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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에서 석가명차 최해철 대표

윈난성 전체에 3일째 비가 내립니다. 올해는 비가 많은 해라고 합니다. 삼월 초순 소수차 채엽이 시작되면서 그쳤던 비가 막 고수차를 시작할 즈음에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고수차 채엽이 시작될 것입니다. 너무 가문 것보다 적당한 비는 햇차의 수확에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적은 양이지만 연일 계속 비가 내리면 품질에 영향이 있습니다. 채엽이나 살청 건조 등 차를 제조하는 모든 과정에서 날씨는 아주 중요한 변수입니다.

움막

특히 고수차는 대부분 산속 마을에 위치한 초제소에서 전수공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채엽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쇄청 과정이 길어지면 산화가 진행되어 자칫 탕색이 흐려지고 물 비린내 비슷한 향기와 맛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햇볕에 갓 건조된 모차는 차농들이 흔히 태양미라고 부르는 쇠 비린내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은 바쁘지만 이곳은 매년 5월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일기예보상으로 내일부터는 계속 맑은 날씨라고 하니 고수차를 시작하기 전에 며칠간 충전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오운산 점장 출신 '위샹'

오늘은 최근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만송 지역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5년 동안 멍하이 오운산 가게 점장으로 근무했던 '위샹'이 독립하여 만송 지역의 차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오운산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와 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중국 그리고 이곳 멍하이의 특징 중에 하나는 한 직장에 일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원들도 가능하면 오래도록 함께하길 원하지만 독립해서 더욱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오운산을 설립하면서 삼년동안 함께 고생했던 도부장도 진순보(臻醇普)라는 브랜드를 개발하여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본사에서 1층 매장을 담당했던 대장님도 10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다가 얼마 전에 독립하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曼松古树茶主产于云南省西双版纳勐腊县象明彝族乡曼庄村委会,属于山区,而曼松寨古茶园被定为“皇家茶园”,其核心产区位于王子山和背阴, 曼松皇家茶园共有3片:曼松的王子山、背阴山,还有一处是靠近曼腊的一个傣族寨子茶园. 曼松原属倚邦区第一乡辖区内,历史上,有曼松老寨,居住着香唐族,善种茶,由于曼松茶的品质好,被列为贡茶,“年解贡茶100担”,曾因贡茶而名,声誉远播,新寨海拔900米,有居民32户170多人.”

만송은 현재 윈난성 서쌍판납 맹랍현 상명 이족향 만전촌위원회 소속입니다. 이 지역은 17세기 청나라 시기부터 황실에 차를 납품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가다원(皇家茶园)이 위치했던 지역으로 핵심 지역으로는 왕자산, 배음산 그리고 만랍 근처의 태족 마을 한 곳으로 모두 세 곳입니다. 한때는 의방에 소속되었으며 만송 노채에 이족의 한 계열인 “향당족”이란 소수민족이 좋은 품종의 차를 식재하여 일년에 5톤정도의 차를 황실에 공차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는 32가구 170명 정도가 산 아래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송 신채의 해발은 900m 전후이고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노채의 해발은 1300m 전후입니다. 한때는 의방을 중심으로 수많은 차농과 차상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잊혀졌다가 1950년대 맹해차창 설립 초기에 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송 지역의 원료를 일부 사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어떤 차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송 지역이 다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운남민족출판사”에서 발행한 “판납문사자료선집(版納文史資料選輯)” 이란 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수많은 공납 차들 중에서도 황제가 특별히 총애한 차가 만송 지역의 차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실에서 이 지역 차를 선호하면서 과도한 세금정책, 부족 간의 전쟁과 질병, 청일전쟁, 식수원의 문제 그리고 8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정부의 산간벽지 이주정책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소수의 주민들마저 모두 산 아래로 이주하였습니다.

