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차(茶, tea)를 전문적으로 마시는 사람을 속칭 “차꾼”이라고 한다. 꾼이라는 표현은 무리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느 분야나 일에 많은 경험을 가진 이들의 수식어로 따라 붙는 것을 보면 차꾼이라는 표현은 전문가라는 딱딱한 대명사보다는 친근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런 차꾼들이 마시며 평하는 차들은 차 자체를 두고 정석으로 규범에 맞춘 차만을 선호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마치 오랜 경험을 가진 박물학자가 잘 빠진 백자병을 두고서 밋밋하다 하고 유구한 세월 속에 이지러지거나 또는 완성형이 아닌 기물을 두고 명작이라 품평하듯이 그것은 나의 차생활 속에서 주변인들과 함께 스스로 느끼는 문제이다

무이암차를 아주 좋아하는 차꾼들이 모여서 볼 수 있는 경우를 예를 들자면 암차의 경우 혼자 마실 때나 여럿이 모여 마실 때 아주 농도를 진하게 해서 마시는데, 그 방법이 다호에 차를 무조건 가득 넣어 우려마시기 보다는 건강한 찻잎을 차호에 넣기 전에 차통에서 가루같은 부서진 찻잎을 모아 넣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진, 다진원 제품의 특세작 녹차]                        그것이 없을 때는 일부러 차를 분질러 꺾어서 다호

안쪽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건강한 찻잎을 넣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차의 가루나 부스러기가 물을 붓게 되면서 위로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다호 가득 차를 넣고 물을 넣어 우려내면 정말 암운의 향기가 입 안에 가득하다. 아주 진한 차 맛을 즐기는 이들이라 이상스럽게도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마시면 차 맛을 느낄 수 없는 농한 차맛 아닌가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맛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지난 9월 중순, 창원 중앙동에 있는 삼소방(대표 이창희)을 예고없이 방문한 적이 있다. 자리에 앉아서 처음 마신 차는 10년 정도 보관된 목책철관음이었다. 차를 마시고 엽저를 보며 지난 세월의 제조 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우리는 저녁을 먹게 되었다. 돼지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삼소방으로 와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이 사장은

“우리나라 녹차인데 햇차는 아니지만 진하게 해서 한 번 마셔볼람니까” 하고 필자에게 물었다.

“이맘때는 잘 만든 묵은 녹차 잘 마시는 것도 복인데 녹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는 백자 다관 뚜껑을 열고나서 친근한 분위기에서 다칙을 사용하지 않고 뜯어져 있는 봉지의 입구를 틀어서 툭툭 눈대중으로 털어넣는다. 좀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돼지고기 먹고 녹차 진하게 마시는 것도 괜찮아요” 하며 뜨거운 물을 따른다. 모든게 개량적이지 않지만 오랜 습관으로 차의 양이 많으면 물로 그기에 물의 온도를 차를 따르는 시간을 이것이 종합적으로 팽주의 판단에 의해서 차가 우러나온다.

나는 첫 마디에 “이야! 아주 농하면서 우리의 옛날 녹차 맛이네!” 라고 했다.

우리의 옛날 조선조의 녹차 맛이 어떤 지는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말한 옛날 녹차 맛이란 20년전 부산에서는 차(茶, tea)라고 하면 녹차를 말하고 5월이면 당연히 하동 화계차공장을 방문하고 보성 차공장에서 하루 밤을 아이들과 함께 자면서 회원들과 밤새 차마시고 놀면서 마셨던 그 당시의 바로 그 맛이었다.

요즘 같은 과학적인 잣대로 재는 차품평의 맛이 아니라 멍석에서 주름진 손으로 투박하고 거칠게 다루어 나온 녹차. 당시의 향기 짙은 그 맛이다.

우리는 어느 새인가 그런 녹차의 향기가 그리워진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고 또 당시에 처음 접한 우리 차의 흥취를 미각이 붙잡고 놔주질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날 이창희 사장이 낸 차는 거칠게 만든 것으로특세작이라고 붙어 있는 작설차에서 그 예전의 우리 찻자리가 그렇게도 아련하게 생각나는 것이다.

