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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다예연구소(원장 이영자)에 설치된 "보이생차"로 만든 차벽의 일부, 2010년 5월 설치]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많은 책들을 새롭게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그 당시엔 그때의 관심사만 보았을 뿐이다. 이젠 차학이란 분야에서 접근해 보면 “차의 선진국(필자 주)”에서 만들어진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보이차에 집중되는 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는 차지하고 차에 대한 비전문가 들이 알고 싶어하는 차(茶)가 ‘보이차’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홍인이 언제부터 제조되었는가 대한 논리는 ‘호차급(號茶級)’ 차(茶) 생산 이후에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 포장 인쇄술에까지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된 내용으로 볼 때 박창식 선생(필명 죽천향)의 블로그(죽천향실)에 올려진 2009년 8월 28일 ‘인자급 홍인의 진실’에 대한 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여러 논저에서 나온 인급차(홍인, 녹인 등)의 생산 기간을 (1938-1970)에서 [인급차(印級茶) : 1951-1970]으로 하게 되었다.

박창식 선생의 논저를 믿는 것은 첫째 ‘호차급과 인급차’를 수년 전만 해도 실제 생활에서 완편을 쪼개어 마셔온 차꾼으로서 ‘등시해 교수 책과 짱유화 교수의 논저’ 및 중국내 신문을 인용하여 그 근거가 매우 논리적인 점이다.  http://blog.daum.net/36254598/13385065

『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오늘날 맹해차창 복원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 나뇐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

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下关茶厂的制式茶品

(상략)
饼茶篇 印级圆茶 自上世纪50年代初,下关茶厂生产了现在称为“印级圆茶”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这些产品,长期以来的普洱茶书籍中都误解为勐海茶厂生产。但前不久,在早期勐海、下关厂的相关史料中,发现了勐海厂早期只有经营原料收购、调配业务,而印级茶都是下关茶厂生产的相关证据。并且,坊间所称的印级茶年代承接也被进出口公司的纪录所修正。印级圆茶,最早生产的是绿印(蓝印)系列,后因绿色原料在卫生检疫中未能过关,而改印全红包装。

"인급원차
20세기 50년대 초,하관차창은 현재 “인급원차”로 불려지는 홍인、록인、람인 갑을급 원차를 생산하였다。이 생산품은 오랫동안 보이차 서적에는 맹해차창이 생산한 것으로 잘못되어있는데 맹해, 하관차창의 상관사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맹해차창은 초기에 경영과 원료를 거두어 사들이고 배급을 조절하는 업무를 보았다. 이는 인급차가 하관차창에서 생산되었다는 관계있는 증거이다 (하략)....。 "


그리고 1949년 12월 중국차엽공사 정식성립,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성립 1951년 말 팔중차 로고의 (중차패) 등록, 이라는 기록을 감안하면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지시로 맹해차창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차창으로 보내어 1952년부터 인급차를 생산하였다는 정황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해서 초기에 하관 차창에서 만든것이라 하여도 인급차의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1951년 말 - 1952년 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여기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 5 - 홍인 에서 발췌한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얼차’서적에 따르면 홍인원차의 역사 기원은 40년대 국민당정부(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 50년대 공산당정권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괴력이 발휘되어 1950년에 설립된 회사의 명칭이 40년대의 제품에서 등장하게 되고 1951년에 설계한 로고가 40년대의 제품에 인쇄되어 출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홍인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이며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답이다.

상품이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의 능력껏, 재주껏 파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나 상술에도 격이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는 제품을 존재하는 것처럼 고가에 판매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분명히 격이 결여된 상술이다.

푸얼차 상술에 관한 대가들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에 모여 있다. 세계 푸얼차 상품의 출고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이들을 가리켜 푸얼차계의 큰손이라 한다. 이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필자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얼차에 관한 상업적 정의는 대부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필자는 이들과 푸얼차의 역사에 대해 적잖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학자의 논거에 대해 귀를 기울여 지난날의 실수를 대부분 인정하는 반면 이들을 통해 푸얼차를 취급하고 있는 개인상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부정하는 것을 보면 푸얼차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요원한가에 대해 한탄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급차의 역사가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해서 보이차의 왕자로 불리는 인급차 홍인의 명성과 품격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등시해 선생의《普洱茶》에 쓰여진 자료에 오류들이 있지만 운남보이차에 대한 전고가 미비했던 시절, 나름대로 수많은 보이차를 접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을 수합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냄으로 보이차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차에 대해 알게 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오늘의 보이차세계가 있게 한 그분의 공로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홍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차는 그 생산 년대를 떠나서 현대보이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차는 그저 차일뿐이고 홍인의 맛과 향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죽천향_()_

