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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부산 대연동에 있는 도림원에서 고수차로 만든 생차를 만났다. 생차로서는 드물게 2kg 짜리다 어떻게 만든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직접 운남 경곡의 고수차에서 찻잎을 채취하여 만든 것으로 이 차를 주문생산해서 수입한다고 한다. 샘플 차를 맛보았다. 그 당시에도 일반적인 생차보다는 맛이 달랐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강한 맛이 있었지만 오미가 풍부했다.

사진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여 경곡의 고수차로 만든 2kg, 임창지역 차1kg 두 개를 서울로 가지고 왔다. 보기에도 웅장한 2kg의 원형병차의 모습은 테이블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위용을 가졌다.

이 정도의 차편이라면 1년 내내 곁에 두어도 없어지지 않을 듯 하다. 이 병차를 두고 장식을 해 놓아도 될만큼의 크기를 가져 아마도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면 평범한 에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그런 형태의 차를 사진 작업을 마치고 주인의 손에 돌아갔다. [사진, 경곡 고수차로 만든 2kg 보이생차]  

그러고 2010년 5월, 다시 찾아가서 경곡 고수차인 대백호를 마셨다. 중간에도 가끔 그 차를 마셔보기도 했지만 뭔가 새로운 맛을 찾고 싶었다. 꼭 2년 만에 도림원에서 다시 마신 뒤에 새로운 사진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근주 씨는 2kg, 1kg짜리 두 개를 안전한 포장으로 해주며 사진 작업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방식으로 헤쳐보든가 찢어보든가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해보라고 했다. 참으로 호쾌한 대응이었다.

차를 가지고 와서 5개월 만에 다른 곳에서 가져온 차들과 함께 생차 자료사진 작업을 몇일전에 했다. 경곡의 고수차 2kg 짜리의 엽저를 촬영하기 위한 별도로 여분을 좀 가져온 것을 마시게 되었다. 원하는 엽저를 찾기 위해서 30g 정도의 차를 여러번 우려마시는 과정에서 한국에 온지 2년이란 세월이 흘러 더욱 깊은 맛을 내는 생차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기후에는 발효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차에 따라 보관하는 위치에 따라 이런 정도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차의 보관과 발효에 대한 충분한 자료 검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접하고 경험한 내용으로 한국에서는 발효가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아직은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이런 생차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수입되어 보관되어온 기간이 10년 정도 되기 때문에 결과를 유추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그래서 생차를 만들어 온 그 해에 마실 수 없는 차는 아무리 고수차라고 해도 별로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이 차를 대백호(大白豪)라 부르게 된 것은 (이 차를 주문생산한 이근주씨의 말에 따르면) 봄에 찻잎이 나올 때 다른 차들보다 백호가 많이 보이고 줄기부터 잎까지 백호를 볼 수 있기에 대백호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수차의 수령은 당시 최소한 800년이상의 나무로 둘레가 성인의 두 팔을 벌린 한아름으로 다 두를 수 없을 만큼의 큰 나무에서 채취한 엽저로 만든 것이라 한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운남 지역의 차 산지를 다녀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수차라고 해서 모든 나무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워낙에 나무들이 많기 때문에 300년 정도의 수령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실정에서는 800년 이상이라 하면 대단해 보여 몇 그루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 500년 이상 된 나무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은 것으로 자연 그대로의 차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차가 야생이어야만 좋다고 결론내릴 수 없는 것은 자연 생물의 과학적 검증에 대한 접근시각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는 첫 물을 버리고 다음에 우러나오는 맛이 옹골차게 힘이 넘치는 맛이다.

7-8회 우려도 같은 맛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보이생차에서 느낄 수 있는 맛 중에서 서슬퍼런 큰 칼날 끝같은 느낌은 사그러들고 그래도 강한 칼끝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무언가 부드러워진 고수차의 발효기운이 느껴진다. 그냥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힘이 있고 부드러운 세련된 맛이다.

백호라 하면 은침차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흰 빛으로 뒤덮인 입새인데 이것이 그렇게 큰 잎으로 백호를 달고 나와 차편에 소담스레 붙어 있다. 이 차맛이 어떠하냐를 논하기 보다는 그 웅장한 잎새에서 먼저 기운이 솟는다. 우려내고 난 뒤의 엽저들은 그 푸른 빛이 아직 살아 있지만 잎에서 우러난 풍미는 첫 해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차편의 떼어진 자리에 청청한 기운은 아직도 살아있건만 풍미는 훨씬 더 강해지고 날카로운 기운은 수그러졌으니 이제 다음해, 아니 그 다음해가 점점 더 기다려진다. 과연 이 대백호는 어떤 맛으로 변하면서 다음 차인의 입을 기다릴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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