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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 찻집의 기록

죽향 선차법

 

진주는 지리적으로 지리산의 하동과 산청에 인접하여 차를 마시는 음차 문화가 오래토록 계승 중흥되어왔습니다. 올림픽을 전후로 전통문화의 발굴과 계승이 강력하게 요구될 때, 선뜻 차를 생업生業으로 하겠다며, 삼십 대 초반 하던 일을 접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찻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는 맑고 고요하며 텅 비어 있습니다. 대나무와 어울리는 기상을 지녔습니다. 차 한잔을 대할 때면 반듯한 사람처럼 믿음이 갔습니다. 더구나 차를 마시고 다루는 일에서 느끼는 정갈함과 선연함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끌렸고 단순 음료 이상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유행하던 커피숍보다는 전통 찻집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인간은 일상의 삶에서 새로운 인연을 짓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불법을 통해 알에 되었습니다. 나날이 향상된 삶을 사는 일, 나도 남도 유익한 삶의 방식에 관심이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맑은 차의 길이 평생의 길임을 알았습니다. 차나무가 가진 특별한 기질氣質을 알고는 더욱 차의 길이 사무쳤습니다. 차의 맑은 정신을 삶으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진주의 선고 차인들이 새롭게 부흥시킨 차문화를 실천하며 계승해 나가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물질을 통해 정신세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싶어서 마냥 의욕과 열정을 앞세웠습니다.

죽향 찻집을 개업(199788)했던 당시에는 진주에서 활동하던 차회는 몇 안 되었습니다. 69년 결성되어 최초로 차회 활동을 시작했던 진주차인회와 학술적 탐구로 진주차풍의 역사와 차문화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강우차회, 그리고 여성차인회, 김정차회(현 오성다도)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차회 활동들을 통해 차의 덕성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미풍 양속을 계승해 나가고자 애쓰시는 차인들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선임 차인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대중 찻집을 하는 사람으로서 체계적인 차 공부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업과 동시에 찻집 일과 차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의 차문화가 진주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시는 무작정 서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실 차 공부도 공부였지만 서울이란 대도시의 생태, 서울 중심의 차문화를 체험할 수 있겠다 싶어 서울로 발걸음을 들였습니다.

 

그해 97년도부터, 서울시 성북동 ()명원차문화원에서 2년의 사범 과정을 시작으로 차 공부의 여정이 시작됐습니다(97~99). 차와 차문화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과 차를 다루는 과정을 숙련케 하는 공부가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선대(先代) 여성차인으로서 일가一家를 이룬 명원 김미희 선생의 자취를 따님 김의정 이사님으로부터 제대로 배우게 되면서 차 공부며, 차 업이며, 차문화 활동까지 열심히 하게 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2001년 강우차회 10주년 기념행사 진주시민과 차생활의 행사에서 중국 생활차법을 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청되신 반야로 차도문화원의 채원화 본원장님을 만났고 반야로의 공부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선생님을 뵙는 순간, 차 공부의 목적과 방향과 내용 등,차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과 삶의 가치가 일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5년에 걸쳐 진주와 서울의 인사동을 오가며 반야로차도를 공부했습니다(2001~2006). 채원화원장의 강의는 치문淄門을 시작으로, 원효스님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읽는 것으로 차 공부뿐만 아니라 불법의 심지心志를 세우는 공부까지 아우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환희심으로 서울을 오르내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사이, 국립목포대학교의 조기정교수님께서 진주에 있는 덕암과 무정 등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차와 진주문화에 관심을 두고 차실을 자주 왕래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차생활의 대중화와 학문적 체계화 등, 그 필요성을 서로 논의하며 학과 개설에 의욕을 내셨습니다. 차마시는 일이 대 유행이었던 2004년에 국립목포대학교에 대학원과정 국제차문화학과를 개설했습니다. 차학과 주임교수가 되신 조기정교수님과 호남차인들과 맺은 인연으로 대학원을 1기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헌공차

체계적인 차학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목포를 오가며 석사 수료(06)하고, ‘죽향미인제다를 통해 느꼈던 수제차의 위해요소에 강한 의구심을 느끼며 위해요소 검증과 더불어 그 기준을 제시한 전통 수제녹차에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적용을 위한 연구09년에 석사 졸업을 했습니다. 현재 진주지역의 차문화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 과정 중에

있습니다.

