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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차 관련하여 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은 매암차박물관(관장 강동호)이 유일하다. 6300평의 다원이 조성된 이곳을 최근 몇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7월에는 두 번 방문하였는데, 5월 축제 때와는 달리 차밭 전체가 벌거숭이 같이 정지(整枝)․전정(剪定;과수의 생육과 결실을 균일히 하고 미관상 고르게 하려고 가지의 일부를 자름. 가지치기) 작업이 되어 있었다.

이맘때면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강동호 관장에게 자세히 알고 싶었다. 매암에서 하는 정지 작업은 어떤 목적으로 하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그러한 목적은 다 아는 문제일 수 있지만 일주일 전에 보았을 때는 정지된 주위에는 정지한 찻잎이 흩어져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수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 같았는데, 그때는 필름을 다 사용하였기에 촬영을 할 수 없었고 이번에는 소형 디카로 사진을 담을 수 있었기에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강동호 관장에 의하면, 첫 번째, 채엽의 편리성으로 미리 정지 작업을 해두면 수형(모양)이 잡히고 다음해에 찻잎을 채취할 때 채엽하기가 수월하다는 점.

두 번째는 매암차의 경우 무농약 무비료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순환농업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전정 작업으로 떨어진 잎이 발효가 되어 순수하게 차나무 자체 찻잎으로 퇴비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차 농가에서 전정한 찻잎을 티백용으로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정지(整枝)․전정(剪定)된 차밭]

차밭에 농약이나 요소비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정지하는 것이 비용(1회 정지 비용은 200만원)은 더 들지만, 이 방법으로 40년째 해오기 때문에 이제는 부엽토가 되어(10년이 넘으면) 생태 농업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순환농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6월말에서 7월말, 그리고 10월)하는데, 요즘은 녹차 판매가 잘 되지 않아서 이런 순환농업으로 차밭을 관리하지만, 비용은 늘어나고 수입은 매년 줄어드는 형편이라고 한다. 실제 이곳에서 과거에는 1톤씩 생산하던 것이 차 판매가 줄어들어 0.5톤 생산하다가 2009년부터는 0.3톤으로 줄었다고 한다.

[매암차박물관이 보이는 차실 마당]

이곳에서 1박 2일간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짧은 경험이지만 스스로 가치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린 학생들이 단체로 들어와 차밭을 거닐며 차 마시는 것을 체험하고, 박물관을 견학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의 견학에는 뭔가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차 판매로 농가 수익 증대는 어렵지만 이러한 문화 공간을 운영하면서 보람으로 살고 있다는 강관장의 웃음에서 문화 기획가로의 자신감을 볼 수 있었다.

부인 장효은 선생도 만났다.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에서 박사과정 논문제출기간이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그의 얼굴에서도 차에 대한 연구 방향이 뚜렷하여 좋은 논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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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다학 전공 박사 학위식에서 한국 최초로 10명의 박사 학위 수여자

2월 20일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예다학 전공자 10명의 박사 학위 수여자의 학위식이 있었다. 나는 오늘 이 일이 차문화계로는 상당히 비중 있는 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의 모습은 의외였다. 국내의 그 수많은 차 단체나 차 관련 잡지에서조차도 카메라와 수첩을 든 취재 방문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일이 나의 일이기에 개인적으로 관심 받지 못해서 서운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목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문제성만 제기하고 비평만 하고 말기엔 책임감이 발목을 붙드는 심정이라, 우선 개선책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래서 오늘을 계기로 나는 「석우연담 뉴스」라는 카테고리를 석우연담에 만들기로 하고, 그 1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뉴스라는 것의 학문적인 정의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한 분야에서 충분히 새 소식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임은 분명하기에.

차문화계의 뉴스거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누군가 새 뉴스로 생산해 내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과 같은 일이 정확하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의 빅뉴스가 묻히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나아가 이런 관심들이 더 확대되어 차문화계도 좀 더 빠른 속도로의 발전을 기대하기 위해서라는 뜻은 분명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많은 차인들이 그 ‘누군가’의 역할을 ‘내가’ 맡겠다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램을 끝으로 가져본다.

