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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 도림원(주인 이근주)에 갔을 때, 운남 차산 해발 2,200-2,600m의 고지에서 자생하는 차나무에서 채엽한 잎으로 생산한 생차가 매장에 도착해 있었다. 찻잎을 보니까 선별되어 만들어진 찻잎이다.

외형만 보아도 제조 공정이 잘 진행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양해를 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촬영해 보았다. 이 사진 자체만으로는 별로 잘 못된 것이 없지만 이제까지 촬영해온 수준으로 볼 때, 인쇄물에 사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여 2009년에 좀 더 정밀한 촬영을 시도해 보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해서 결국 빌려 왔다.

[도림원에서 주문 생산한 생차, 2008년 생산, 사진 1kg, 2kg]

 

생차 두 개의 무게는 각각 2kg와 1kg이다.  어제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촬영을 마쳤다. 이번에 새로 촬영한 차의 사진은 올해 발간되는 책자에 나올 것이다. 위의 사진은 캐논 디카로 작업한 것이다. 보이차로서 야생 고차수라는 이미지는 표현되지 않지만, 훗날 비교되는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작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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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중국 보이차 10대 인물 선정 발표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차일피일미루다가 오늘 올리게 되었습니다. 중국 신문에 발표된 내용을 죽천향 님께서 취다헌에 올린 것을 확인하고

가져와서 올립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 연구자로서 중국 보이차 10대 인물에 선정된 분은 제1회 때는 대만 화교인 이지만 한국에서 차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짱유화 원장. 제2회 때는 정인오 교수입니다.

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出炉

전국"보이차10대 걸출인물"

文章来源:新华网 | 时间:2009年11月19日 문장래원:신화망 | 시간:2009년11월19일

关于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评选结果的公告

관우제3계전국"보이차10대걸출인물"평선결과적공고

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候选人由第九届中国普洱茶节组委会评选活动筹备处提名推荐、相关协会提名推荐、个人报名共24人,经组委会审定,同意15人作为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候选人。제3계전구"보이차10대걸출인물"후선인유제9계중국보이차절조위회평선활동주비처제명추천、상관협회제명추천、개인보명공24인,경조위회심정,동의15인작위제3계전구"보이차10대걸출인물"후선인。

根据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评选办法, 2009年11月18日15:00-17:30时,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评选委员会在云南普洱电视演播厅举行全体评委会议, 17位评委委员以无记名投票方式,从15名候选人中选举产生了10名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他们是(以得票多少为序):근거제3계전구"보이차10대걸출인물"평선판법,2009년11월18일15:00-17:30시,제3계전국"보이차10대걸출인물"평선위원회재운남보이전시연파청거행전체평위회의,17위평위위원이무기명투표방식,종15명후선인중선거산생료10명제3계전구"보이차10대걸출인물",타문시(이득표다소위서):

아래 제 9회 중국 보이차절 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제 3회 세계 보이차 10대 인물 선정의 결과 입니다.

17명의 선발위원들이 추천된 24명의 후보들 중에서 무기명으로 1차로 15명을 선발하고 다시 최종적으로 10명을 선발하여 발표한 명단입니다. 순서는 득표순이라고 합니다. _()_