그 때 마셨던 차 한 통을 가져와 집에서 우려마셨다. 요즘 품평이라는 잣대와 표준이라는 형태, 탕색은 규범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20년 전 화계 녹차를 즐긴 사람들의 손 맛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차의 외형이 고르지 않고 유념이 거친 것을 이사장이 몇 번이고 보완해달라고 했지만 주인 할머니는 자신의 방법으로만 만들고 있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도 변하고 차도 많은 변화를 강산 두 번 뒤집어 지면서 또 변하고 변했다. 그러나 차맛은 어릴 적의 입맛이라 당시 처음 입에 접한 감동은 평생가는 법. 할머니의 차맛을 다시금 우연히 느끼고 나서는 “아! 이렇게 차들이 변했구나!”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찻잔에 담긴 옛날 우리식 녹차의 모습과 향을 맡으며 또 나는 그 세월을 거슬러 당시의 백열구 아래 앉아 있음을 발견한다.-

PS: 거칠게 찻잎을 다루면서 만든 차의 주인은 김복순 할머니라고 한다. 하동 녹차를 만들어온 효시와 같은 분의 이름과 같다. 과거 김복순(고인) 할머니가 만든 집에서 차 만드는 일을 했고 여러 집에서 찻일을 도와주다가 독립적으로 차를 만든다고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
반응형

지난주 토요일 부산에서 이영자 선생님의 “보이차 다예” 책 출간을 위한 마지막 협의를 마쳤다. 이선생님은 창원에 있는 삼소방에서 생산된지 20년이 지난 봉황단총을 구했다고 해서 차 마시러 간다고 하시며, 함께 가자는 제의에 단박에 가겠다고 했다.

중국다예연구소 총무가 운전하는 승용차편으로, 창원 중앙동 소재 삼소방에 도착하여 특별한 점심을 먹고 홍차 마신 시간은 별도로 다룰 만큼의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홍차에 대한 특별한 만남이었으니 그것은 다음에 다루겠다.(아나로그 촬영이라서)

우선 식사를 잘 하고와서 삼소방에서 처음으로 마시게 된 것은 차가 아니라 원두 커피다. 요즘은 중국차 전문점에서 원두 커피마시는 일이 유행인 것 같다. [차 마신 후 화로에서 끓여 낸다]전날 부산 중앙동에 있는 중국차 전문 취급점에서 원두 커피를 직접 갈아서 한 잔 만들어 주었다. 요즘은 그만큼 원두 커피가 차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철관음 차를 마셨는데, 엽저를 보면, 찻잎이 매우 튼실해 보였다. 발효는 전통방식의 깊은 발효보다 깔끔한 청향이 나오는 맛이다. 오늘 중심 차라고 할 수 있는 봉황단총 노차를 보았다. 마른 찻잎을 보는 순간 세월을 품은 품새를 가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로선 봉황단총 차를 다양하게 촬영하고도 구분이 어려워 일정부분 포기하고 책을 내었기에 이 차에 대한 생각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진왼쪽 첫번째 이창희 대표, 봉황단총 노차와 팔선종 계화향을 마시면서] 그래서 한 눈에 보인 것이다. 또 하나의 감미로운 차향은 팔선종 계화향 차다. 이번에 마신 봉황단총 두 종류는 수준 높은 차로서 중국 현지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차다. 한국에서는 좋은 차라고 팔리는 것이 아니기에 지방에서 조용히 묵힐 수 있다. 그래서 지방에서 더 훌륭한 차를 접할 수 있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간다. 그렇다고 일일이 주인이 좋은 차라고 말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이나 입 맛이 차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지만 세월이 필요하다. 인연따라 움직이는 것이 차라고 하지만 차 꾼이 찾는 차는 분명 따로 있다. 이날 이영자 선생님 덕분에 입이 호강하였다. 문산포종 노차도 함께 마셨는데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 “세월이 많이 지난 노차”라고 촬영된 것과 같은 종류의 차로서 3년이 더 지난 차를 만나게 되었다. 자료적인 가치도 충분하였는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돌아왔다.