참고 (중국신문의 기사)

http://www.yxdaily.com/yxnews/cate/xxb/2007_5_18/239399.shtml
http://www.yuxinews.com 2007-5-18 8:07:00

富豪陈茶庄里的印级茶
玉溪新闻网讯(实习记者 马瑞华 文/图)说起来应该算是缘分,才第一次去富豪陈茶庄,店家就给我介绍了三款市场上很少见的印级茶,分别是八十年代朱砂红印铁饼、八十年代大红印生茶饼和八八九二生茶饼。

据了解,印级茶指的是上世纪五十年代初至六十年代后期下关茶厂生产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以及后来的蓝印铁饼等茶品。(인급차 지적시 상세기 오십년대 초 지 륙십년대 후기 하관다차창 생산적 홍인、록인、람인갑을급원다,이급 후래적 람인철병등 차품)。印级圆茶的外包装纸,上方自右向左横书大字“中国茶叶公司云南省公司”,下方为小字“中茶牌圆茶”,中间为八个中茶商标,内有印刷了八个中茶商标的方形小纸条,没有其他字样。
印级圆茶整体品质优异,尤其以红印、无纸红印等为佳品。这些茶的原料主要来自西双版纳勐海地区的班章、巴达、布朗等茶山的野生、野放型老茶园,所以茶质厚重、茶韵深沉。印级圆茶,是由石磨手工压制而成的。

印级圆茶有着悠久的历史,它见证了中国普洱茶国营生产及社会主义计划经济时代的开始,凭借着为“红火江山,生生不息”创造的高品质,成为市场中高级普洱茶的代称,是普洱茶中高陈期、高价位的杰出典范。在经历了四五十年的陈化后,他们现在的身价都已超过了万元,所以渐渐从流通市场上退出。印级茶是陈茶中的陈茶,精品中的精品。因其用料考究、做工精细,除了饮用之外,也是一款馈赠、珍藏佳品。

[2010년 5월에 <보이생차>로 설치된 차벽이다. 사진은 벽면 전체의 일부, 1년이 지나면서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는 현상이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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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 쪽 : 중국차업공사운남성공사]

죽천향실의 박창식(죽천향) 선생을 어제 만나 차를 나누면서 요즘 인터넷에서 나오는 글들에 대한 긍정과 비판을 동시에 나누게 되었다. 박선생은 중국 인터넷 사이트를 조사하면서 새롭게 나오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볼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한 분이다. 지난번의 <자연주의 찻자리> 10회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그 때 10회로 마친 것을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늘 이렇게 역설하고있다. 우리나라 뿐아니라 동양의 어디서든 그와 같은 차를 마시면서 10만원의 참가비로 재현할 수는 없다고 하며, 지금이라도 참가비를 20만원씩 내고 한다면 참가할 사람은 있지만 그와 같은 수준의 차와 전체적인 준비를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요즘은 언론사 기자들도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한다. 꼭 그런 수준의 유사한 자리가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한다.

최근 보이차에 대한 식견이 있다는 사람이 왜, 중국차도감(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는 보이차에 대해서 깊이 다루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부분은 상당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으며 그 깊은 세계를 잘 몰랐으면 보이차에 대해서 대단한 설을 펼쳤을 것이다. 온갖 사진자료를 동원해서... 라고 했다. 골동보이차에 대한 언급을 하느냐 마느는 내가 조금이라도 보이차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차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연구대상이 되는 보이차를 전혀 관심없는 것 같이 단순하게 보이생차를 녹차로 보이숙차를 흑차로 분류한 것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정리한 것에 후회는 없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영향을 미친 여러갈레 중에 경원스님과 박창식 선생과의 수많은 찻자리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건강한 차를 나눈 그 시간들이 냉정함을 끝까지 지닐 수 있게 하였다. 어제 박선생과 만나고 나오면서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박선생의 블로그에 가보았다. 그의 블로그인 <죽천향실>에 최근 홍인원차에 대한 2가지 상반된 자료를 제시하였다. 푸얼차(보이차)가 오늘날 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인자印字’ 보이차의 대명사인 홍인원차紅印圓茶에 대해서 2가지의 상반된 자료가 있습니다.