盛 军 云南农大党委副书记、副校长, 教授、博士生导师,普洱市委常委、副市长。

성 군 운남농대 당위부서기、부교장, 교수、박사생도사, 보이시 위상위、부시장。

闫希军 天士力集团董事长、博士。

염희군 천사력집단 동사장、박사。

李师程 云南民族茶文化促进会会长、教授。

이사정 운남민족차문화촉진회회장、교수。

张国良 世界中文报业协会主席、中国茶文化国际交流协会副会长、香港文汇报原社长、全国政协委员。

장국량 세계 중문보업협회 주석、중국차문화 국제교류협회 부회장、향항 문회보 원사장、전국정협위원。

陈凯希 马来西亚海鸥集团总裁。

진개희 말레시아 해구집단 총재。

张奇明 上海大可堂文化有限公司董事长。

장기명 상해 대가당 문화유한공사 동사장。

陈国昌 广州市芳村南方茶叶市场有限公司董事长、南方茶叶商会会长。

진국창 광주시 방촌 남방차엽시장 유한공사 동사장、남방차엽상회 회장。

曹冬生 日本东洋医学研究所所长、国际普洱茶流 通商会会长。

조동생 일본 동양의학연구소 소장、국제보이차류 통상회 회장。

焦家良 云南龙润集团董事局主席。

초가량 운남 용윤집단 동사국주석。

邹炳良 云南省海湾茶业有限公司高级工程师。

추병량 운남성 해만차업유한공사 고급공정사。

热烈祝贺以上10位候选人当选第三届全球"普洱茶十大杰出人物"。希望他们在今后工作中再接再励,为推动科学普洱发展、弘扬普洱茶文化、做大做强普洱茶产业作出更大贡献! 열렬축하이상10위후선인당선제3계전구"보이차10대걸출인물"。희망타문재금후공작중재접재려,위추동과학보이발전、홍양보이차문화、주대주강보이차산업작출경대공헌!

特此公告 특차공고

第九届中国普洱茶节组委会 제9계중국보이차절조위회

  2009年11月18日 2009년11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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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취다헌 카페 / 글: 죽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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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대한 담론은 앞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아도 더 이상의 특별한 모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자료는 나올만큼 나왔다. 여기서 기존의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는 보이차에 대한 자료적인 접근에 가능한 사람은 중국인으로서 전문 차학자이거나 언론만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대만과 홍콩의 차시장에서 거래되는 차를 구매해서 마셔보지 않았다면 현실과는 [사진, 대만 보이차 전문점에서 차를 내는 모습] 동떨어진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실제 홍인을 차의 수준별로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급의 다른 차들도 다양하게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과의 대화는 같을 수가 없다.

즉 흔히 골동보이차에 대해서는 죽천향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박창식 선생님의 의견을 믿고 있다. 위에 말한 인급, 호급의 모든 차들을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이고, 늘 중국의 실제 동향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에게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블로그에 여러사람의 글을 비교해서 올려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르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석우여담에 올려본다.

아래 글의 원본 보기 http://blog.daum.net/36254598『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易武茶山)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즉 지금의

맹해차창(勐海茶廠) 복원(復原)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廣東省)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普洱縣)(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으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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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효능에 관심있는 분들은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마시는가? 또한 어떤 종류의 보이차가 보이차로서의 효능을 가지는가? 등등으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한국에서 누구도 그 부분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보이차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서 나보다 더 비싼 차를 마시는 사람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비싼 차가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하면서 혼동 속의 보이차 시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작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과학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말로 할 수 없기에 그냥 많이 마시면 되겠지 하는 초보자들의 공통된 심리가 보이차 시장의 왜곡을 함께 안고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데파트 뒷길에 위치한 산다원(대표 김성진)이라고 하는 차와 차도구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있다. 여기서 차라고 하면 일본 말차와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 차도구를 취급한다. 일본 차도구는 보급품에서부터 높은 수준까지 취급하는 곳이다.

 

[사진 위, 삼다원은 10월 경에 이사를 간다]

항상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주인의 찻자리 앞에는 차가 담겨있는 자사호가 5-6개 있다. 보이차라도 같은 차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호 하나에 매일 같은 종류의 차를 새로 넣고 하루 2-3탕 우려 마신다. 마실 때도 당일 차를 마신 후 어제 넣고 마신 차 등으로 지난날에 마신 다호에 끓인 물을 넣고 음미한다. 토요일에는 한주 동안 마신 다호 안의 차를 큰 호에 가득 담아둔다. 또 그렇게 해서 하루 동안 그 차의 맛을 본다. 토요일 퇴근 때는 그 차의 찌꺼기를 담아서 집에 가지고 간다.