만송 지역 찻잎

이천 년대 이후 보이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고육대차산 지역이 보이차의 고향으로 알려지면서 보이차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만송은 “칙도차업유한공사則道茶業有限公司” 에서 2007년부터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유명세를 치르면서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현재 만송 고수차 1kg 가격이 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2011년 “칙도차업”에서 만송차에 대한 상표등록을 하여 2018년부터는 중국 법원에 요청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송이란 지명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조상 대대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조차 만송이란 지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보이차를 좋아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석일룡(石一龍)이란 분이 지역 주민을 안타깝게 여겨 자비로 중국 정부에 “칙도차업”의 만송차 상표권 무효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나 만송이란 지명을 넣은 차를 출시할 수 있습니다.

만송이란 지역을 예로 들어서 설명드렸지만 라오반장이나 빙다오 등 어떤 한 지역이 유명해지면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과채엽으로 인한 품질의 저하는 물론이고 주변 지역의 차까지 유명 지역의 차로 둔갑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만송 고수차의 생산량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적게는 5kg에서 많게는 200kg까지 추산하는데, 그 옛날 무성했던 역사를 상기하면 아주 적은 양입니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칙도차업”에서 개발을 시작하면서 번호표를 부착한 300여 그루와 그 후로 발견된 고수차까지 합치면 500여 그루는 될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국유림 속의 원시삼림 지대라서 차나무가 굵지는 않고 키가 높게 자란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루당 채엽 량은 아주 적습니다. 생산량은 한 그루에 모차 200그램 정도로 추산하면 현재 매년 100kg 전후로 생산될 것 같습니다. 중수차 급으로 분류되는 것은 대략 500kg, 그리고 이천년 이후에 식재된 소수차들은 최소 몇 톤은 될 것 같습니다. 찾는 사람은 많고 생산량은 턱없이 적다 보니 현재 이 지역의 소수차 가격도 1kg에 한국 돈 50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무 쪽 차농뿐만 아니라 외지의 상인들도 너도나도 만송차 생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만송 산차

만송 차의 특징으로 흔히 부드러운 단맛을 이야기하는데 이무 지역 차들의 대체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굳이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좀더 달고 좀더 부드럽다고 할까요? 토양은 주로 자홍색(紫紅色) 계통의 암석이 풍화되어 푸석푸석한 느낌인데 윗부분은 부엽토에 덮여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단한 암반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만송차의 독특한 향미를 이야기할 때 주로 운남에서도 드물게 형성된 자홍색 토양의 특징과 청나라 초에 쓰촨성(四川省) 농부들이 이곳으로 유입되면서 사천에서 가져온 소엽종(小葉種) 차나무의 특징에 기인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만송에서도 가장 유명한 지역은 왕자산 쪽인데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청나라 병사들에게 쫓기던 왕자가 이곳에서 일반 주민의 집에 숨어 살다가 결국은 잡혀서 피살되고 그의 무덤을 이산의 꼭대기에 묻으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청나라 황실에서는 특별히 이 지역의 차를 좋아했을까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쫓기던 왕자의 슬픈 사연이 서려있는 땅 만송차 이야기였습니다. -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의 운남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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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차용 오모가시

일본다도는 다회를 열기 위해 하며, 다회의 목적은 일좌건립(一座建立)

일좌건립은 일체감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준비물: 센스(인사 할 때 사용하는 도구), 가이시(과자종이), 가시키리(과자칼) 물에 적신 작은 행주, 비닐봉투

복장: 점잖은 옷, 흰 양말 / 고이차(濃茶, 진한차), 우스차(薄茶, 연한차) 말차는 차싹이 나오면 차양을 해서 키우는데

농차(고이차)는 햇볕을 철저히 차단하고, 박차(우스차)는 농차보다 덜 차단하여 키움

고이차는 3명이나 5명이 한잔을 나누어 마심 / 우스차는 1인이 한잔을 마심

(우스차 타기)

