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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복동에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다례헌이라는 찻집이 있다. 이곳에서 책 원고 작업을 위해 만남을 약속한 최 선생님과 1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최 선생님이 먼저 와 자리에 앉아 계셨고, 마침 주인장 서재홍 선생님도 계셨다.

중국차 전문점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언제나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고 딱히 분위기가 동떨어진 곳이란 것은 아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장소는 분명 아니면서도 뭔가 쉽게 다가갈 수 없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주인의 강한 개성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오늘은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

최 선생님과 자리를 함께 하고 메뉴판이 없는 이 집에서 무슨 차를 주문할까 망설이다가 무이암차인 육계를 주문했다. 원래는 주인에게 물어보고 시켜야 되는데 문득 생각난 것이 오래된 찻집에서 나오는 육계 맛은 어떨까 하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안주인이 우리 집은 20년 된 육계라고 이야기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개업한 지가 20년이 되었고, 그 당시에 차를 많이 확보한 상태였고, 세월을 품은 차가 기본적으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깡통으로 된 차 통을 그대로 들고 오셨다. 마실 만큼 차를 넣고 우려 보았다. 탕색은 등황색에서 붉은 쪽이다. 필자가 육계를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진년차에서 느낄 수 있는 홍배 맛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기에 요즘 만들어져 나오는 차와는 무언가 기본 맛이 달랐다. 단순히 세월 맛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세월 홍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요즘 맛있다고 하는 암차의 전형적인 암골화 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무이암차의 잔향은 그대로 녹아있다. 약간 고풍스런 실내 분위기와 주인장 부부의 고아한 멋이 함께 배어나오는 것 같다. 필자는 우리가 앉은 옆 테이블 에서 책을 보시는 주인 서재홍 선생께 요즘 어떤 차를 즐겨드세요 하고 물었다.

“보이차!”

보이차 마니아시라니 당연한 대답이시리라. 우선 마시기 편해서 좋다고 하신다.

안주인은 흑차의 매력을 더욱 느끼시는 것 같다. 작은 도자기 탕관으로 끓여 맛있게 우러나온 사천성 금첨을 주셨는데, 표정과 손길에서 주는 즐거움과 행복이 그대로 전해온다. 인생의 선배 같은 모습이다.

손님과 육계를 맛있게 마시고 덤으로 주신 금첨의 맛은, 최근에 호남성 공첨과 천첨을 통해 세월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깊은 맛을 알게 된 데에, 새로운 한 가지 맛을 더하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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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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