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에서 판매하는 말차

떡집에서 말차를 낸다

교토에서 매월 25일 하루 장날이 서는데, 이곳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오래된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다. 목재소에서 사용하는 톱이나 칼, 망치를 비롯하여 식기 종류와 차 관련 도구 등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전국에서 모여든다.

 

이 장날에 맞춰 방문하였는데, 사찰 입구 주변에서부터 주변을 전부 둘러싸고 있다. 그런 곳을 지나서 사찰 옆문으로 들어갔는데 입구 가까운 곳에서 매화당이라는 떡 가게가 있다. 입구에는 말차 한 잔 5500, 전차 한 잔 380엔이라는 가격을 붙여놓았다.

이곳의 숯불은 손님들에게 온기를 준다

()한국향도협회 정숙영 씨와 이채로아 씨와 같이 들어갔는데, 마주 보는 탁자가 있는 곳이 아니라, 특이한 구조로 벽 쪽에는 두 사람이 화로를 사이에 두고 등을 기대어 앉을 수 있다. 가운데 자리는 6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화로다. 화로에 놓인 숯불은 오랜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재를 잘 이용하고 불씨를 잘 관리하여 외형상으로도 보기 좋고 따뜻한 불기운을 가까운 자리에서 느끼면서 말차 한 잔과 고유상품인 떡 두 개를 먹을 수 있다. 팥이 들어간 떡인데, 순간 이 집은 찻집이 아니라 떡집인데 차와 화로를 잘 이용하여 떡집의 이미지를 한층 올려놓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싸늘해서 매화꽃이 피지 않은 시기에 따뜻한 화로를 사이에 두고 말차 한잔하고 나오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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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기억에서 문화적 자각으로 가야만 할 전시... 야나기展

2006년 11월부터 2007년 2월25일까지 두 차례나 전시 기간이 연장되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은 근래 보기드문 좋은 기획전이다. 이 번 전시를 두고 각 언론사에서 나온 글이나, 주요 잡지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야나기가 남긴 우리나라의 미에 대한 글에 무조건적인 찬사의 글들만 주목받고, 전시내용에 관한 글이 그다지 없음은 아쉬운 일이다. 특히 야나기의 평을 중심으로 가감없이 인식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우리문화에 대한 지평이 부족함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필자는 야나기가 우리나라의 미를 전반기에는 ‘비애의 미’라고 하고, 후반기에는 ‘무작위의 미’라고 ‘한국의 미’를 단편적으로만 평가한 점은 시대적 한계 면에서는 인정하지만 한국이라는 역사를 통틀어 통시적인 美의 맥락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중략 -
필자와 같은 차를 좋아하고 다도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면 꼭 한 번은 봐야하는 전시라고 본다. 가능한 여건이 되는 분의 관람을 권한다. - 석우.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와 민예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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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3월 21일 아버지 나라요시, 어머니 가쓰오의 3남으로, 도쿄시 아자부구 이치효에정 2초메 13번지에서 출생.
1891년 1월 14일 아버지 나라요시 사망
1901년 9월 12세의 나이로 가쿠슈인 중등학과에 진학, 시가 나오야 등 《시라카바》 도인들과 교유 시작. 하토리 다노스케 선생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한이 싹트다.
1907년 4월 가쿠슈인 고등학교에 진학(18세). 스즈키 다이세쓰, 니시다 기타로, 간다 나이부, 노야나기 시키타 등의 여러 교수에게 지도받았다.
1909년 2월 고오리 도라 히코 등과 회람(回覽), 잡지 《도엔(桃園) 》 발행. 9월 4일 일본에 온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집을 무샤노코지 사네야쓰 등과 함께 방문하여 동판화 기법인 에칭의 실연을 보고 이야기를 듣다. 이 무렵 골동품 가게에서 처음으로 조선 항아리 구입.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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