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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청기

 

농민이 봄이 되면 마음부터 바빠지듯이 저도 요즈음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바쁜 마음에 이것저것들을 챙기고 또 챙기곤 합니다. 어제는 여러 번 망설이다가 살청 기계를 한 대 구입하였습니다. 작년에 유념기를 구입하면서 같이 살려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보류했었습니다.

 

유념은 단순한 반복 작업이라서 기계로 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 손으로 하는 것보다 일정한 압력으로 골고루 차를 문질러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청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아서 기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그날의 날씨와 찻잎의 상태에 따라 살청 방법은 매번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살청이 진행되면서 그때그때 손길에 와 닿는 느낌과 향기로 마무리 시점을 잡아야하는데 기계로 돌리다보면 이 모든 걸 자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일손은 딸리고 숙련된 일꾼을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대충대충 하다가는 오히려 기계 살청보다도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마솥 살청이 전통적 방식이라지만 다소 비 과학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도부장과 그의 아들

 

또한 숙련공이라도 새벽까지 작업에 매달리다보면 피곤에 지치고 자칫하면 가마솥의 온도와 살청 시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살청기계를 제작하는 공장을 인터넷 등으로 검색해보고 여러 가게를 방문하여 실물을 확인한 다음 최종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비교적 잘 고려하여 만든 기계를 선택하였습니다. 14000위안 달라는 걸 도부장이 깎아서 13600위안에 구입했습니다...

 

도부장은 어찌나 알뜰한지 늘 하는 이야기가 저는 가격 협상 할 줄 모른다고 핀잔을 줍니다. 어떨 땐 강제로 나를 가게 밖으로 밀어 놓고 따따부따 협상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V 자를 그리며 빙그레 미소 짓곤 합니다. 저는 성격상 보통 아니다 싶으면 안사고 말지 잘 깍지는 않습니다.

 

옛날에 어느 회장님 말씀이 저는 기다 싶으면 눈이 동그래지고 목소리가 커져서 금방 표가 난답니다. 제 나름 데로는 이런 저런 전략도 세우곤 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언어가 완전치 않은 탓인지 도부장이 보기엔 영 서툴러 보이는 모양입니다...

 

물건을 잘 모르면 비싼걸 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리는 있는 것 같아서 일단 가게에서는 제일 비싼 것으로 샀습니다. 찻잎이 닿는 철판부분이 두꺼워야 잘 타지 않고 내구성이 있을 것 같아서 우선적으로 고려했습니다. 철판을 데우는 연료는 전기, 가스, 나무 등이 있는데 사용해본 분들의 의견을 물어서 화목용 살청기계로 결정했습니다.

 

저희 집 초재소로 옮겨 놓고 어제 오늘 계속해서 시험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용으로 도로변의 대지차 생잎을 1kg8위안씩 주고 사와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러 번 반복해서 시험하다보니 이것도 찻잎인데 돈이 아까운 것 보다는 아까운 농산물을 마구 태워서 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솥의 온도를 측정해주는 온도계, 회전 방향을 결정하는 푸시버튼,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기구, 화목에 바람을 불어 솥의 온도를 높여주는 송풍기, 일정한 온도에 도달하면 송풍을 차단하는 온도조절기, 갑작스런 정전에 대비하여 수동으로 솥을 돌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까지... 제법 세밀하게 여러 상황을 생각하며 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온도계에 표시되는 온도와 실제 온도의 차이가 많은 것 같아서 공장에 물어보니 내부온도는 50~60도 높다고 합니다.

 

나 참 아까운 찻잎을 몇 번을 태웠는데, 그럼 진적에 알려주어야 하지 않냐고 하니까 중국은 원래 그렇답니다...온도계는 그저 참고만하고 각자 알아서 잘 사용해야 한답니다. 말이 기계지 나무로 불을 지피고 일일이 온도를 체크하면서 사용함으로 수동이나 비슷합니다. 다만 한꺼번에 생잎 약 30kg 정도를 가공할 수 있고 일정한 속도로 회전 운동을 하며 고르게 찻잎을 덖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이차 원료를 기계를 사용해서 가공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차도 잘 만들면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차는 차일 뿐입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창조해내는 예술 작품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차창에서는 기계사용이 이미 일반화 되었고 손으로 가공해야만 꼭 최선의 차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원료의 맛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올해는 마을에 위치한 저희 다원의 생태차 위주로 시험 가공을 해보면서 차차로 활용방안을 넓혀갈 생각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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