[차를 우려내고 끓여서 마시는 방법] 복 받은 분은 다르다고 찻자리 시작 즈음에 남자 손님이 오셨다. 예영해 선생으로 명품 라이카 똑딱이를 선보였는데 시험삼아 찍어본 사진으로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난, 필름 카메라를 가져갔기에 올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중국차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로 자신이 아는 것 만을 가지고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날도 그 말을 실감하는 하루였다. 삼소방에서 여러종류의 봉황단총과 문산포종을 음미하면서 판매용과 보관용 차가 구분되어 소장되고,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소장품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진 오른 쪽, 삼소방 윤은주 사모님] 이날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 나오지 않은 차를 보여주었다. 봉황단총 "동방홍"은 100g 정도 있어서 마시지는 못했다. 하지만 잎의 외형에서 다른 차와 확연히 차이 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팽주가 차 내는 방식을 보면 도구의 사용을 매우 적절하게 잘 하는 것 같다.

상인이라서 보다는 중국차 한국차에 대한 공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였고, 더군다나 스스로 차를 즐기는 꾼이기에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우려마신 차를 끓여서 마시는 것은 흑차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차 내기다. 손님은 그래서 한 수 배우고 갈 수 있다. 말이 필요없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대만산 알콜 화로의 쓰임이 가장 적절하게 사용된 것 같다.

- 맨 앞에 나오는 사진은 봉황단총이 아닌 자다법으로 마시는 '보이긴차'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
반응형

창원시 중앙동에서 20년 이상 중국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삼소방 이창희 대표를 6월 4일 만나게 되었다. 이영자 선생님의 책 "보이차 세계"에 삼소방 이창희 대표의 사모님이 긴차 다예 표연부분에 나오게 되는데 사진 촬영문제로 의논하러가게 된 것이다. 오후 6시30분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가게로 걸어가는 저 쪽에 환하게 비추고 있는 삼소방 간판은 창원지역 뿐아니라 중국차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테이블 옆에는 목책철관음이 있었다. 최근 불경기로 중국차 전문점에서 목책철관음 두등을 쉽게 볼 수 없는 차가 20통이나 있었다. [삼소방 이창희 대표]                             요즘같은 어려운 시기에 20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요즘 차시장 경기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안부 인사겸, 앉자마자 물었다. 여기 두등이 20통이나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아... 목책철관음 그 차는 3일전에 40통 들어왔는데 20통은 팔고 남은게 20통이다고 하였다. 놀라운 일이다. 대만에서 봄에 만든 목책철관음은 공정한 심사로 특등, 두등 삼등 등으로 등급이 나누어지고 공정한 값이 정해지는 것을,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으로 정확한 유통이 이루어지는 차이며 다른 차에 비에 유통마진이 많지 않은 이런 차를 이만큼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의 거래 실적을 대변해 주는것이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목책철관은 특등, 두등, 이등, 삼등, 우량으로 구분한다]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운영을 어떻게 하시는지? 허허 웃으시며 차(茶)라는 것이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든지 차를 팔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팔리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 바닦에 있어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오는 손님께 차 대접 잘 해드리는 것이 훗날 경기 좋을 때 나를 찾지 않겠어요 라는 답변이다. 뭔가 차 사업에 달관하신 분 같다.

삼소방은 국내에서 대만 오룡차 계통의 차를 많이 수입하여 판매하면서도 흑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로 천량차와 보이차를 많이 소장하고 유통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경기가 얼마나 빨리 좋아질지 모르지만 상도를 지키면서 기다리는 자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삼소방도 그 가운데서 전문점의 위상을 지켜나갈 것으로 본다. 

사장님은 편안한 찻자리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가지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다. 이 대표는 즉석에서 첫번째, 차는 차가 중심이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기본적으로 음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음식이란 흔히 차인들이 준비하는 다식으로 떡이나, 송화다식, 양갱 등과 같은 것에 국한되지 말고 차와 어울릴 수 있는 음식이 준비되어야 한다. 바쁘게 왔다고 빈속에 차를 마시면서 무슨 즐거움과 기쁨이 있겠는가?

두번째, 대화에 주제가 있어야 한다. 너무 차 이야기만 하기 보다는 대화의 소재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서로가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다. 고 한다.

요즘은 모든 분야에서 잘 되는게 없다고 한다. 차 관련 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지방에서 20년이상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뢰일 수 있다. 이곳에서 이루어 지는 다양한 찻자리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차인들에게 희망이 담긴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서 전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2006.06.04

 

 

 

Posted by 石愚(석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