 『茶와 茶道』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차의 개론, 행차 수련의 목적과
방법, 한국의 차문화사, 중국과 일본의 차문화, 『다신전』과 『동다송』의 원전을 공부했습니다. 차문화에 대한 이론들은 여러 차 개론서를 참고했습니다.
차의 물질적 개념들은 차의 육종학 이론과 제다 수업으로 정립했습니다. 차도茶道의 실기는 차 명상이 근본인 죽향선차법竹香禪茶法으로 몸의 균형감과 정밀함을 익혔고,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 각성을 도모했습니다. 죽향선차법은 행차의 전 과정을 차를 다루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義의 육근六根을 통해 차와 차를 다루는 일련의 요소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일체를 관조觀照하는 정념靜念수행 입니다. 몸과 마음은 정화되고, 각성된 의식으로 일상의 삶이 명료하게 경험되어 사라지는 것임을 아는 것이 차선수련의 목적입니다. 차도로서의 정념수련을 위한 방법으로 선차수련법의 정립이 필요했습니다. 선차법禪茶法은 효당가의 반야로차도문화원의 독수선차법獨修禪茶法을 차용하여 죽향차문화원의 지향점을 반영하여 완성된 것입니다. 진주차풍의 정신적 계보인 효당스님의 중정中定의 차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말차법抹茶法은 명원문화원의 팔각상 말차 행차법을 기본으로 하여 죽향의 차 정신과 정서가 표현되도록 만든 선차법입니다.
헌공차법獻供茶法은 불자로서 불은佛恩에 회향코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효공 동초스님께서 다솔사 주지 소임때, 죽향차문화원 회원들이과 함께 매년 초파일 육법공양 의례로 시연한 것을 다듬었습니다. 대중 차실로서 죽향이 20년을 맞이하면서 죽향 이라는 공간(空間), 죽향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간(人間)이라 하고, 다시 죽향의 찻일들을 새롭게 조명해 시간(時間)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싣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었던 여러 작업 중 죽향차문화원의 차법을 정립하여 자료로 남기게 된 것이 보람입니다. 차 공부에 있어 행차도는 차 공부의 실체이며 차 공부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차도 수련의 차 공부는 정신을 향상시키고 몸을 정밀하게 하여 의식의 극대화로 명료한 삶을 경험토록 하는 행동철학입니다..
죽향 스무해를 맞아 행차의 전 과정을 기록화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쉽지 않았던 여러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대한듯한 설레임과 지난 공부를 새삼 더듬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반복하면서 행차 수련의 공덕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고 소중한 일을 가능하도록 해주신 윤삼웅교수님, 정장화 사진 작가님께 두 손 모읍니다. 분명 기록화에는 책임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기록으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시각적 견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차문화의 일각이며 행차에서는 보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요소로 구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일정한 규범과 틀에 의미를 부여하여 도식화하는 것은 참으로 단조롭고 딱딱한 일이었습니다. 그 단조로움을 반복 수련하는 일이 곧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요.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의 가르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로 행위로 보여주시는 선고 차인들의 성언誠言을 가슴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