다완을 따뜻한 물로 부어 데워줌

차선을 점검

다완을 헹워서 버림

다건(차행주)으로 다완을 닦아줌

차가루(12그램)을 다완에 넣고 80cc정도의 물을 부어줌

차선으로 거품을 일으침

https://youtu.be/FR5ozs4zrMg

(차마시기)

(손님1) 차마시는 사람(손님2) (손님3)

손님2는 차를 받고

손님에게 한잔 더하시지요라고 인사하고

손님에게 먼저 마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주인에게 잘 마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음으로 차에게 감사함을 표한 다음

찻잔을 시계방향으로 2번 돌려 차를 마신후

입을 대고 마셨던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한번 닦아주고

찻잔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2번 돌려 처음 모습으로 해서 내려놓는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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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73청병青餠 이름의 유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73청병青餠 이름의 유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황슬금 씨의 인터뷰(우측)

 

실력이 받쳐주는 신용할 수 있는 차의 세계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문을 열기만 하고, 하나하나 준비해 본다.
석우연담 독자의 제보를 기다린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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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차의 세계에서는 욕망이 얽혀서 진짜 같은 가짜라는 것에 속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동안 석우연담에서 보이차 73청병과 관련한 일이 생길 때마다 80년대 차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면, 보이차를 취급하는 주변 상인들의 의견 대부분이 70년대 차라고 주장하여 그런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다른 주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인들의 거래와 관련한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석우연담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필자가 알고 있었고, 책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를 뒤집는 황슬금 씨의 인터뷰 동영상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73청병> 이름을 최초로 지어서 광고를 내었던 당사자의 이야기다. 그동안 블로그 <죽천향실>을 통해서 박창식 선생의 중국차 관련 정보를 귀하게 여겨온 필자로서, 이번 일을 계기로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침묵 속에 <진짜와 가짜> 코너를 만들게 되었다.

<중국의 강서 남창의 찻집에서 인터뷰한 영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73청병이라는 차를 구입할 때에 황 선생이 접해본 차 중에서 50년대의 홍인, 60년대의 남인, 70년대의 황인 이후에 좋은 차가 없었기에 그 후속으로 “73청병이름을 사용하였던 것 같다.

 두 번째, 예전에 황 선생이 홍콩의 의안차행에서 73후전을 구매하였는데 당시 많은 차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세를 이어가려고 “73청병이라 이름을 지었다. 후에 다시 대량의 73청병을 구매하였는데 그 차에서 7542.503과 7542.506 대표가 발견되었다.  73청병은 당해연도의 차가 아닌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까지의 차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영상 번역과 정리 이혜연>

3 12일 대구 티인사이드에서 정수일 대표와 박창식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73청병에 대한 황슬금(옥호헌 대표) 씨의 인터뷰 영상을 위쳇으로 보냈는데 보았는가 하고 물었는데, 최근 필자가 휴대폰을 바꾸면서 위쳇을 깔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정수일 대표가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주어 영상을 알게 되었다(참고로 이 영상은 2018 6 17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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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73청병> 자료 수집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프로 전문가의 세계에서도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선택과 여과의 거듭되는 진행 속에서 지혜로운 노차 세계를 열어가자는 바람이 함께 한다.

"73청병"으로 불러지는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서 자료 출처와 제공자를 밝히고 정리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도 받으면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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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천향 2023년.09.22 08:20

이제 73청병을 중국이나 홍콩의 경매사이트나 차장에서도 70년대 차가 아닌 80년대에 생산된 차로 소개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70년대 차로 소개한 구차한 변명도 덧 붙혀여서 <차병의 포장지 스타일과 글자체가 1970년대 차병의 특징이 강해 한동안 7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일찍이 많은 이들이 80년대 차라고 그렇게 주장 했건만 ...._()_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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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시내

쓰촨성 청뚜에서 2주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멍하이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일주일간 격리를 한다, 안한다 말들이 많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자율 격리? 자가 격리라고 하지만 특별한 감시 시스템이 없어서 급한 사정이 있으면 잠시 외출하는 것은 괜찮을 듯합니다.

