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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21 [아제생각] 2021년 석가명차 오운산을 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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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붑니다. 어디에서 비롯된 바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슴속에 천착한 바람의 흔적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훅 불어와 가슴을 헤집어 놓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발버둥 치며 저항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도무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바람은 결국 나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길 위에 묘혈을 팔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바람의 풍로를 결국은 인정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오래도록 준비한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바람의 행로를 따라 무작정 걸어볼 생각입니다. 인도의 빈민굴도 좋고 히말라야 설산의 오두막집도 좋습니다. 그들의 바람에 내 속에서 일렁이는 바람을 섞어보고 싶습니다. 눈물 젖어 빛나는 암염 몇 조각 삼키고 또다시 길을 떠날 것입니다. 사하라의 모래 폭풍으로 숭숭 뚫린 가슴의 흔적을 메꾸어보고 북극의 차디찬 바닷가에서 그래도 남은 바람을 얼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끝끝내 이르지 못할 열반의 땅! 작열하는 태양 아래 얼어붙은 바람을 말리고 싶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차업의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설까 합니다. 가족들을 비롯한 그동안 저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 앞으로의 저의 행로를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사업의 일선에서 완전히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장사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30년을 장사꾼으로 살다 보니 모든 게 장삿속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게 보입니다. 장사가 꼭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계산 없이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그러나 그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준 사람들입니다. 나도 그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서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때론 아름답고 때로는 서글펐던 기억들이 풍등처럼 솟구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의 자유는 그동안 살아온 삶에 저당잡혀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맥을 돌아서 심장에 모인 피가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새로운 바람을 호흡하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숨통이 터져버릴 것 같습니다.

2021년 봄 석가명차 오운산에서 생산한 차를 출시합니다. 진-선-미로 대표되는 오운산의 정규 제품들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생산을 중단할 것입니다. 2015년부터 생산해 온 차들이 대부분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재고를 줄여가면서 내년부터는 모든 차를 선주문 형태로 생산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봄 한철만큼은 저도 운남에 머물면서 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바람의 행포가 아무리 거셀지라도 제 삶을 지탱시켜준 차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동안 저희를 믿고 성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도리라고도 생각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1996년에 처음 찻집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차업은 2001년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하겠습니다. 2014년 중국으로 진출하고부터는 오로지 내가 만들고 싶은 차에 열중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천하의 잡놈이 이십여 년 차 와의 인연 덕분에 그나마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오로지 차 하나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마찬가지지만 매 순간 정직했냐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올해 참 바쁘게 여러 차산을 다녔습니다. 내가 일선에서 사업의 모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란 생각에 더 욕심을 부린 것 같기도 합니다. 뢰달산에서 올해 마지막 단주차를 생산하면서 하니족 차농이 불러주는 노래에 결국 눈물지었습니다. "내 인생은 한잔의 차와 같다" 노래의 제목처럼 애절하게 와닿는 음률이 가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바람의 혼을 불러내고 말았습니다. 올해 생산된 차들을 마십니다. 내가 원하는 맛에 근접했지만 이 맛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차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은 오로지 마시는 사람의 몫입니다.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의 운남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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