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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성주사에서 찻자리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창원 삼소방에서 듣게 되었다. 최근 창원을 몇 차례 다니면서 가까운 사찰에서 그러한 행사가 있다는 소식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지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차회 활동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사찰에서의 행사이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삼소방으로 가서 이창희 사장님과 같이 성주사에 가기로 하고 서울에서 내려갔다. 그곳에서 몇 차례 뵌 적이 있는 손님의 차를 타고 사찰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약간 추운 듯 하였는데 사찰 주변 분위기로는 차에 관한 어떠한 행사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였다.

이창희 사장은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법당에서 한다고 하신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입구에서부터 여느 찻자리의 모습과 비슷한 유형으로 자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 오른 쪽의 첫 번째 두 번째 찻자리[사진, 윤은주 님의 홍차 찻자리] 주인은 이번 일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볼 수 있는 도구의 배치와 어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찻자리를 보고 지나가는데 저 끝 쪽에서 많이 본 얼굴이기에 자세히 보니까 삼소방 사모님(윤은주)의 홍차 찻자리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앉은 면적의 3배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찰의 다도반 회원들에게 미움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자리에 참가하는 많은 회원들의 자리 배분을 볼 때 분명 튀는 자리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보수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한국차 내는 자리도 아니면서 말이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메뉴는 모두 비슷하다. 우리나라 황차라고 자랑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물었다. 왜 황차를 가지고 나왔는가 하고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답변이다. 중국 발효차는 보이차인데 보이차는 가짜가 많다고 하는 것과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녹차로 발효시킨 황차 만든 것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녹차보다는 황차를 많이 준비한 것 같다. 사이사이에는 연차도 있고 녹차를 내는 분도 있었다. 창원 지역의 사람들은 아는 얼굴이 잘 없었다. 가끔 학교 졸업생이나 학생들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조금 있으니 여자 가수 한 명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연주하는 쪽으로 사람이 모였다. 그제야 나는 홍차가 있는 찻자리에 앉아서 차를 요청했다.

삼소방 사모님은 그날 머리와 옷을 잘 갖추어 오신 것 같다. 찾아온 손님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고 차를 내는 모습이 능숙하게 보였다. 처음 마시는 차는 웨지우드 다기에 얼그레이를, 두 번째는 로얄 밀크티를 내는데 그것은 코펜하겐 찻그릇에 담아 내고 준비하는 것을 보면 홍차를 일상에서 늘 마시는 사람 같은 분위기였다. 차를 내는 중간중간에 코지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식으로 준비한 것도 홍차를 맛나게 마실 수 있는 종류로 하나하나 정성이 묻어나 보였다.

행사에서의 아쉬운 점은 홍차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차가 준비된 것처럼 한국차와 일본차 중국차도 하나의 찻자리는 조금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행사를 마치고 주지 원정 스님과의 짧은 인터뷰를 했다. 스님은 이런 행사를 12년째 하고 있는데 매년 하는 이유는, 사찰이 가지는 지역 사회의 역할에서 신도들이 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사찰내의 다도반을 통해서 부처님께 차 공양을 하고, 본인 스스로도 차를 통해서 불심이 깊어지고 문화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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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 견문록을 준비하면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많은 사진을 정리하였다. 그 가운데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북경에서 한국인이 많아 찾아가는 곳에 있는 사진 갤러리다. 중국에서 외국인이 찾기에는 어려운 사진갤러리다. 최근에 몇 년간 북경을 가더라도 반가원 시장을 가본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 그 당시의 기록물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사진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이야기 하고자 한다.

[2005년 2월에 촬영한 사진 갤러리안에서] 북경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인 큰 도시이며, 차와 관련해서는 중국 차시장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차 관련 업을 하는 사람들은 북경에 도착하여 바로 가는 곳은 마렌도(馬蓮道) 시장이다. 그곳에서 일을 보고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위한 교통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흥에서 북경으로 가거나 전혀 다른 곳에서 찻에 관한 일을 보고 북경을 거쳐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중국의 보이차와 오룡차에 대해서 생산하는 현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과거와는 달리 보이차나 오룡차류의 정보도 매우 북경 차상인들에 의해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의 마렌도 차 시장의 흐름은 중국의 차시장을 보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곳이다.