1. 보이차《普洱茶》, 등시해鄧時海 선생:1938년 범화균範和鈞 선생이 창건한 불해차창佛海茶廠(현猛海茶廠)에서 처음 생산한 보이원차병普洱圓茶餅으로 1967년 까지, 약 30년간 계속 만들어진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로 인급차“印級茶”라고 불린다.

중차패에는 홍인紅印、녹인綠印(=람인藍印)、황인黃印이 있다.

2. 만화보이차《漫話普洱茶》, 추가구鄒家駒 선생:1938년 불해차창 창건 후, 홍쇄차紅碎茶를 생산하여 러시아로 수출하였으며, 보이차는 생산하지 않았다. 중차패상표中茶牌商標(八中茶)는 1951년에 정식등록된 것으로 그 이전에 생산된 중차패 상표를 가진 보이원차는 있을 수 없다.

이런 정황에서 중국의 어느 인터넷 문답에서 아래와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음에 대한 답이 정말 기상천외 한 발상 입니다.... 죽천향_()_

据《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记载,“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于1950年9月才改名 为“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
不知何以42年的茶品包装会印有“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的名称

근거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지》기재,
“운남중국차엽무역공사”는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운남성공사" 이름을 바꾸었다. 어떻게 하여 42년도의 차의 포장에 "중국차업공사 운남성 공사"의 이름이 인쇄될수 있 는지 모르겠다.

문 1942年中茶商标还没注册呢,这个红印哪里冒出来的?
1942년에는 중차패라는 상표가 등록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홍인이 포장되어 나올수 있나?

답 "1942年出品,1951年后包上棉纸”的茶.
"1942년 만들어진 물품이,1951년 이후에 면지포장 된” 차 이다.
--------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중국차 도감)>에서는 상기와 같은 포장된 차의 상표 관련한 자료를 정리하지 못했지만 대만에서 발행하는 최근의 책을 보면 대단한 자료들을 정리한 것이 보입니다. 그러한 자료는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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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등시해 교수의 품명편(品茗篇)
넓은 의미의 차자(茶滋)는 입에서 느끼는 차의 맛으로 여러 종류의 맛의 감각, 즉 물의 성품, 차에서 우러나오는 인후적인 느낌의 여운, 침이 돌아 나오는 것 등 이 모두를 의미한다.

①미도(味道)
푸어차는 통상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맹물 맛, 그리고 무미 등의 수종으로 미도를 이룬다. 단 맛은 푸어차 애호가들이 몽매에도 구하는 맛이고, 쓰고 떫은맛은 찻잎 특유의 맛이고, 이는 더욱이 차를 좋아하는 차의 달인들이 즐기는 미도(味道)이다. 신맛과 맹물 맛은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맛과 맹물 맛은 기피하게 되고, 무미는 미도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아주 연한 별 맛없는 푸어차의 미도(味道)를 무미라 한다.


단맛(甘)
단맛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 모두가 다 좋아하나 너무 짙은 단맛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중의 은은한 단맛은 맑고 우아하고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고 만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단맛을 탐하고 이로 인한 푸어차의 위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대엽종의 푸어차는 상대적으로 그 성분이 농후하여 오랜 세월동안 진화한 뒤에 비로소 쓴맛, 떫은맛이 없어지고 은은한 당분이 찻잎 중에 남아 차를 우렸을 때 은은한 감미가 돈다. 여러 푸어차 중에 홍연원차와 원차철병은 본래 같은 원료의 찻잎으로서 제조 방법(方法)이 다르다.

이 두 종의 차의 단맛은 꿀의 감미이고 광운(廣雲)공병의 단맛은 사탕수수의 단맛으로 입천정(윗턱)위에서 단맛이 오래동안 남아있다. 푸어차를 만들 때 청병(생차)으로 만든 차는 자연 발효 후에 감미가 순정청아(純正淸雅)하고 차성이 고귀하지만 숙병(熟茶)으로 만든 차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탈속 고귀한 맛이 없다. 더욱이 신 차원의 관목은 인공시비를 사용하여 변종이 되고 맛 또한 변하여 탕의 감미가 버터맛의 느낌이 감돈다.


