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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주인(최해철)

 

므장미띠펑황워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한 시간 삼십분을 달려 닝얼에 도착합니다. 닝얼은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부터 보이차가 이곳에 모여서 전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 이름을 따서 보이차로 불렀다는 지역적 명칭의 유래지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30분 거리에 나커리(那柯里)라는 곳이 있는데 차마고도를 오르내리던 마방들의 큰 객잔이 있던 곳으로 최근에 시에서 새롭게 단장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보이차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2007년 원래 스마오(思茅)시 푸얼현이었던 것을 스마오시 자체를 푸얼시로 바꾸고 푸얼현은 그냥 닝얼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지요. 푸얼의 영토 확장이랄까요?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중국이니까 가능한 일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그럼 왜 푸얼이 닝얼로 바뀌었냐고 물어보았는데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정부에서 하는 일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기 참 쉽죠...

 

나중에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1900년대 초에도 푸얼이 닝얼로 바뀐 적이 있고 이후에도 몇 번 왔다 갔다 했네요!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름은 닝얼로 바뀌었지만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옛 시조 한 구절이 떠오르는 이름 바뀐 푸얼의 옛 거리를 잠시 걸어봅니다. 곳곳에 아직도 푸얼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간판들이 보입니다. 시가지 한복판에 우뚝 솟은 보이차 기념관이 있습니다. 내부 계단으로 오층까지 오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층층마다 보이차 관련 기록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해는 저물고 쿤밍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여정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저녁으로 소고기 샤브샤브에 바이주 한잔을 겻 들여 든든히 먹고 근처의 호텔에 투숙합니다. 이곳에서는 최고급 호텔이라는데 요금이 삼 만 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목적지인 쿤루산(困鹿山)으로 향합니다.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우기인지라 비만 안와도 기분이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건 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한 달 내내 비 맞고 돌아다니다보니 비만 오면 살짝 이상해지는 느낌입니다. 속담에 비 맛은 중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자꾸 입에서 중얼중얼 이상한 소리가 나오려고 합니다. (스님한텐 죄송한 표현입니다...)

 

쿤루산은 푸얼차구 중에서도 차 가격이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지역입니다. 중국의 유명 배우가 천년 야생고수차를 한그루 입양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닝얼에서 한 시간, 산길이지만 비교적 포장도 잘되어 있고 경사도 심하지 않습니다. 차산 길이 이정도만 되면 관광버스도 다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차가 다니는 길 중에 이정도로 나쁜 길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 봄차가 출시되기 전에 그동안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모든 차농에게 일괄적으로 봄 고수차 3kg씩을 샘플로 발송해달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가 멍하이에 있으므로 근처의 차농들은 직접 샘플 차를 가지고 가게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고, 푸얼이나 린창(臨凔) 등 멀리 있는 지역에서는 먼저 전화를 하고 샘플 가격을 입금한 후 차를 보내주곤 했습니다.

 

모든 차산을 방문하고 시음을 한 후 샘플이라도 가지고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봄차가 출시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참고로 매년 이렇게 모인 차들은 연말에 오운산 기념병으로 제작합니다. 오늘 방문하는 쿤루산의 차농도 그때 상담 후 차를 발송해준 친구인데 차농사를 시작한지는 4년밖에 안된 젊은이입니다.

 

현재 유명 차산의 많은 차농들이 그렇듯이 옛날엔 도시에 나가서 일하다가 찻값이 오르면서 귀농한 케이스입니다. 올 봄에 상담할 때 고수차는 너무 비싸서 생태차로 3kg만 보내 달라고 했는데 고맙게도 고수차도 조금 같이 보내주었습니다. 한 창 차철이라 여러 가지 차들을 매일 같이 시음하곤 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맛이어서 이번 기회에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황지아짜이(皇家寨) 차밭 바로 앞에 자동차를 세웁니다. 젊은 친구가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악수를 하고 고개를 차밭으로 돌리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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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띠(迷帝,米地)

 