북경 마렌도 차시장을 갈 때는 명가원 김 사장과 동행할 때의 일이다. 북경에서는 또 하나의 큰 시장으로 북경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자리한 반가원(潘家園)이 있다. 그곳은 매주 금, 토, 일 3일간 한족을 포함하여 소수민족의 생활용품을 비롯한 문방사보, 고서화, 도자기 등이 판매되는 곳이다. 그곳에도 여러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김 사장과는 만날 시간을 정하고 각자 관심 있는 곳을 찾아다닌 후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난, 그곳에서 우연히 중국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 갤러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오랜 역사속의 사진을 걸어 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나도 사진을 좋아하기에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씩 구입하는 재미 또한 솔솔한 편이었다. 처음엔 차 마시는 사진을 찾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차와 관련 있는 사진을 한 장도 얻지 못했지만, 이곳은 내가 반가원 시장을 방문할 때 마다 꼭 들르는 곳이었다.

이 사진 갤러리는 중국 돈으로 130위안에서 200위안(1위안 : 150원)으로 사진을 구매할 수 있는, 내 마음속 한 곳에 감동을 주는 곳이기에 지금도 그 갤러리를 생각하곤 한다. 2005년 2월 6번 째 방문할 때 이젠 안면이 있어서인지 주인은 나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촬영해 주었다. 중국에서 차문화와 관련한 사진 찾는 것은 포기했지만, 지난 세월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차에 관한 사진들을 정리하여 차문화사에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는 것 같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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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차관련 행사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부산 국제 차, 공예 박람회가 4회 째를 맞이 하였다. 차인들에게 좋은 정보와 큰 장을 열어서 부산 경남 상인들과 도예가들에게 상품이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차인들은 이 날을 기다리고 찾아가는 즐거움이 많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행사 이틀째 되는 날인 11월 6일 오후 2시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가 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 네사람이 최근 저술한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면서 직접 사인을 받는 행사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본 저자 사인회는 행사일정에 구색으로 갖추었지 저자의 사인회를 위한 준비가 없어 보였다. 오늘 날자로 사인회를 한다고 공지한 저자는 전체 4명중에서 3명으로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 중 한 분은 사인 받을 독자가 없어서 심심해서 그랬는지 무대 행사를 보고 있거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 저자 사인회라고 날짜와 시간을 명시한 주최측의 무성의가 드러나 보였다. 진정 저자를 위하고 차문화 발전을 위해 이런 대규모 행사를 한다고 하면 저자 사인회도 별개의 행사로 여겨야 될 것이다. 행사장의 휴게실 같은 분위기에서 자리만 배정해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최측은 알고 있어야 한다.

행사 안내문이나 공지로 발표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지방이나 서울에서 참석한 저자에게 가혹한 일이다.

저자 사인회를 1시부터 5시까지로 늘려 잡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시간이나 2시간만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이 행사에 집중할 수 있게 행사장에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하고 저자 사인회 시간에는 보조하는 인원이 배치되어야 사인회다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저자 사인회는 진정 저자의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 일이다.

똑 같은 시간에 한 사람은 별도의 부스를 가지고 저자의 회원들이 손님께 차 대접을 하면서 책에 대한 설명과 안내가 뒤따르고 시간 차는 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인을 받는 모습과 너무 대조되는 일을 보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부산국제차공예박람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바램으로 하는 말이다.

차와 공예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는 5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다

⑴[茶經]김진숙(중국절강대학 차학박사) -목,금 1:00~5:00

⑵[사발,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신의 그릇Ⅰ,Ⅱ] 신한균 (도예가)-토,일 1:00~5:00
⑶[보이차다예] 이영자(한중다예연구소 원장) -목,금,토,일 1:00~5:00

⑷[녹동골에 茶가있네] 김기원 (시인) -목,금,토,일 1:00~5:00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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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 유래설은 3가지가 전한다 김대렴의 차씨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다는 김대렴 전래설이 있고, 차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였다는 자생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수로왕비 전래설이다.

그 중에서 수로 왕비 전래설은 상현거사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 통사에 의거, 김해의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수로왕비인 허황옥(許黃玉, 33년 ~ 89년 /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라고도 한다)은 공주가 서기 48년에 그의 오빠 보옥선사(장유화상)와 함께 차씨를 혼수품으로 가져와 가야에 심었다는 설이다.