쓴맛(苦)
본래 차의 성품은 쓴맛으로 옛날에는 "고차(苦茶)"라 불렀다. 야생차는 너무 쓴 맛 때문에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개량으로 "야생형"으로 바뀌고 다시 "과도형"으로 재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쓴맛은 카페인으로 장기 숙성 후에는 쓴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목에서부터 돌아 나와 진정한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현재 고품위의 녹차는 아주 어린잎으로 만들어 쓴맛을 최소화하고 있다. 연꽃향의 백침금연과 고품위의 녹차와 50년대의 복록공차, 60년대의 광운공병이 모두 쓴맛을 최소화한 푸어차이다. 쓴맛은 또한 차를 타는 방법(方法)에서도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차의 쓴맛은 일종의 미미(美味)로 시경(時經)에 쓴 차를 찬미한 말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찬사의 비유적인 말이 있다. 미인을 쓴 차에 비유한 것으로 쓴맛이 진미(眞美)란 말인가?


떫은 맛
보통 하는말에 차는 "쓰지 않고 떫지 않으면 차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진화 60∼70년 이상 된 차에는 쓰거나 떫은맛이 없다. 차에는 양강성(陽剛性)푸어와 음유성(陰柔性)푸어가 있다. 홍인 및 녹인갑을은진기가 50년이상으로 양강성의 차품푸어이고, 진기 육십수년의 말대긴차와 80∼90년의 동경노호는 전형적인 음유성푸어이다.

떫은맛은 푸어차의 탕의 강도를 의미하고 떫은맛은 입안에 베어 침이 나오게 하는 작용을 한다. 나의 직접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운남성 중부 즉 맹고, 맹롱, 봉경 일대 차는 쓴맛의 차이고 떫은맛의 차가 아니다. 이무(易武) 의 명차가 모두 떫은맛으로 침을 돌게하는 차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홍인, 녹인, 송빙, 경창, 보경 등은 모두 운남 남부 차로서 이들 차들은 모두가 떫은맛을 가진 차이다. 떫은 차와 쓴 차의 차를 타는 방법의 기교도 중요하며 각자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 처리할 수 밖에.
 
신맛-맹물맛(酸,水)
신맛과 맹물맛은 푸어차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이다. 이는 불량원료와 보관불량으로 신맛이 날 수 있고 신차관목으로 변경푸어에서 접할 수 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칠자병차, 송빙, 정흥호의 내비를 쓴 변경 푸어차, 광동병에는 신맛이 근소하게 있다. 차를 탈 때 3∼5잔 후에는 산미가 현격히 감소한다.

 
무미(無味)
무미지미(無味之味)란 입에 찻물을 넣자마나 즉화(卽化)하여 향과 맛은 즉시 고인 침에 흡수되어 맛과 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푸어차의 전문가들은 공인하기를 "무미지미(無味之味)가 곧 푸어차의 최고품이다."라고한다. 이는 세월과 유관하다. 백년 이상의 금과공차의 평(評)에 "탕색이 있고 차맛은 진화하여 담박하다."고 하였다.

나의 선친께서 남기고 간 "홍지푸어"는 야장향에 진운이 충분하고 차기가 강렬하여, 찻물이 즉시 침을 돌게 하여 아주 은은한 무미지미로 내가 소장하고있는 차중에 최상품으로 간주한다.

"무미의 맛이야말로 곧 선의 경지"이고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경계이며 수백 종의 차중에 오직 푸어차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푸어차의 차도(茶道)가 곧 도가(道家)의 진정한도(眞道)이고, 무미지미 즉 맛이 끊어진 경계의 맛을 참이라 하고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아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름하여 선재푸어.


푸어차의 차향(茶香)


※운남 푸어차는 소엽종, 변종중엽종 관목푸어차종 등이 있지만 여기 푸어차 차향을 소개하는 것은 주로 대엽(大葉)종 교목 푸어차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

기실 푸어차는 장기 발효 차종으로 완전 발효, 중발효(重醱酵)로 남아 있는 진성의 원래의 향이 반 이상 약해지고, 아주 약한 원래의 향이 남아있다.