쌍둥이 공원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몇 군데 차를 파는 가게들이 보입니다. 한집에 들어가니 통통한 하니족 아가씨가 반가이 맞이합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유명 차산지는 미띠(迷帝,米地) 그리고 펑황워(鳳凰窩)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지명을 해석하면 묵강먹물이 강처럼 흐르는 곳, ‘미제황제를 유혹하는 곳, ‘봉황와봉황이 움집을 짓고 사는 곳 등으로 거창하게 해석할 수 있겠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저도 처음엔 차산을 다니면서 습관처럼 지명과 한자의 뜻을 연결하여 풀어보곤 했는데,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차산의 지명은 대부분 그들만의 언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발음 그대로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뜻과 지명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추적해서 차산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그 분야는 또 다른 과제로 남겨 두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이 계시면 적극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므지앙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미띠는 해발 1500m 전후에 고수차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명나라 시기인 1400년대부터 차를 심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청나라 때 황실에 공차로 진상되었다고 합니다. 청나라시기에 황제가 좋아 했다는 이유로 지명이 원래 米地였는데 迷帝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실치 않습니다. 차산을 다니다보면 여러 곳에서 황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 지역의 차를 선전하기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습니다.

 

통통한 하니족 아가씨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사람 TV에서만 보다가 처음 본다며 반갑다고 깡충깡충 뜁니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마치 노래라도 한곡 해야 될 분위기입니다. 내 나이가 몇 살 정도로 보이냐고 물으니 아직 칠십은 안 되어 보인다기에 아서라! 할아버지 그만 놀리고 차나 마시자고 했습니다...

 

자기 집에는 근처 차산의 생태차 밖에 없고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미띠지역 차를 독점하고 있다면서 소개를 해 줍니다. 근데 소개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비가 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냥 내리는 비가 아니라 번개도 치고 그야말로 양동이로 퍼 붓습니다. 차실에 앉아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봅니다. 이곳은 보통 비가와도 잠시 오곤 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릅니다. ‘미띠펑황워를 가야되는데 비가 길을 막습니다. 차산은 조금만 비가와도 오를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이천년 초에 미띠 지역의 고수 차밭을 30년간 독점 계약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이집 주인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영 믿음이 안갑니다.

 

올해 경매로 출시해서 1kg300만 원에 팔았다는 미띠단주차를 우려 줍니다. 고수차인 것은 맞는데 맛에 특별한 특징이 없습니다. 단맛보다 떫고 쓴맛이 약간 강한 편이고 노미샹’(나미糯米香)이라고 하는 차살 향이 있고 난향도 살짝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회운(回韻)이 부족합니다. 경매로는 1키로 300만원에 팔았지만 같은 업자끼리니까 120만원에 주겠답니다. 고수*대수 섞인 것은 60만원까지 가능하다는데 구입하고 싶은 차는 아니었습니다. 인사 삼아서 생태차 1kg8만원에 구입했습니다.

 

펑황워차도 우려 줍니다. 자기 집 차는 아니고 친구가 역시 경매에 출품했던 차인데 조금 선물로 준 차랍니다. ! 그런데 웬걸 차가 괜찮습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마셨는데 첫 잔부터 밀도가 아주 좋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작년엔 1키로 150만원 이었는데 올해는 350만원이랍니다. 노반장, 빙도 차가 비싼 줄 아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곳곳에 금덩어리 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시음이나 할 따름이지요! 여러 잔 거듭해서 마실수록 특히 열감이 좋습니다. 목안이 간질간질 하더니 금방 열기가 온 몸을 감사고 돕니다. 주인장의 추이니우(패우唄牛허풍이 세다는 뜻의 중국식 속어)는 끝이 없고,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차산도 못가고 열 받아 죽겠는데 차열까지 겹치니 감당이 안 됩니다. 좋은 차를 마시면 확실히 열감이 있습니다.

 

흔히 기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저는 기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그냥 열감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기의 경로를 일일이 추적하여 어께로 또는 뒤통수 앞통수 등으로 흐르고 있다고 표현하는데 참 기가 막히게 신기합니다...

 

펑황워'므지앙'징싱쩐’(景星鎭)에 자리하고 있는데 해발 1700m 전후에 약 2만 그루의 고수차가 자라고 있답니다. 이번엔 장대비에 가로막혀 다녀올 수 없었지만 다음 기회에 꼭 가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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