[왼쪽 사진]허황옥과 김해 장군차를 연계시켜 김해에서는 장군차라는 상품으로 홍보되는 이 지역의 차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조 인조(仁祖)때 발간한 김해읍지에 보면 황차가 금강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충열왕이 왜구정벌에 동원되어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차 김해에 들어 금강사(金鋼寺) 앞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이 차를 마시면 힘이 솟는다는 뜻에서 장군차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역사에서 허황후를 근거로 삼는다면 장군차라는 명칭의 근원은 가야국의 가야차(伽倻茶)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한다.

[200년 수령의 김해 장군차(將軍樹)] - 현지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차나무의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가야권인 원예시험장(부산 강동동)에서 우장춘 박사가 관리하였던 나무로서 허황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곳 수릉원으로 2008년 3월 16일 이식하였다. 김해 장군차는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封茶로 가져왔다는 설이 있고 고려 출렬왕께서 ‘將軍’이라는 칭호를 내렸으며 지금도 차와 관련된 지명, 자생군락지가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진설명,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학용(우리선문화원 부산센타원장)] 부산에서 차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김학용씨는 최근 차문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첫 번째로 김해 장군차의 역사를 찾아다니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전정현 선생님께서 초청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현장에 도착하니 차공부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많은 것도 생소해 보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다식판 , 베겟모 수집으로 알려져 있는 김길성씨, 도예가 김영성씨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모두 8명이 봉고차를 타고 허황후가 가야에 처음 도착한 용원에 있는 망산도앞 유선정에 도착하여 일정을 시작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경상남도 역사 해설가인 A씨의 집으로 가서 본인이 장군차 찻잎으로 떡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5개씩 묶은 것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떡차로 만들 수 있는 작은 틀도 여러 가지 자신이 만들면서 실패하고 한 것도 보여주었다.

허황후묘에 가서 관정다도원 전정현 원장님은 차를 준비해 오셔서 헌다를 하였다. 김길성 선생은 옆에서 보시며 정말 차 하시는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차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이런 곳에 오면 헌다 한 번 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와야 하는데” 하시며 오늘의 여행이 무언가 의미를 둘 수 있는 듯하여 보기에 좋았다.

이 날 하루를 동행해 보면서 느낀 점은 중국차에 대해서는 온갖 전설까지 공부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차의 유래에 대한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차에 대한 유래도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지역마다 여러 갈래의 유래담이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차나무 자생지의 입장에서도 지역적 분포가 많은 것이 사실이요, 차나무의 수령으로 따져보아도 그동안의 유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규모 차밭이 생긴 것은 조선조 말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였고, 그 유명한 보성이나 여러 차밭의 조성도 일본에 의한 플렌테이션의 형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차의 유래를 찾아도 그 뿌리가 초의선사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 가야의 역사, 백제의 역사, 그리고 통일 이전의 신라의 역사가 무척 궁금해지는 가야차, 아니 장군차의 답사현장의 느낌이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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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와서 차산업은 웰빙에 맞물려서 큰 성장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녹차 산업은 중국차에 밀려서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그동안 애국심에만 호소했지 스스로 좋은 차를 생산하여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겨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중국차 때문에 우리차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중국 발효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보이차는 차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대륙의 보이차 투기 붐과 함께 우리나라도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중국의 보이차 시장이 무너지고 한국에 맹목적인 투자 분위기로 몰고 간 상인들과 함께 왜곡된 차시장이 결국은 우리나라 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4-5년간 우리나라에 거세게 불었던 보이차 붐이 꼭 부정적인 면만 거론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녹차 시장은 성장하지 못했지만 보이차 때문에 우리나라의 차 붐이 이만큼 생겼다고 할 수 있다. 3년 전만 해도 보이 생차를 많이 주문하는 상인들이 오래된 숙차는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주문해서 안전하게 보관하여 건강한 차를 마시자고 하면서 그런 상인이 건전하고 성실하게 보인 한 시절이 있었다.

보이차는 그대로 있지만 판매하는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변명을 해오면서 이젠 오래된 차나무에서 만든 차가 좋다거나,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차나 환경이 매우 좋은 곳에서 생산된 차만 마실 수 있다고 하는 차가 생겨나고 있다.