 

출국 일주일 전부터 한국에서 3번의 PCR 검사를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또 하고 격리 기간에는 3일에 한번씩 핵산 검사를 했습니다. 징홍 공항에 도착해서 또 하고 멍하이에 도착해선 또다시 지정된 병원에 들러 핵산 검사를 했습니다. 모두 합산해 보니 한달도 안된 기간에 10번의 핵산 검사를 했습니다. 농담 삼아 콧구멍에 불나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운산 멍하이점

검사를 마치고 가게로 와서 올해 생산된 몇 가지 소수차를 시음했습니다. 올겨울에는 비가 충분히 내렸고 날씨도 괜찮아서 현재까지의 생산 환경은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출시하는 차고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올해 빠공리(8km. 멍하이 읍내에서 8km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에 있는 오운산 물류 창고로 가서 차고의 생산 현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최근엔 기계 설비를 이용해서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생산하는 곳도 있지만 이번에 저희가 만드는 방식은 전통적인 제작 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전수공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제품의 품질을 높일 수만 있다면 비용이 좀 더덜더라도 저희는 그러한 방식을 택해 왔습니다. 기계 설비로 빠르게 생산된 차고랑 저희가 생산한 차고를 비교 품평해 보니 맛의 차이가 현격합니다. 재료의 차이 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빠르게 생산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생산하는 차고는 그동안 오운산에서 보이차를 생산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차 분말들과 텅총 기지의 원료들을 섞어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보이차고

차고의 생산 과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물통에 물을 붓고 모차를 투입한 다음 전기를 연결하여 온도를 40~50 정도로 맞춥니다. 그리고 14~16 시간 정도를 계속 저어줍니다. 한번에 차액이 전부 추출되지 않기 때문에 두번에 걸쳐서 이러한 동작을 반복합니다.

 

추출된 차액을 깨끗한 천으로 통과시켜서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낮은 온도로 가열하여 최대한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그리고 저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건조실에 넣은 다음 건조를 시작합니다. 완전히 건조되는데 숙차는 보통 5일 정도 소요되는데, 생차는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햇볕에 직접 맞닿게 하지 않고 외부와 오픈 된 실내에서 건조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렇게 해서 일차로 완성된 차고는 품질의 균일성을 위해 다시 골고루 섞어서 녹인 다음 원하는 형태의 틀에 부어서 건조하면 완성됩니다. 모차 10 kg에 차고 1kg 정도가 생산됩니다.

차고

건조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대형 선풍기라도 하나 사서 사용해 볼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열풍기나 고온 시설에서 생산된 차고랑 비교해 보니 맛과 향에서 차이가 너무 커서 최대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부분이 개선된다면 기계 설비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비수기라서 충분한 일손들이 있었지만 봄차 철이 시작되면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차고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실험과 품평을 통해서 현재로선 최선의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나은 방식이 개발된다면 언제든지 수용할 생각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운산의 제작 방식을 모두 오픈해 드렸습니다.

보이차고 건조

차고는 황실의 비법 등으로 소개되며 아직까지도 신비로운 차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자신들의 제작 방식을 절대 오픈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들만의 노하우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하기를 꺼려 하는 것이지요. 어느 지역에서 구한 원료인지? 어떻게 제작한 것인지? 어떤 노하우가 자신들에게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차들이 너무 많습니다. 불투명 가면을 쓴 이상한 차들이 오히려 양화를 구축하기도 합니다. 물론 오래도록 노력해서 획득한 그분들의 비결?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숙차도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오픈됩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알아낸 부분이지만 여러분과 나눌 때 오히려 그의 노력은 더욱 빛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운산은 처음부터 모든 차의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봄차를 시작하면서 세상 모든 것들이 따뜻한 봄처럼 활짝 피어났으면 합니다.

-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의 운남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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