이제 석우연담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석우연담 뉴스」라는 별도의 취재도 겸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터넷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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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길령
출생 : 1961년생
현재 : 원광디지털대학교 외래교수
         청백다례원 실장
학력 :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예절다도학 전공)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문화학과(예다학 전공)
        
문학박사

<논문>
박사학위논문: 嶺南地域 不遷位祭禮에 관한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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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文抄錄

嶺南地域 不遷位祭禮에 관한 硏究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김 길 령

朱子學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유교적 예학이 강조되는 사회였다. 이에 따라 국가사회의 지도자격인 수많은 인물과 명문거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은 忠孝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와 함께 조정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있어서도 崇慕의 대상으로 이른바 不遷位祭禮를 받게 되었다.

불천위제례는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아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조상의 기제사를 일컫는다. 본래 4대조 이상이 되는 조상은 묘제의 대상이 되는데 불천위에 해당하는 조상과 그 배우자에 대해서는 영구히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다.

본 논문은 불천위제례의 성립과 전개 현상을 특히 嶺南地域을 중심으로 연구 조사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우선 영남지역 문헌가운데 불천위제례의 개념과 내용을 담고 있는 禮書를 고찰하여 그 특징을 규명하고, 영남사림의 학자들로 현재까지 불천위제례가 이어지고 있는 영남지역 종가들을 대상으로 그 사례를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불천위제례의 원형을 탐색하고 관련 문헌과 비교 분석하여 사상적 특징과 생활문화적 의의를 밝혀본 것이다. 이렇게 전개된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남지역에는 조선사회에 활약했던 사대부 종가가 많았던 만큼 禮學에 관한 수많은 문헌이 찬술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불천위제례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헌으로 柳長源의『常變通攷』(1783)에 기술된 通禮와 祭禮, 許傳의『士儀』(1870)에 포함되어 있는 如在篇, 宋浚弼의『六禮修畧』(1918)의 祭禮 부분에서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이들 문헌에 나타난 불천위제례의 특징으로서 사당은 의례를 위한 공간의 중심으로 정침이나 제청의 동쪽에 위치하였다. 또한 불천위제례를 지내기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경건하게 갖는 재계는 조상의 기운과 감통하기 위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준비절차였으며, 제구는 성실과 공경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절대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할 뿐 아니라, 남에게 빌리거나 파는 일이 없도록 경계되었다. 참례자들의 제복은 지위에 따라 구별되며 불천위제례에 참여하는 후손들은 제복을 갖추어 입고 고요한 마음으로 정갈하게 조상을 뵙는 준비를 하였다.

제수는 세 문헌 모두 해가 밝으려는 새벽인 궐명에 진설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으며, 절차는 參神, 降神, 進饌, 初獻, 亞獻, 終獻, 侑食, 闔門, 啓門, 辭神, 納主, 徹순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불천위제례의 전 과정은 후손이 조상을 섬기는 奉獻의 의례인 동시에 그것은 제례를 행함으로써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일종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영남의 지역별 불천위 현황은 안동 50위, 성주 3위, 경주 8위, 고령 1위, 현풍 2위, 함양 4위였다. 조선초기에는 국불천위, 도불천위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각 종가마다 구분하지 않고 불천위제례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천위를 모시는 것은 해당 문중이나 가문의 영예일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학덕을 갖춘 현인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자부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므로 불천위제례의 행례를 통해 유교적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본 사례조사에서는 영남지역 사림파인 고령 일선 김씨 文忠公 金宗直(1431~1492)종가, 경주 월성 손씨 蘘敏公 孫昭(1433~1484)종가, 함양 하동 정씨 文獻公 鄭汝昌(1450~1504)종가, 현풍 서흥 김씨 文敬公 金宏弼(1454~1504)종가, 안동 영천 이씨 孝節公 李賢輔(1467~1555)종가, 경주 여강 이씨 文元公 李彦迪(1491~1553)종가, 안동 진성 이씨 文純公 李滉(1501∼1570)종가, 성주 청주 정씨 文穆公 鄭逑(1543~1620)종가를 대상으로 不遷位祭禮의 행례절차를 살펴보았다.

