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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센_쯔비벨무스터

그릇읽어주는 여자로 잘 알려진 김지연 살롱드화려 대표는 유튜브 첫 번째 영상을 촬영했다.

 

다석TV 영상은 김지연 선생의 원고에 의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7세기초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 등 동양에 대한 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차린 무역회사를 통해 동양의 차와 도자기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각국의 왕실과 귀족들은 동양의 도자기를 동양에서온 하얀 금이라고 부르며 앞다투어 수집하고 재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였다.

마이센 쯔비벨무스터 접시

중국과 일본은 유럽으로 많은 도자기를 수출하게 되었고, 수많은 도자기를 사들이며 국고를 탕진하던 작센 공국의 아우구스트 1세는 자국에서도 동양의 도자기를 만들고자 연금술사 요한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작센의 주도인 드레스덴의 성에 가둬놓고 도자기를 개발하게 된다.

 

1709년 작센 공국의 수도 드레스덴 근처 마이센에 유럽최초의 도자기 공장이 생긴다.

마이센 도자기의 시작은 유럽의 문화와 경제의 발전과 교류에 밀접한 영향을 주었다. 1713년 유럽 왕실과의 외교 선물로 마이센의 도자기는 인기가 있었고, 반세기 만에 전 유럽에 도자기 만드는 비법이 전해지게 된다.

 

이번 영상은

쯔비벨무스터를 알고는 있지만 마이센에서 처음 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https://youtu.be/Tttp0L5-QJM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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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Y-W_tQw-OU

명나라 초기 선덕년제
[청화백자 해수운용문 편병]이다.
태질이 순정하고 시유한 백색 바탕이 온화 한데다 기물의 전체를 장식한 청화 발색 역시 푸근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목덜미는 당초문과 
길상吉祥 화훼문을
둘렀고 어깨는 견장문, 몸통 전체는 소마리 青料로 바다의 푸른 파도를 가르며 솟구치는 역동적인 두마리의 龍이 앞뒤로 비늘을 번쩍이며 구름을 이고 있으니 이름하여
青華白瓷海水雲龍纹扁瓶이다

현제 중국 南京박물관에도 이와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선덕년제 작품이 한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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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댓글

세련된 미나 정교성은 우수해 보이는데 예술성이라는게 그런것보다는 독창성, 개방성, 해학성, 추상성, 창작성, 상징성등등을 고려해보면은 국뽕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중략>-

잘모르는 남의나라 도자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도자기들도 소개하실 수 없는지요.

 

댓글에 대한 답변 / 김덕기

사실 고려 청자나 조선시대 자기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깊은 정서가 배어있음을 부인 할 수 없겠습니다 서화.건축.공예품 역시 그 섬세하고 질박한 격조는 절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자연미가 베어있지요.. 순한 마음에서 출발한 艺 보여주기 위한 교묘한 技 차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것이라는 애국적 발로 가 아니고, 손 재주와 심성에서 우러난 내공의 차이로 봐야할 것입니다. 좋은의견 반갑고 고맙습니다. 아울러 명나라 선덕황제는 1326년이 아닌 1426년 부터 시작된 것임을 바로잡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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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오야재 차실에서

지난 토요일 담양에 있는 오야재 차실을 방문했다. 17회 국제차문화대전에서 청화백자를 이용한 차도구를 경덕진에서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행사를 마치고 방문 약속을 하였다.

 

경덕진 도자기로 한국 차시장에 들어온 청화백자 가운데 중국 차도구 마니아 층이 있는 오야재의 다양한 도구를 보고 싶기도 했다. 일반 경덕진 도자기의 다관과 유과원석을 유약으로 사용한 다관은 다르다는 점을 다관의 유약 표면을 보면서 설명해 준다.

 

차를 낼 때 오래된 무쇠 주전자를 사용하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했던 것이라 한다. 당신이 원래 차를 좋아하시기에 자사호도 오래도록 사용한 여러 가지 호를 볼 수 있었다. 차도구의 사용에서 신작이 아무리 좋아도 부모님이 사용했던 것을 대를 이어 사용할 때 작품의 수준을 논하지 않는다.

 

대를 이어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차인으로서 부러움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곧 명품이라는 말은 그 속에 여러 의미를 담지만 가장 큰 것은 오랜 세월 정확히 관리하며 사용해 온 사람에 대한 존경이 그 첫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내는 차는 취죽진여실에서 만든 노반장인데, 무쇠 주전자의 운치를 함께 느끼며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가뭄에 오는 단비인 오랜만의 빗줄기를 창밖으로 바라 보면서 여러 가지 보이 생차를 맛보았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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