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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량즈 기지

 

어제 라오반장에서 하산하여 바로 제가 살고 있는 곳이자 오운산 멍하이 초제소가 있는 집으로 가서 살청작업을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반펀 초제소에서도 생잎을 8키로 가져와서 이번에 오신 손님들이랑 다 같이 가마솥 살청 체험을 합니다. 빙 둘러 앉아서 유념도 해보는데 처음엔 그저 설렁설렁 돌리는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작업을 반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적당한 압력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돌려야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팔도 아프고 일의 능률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혼자 살다보니 가끔 빨래를 하는데 오래된 속옷 빨기보다 어렵습니다...

 

화주량즈로 갑니다. 오운산 화주량즈 관리소장인 빠멍 총각의 집은 기초는 되었는데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두 세 달이면 완성하는 가정집을 중국에서는 육개월 혹은 일년씩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쩔 수 없이 올해 봄차는 친척집 초제소에서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정성껏 준비해준 점심을 먹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화주량즈 정상까지 오르자면 두시간 이상 가야하는데 오늘은 손님들 상황을 봐서 오운산에서 네그루 야생차를 계약한 곳까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연세가 제일 많으신 회장님이 맨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십니다. 평소에 매일같이 산행을 하신다더니 헛말이 아님을 증명하십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시간 남짓 오운산 팻말이 걸린 천년야생차 앞에 도착합니다. 저희와 계약한 차밭 주인이 채엽 준비를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표정으로 야생차 곁에서 사진 촬영에 바쁩니다. 내친김에 2, 3, 4호도 보러 갑니다.

 

여행 내내 고수차의 과채엽 문제를 말씀하신 회장님이 이곳의 환경은 그나마 다른 곳보다 낮다고 하십니다. 사실 유명 차산의 고수차 과채엽 문제는 심각한 편입니다. 옛날엔 봄에만 한번 따고 여름 가을에 자라는 잎은 남겨서 차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새순만 올라오면 꺾어버리니 다음 해 봄차 수확량은 점점 더 줄어 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 차산을 가 봐도 최근에 심은 소수차 밭은 점점 늘어나는데 소수차라고 판매되는 량은 늘지 않고 시중에 출시되는 고수차는 이러한 상황임에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스님께서 말없이 1호수 주변에 떨어져있는 쓰레기들을 줍습니다. 생수통, 과자봉지, 휴지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저는 평소에 버리지도 않고 줍지도 안는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데 스님은 이 먼 곳에 떨어진 쓰레기도 인연의 산물로 느끼시는 듯합니다.

 

하산길에 교수님이 오운산에서 고수차 생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차산 환경보호에도 앞장서보라고 하십니다. 늘 생각만하고 아직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연했는데 환경전문가이시고 또한 한국최초의 다서인 다부의 저자 한재 이목선생의 16대 후손이기도 하신 교수님이 여러 가지 좋은 방안들을 제시해주십니다. 평소에 한국 차의 발전적인 방향에 대하여도 늘 고민하시는 교수님의 건설적인 제안에 우선은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기로 했습니다.

 

시쐉반나의 최고봉인 화주량즈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 가게에 버려진 쓰레기부터 줍기로 했습니다. 빠멍의 노총각에게 화주량즈 환경보호위원이란 또 하나의 직함을 주었습니다. 이번엔 작지만 월급도 책정했습니다. 매달 천위안 씩 주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씩은 화주량즈 정상을 오르며 주변의 쓰레기를 정리해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조그마한 시작이지만 고수차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환경의 중요성을 다른 분들에게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정상에 오운산 이름으로 세워놓은 화주량즈 간판도 매주 잘 감시하라는 특명도 덧붙였습니다. 어딜 가나 시샘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전에 라오반장 안네 간판은 도로공사에서 철거해버리니 어쩔 수 없이 약간 안쪽에 다시 세웠는데 화주량즈 정상에 세워놓은 간판조차 아래의 오운산 로고를 싹둑 오려버리길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제가 아니기에 세 번째 다시 제작하여 붙여두고 빠멍 노총각에게 환경보호위원이자 감시병의 의무도 준 것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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