  월요일에는 또 새롭게 시작한다. 이렇게 마실 수 있는 차의 공통점은 차의 품성이나 성질이 좋다는 것이다. 즉, 좋은 차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 향기를 간직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동안 하루 2-3탕씩 우려낼 것이 없다.

  이번 만남에서도 80년대 후반의 차, 98년도에 만든 차 등등을 시음하고 왔다. 마시는 차에도 선수들끼리 이야기하고 마시는 차가 있다. 포장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 자체를 두고 말한다. 이 차가 '야생보이차'니, '고산차'니 하는 말이 필요 없다. 사람이하는 말이 아니라 차가 말을 한다. 건강한 차의 공통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차의 기운으로 말이다. 차를 담아내는 다호는 말할 것도 없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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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관한 책을 국내에서 발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이나 지방에서는 보이차에 대한 깊은 식견을 나누고자 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책을 한 권 낼거다’는 말도 하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보이차에 대한 책은 전무하다. 물론 번역서 출간은 간간히 있어 왔다.

2007년 여름에 광주에 사시는 박용모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 보이차에 대한 책을 한 권 내시지요?” 하고 권유해 보았다. 박 선생님은 자신이 번역서로 출간이 되어 있고, 또한 보이차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중국차를 번역해서 하는 일인데 굳이 나의 저서라는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럴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일견 맞는 말이다.

이번에 개인의 저서 형태는 아니지만 ‘글을 읽다’에서 <보이차 수첩>이 발행되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참 잘 엮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개하는데 약간 머뭇거리게 된 것은 이 책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했고 약간의 실체가 드러날 때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어제 그 출판사의 내용을 잘 아시는 건국대학교 정기웅 교수를 만나면서 실제 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신대학교 교수인데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에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출판사 엮음으로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서문에서 밝힌 중문과 조재송 교수님으로 보인다.

이 책은 보이차의 역사, 보이차의 명칭, 분류, 보이차의 저장, 효능 등에 대해서 중국에서 발행된 책을 중심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이차를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 단원마다 팁을 달아서 [보이차의 제다 과정], [보이차와 차의 성질], [녹차의 항암 작용, 카테킨], [보이차의 극품 ‘반장’] 등을 박스처리하여 편집되어 있다. 책의 판형이 작아서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내용에서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주관에서 올 수 있는 차이로 볼 수 있다. 보이차는 정답이 없다. 그 없는 정답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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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맛은 일상의 음식에서 찾는 것과는 다른 맛이다. 차에 대한 초심자인 경우는 보이차의 이름만 가지고는 맛의 특징을 찾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보이차의 마니아라면 흔히 말하는 옛날 골동급의 보이차는 그 이름만으로도 고유의 맛을 알 수 있다.

보이차의 맛을 논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좋은 차를 많이 마셔본 경험을 통해서 일것이다. 거대한 자연 환경에 순응해서 나오는 찻잎을 보며, 마음으로 인사 나눌 수 있고, 차를 만드는 현장에서 찻잎의 변신을 보며, 차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보이차는 다른 녹차나 백차, 홍차와 달리 발효가 잘 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고 보낸 세월만큼 차는 정직한 [람인산차를 내는 김경우 대표]                                    맛을 내어준다. 요즘은 흔히 골동보이차라고 하는 차의 유통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재현해 오는 차라고 볼 수 있다. 재현한 차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옛날 차의 특징을 내는 그 차 고유의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로들면, 옛날 보이차 중에서는 유독 홍인을 재현하여 만든 병차, 산차들이 많다.