이 향이 곧 향이 나는 원인과 원래의 푸어차의 원향(原香)을 암시하는 것으로,푸어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향을 느끼는 중요한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관점이다.

이 것이 차잎의 등급, 제작과정의 신선도, 보존과정의 적부 등을 경과한 결과로서, 이것을 아는 것이 차의 진성을 아는 것이고, 생산과 미감을 서로 공명하고 미적인 감성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차의 향(香)은 차나무의 종류,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주로 취급하고 있는 차는 오래된 적어도 30년 이상된 청병 건창 대엽종을 주고 한 차향을 주제로 한다. 주로 차품의 대엽종 교목으로 육대(六大)차산의 산품을 표본으로 하여 차향(茶香)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장나무의 기(樟氣)

예장나무와 함께 자란 차나무(有樟:예장나무)

차 나 무(無樟)

종 류













연하(蓮荷)



방란(芳蘭)

청홍(靑紅)

야홍(野紅)

담홍(淡紅)

연하(蓮荷)

청향(靑香)

차의 등급



1∼2



2∼4

4∼6

6∼8

8∼10

1∼2

3∼8

차 향


연꽃향
(荷香)


난초향
(蘭香)

청장향
(靑樟香)

야장향
(野樟香)

담장향
(淡樟香)

연꽃향
(荷香)

청향
(靑香)





 

푸어차의 진운(陳韻)

객관적으로 볼 때, 진(眞)이 곧 미(美)이다. 모든 사물에 진실성(眞實性)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도 감정의 세계 이면에 이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관이 있다.




즉 이 심미적(審美的)능력이 객관적인 진(眞)성과 주관적인 감(感)성 사이에서 하나의 평형점을 얻는다. 이 도리(道理),즉 진실성(眞實性)을 누가 훌륭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美:아름다움.훌륭한)는 반드시 진실성의 전제하에 생기는 것이다. 푸어차에서 이뤄지는 이 미(美)도 객관적 진성(眞性)과 주관적 감성(感性)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에 의하면 푸어차를 마시느데는 첫째 요구조건이 좋은 건창의 생차이고, 둘째 오랜 향과 맛과 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향과 맛, 기를 감정하는데는 ①차운(茶韻), ②차향(茶香), ③단맛(甘味), ④침이 생기는 것(生津), ⑤차기(茶氣)의 순서이다.

진운이란 일정기간 경과진화 후 발생하는 운미(韻味)이다.

신선한 색감(色感),혹은 진구(陳久)적 감각을 말한다. 푸어차의 영역(領域)중에 진운이란, 맛을 보고 느끼는 한 형태로서의 감성미(感性美)로 반드시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과 경험은 독특한 학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경험을 얻어 올 수도 없는 것이고. 아주 깊고 오묘하여 현저히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운은 일정한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완전히 경험적 감각적으로 알아야 하는것이다. 포도주 감별사가 그 혀와 감각으로 감별하듯이 일종의 식물의 진화 역정(과정)을 독특한 입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몸으로 직접 푸어차를 마셔보고 부단히 선배의 지도 아래 다른 년대의 탕 중에서 다른 진운의 감각을 익히는 길 밖에 없다. 이는 말로 전할 수 없고 언어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선(禪)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시중에서 상인들이 100년 푸어라고 판매하는 차들은 거의 근거가 없고, 그들 스스로 붙인 연대이다.

진실로 근거가 증빙되며 판매되고 있는 최고 오래된 것으로는, 동경노호(同慶老號)원차가 약80∼90년의 진기(陳期)이고, 복원창(福元昌)호가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그 이외 동흥호, 정흥호, 송빙호, 경창호, 강성호, 맹경호, 동창호, 가이흥호 등 대부분이 60∼70년 정도가 된 진년노푸어(陳年老普 )라고 할 수있다. 듣기로는 푸어차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다.

①푸어차의 미도(味道)가 너무 강렬하다.②최고로 온순하다.③위장을 깍는다.④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장수한다.