차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오늘의 이야기가 5년 뒤에는 또 다른 말로 다른 사람의 차는 안 되고 내차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방식으로 갈 때 우리나라 차시장의 성장은 요원하다. 차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차를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많은 방법 가운데 지난 5월 21일 “차의 날” 행사가 아닌 또 다른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차문화 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산차인연합회 최해룡 사무국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다음 -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

상인들은 그가 가진 물건을 팔기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개발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소비자가 외면을 한다면 그 상품은 현대사회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서 수많은 상품이나 기술들이 끊임없는 생로병사의 원칙에 따라 윤회하거나 소비자의 외면으로 아예 빛을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상품을 알리기 위한 생산자의 노력은 정말 피눈물 날 정도로 치열하다. 젊은이들의 생활문화에 어느듯 자리 잡은 “발렌타인데이”가 한 회사의 상술과 기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어 전 세계의 젊은이가 열광하는 날로 바뀌어 버렸다. 쉽게 열광하는 십대들의 특성에 맞게 수많은 상혼들이 “발렌타인데이”를 본보기로 여러 가지 날들을 만들어 그들의 상품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예를 들어보자. 2월14일 “발렌타인데이”때와 반대로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 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쵸코렛을 선물하며 이도 저도 못한 솔로들은 4월14일 모여 짜장면을 먹는 “짜장면데이”를 만들었으며 5월14일은 로즈데이라 하여 장미꽃을 선물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를 만들어 갔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3월3일은 “삼겹살데이”라 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이고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라 하여 모회사의 과자를 연상시켜서 그 과자의 매출이 이날만큼은 엄청난 물랑이 팔려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소위 “데이마케팅”이 자리 잡으면서 날짜와 관계있는 관련업계에서는 앞 다투어 데이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농수산부에서 2월23일 “인삼데이” 3월3일 “삼겹살데이”, 5월2일은 “오이데이”, 8월18일은 “쌀데이”, 11월11일은 “가래떡데이”로 지정하여 이날 관련된 농산물의 판촉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관뿐 만아니라 일반 민간 기업에서도 자사 상품의 판촉을 위해 데이를 정하였는데 닭 판매업계에서는 9월9일을 “구구데이”라 하여 닭을 할인 판매 하며 12월12일은 “고래밥(과자)데이”라고 하여 과자의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상혼에 의해 지정된 각종 “데이”들이 50여 날이 된다고 하니 “데이마케팅”의 위력은 실로 놀랄 만 하다고 본다.

이러한 “데이마케팅”은 현대생활에서 매일 매일의 날짜개념을 그들 상품과 연결하여 연상시키므로 인해 그 날짜가 되면 자동적으로 그 상품이 연상되어 물품을 구매하거나 상대방에게 선물을 하는 행동으로 연결시켜 판매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 5월25일 진주 촉석루에서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가 주최하고 진주지부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차의 날”을 선포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녹차를 마시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며 아예 우리나라에서는 차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이렇게 차에 관한한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뜻있는 차인들의 열성으로 “차의 날” 선포이후 오늘날 수많은 차인들을 배출하였고 그로인해 차의 소비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차의 소비율 증가는 주요 차생산국의 소비에 비하여 극소량에 불과하다. 7~80년대의 산업구조는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밤낮없이 노동과 근로에 종사하여 잘 살아보자는 일념 하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빨리빨리”의 문화가 이 땅의 산업역군들의 머릿속과 마음속 깊이 배어있는 행동문화가 차를 즐기는 느림의 문화에는 도저히 적응이 어려운 동떨어진 문화였다.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맛 또한 단것에 젖어있는 젊은이의 입을 당기기에 부족하였다. 신농씨가 차를 발견한 이래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차를 마셔왔다. 그것이 약용이나 식용으로 인간은 차를 가까이하였다. 차를 특별한 날을 정해 마신 것도 아니고 또한 강제로 마시게 한 것도 아니며 못 마시게 한 적도 없다. 선조들은 차를 즐기면서 문학을 논했고 시를 읊었으며 절개를 지키고 풍류를 즐겼다.

몸이 상하였을 때도 차를 마셔며 상한 몸을 추스렸으며 쏟아지는 잠을 쫒기 위해 차를 마셨고 옮고 그름을 판단할 때에도 차를 놓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벗이 오면 제일 먼저 내어오는 것 또한 차였다. 이렇듯 차는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들어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오죽하면 다반사(茶半事)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차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그 본질이 변해있다. 갖은 곡물로 우려낸 물을 차라고 표현하며 슝늉도 차라하고 심지에 음료수도 차라고 한다. 물론 커피나 코코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차의 본질이 변하면서 현대인들의 차문화가 변화되어 본연의 차가 가진 기능과 역할 등이 축소되거나 상실되는 경우가 나타나며 심지어 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일도 생겼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나면서 심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서양에서 불어온 웰빙의 바람까지 몰아치면서 급속도로 그 삶의 질이 향상되어갔다. 물만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문화도 위에서 밑으로 흐른다. 일부 특수 계층 및 귀족사회에서 즐기던 차문화도 웰빙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대중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때맞추어 여러 단체에서도 차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으며 교육기관에서도 차와 관련된 학과를 개설하는 등 차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은 모임에서 큰 모임까지 많은 이들이 차를 소재로 토론하고 품평하며 차를 즐기는 이들뿐만 아니라 차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차를 알리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나 차 소비의 증가는 여전히 미약하다.