[사진 위, 포장된 차는 람인산차(藍印散茶)]]

그런데 재현한 사람들이 과연 홍인을 한번이라도 맛 보고 재현하였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홍인은 고유의 향과 맛이 있다. 홍인 고유의 대표적인 맛이라면 고삽미(쌉쌀한 맛)가 상당히 풍부하다. 고삽미는 세월을 거쳐 잘 익어 장향이 풍부하며 마시고 난 후 혀밑에서 올라오는 맛과 여운들이 보이차의 진미를 느끼기엔 손색이 없는 보이차의 대명사이다. 이런 차를 두 사람이 조용히 맛을 음미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6월14일 오전 11시 30분에 명가원에 도착했다. 휴일 이 시간 쯤에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늘 만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휴일마다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휴일에 나가는 날에는 만나게 되는 확률이 많다. 오늘도 그분이 오셨지만, 손님이 계셔서 우리만이 통하는 이야기를 못하게 되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대만에서 들여온 봉황단총 차를 김사장과 둘이서 마셨다. 나도 일어날 시간이 되어 카메라 가방을 챙길 즈음에 김사장이 오늘 맛있는 차, 진하게 한 잔 할까요 한다. 그러면서 ‘남인산차’라는 큰 글씨가 있는 봉투를 꺼내어 차를 다호에 넣었다. ‘람인산차’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병차는 보았지만 산차 형태로는 처음이라서 차의 출처를 물었다. 김사장은 원래 이 차가 대만에서 올 때는 황인이라고 들어왔는데 차 맛을 보고 남인 고유의 특징에 더 가깝기 때문에 “람인산차”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차에서는 요즘 만나기 어려운 잘 익은 고삽미가 입안 가득한데, 홍인에서 나는 고삽미와는 분명히 달랐다. 홍인에서 나는 강렬한 맛보다 한 옥타브 낮은 것이 람인의 특징이며 이 차에서 나는 이러한 고삽미도  남인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람인산차"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과거 2-3년 전만해도 농익은 고삽미가 나는 차를 접하는 기회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만나기 어려운 차였다. 모처럼 차의 이름과는 상관없이 홍인이든, 남인이든  “람인산차”라고 하는 차 맛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차가 귀하다고 해도 인연에 의해서 만날 수 있고, 외국에서 차 이름이 잘못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와도 안목있는 사람에 의해서 바르게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은 최근 5-6년간 중국차 붐이 생기면서 중국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고 더 깊은 내용을 다룰 수있는 인프라가 응집되어 나온 차계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위, 명가원 김경우 대표: 차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차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끼리는  모든 것이 간소하다. 이 날도 차와 다호, 찻잔 만이 그 차의 풍미를 극도로 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차를 내는 사람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에 대한 것으로, 차의 진정성을 알고 마시는 사람들의 찻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풍경의 하나이다]

차는 공간적 보존 상태에 따라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체험 뿐만이 아니라, 차농의 힘겨운 삶과 따뜻한 세상을 모두 느끼면서 차가 지닌 세월이 안겨 주는 맛, 함께 나누는 맛을 음미하게 된다.

오늘 마신 이 차 보다도 더 좋은 차들이 많이 있지만 우린 항상  “가격대비” 품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이 이해될 수있는 가격으로 형성되고, 신뢰와 믿음으로 차를 선택한다면, 이 차는 가격 대비로 병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차 맛을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나의 브랜드를 가진 차 맛을 경험하는 과정은 새로운 맛을 즐기는 여행과 같다. ‘람인산차’를 관념적이거나 감성적인 맛이 아닌 고삽미가 풍족한 울림의 맛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2000.06.14 15:00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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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넷북에 프로그램을 새로 깔기 위해서 평소 잘 아는 컴퓨터업에 종사하는 분께 전화를 드렸다. 원래는 테크노마트 부근에 사무실이 있는데 지인의 일을 봐주기 위해서 가산전자시장에 있는 유니온이라는 건물 C동을 찾아 나섰는데, 놀랍게도 찾아간 사무실이 고천 짱유화 교수의 연구소 옆 건물이다.

외부에서 보면 별동으로 보이지만 내부에는 통로가 연결되었다. 넷북에 프로그램 까는데 4-5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 들어오라고 하며, 2시부터 수업이라서 1시간 여유가 있다고 한다.

