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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엽한 차

2월 16일 중국으로 들어와서 줄곧 운남에 머물면서 올해도 변함없이 여러 차산을 다녔습니다. 올해 봄차의 특징으론 우선 다소 심각했던 가뭄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실 작년을 제외하면 지난 몇 년간 계속 가뭄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일 년이 우기와 건기로 나뉘고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운남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하면 봄에 비가 적은 것은 당연합니다. 매년 1월부터 4월까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5월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됩니다.

올해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러한 연속성이 이어진 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작년이 예년과 달리 비가 너무 많았던 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생산량이 많았기에 상대적으로 올해는 급감한 느낌이 들지만 매년 통계로 나타나는 생산량의 변화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올해는 일부 지역의 경우 봄차 생산량이 평년의 30% 도 안 된다고 합니다. 저희도 경동 지역의 단주차는 찻잎이 부족해서 선입금을 받았지만 결국 생산할 수 없었고, 경동과 석와 지역은 작년 봄 고수차를 일부 섞었음을 밝혀 둡니다. 이무 쪽 고수차 생산량은 확실히 줄었고 기타 지역의 차농들 이야기는 보통 작년의 절반 수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산량의 편차는 차밭이 위치한 지형과 토양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원시삼림 속에서 잡목들과 어우러져 적당한 그늘이 형성된 곳, 비탈진 지형의 계곡 아래쪽 그리고 수원이 가까이 있는 차밭은 웬만한 가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늘이 없는 평지 차밭 그리고 주변에 잡목이 없고 밀식 재배된 곳, 바위와 돌이 많고 마사 토양으로 이루어진 차밭은 가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차의 품질은 다소 덜쑥날쑥합니다.

좋은 것은 아주 좋고 아닌 것은 영 아닌 차들도 많습니다. 어느 해보다 좋은 차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생산된 차들은 탕 색이 흐린 경우가 많습니다. 가뭄이 심한 해에 생산된 차들은 잎 속의 수분이 적어서 가공 중에 쉽게 파괴됩니다. 특히 살청과 유념이 까다로운데, 첫 탕을 우려 보면 가공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잎이 많이 파괴된 차는 탕 색도 탁하지만 쓰고 떫은맛이 단번에 우러나기 때문에 첫 맛은 강하고 내포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년에 들어서면서 유명 지역이라도 차밭을 구분하는 경향이 뚜렸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고수 단주 등 차나무의 굵기로만 구분하다가 점차 차맛을 알아가면서 차나무의 품종과 생태환경 그리고 토양 등의 중요성을 인식한 탓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같은 마을이라도 차밭의 위치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고 찾는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결국 올해 마흑의 석문감 단주차는 채엽할 수 없었습니다. 석문감 차밭 중에서 큰 감람나무가 있는 곳을 석감1호 차밭 등으로 구분해서 매년 일정량의 원료를 확보하곤 했는데, 나중엔 차밭 주인도 그렇게 부르더니 올해는 특정 상인이 제가 지목한 차밭의 생엽 가격을 훨씬 높게 책정해서 모두 가져갔다고 합니다. 제가 분류한 차밭이고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차농 입장에선 경제적 가치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가지 특징은 매년 오르기만 하던 고수차 가격이 올해는 약보합세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몇몇 유명 지역의 차들은 여전히 부르는 게 값이라지만 말만 풍성하지 실제로 제값 받고 거래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년보다는 생산량이 확실히 줄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불경기 등의 영향으로 중국 경제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차 업계에도 당연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당분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올해는 보이차 업계의 큰손들도 주춤한 상황입니다. 생산량이 준만큼 모차 소비량도 대폭 줄었기에 가격이 상승할 여력이 없습니다.

석가명차 오운산 맹해지점

멍하이 쪽 여러 차창에는 방송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인터넷 업체들이 난립했다가 봄차가 마무리되면서 그들도 철수하는 분위기입니다. 일종의 쇼핑몰 형태로 운영되는데 '왕홍(网红)'이라고 부르는 이름난 연예인을 내세워 하루에 수십억 원어치를 팔았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반품률이 절반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현지 차농이 서툴지만 꾸준하게 정직한 제품을 소개하는 곳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상한 차를 이상한 가격으로 소개하고 '떴다방' 씩의 한탕주의가 접목된 판매 방식은 차 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인정받는 차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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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주인(최해철)

 

므장미띠펑황워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한 시간 삼십분을 달려 닝얼에 도착합니다. 닝얼은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부터 보이차가 이곳에 모여서 전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 이름을 따서 보이차로 불렀다는 지역적 명칭의 유래지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30분 거리에 나커리(那柯里)라는 곳이 있는데 차마고도를 오르내리던 마방들의 큰 객잔이 있던 곳으로 최근에 시에서 새롭게 단장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보이차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2007년 원래 스마오(思茅)시 푸얼현이었던 것을 스마오시 자체를 푸얼시로 바꾸고 푸얼현은 그냥 닝얼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지요. 푸얼의 영토 확장이랄까요?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중국이니까 가능한 일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그럼 왜 푸얼이 닝얼로 바뀌었냐고 물어보았는데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정부에서 하는 일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기 참 쉽죠...