주요 특징을 간추리면, 각 종가별 祠堂의 위치는 정침의 동쪽 혹은 동북쪽에 위치하였으며 불천위제례의 장소는 정침이나 祭廳이었다. 또한 제사를 모시기전 몸과 마음을 정결히 준비하는 齊戒에 대해, 김굉필종가에서는 3일전에 하고 있음에 반해, 나머지 7종가는 문헌에 명시된 대로 모두 하루 전에 재계에 임하고 있었다. 祭具는 8종가 모두 유기를 사용하였다.
 
祭器의 보관은 안채, 안방, 대청, 주방 등에 보관하며 하루 전 깨끗이 씻어 준비하였다. 祭服의 경우 8종가 종손의 제복은 갓 혹은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는데 소재나 색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종부는 천담복이나 한복, 평상복인 화려하지 않는 옷으로 성복을 하였다. 祭需의 경우 이황 종가에서만 4열로 진설한 반면, 7종가 모두 『육례수략』에 제시된 바와 같이 5열로 진설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종가별로 제수를 장만하는 규모와 분량은 다른 기제사와 구별되어 성대하게 준비하며 최대의 정성과 최고의 솜씨를 발휘코자 한다. 節次는 공통적으로 제상설치, 신주출주, 제수진설, 참신, 강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유식, 합문, 계문, 사신, 납주, 철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불천위제례의 대상은 유교사에 있어 성인의 반열에 선 현자나 영웅들이다. 이러한 불천위제례의 정신적 가치는 忠誠과 孝敬의 실증적 귀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불천위를 둘러싼 종가와 그 문중, 혼인과 학제는 유교적 생활의 연장선에 있고 유교의 변화와 혼란 속에서 문화생활을 지속시켜갔다. 사림과 문중이 불천위로 추대해온 수백 년의 노력이 제례문화의 상징성으로 지역의 민속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현대사회에서 불천위제례의 생활 문화적 의의를 찾는다면, 조상의 행적과 공훈을 되새기고 그 분을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귀감의 대상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孝에 대한 교육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이 된다.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화 사회에서 불천위제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뿌리의식을 고취시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또한 그것은 生과 死를 일관하여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종교적 의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아가 불천위제례는 삶과 죽음이라는 큰 관문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삶의 근원과 순환성을 알아 현실 속에서 경각심을 일깨우며, 제례에 참석하는 가족, 친지,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맡은 구실을 생각하며 나아가 질서와 조화로운 인간관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ABSTRACT

The Study o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Province

Kim, Gil-Ryeung

Dept. of korean Culture

The Graduate School of Wonkwang University

Josen dynasty which chose Juja learning as ruling spirit is a society emphasizing Confucian ideas. The Confucian ideas made the dynasty produce many celebrities and mighty clans as a leader. Since the Joseon dynasty emphasized the loyalty, they were regarded as a respectful group in court and local society. As a result, they were celebrated i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a meaningful ceremony authorized by a nation for the people who contributed to a nation or a moral person so a nation permanently preserves these people in a specific place. Originally, some older ancestors are regarded as a memorial service and some of them are celebrated permanently every deathday.

This dissertation was written for researching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province.First of all, I will examine some books including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among bibliographs related to Youngnam province and research some Youngnam families which have been succeeding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ased on such materials, I will examine the archtype of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and at the same time research some characteristics of this ceremony by comparing with other bibliographs. The results of my dissertations are as follows

First, since there were many powerful illustrious officials in Youngnam during the Jeoseon dynasty, many books related to courtesy learning have been succeeded. Among them, I referred to three bibliographs: Sangbyuntonggo(1783) written by Ryu Jangwon, Sawu(1870) written by Heo Jeon, and Yukraesuryak(1918) written by Song Junpil.