 

2000YWCA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차도와 생활예절을 가르치는 차도와 예절과정을 개강하며 차도 강사의 첫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차를 알고자 하는 사람과 차생활을 통해 멋과 여유를 즐기고자 차를 배우겠다는 회원들이 계속 늘었습니다. YMCA와 국립진주박물관은 어린이와 청소년 차도 체험반을 개설했으며, 국립과학기술대와 국립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차도 지도사 배출을 목적으로 차와 차예절 지도사반을 개설하여 강의를 맡았습니다. 곳곳에서 개설되는 전통 차도 교육으로 찻집일 보다 차도 강의로 바빴습니다.

 

전문 차도강의실의 필요성으로 2005, 죽향 3층에 전문 차도강의실 죽향차문화원이 개관되었고 바야흐로 차도무문茶道無門의 장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차도교양반, 명상차반, 차예절지도사반 등 다양한 차도 강의들을 시작했습니다. 차 공부의 요체가 차라는 물질의 정확한 이해와 차를 다루는 올바른 행위의 방식들을 체화하는 것이므로 茶道 라는 큰 주제를 두고 茶道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차의 개론, 행차 수련의 목적과

방법, 한국의 차문화사, 중국과 일본의 차문화, 다신전동다송의 원전을 공부했습니다. 차문화에 대한 이론들은 여러 차 개론서를 참고했습니다.

 

차의 물질적 개념들은 차의 육종학 이론과 제다 수업으로 정립했습니다. 차도茶道의 실기는 차 명상이 근본인 죽향선차법竹香禪茶法으로 몸의 균형감과 정밀함을 익혔고,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 각성을 도모했습니다. 죽향선차법은 행차의 전 과정을 차를 다루는 안. . . . . 의 육근六根을 통해 차와 차를 다루는 일련의 요소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일체를 관조觀照하는 정념靜念수행 입니다. 몸과 마음은 정화되고, 각성된 의식으로 일상의 삶이 명료하게 경험되어 사라지는 것임을 아는 것이 차선수련의 목적입니다. 차도로서의 정념수련을 위한 방법으로 선차수련법의 정립이 필요했습니다. 선차법禪茶法은 효당가의 반야로차도문화원의 독수선차법獨修禪茶法을 차용하여 죽향차문화원의 지향점을 반영하여 완성된 것입니다. 진주차풍의 정신적 계보인 효당스님의 중정中定의 차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말차법抹茶法은 명원문화원의 팔각상 말차 행차법을 기본으로 하여 죽향의 차 정신과 정서가 표현되도록 만든 선차법입니다.

 

헌공차법獻供茶法은 불자로서 불은佛恩에 회향코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효공 동초스님께서 다솔사 주지 소임때, 죽향차문화원 회원들이과 함께 매년 초파일 육법공양 의례로 시연한 것을 다듬었습니다. 대중 차실로서 죽향이 20년을 맞이하면서 죽향 이라는 공간(空間), 죽향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간(人間)이라 하고, 다시 죽향의 찻일들을 새롭게 조명해 시간(時間)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싣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었던 여러 작업 중 죽향차문화원의 차법을 정립하여 자료로 남기게 된 것이 보람입니다. 차 공부에 있어 행차도는 차 공부의 실체이며 차 공부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차도 수련의 차 공부는 정신을 향상시키고 몸을 정밀하게 하여 의식의 극대화로 명료한 삶을 경험토록 하는 행동철학입니다..

 

죽향 스무해를 맞아 행차의 전 과정을 기록화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쉽지 않았던 여러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대한듯한 설레임과 지난 공부를 새삼 더듬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반복하면서 행차 수련의 공덕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고 소중한 일을 가능하도록 해주신 윤삼웅교수님, 정장화 사진 작가님께 두 손 모읍니다. 분명 기록화에는 책임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기록으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시각적 견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차문화의 일각이며 행차에서는 보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요소로 구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일정한 규범과 틀에 의미를 부여하여 도식화하는 것은 참으로 단조롭고 딱딱한 일이었습니다. 그 단조로움을 반복 수련하는 일이 곧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의 가르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로 행위로 보여주시는 선고 차인들의 성언誠言을 가슴에 새깁니다.

죽향선차법은 차마시는 일입니다.

일상의 자리, 그 어디서든 차 마시며, 홀연히 깨어나 머무는 일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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