연구소 사무실에는 인사동에서 자주 뵙는 조 선생님이 계셨다. 그 분도 이 부근에서 일을 보시다가 들르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 사람이 차를 마시게 되었다. 현재 마시고 있는 차가 무슨 차냐고 물어보니 보이생차라고 하신다. 습관적으로 언제 만든 것인가요 하니까, 금년에 만든 차라고 하면서 짱유화 교수는 이 차는 조금 전에 3번 우려마신 것인데 새로 차를 넣어서 마시자고 하시며 차를 작은 개완에 넣는데 보니까 햇차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햇차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생각은 찻잎의 색상이 진한 갈색으로 변한 것이 많은 것 때문이었다. 어째 색상이 2-3년 된 것 같습니다고 했다.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차나무 수령이 1200년 된 것인데 높은 지역의 밀림에서 자라는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는 평소 차를 진하고 농하게 마시는 습관이 있고 짱교수도 잘 알고 있는 입장이기에 맛을 제대로 낸 것을 마셔봐야 안다고 작은 개완이지만 가득 넣고 우려내었다. 흔히 노차에서 말하는 바디가 있다고 하는 표현을 보이생차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조심스럽다. 단 맛도 담백하게 돌면서 여러 차례 우려내어도 같은 맛이다. 차의 색상이 짙은 것은 쇄청 모차로서 햇볕에 오래도록 잘 말린 것이라 한다. 모든 차가 다 그런 것이 아니라 고산지에서 큰 나무들 사이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받는 특별한 생장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카테킨의 성질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2시 수업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의 가방과 도람에 가지고온 다완에 말차를 정성들여 타서 차실에 가지고 온 학생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면서 한 잔 드세요 하는 것이다. 현판에는 짱유화보이차연구소라 하지만 차실에서는 다양한 차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에 대한 선입관은 버려야 한다. 특히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학문적으로 다듬고 있는 시기로서 먼저 알았다고 그것이 유일한 정보라고 하는 것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과 중국 대만에서 동시에 아는 소식이고 정보이다.

우리는 보이차에 대한 실체가 부족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차의 외형과 맛을 구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구분한 맛 이외에 또 다른 구분이 요구될 때가 있을 것이다. 훗날 차를 취급하는 곳에서는자신이 한 말 때문에 차의 세계가 좁아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09.06.0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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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황기]

사람들이 음식물이나 식품을 구매할 때 많은 인자들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인자들을 품질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음식을 먹어서 결코 병이 나거나 설사하거나 중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위생 안전 품질이다. 또한 영양이 없어서도 안되며, 심지어 효능 성분이 있으면 더 좋다. 따라서 영양 보건 품질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위생적이고 영양가가 있어도 맛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감각기과 품질도 품질의 중요한 항목이 된다. 따라서 식품 품질은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위생 안전, 영양, 감각기관이 좋아하는 만족도를 나타낸다. 만족도가 높을수록 품질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대만 중대과기대학 식품과학기술연구소 구소매 교수의 논문>

요즘은 차의 대명사로 녹차가 아니라 보이차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보이차를 만병통치약 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지만 사실 유통과정에서 왜곡되는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보이차가 품질이 나빠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 대만의 식품과학기술연구소 연구 결과의 논고를 올려놓았지만 건강한 차의 경우에 보이차의 불신, 중국차의 불신을 막아주는 방패역할을 하는 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반면에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차를 연구하는 사람의로서 노파심에, 당부하는 마음으로 약이 아니라는 것, 절대 맹신하지 말자는 뜻이다. 무조건 많이 마신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보이차가 좋다고 다호안에 차를 넣어두고 24시간 이상 방치하거나 의도적으로 차를 넣어두고 다음날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필자도 4-5년 전에는 좋은 차를 마실 때,

보이차 강성을 모 상인의 가게에서 15일 동안 시험적으로 2-3일에 한 번씩 마시고 또 물을 넣고 2-3일 지나서 마시고 하는 방식을 취한적이 있었다. 객기로 하는 것은 몰라도 좋지않다. 어디까지나 식품이고 기호품이다. 맹신은 금물이며 잘 못하다간 사람의 건강 정도에 따라서는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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