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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5 멍하이 일기 47. 쿤밍 차박람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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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산차 부스

 

전시기간 동안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다른 부스들도 둘러보았습니다. 장사가 안 되면 하루 종일 부스만 지키고 있기도 곤욕스럽고 직원들 보기도 안쓰럽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차를 우리지만 판매는 되지 않습니다.

 

홍보용 책자를 500부 준비했는데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긴 합니다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엔 책자가 모자라니까 도부장은 노인들이 자꾸 와서 패지용으로 가져간다고 책자를 지키고 있다가 될성부른 사람만 골라서 책자를 줍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다소 낭비가 있더라도 그냥 두라고 타이르고 머리도 식힐 겸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어! 한국에서 우곡요 이종태 선생님이 참가 했네요. 저희 한국 가게와 가까운 밀양에 있어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입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중국에 진출하여 밀양 뿐 아니라 중국의 징더전’(景德鎭)에도 가마를 짓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은제품 등을 하는 몇 분과 함께 오셨다고 하는데, 상하이나 광조우 등의 큰 도시에서 열리는 박람회에서는 종종 한국의 여러 참가 업체들을 만납니다. 중국에서도 오지인 이 먼 곳까지 오셨는데 부디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랍니다만 최근에 사드등의 영향으로 특히 한국 상품에 대한 시장 환경이 좋지 않아서 약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대익이나 하관 등의 잘 알려진 업체의 부스에는 늘 그렇지만 손님들로 넘쳐납니다. 자리가 없어서 차한잔 얻어 마시기도 힘듭니다. 중국의 전체적인 경기는 좋지 않은 편인데도 올 초부터 차시장은 눈이 띄게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신차, 준 노차 할 것 없이 가격 상승폭이 심상치 않습니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햇차는 올해 생산량이 급감한 원인이 큰 것 같고 2005년 전후의 준 노차는 노차가 점점 희소해지면서 소장가치의 증가로 시장의 수요가 그만큼 늘어 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마침 지난번 하관차창을 방문했을 때 나를 기억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고 겨우 한 두 잔하고 다른 곳으로 가봅니다.

 

진승차창은 그냥 지나가는데 진승의 현재 사장인 진승하 회장의 아들이 저를 알아보고 붙잡아 새웁니다. 별로 할 말이 없어 그냥 인사치레로 몇 잔하고 진미호 쪽으로 가봅니다. 구명충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고 멍하이 에서 올라온 직원들이 친절하게 차를 우려 줍니다. 최근에 진미호臻味號상표권을 둘러싸고 대만 차계의 대부 격인 여예진(吕礼臻) 선생과의 법적 소송에서 구사장이 패소함으로서 진미호의 상표권은 다시 여예진 대사에게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상표권 분쟁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 드릴 순 없지만 진미호 구사장에겐 커다란 타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부터는 상표를 진자호’(臻字號)로 바꾼 차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이번 박람회는 예전 데로 진미호라는 상호로 참가했습니다. 제가 오운산을 창업하기 전까지 한국 총판을 했었고 구사장의 사람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인지라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미호는 고수차 전문 업체로 중국에서도 확실히 자리 잡은 상황이라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창태집단, 란창고차, 칠채운남 등을 그냥 눈으로만 둘러보는데 한 결같이 사람들로 넘쳐 납니다. 각 회사마다 홍보 영상물을 크게 틀어 놓고 자신들의 상표를 새긴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홍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명품관 쪽은 보통 3*3m 부스 8칸 이상입니다. 20칸 이상 되는 곳도 있는데 중국의 박람회는 일단 규모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소비심리에 기인한 것인데, 일단은 규모가 커야 되고 뭔가 시끌벅적해야만 사람들이 모입니다. 명절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꼭 폭죽을 터뜨리는 전통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박람회에는 어쩐 일인지 박람회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업체 중에 하나인 우림(雨林)’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시작하자마자 수십 명의 인원은 동원하여 박람회 한번에 오천에서 일억원 씩 지출하던 신생 업체입니다. 첫 출시 차부터 출처 불명의 차를 한편에 이백, 삼백 만원씩 팔아서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던 우림이 작년에는 이만원, 삼만 원짜리 제품들로 박람회 부스마다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전략으로 시장에 도전할지 자뭇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운산은 처음엔 두 칸으로 참가하다가 현지 상황을 고려하여 작년부터 네 칸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비용을 좋은 모차를 생산하는데 투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박람회에 맞추어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 때문에 참가를 안 할 수는 없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비교 시음할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한 칸으로만 참가하는 방안입니다.

 

종류 별로 한편 씩 정갈하게 차려놓고 현장판매는 하지 않으며 시음 후 마음에 들면 가까운 대리상이나 본사로 직접 연락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구조가 형성되는데 중국 특유의 거대 망상증 때문에 현실은 늘 녹녹치 않습니다. 한 두 칸으로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오운산은 자본력으로는 중국의 거대 업체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부분의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정직한 제품으로 소량 생산하여 오로지 품질로 승부할 도리밖에 없는데 불신과 홍보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현실은 늘 현실인지라 때론 답답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번 박람회의 경험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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