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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31 오명진(吳明眞) - 중국차예연구가 "홍루몽" 관련 논문 발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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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명진(吳明眞)
출생 : 1962년 4월 7일
현재 : 중국차 연구가, 다예기사 고급평차사(茶藝技師 高級評茶師)
학력 : 이화여대 가정대학 의류직물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졸업(예다학전공) 학위 : 문학박사

<주요논문>
16세기 다서에 나타난 炒製茶 -茶錄과 茶疏를 중심으로- (한국차학회)
金甁梅를 통해 본 明 末期 飮茶文化 (국제차문화학회)
徽州商人의 茶文化 활동 (한국차학회)
淸代의 茶文化와 飮茶陶具 (국제차문화학회)
紅樓夢에 나타난 18세기 중국 茶文化 (국제차문화학회)
明淸期 松蘿茶의 역사적 변천 (한국차학회)
松蘿茶小考 (해남차학술공모 우수논문상)
미생물을 이용한 녹차활용방안에 관한 연구 (석사논문)
明淸期 徽州商人의 茶文化 硏究 (박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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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文抄錄
明淸期 徽州商人의 茶文化 硏究
A Study on the Huizhou Merchant's Tea Culture
圓光大學校 大學院 韓國文化學科 吳 明 眞

본 연구는 중국 明淸期의 차문화와 연관된 徽州商人들의 활동을 통해 그들의 茶文化史上의 위상을 조명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당시 중국에 형성된 차문화를 분석하고 그를 통해 차 산업 및 휘주상인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된 범위이다.

‘명청기’로 통칭되고 있는 16세기 이후부터 청말까지의 중국은 생활관습이나 사회제도, 상품경제 등을 통해 볼 때 마지막 봉건시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오늘의 중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문화, 생활관습, 친족제도 등이 형성되었던 때로,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이다. 특히 차문화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제다법과 음다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炒製茶와 泡茶방식의 차문화가 완성됨으로써 오늘날 중국 차문화의 典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청기는 상품경제 및 수공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資本主義萌芽’의 시기로도 주목 받았는데, 그만큼 인구이동과 밀집현상, 市․鎭의 발달, 사치풍조와 질서이완, 棄儒就商과 같은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한 다양한 사회변화가 일어났다. 그러한 사조는 유통업의 발달과 상인계층의 대두를 초래하였으며, 지연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상인집단이 탄생되어, 중국역사에서 10대 상방이라 불리는 상인 집단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논자가 그 중에서 휘주상인에 주목하였던 것은 그들이 중국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인 사대부의 문화영역으로까지 역할 범위를 확대하였던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였던 많은 숫자의 휘주차상이 존재하였던 점이 연구의 동기를 자극하였다.

徽州茶商들은 처음에는 휘주 토산의 차로 원거리 교역을 시작하였는데 여러 자본을 모아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대규모 차업을 제일 먼저 일으켰고, 역사상 가장 늦은 시기까지 휘주상방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말하자면 휘주상방의 여러 아이템 가운데 차상이 휘주상방을 탄생시키는 모체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상방을 지탱하던 분야도 차무역이었던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 시대의 차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차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과 더불어 산업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가정아래 이들 휘주상인이 명청시대 차산업과 차문화 상에서의 활동과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찰하였다.

첫째, 16세기 사회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상업계의 최고의 상방으로 대두되었던 휘상이 형성된 과정과 업종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가.

둘째, 휘주지역 차업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명대 중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휘주상인에 의하여 휘주의 차업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셋째, 휘주상인의 기본적인 업종은 鹽業․典當業․茶業․木材業으로 일컬어지는데, 이 중에서 차업의 경우는 어떤 형성과정을 거치며, 휘주상인들이 도자업까지 진출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넷째, 휘주상인이 대두한 16세기부터 청 말 쇠퇴의 길을 밟게 되는 시기까지 차문화 측면에서 보여주는 특성과 그 역사상 의의는 무엇인가.

이상의 시각에서 명청기 휘주상인의 탄생 배경과 연원, 휘주의 차와 차상인의 차업, 그리고 휘주상인의 차문화 활동에 이르기까지 개괄적인 접근과 동시에 세부적인 분석을 수행하였다. 결과적으로 본고에서 밝히고자 했던 휘주 차 상인의 활동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휘주상인들은 휘주 산출의 松蘿茶를 발전시켜 초제차의 기본을 다졌고, 송라차를 중국녹차의 대명사로 그 위상을 끌어 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블랜딩 기법을 통해 대량생산과 품질의 균일화를 이루었고, 이로써 새로운 제다법을 정립하였다. 또한 이를 모체로 屯綠․婺綠․安茶 등 수많은 명차를 탄생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둘째, 휘주차상들은 다양한 형태의 명차를 창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차문화를 풍부하게 하였다. 오늘날 세계 3대 홍차의 하나인 祁門紅茶와 黃山毛峰·孫義順安茶 외에도 晥南茶區圈에 속하는 太平猴魁․敬亭綠雪․涌溪火靑․老竹大方 등 각종 명차들이 탄생되는 과정에 휘주차상의 영향력이 있었다.

셋째, 휘주상인들은 차와 뗄 수 없는 관련 도자업에도 진출하여 차문화를 풍부히 하였다. 휘주상인들이 경덕진 백자와 자사호가 차도구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생산과 유통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경덕진 백자를 모델로 삼아 연구를 거듭한 결과로 도자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휘주상인이 미친 세계적 영향력의 일면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넷째, 휘주상인들은 儒商으로 불리었던 만큼 역사상 처음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경영이념으로 도입 활용했다고 평가된다.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을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도덕과 신의 방면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상업에서 도덕과 신의로 임하고자 했던 휘주차상의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유용하다.