이상과 같이 조금만 들어도 상호 모순점이 두드러진다. 이상은 기실 푸어차의 진기가 같지 않은 결과에서 나온 말이다. 강렬하여 위장을 깍는다는 것은 반드시 햇차를 마신 것이고, 온순난위는 오래된 차를 마신 결과이다. 하관차창 출품 갑을급(甲乙級) 생타차( 茶)의 차성은 너무 강렬하여 유럽 시장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차품이다. 어떤 약국에서 비만에 특효가 있는 영약으로 판매하고 있는 50∼60년 된 말대긴차는 차성이 너무 온순하여 강한 미각이 조금도 없어 어떤 중의(中醫)는 대만달러 10,000NT$에사서 온화촉진(溫和促進)하는 양약으로 쓴다.

이와같이 다방면으로 볼 때 최고 오래된 차(월진월향:越陳越香)를 최고로 사랑한다. 저장과정 중, 청순한 푸어차 진성이 필수, 아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건창진화
②온도 급격 변화 불가(한냉 고온등)
③잡맛에 감염 기피(음식, 향료, 잡향 등)
④대나무 껍질 포장(잡미보호, 청순)
⑤진화 연대 수명(최저 60년 이상)



용마패 동경노호는 진화감이 최고 절정으로 반드시 밀봉 보관함이 최적이다. 계속 진화 연후에는 차성이 소실되고 맛과 향이 쇠퇴한다. 진기100년 이상의 금과 푸어는 오직"탕색이 있고 차 맛이 진화되어 담박하다"는 것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인체 내에 생명을 넣어 하나의 체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할까? 푸어차의 진운(陳韻)이 곧바로 푸어차의 구체적인 역사의 지표이다. 역사는 생명의 누적이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서 감정의 역량을 편직해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운은 음악에서의 북소리를 연상케 하고, 깊고 깊은 사람의 심장진동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진운(陳韻)은 사람에게 느끼게 한 진감 즉 월진월향(越陳越香)을 가져다준 가장 고귀한 산물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함께 진운은 인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미감이다. 이미 이루어져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일뿐.

<푸어차 진운의 분류>

  








청 (靑)


신 (新)

구 (舊)

노 (老)

진 (陳)

고 (古)





1 ∼ 5




5 ∼ 20


20 ∼ 40

40 ∼ 60

60 ∼ 100

100 이상




근 기 (近 期)

후 기 (後 期)

조 기 (早 期)

선기(先期)

원기(遠 記)




70 ∼ 90

50 ∼ 70

30 ∼ 50

30∼청말

청말이전
(淸以以前)

차품
茶品


문혁전차(文革 茶)
73 전차 (73 前茶)
백침금연(白針金蓮)
홍대병차(紅帶餠茶)
칠자황인(七子黃印)
푸어방차(普 方茶)
광남공병(廣南貢餠)
7562전치(7562 茶)
농공상전(農工商 )
칠자병차(七子餠茶)
8562 차
강성전차(江城 茶)
75후전차(75厚 茶)
광동병차(廣東餠茶)


홍인원차(紅印圓茶)
홍연원차(紅蓮圓茶)
원차철병(圓茶鐵餠)
홍심원차(紅心圓茶)
녹인원차(綠印圓茶)
황인원차(黃印圓茶)
복록공차(福綠貢茶)
사보공차(思普貢茶)
광운공병(廣雲貢餠)
칠자철병(七子鐵餠)
홍인타차(紅印 茶)





보경원차(普慶圓茶)
동흥원차(同興圓茶)
가이흥전(可以興 )
송빙원차(宋聘圓茶)
경창원차(敬昌圓茶)
강성원차(江城圓茶)
양빙원차(楊聘圓茶)
동창원차(同昌圓茶)
동경원차(同慶圓茶)
홍인원차(紅印圓茶)
진운호원차
(陳雲號圓茶)



동경노호
(同慶老號)
말대긴차
(末代緊茶)
차순원차
(車順圓茶)
정흥원차
(鼎興圓茶)
홍지원차
(紅芝圓茶)
홍창원차
(鴻昌圓茶)



금과공차
(金瓜貢茶)
복원창호
(福元昌號)


인터넷 카페에서 퍼왔는데 출처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그냥 [네이버 살아가며 님의 글입니다]
라고만 되어 있어서 저작자가 확인이 되면 저작권자의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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