The characteristic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each bibliograph are that a shrine is the central place for the ceremony and it usually located in the East side. Cleaning one's body and spirit called 'purification' before the ceremony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is a procedure for communicating with their ancestors. Furthermore, ritual utensils which need to be preserved very carefully can not be used as other purposes and these can not be sold to others. Ritual robes are different form each position in the ceremony and descendants who participate i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prepare for the ceremony by cleaning their body and spirit through the ritual robes. The three bibliographs that I referred to in this paper show that things needed in the sacrificial service should be prepared at dawn and the procedure is as follows: Chamsin, Gangsin, Jinchan, Choheon, Aheon, Gongheon, Usik, Habmun, Gaemun, Sasin, Nabju, Cholwui.The whole procedure of the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that descendants respect their ancestors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auspicious ceremonies.

Secondly, the present condition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is as follows: Andong(50th), Sungju(3rd), Kyungju(8th), Goryung(1st), Hyunpung(2nd) and Hamyang(4th). In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divided into both Kukbulchunwi and Dobulchunwi, but now each family does not distinguish these two services. Worshipping Bulchuwi sacrificial ceremony is regarded as the pride of a family and it shows there were many sages in the area. On top of that, it also shows descendants' passion to preserve and develop Confucian culture.I studied the procedure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ased on some famous families in Youngnam province and they are as follows: the family of Kim Jongjik(1431-1492) with goryung Ilsun Kim, the family of Sohnso(1433-1484) with Kyungju Wulsung Sohn, the family of Jung Yochang(1450-1504) with Hamyang Hadong Jung, the family of Kim Guningpil(1454-1504) with Hyunpung Sohong Kim, the family of Lee Hyunbo(1467-1555) with Andong Youngcheon Lee, the family of Lee Unjeok(1491-1553) with Kyungju Yugang Lee, the family of Lee Hwang(1501-1570) with Andong Jinsung Lee, and the last family of Jung Gu(1543-1620 with Sungju Chungju Jung.

The main characteristic of each example is that each family's shrine is located in the east or northeast side. The place of the ritual ceremony is the main rome in the house and the term "purification" means one cleans body and spirit. The family of Kim Guningpil(1454-1504) started the purification procedure three days earlier, and the rest seven families did it one day. The whole eight families used brass ware as ritual utensils. Dishes used in the ceremony were usually preserved in hall, room or kitchen and these were cleaned before doing the ceremony. In case of robes, eight families wear Korean hat or black hat made of black cotton, but both materials and colors for these robes were different form each other. Especially, wives usually wore Korean clothes called Hanbok or casual clothes. In case of things needed in the ceremony, only the family of Lee Hwang arranged in forth line and other families did it fifth line as the book. Yukraesuryak(1918), indicates. Each family carefully prepared for the whole things in the largest scale because it is the most important ceremony. The procedure is ordered as follows: Sinjuchulju, Gaesujinsul, Chamsin, Gangsin, Choheon, Dokchuk, Aheon, Gongheon, Usik, Habmun, Gaemun, Sasin, Nabju, Cholwui.

Third, the focu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sage respected as a holy man, a humanistic person, or heroes. The phenomena of this ceremony is based on faithfulness and respectfulness and it is consolidated as a role model for people and descendants Family, marriage, and the education system related to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a part of Confucian life and such a valuable system have been preserved while experiencing changes in Confucian values.

Bulchunwi which many powerful ancestors have been preserved for hundreds years are now maintaining local customs as a symbol of traditional culture. If we find some value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modern life, it is educational value that many people remember their works and respect them sincerely. This meaningful ceremony makes us realize the self-existence in a nuclear family society and at the same time strengthen unity. Moreover, the ceremony links life and death. It is also beneficial because the ceremony makes us realize the true meaning of life, learn the originality of life. By doing so, we will be able to be aware of our life in a society. Lastly, the ceremony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forming harmonious relationship amo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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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논문의 초록은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예다전공 문학박사 김길령의 학위논문의 초록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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