다섯째, 휘주상인들은 商과 儒를 넘나들며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하였고 그 문화․예술 활동에서 차는 매개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휘주상인들의 활동은 명청기 차문화를 풍부하게 발전시키는데 이바지 하였다고 본다.

명청기의 제다법과 음다법 뿐만 아니라 각종 명차는 오늘날의 차문화에 계승되었으며, 그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명청기의 차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휘주상인들은 商과 儒를 넘나들며 한아적 정취와 정신세계를 추구하였던 문인들과 명청기 차 문화를 공유하고 만들어 갔던 주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 차 무역과 도자무역을 통해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인식시켰으며, 전 세계에 걸쳐 차생산지와 차산업이 일어나는 토대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휘주상인은 명청기 차문화의 변화와 발전의 중요한 요소였다.



-------- 2009년 3월 28일 발표한 논문은 홍루몽에 나타난 18세기 중국 차문화의 특성 ----------
Ⅰ. 서언
18세기 中期 청나라 건륭제 때 씌어 진 『紅樓夢』은 중국 장편소설 중 최고 걸작이다. 이는 기복이 넘치는 구성으로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 언어가 생동적이고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1750년대 필사본이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중국에서만 100여 종의 刊行本과 30여 종의 續作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그 시대배경이 되는 18세기 당시의 사회전체 분위기를 하나의 작품 안에 고도로 농축시킴으로서 역사의 기록에서 제외되었던 오래된 민속풍습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봉건시대 상류계급의 생활상뿐 아니라 일반서민의 모습까지 총체적인 사회상을 재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紅樓夢』은 예술적인 가치이외에도 사실주의 문학작품으로써 당시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은 생활상과 문화 전반에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학계에서는 에 대한 『紅樓夢』연구가 성행하여‘紅學’이라는 학문의 한 분야를 형성해 오고 있다.

그리고 紅學은 1980년대에 이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해외 각국으로의 전파과정과 연구개황에 대한 논문들이 속속 발표되었으며,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홍루몽 콘텐츠의 활용과 영상 매체와 컴퓨터의 접목에 관한 논문과 실험결과가 과학기재를 동원하여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紅學界의 이런 활성에도 불구하고 茶와 茶文化에 관한 연구는 작품이 보여주는 사료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 아직까지는 학계의 연구 대부분이 作家문제와 판본의 고증, 작품의 성립과정에 대한 고찰과 작품내부의 문학적 예술성 분석, 주요 인물간의 애정과 심리적 갈등에 대한 분석, 작품의 전파와 續書, 그리고 사상에 관한 연구 등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紅學 관련 논문이 100여 편에 달하고 있으나 茶나 茶文化와 관련된 논문은 없다.

이런 점에서 『紅樓夢』에 나타난 茶文化에 관한 고찰은 앞으로 紅學界의 일부분을 담당하여 중국 18세기 茶文化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라 본다. 또한 이는 디지털 시대인 현황을 인식하고 문헌 고증이 아닌 『紅樓夢』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그 내용과 가치를 규명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요 취지이다. 그럼으로써 이를 통해 현대 중국 茶文化의 줄기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Ⅴ. 결어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지만 현실생활의 본질을 깊이 있게 해부할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는 典據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紅樓夢은 18세기 중국의 사회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속에는 다양한 茶文化, 酒文化, 清代의 服飾文化를 비롯해 수준 높은 詩, 書,畫,中醫學 등의 내용이 당시 그대로를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날 18세기의 중국의 풍습이나 사상과 문화조류 등을 연구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따라서 '紅學'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문의 힘이 뒷받침이 되어 자연스럽게 오늘 날 현대의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콘텐츠화가 가속되고 있다.『紅樓夢콘텐츠로의 발전은 부수적으로 많은 산업과도 연계될 뿐 아니라 紅學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본 논문은『紅樓夢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차사에 대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그 당시의 茶文化 즉, 18세기 차 문화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18세기 특히 乾隆盛世 당시 중국은 광활한 대륙에서 다양한 차수 품종들로 6대 다류의 茶를 만들었고 새로운 제다법인 오룡차가 각광 받았으며 飮茶시에는 세밀한 경질의 백자 개완이 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明代에 飮茶文化가 散茶의 泡茶 문화로 바뀐 이래 명과 같은 체제를 가졌던 淸을 통해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즉, 생활풍습과 일상다반사에서부터 제례, 보건, 치료, 양생까지 두루 차가 미치고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茶文化 풍속 위에 차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심화되어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茶를 폭넓게 수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차에 대한 사상성과 정신세계가 심화되고 가미됨에 따라 역사상 차를 마시는 새로운 법인 工夫茶의 탄생을 가져온 것으로『紅樓夢에서도 工夫茶의 존재를 확연하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중국이 공산치하와 문화암흑기를 지나면서 명맥이 끊어진 茶文化를 새로이 복원한 현대 중국 茶藝는 1980년대 이후 과학적이며 의도적으로 연구 조성된 것이다. 그 간 차계에서 문화는 일시적으로 만들어 질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 하에 현대 중국의 茶藝 문화는 전통성에서 약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紅樓夢을 통해 현대 중국 茶文化는 18세기의 茶文化 풍습과 한 줄기인 것을 확인하였으며 茶藝는 바로 18세기 건륭시기에 형성된 工夫茶에서 파생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현대 중국 茶藝문화가 여기에서 전통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紅樓夢을 통해 차 문화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과거의 18세기 중국을 읽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중국 차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며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중국 茶文化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은『紅樓夢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중국의 18세기 차 문화를 조망해보았다. 이로서 중국의 茶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 많은 흥미를 유발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라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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