 

나중에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1900년대 초에도 푸얼이 닝얼로 바뀐 적이 있고 이후에도 몇 번 왔다 갔다 했네요!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름은 닝얼로 바뀌었지만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옛 시조 한 구절이 떠오르는 이름 바뀐 푸얼의 옛 거리를 잠시 걸어봅니다. 곳곳에 아직도 푸얼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간판들이 보입니다. 시가지 한복판에 우뚝 솟은 보이차 기념관이 있습니다. 내부 계단으로 오층까지 오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층층마다 보이차 관련 기록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해는 저물고 쿤밍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여정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저녁으로 소고기 샤브샤브에 바이주 한잔을 겻 들여 든든히 먹고 근처의 호텔에 투숙합니다. 이곳에서는 최고급 호텔이라는데 요금이 삼 만 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목적지인 쿤루산(困鹿山)으로 향합니다.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우기인지라 비만 안와도 기분이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건 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한 달 내내 비 맞고 돌아다니다보니 비만 오면 살짝 이상해지는 느낌입니다. 속담에 비 맛은 중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자꾸 입에서 중얼중얼 이상한 소리가 나오려고 합니다. (스님한텐 죄송한 표현입니다...)

 

쿤루산은 푸얼차구 중에서도 차 가격이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지역입니다. 중국의 유명 배우가 천년 야생고수차를 한그루 입양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닝얼에서 한 시간, 산길이지만 비교적 포장도 잘되어 있고 경사도 심하지 않습니다. 차산 길이 이정도만 되면 관광버스도 다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차가 다니는 길 중에 이정도로 나쁜 길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 봄차가 출시되기 전에 그동안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모든 차농에게 일괄적으로 봄 고수차 3kg씩을 샘플로 발송해달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가 멍하이에 있으므로 근처의 차농들은 직접 샘플 차를 가지고 가게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고, 푸얼이나 린창(臨凔) 등 멀리 있는 지역에서는 먼저 전화를 하고 샘플 가격을 입금한 후 차를 보내주곤 했습니다.

 

모든 차산을 방문하고 시음을 한 후 샘플이라도 가지고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봄차가 출시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참고로 매년 이렇게 모인 차들은 연말에 오운산 기념병으로 제작합니다. 오늘 방문하는 쿤루산의 차농도 그때 상담 후 차를 발송해준 친구인데 차농사를 시작한지는 4년밖에 안된 젊은이입니다.

 

현재 유명 차산의 많은 차농들이 그렇듯이 옛날엔 도시에 나가서 일하다가 찻값이 오르면서 귀농한 케이스입니다. 올 봄에 상담할 때 고수차는 너무 비싸서 생태차로 3kg만 보내 달라고 했는데 고맙게도 고수차도 조금 같이 보내주었습니다. 한 창 차철이라 여러 가지 차들을 매일 같이 시음하곤 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맛이어서 이번 기회에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황지아짜이(皇家寨) 차밭 바로 앞에 자동차를 세웁니다. 젊은 친구가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악수를 하고 고개를 차밭으로 돌리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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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같이 지내는 거위

 

멍하이 일기 5

오늘은 짐승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종종 작은 돼지 새끼들을 만납니다. 소수민족 집에서 기르는 것들인데 거의 방목입니다. 멍하이 대로에서도 소나 염소 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 생각엔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중국 특유의 여유로움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돼지 풀 뜯는 소리하지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실제로 멍하이 에서는 돼지가 풀을 뜯어 먹고 삽니다...길가의 잡초나 흙, 뿌리 등을 닥치는 대로 먹고 나대지 등에서 뒹굴고 있는 동과주라고 부르는 체형이 작은 돼지입니다. 육질이 졸깃해서 수육을 하면 좋고, 숯불에 구워 먹어도 아주 맛있습니다.

 

후이꽁신짜이(回貢新寨)”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차산을 다니다보면 흔히 신짜이(新寨), 라오짜이(老寨)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말 그대로 이해하면 노채(老寨)가 원래부터 있었던 마을이고 신채(新寨)는 나중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일 것입니다. 노반장도 마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반장이라는 마을이었는데 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 지역 근처에 새로운 마을이 생기고 이름을 달리할 필요성이 있어서 신반장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부터 있었던 반장마을은 노반장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한가롭고도 평화로운 이 마을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온 후에 모든 상황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다만 한가지 이놈의 닭울음소리 때문에 종종 귀한 새벽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 (니는 울어라 나는 잔다)지만 한 때는 신경이 예민해 져서 이놈의 달구새끼들 새벽 안와도 좋으니 매가지를 팍 비틀어 가지고 패대기를 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예상 못한 복병을 만났던 셈이지요! 거의 매일 아침 일곱 시에 나가서 이산 저산 헤매다가 밤 열두시가 되어서 들어오는 일정이라 새벽잠이 보약인데 촌닭들의 합창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면 만사가 괴롭기도 했답니다.

 

어릴 때 외갓집에서 우연히 목격한 돼지 도살하는 장면이 꿈자리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공포가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이지요. 능숙한 도살 꾼은 숟가락 하나로도 간단히 돼지를 기절시키고 기타 작업을 하는데 그때 그 무식한 도살 꾼은 헴머로 도대체 몇 번이나 돼지 대가리를 후려치는지 나중엔 자기도 지치고 구경꾼도 지칠 때 쯤 더 이상 돼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더이다.

 

여기서는 아예 기절시키지도 않고 그냥 송곳 같은 걸로 목을 땁니다. 돼지는 당연히 죽는다고 꿱꿱거리고 곁에서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세숫대야 같은 걸로 피를 받아 냅니다. 잔인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렇게 기른 짐승이므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네시 어스름하게 그리운 닭울음소리가 들립니다...더불어 오리, 거위, 돼지들도 함께 꼬끼오~끼오끼오, 꽉꽉, 꿱꿱, 꿀꿀... 이놈들의 합창은 밥 때가되면 더욱 요란합니다. 주인이 먹이를 주고나면 좀 잠잠하다가 다 먹고 나면 또 한바탕 패악을 부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절이나 큰일이 있고 나면 이놈들이 비교적 조용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이 제일 시끄러운 놈부터 ...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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