더구나 2007년도 가을에 있었던 녹차에서 검출된 농약파동으로 차의 유통 곤두박질 쳤으며 차농들은 그해 생산된 수천통의 녹차들을 폐기처분하는 사태까지 빗어지면서 차의 유통과 소비는 꽁꽁 얼어붙어 해빙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실증이다. 차소비의 확대를 위해 관과 민이 합동으로 차의 안정성을 알리고 소비촉진을 홍보하여도 소비자들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본인의 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는 10월 10일을 Tea Day(티데이)를 정하고 차유통과 소비촉진을 위해 “티 테이마케팅”을 제안합니다. 차(茶)라는 글자에서 艸(20) + 八(8) + 木(八十:80)으로 풀이하여 108이란 숫자가 나오는 것은 차를 즐기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108이란 숫자에는 종교적인 해석의 의미도 있기에 그 누구도 부담 없는 가장 평화적인 날짜로 선정한 것입니다.

티데이를 10월 10일을 정한 이유로는 차(茶)자가 열십(十)이 두개 첫머리에 올라앉아 10월10일을 뜻하며 그 아래 사람(人)이 있어 나무(木)처럼1) 오래 누구나가 다 천수(天壽)를 다 할 때까지 변함없이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10”이란 숫자는 인생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주어진 삶을 다할 수 있는 천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티데이”인 10월10일에 몇 가지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첫째 10월10일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입니다. 무더웠던 여름도 가고 가을도 제법 깊어갈 쯤이라 따뜻한 음료가 생각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이때쯤 녹차 한통을 선물 받으면 얼마나 행복 할까요?

둘째 “차수(茶壽 =열이 열이면 백이 됩니다. 100세)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계절의 변화로 인해 건강을 소홀이 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라는 의미를 부여 했습니다.

셋째 차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상징하며 맑은 정신과 보은의 의미도 있습니다. 차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고 사리를 분별하며 병을 치료하고 은혜로운 사람에게 보답을 하는 고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10월10일 “티데이”는 윗분들에게 차를 선물하는 날로 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을 통해 윗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는 드리지만 이날은 자신 인생에서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존경스러운 분들에게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의미로 “차수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차를 선물하는 Tea Day(티데이)로 정하고자 합니다.

차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차인들과 함께 큰 소리로 “차수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차수하세요” 2008년 7월21일 차문화산업연구소 최해룡

상기의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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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흑차에 대한 번역책이 한 권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출간되지 않아서 조금은 기다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 다인무역에서 湖南黑茶(호남흑차)를 발행하였다. 부제로는 중국 고대 차마고도 위의 신비로운 차 - 필진은 채정안과 당화평으로 나오지만 주 필자는 호남농업대학 차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채정안(蔡正安) 교수로 보였다. 번역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태만, 김지수 박사가 하였다.

흑차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의 흑차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학술계는 차 분류학상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엽학자 진연 교수는 차의 이상적 분류 방법은 반드시 두 가지의 요소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나는 품질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제조방법 체계이다. 이 이론을 근거로 초제가공방법에 따라 전통적으로 녹차 · 황차 · 흑차 · 백차 · 청차 · 홍차 등을 중국의 6대 다류로 분류한다.

흑차는 과초살청(鍋炒殺靑, 차의 생잎을 고온의 가마 솥에 넣어 덕어 풋내를 제거함), 악퇴(渥堆, 차를 무덤처럼 쌓아 일정한 온도와 습도조건에서 발효시키는 과정. 역자)와 송시명화건조(松柴明火乾燥, 소나무를 땔감으로 불을 지펴 건조하는 과정. 역자)라는 매우 특수한 초제가공공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가공기법을 거친 흑차가 잘 건조되면 흑갈색에 광택과 윤기가 흐르고, 찻물의 경우 원숙하고 부드러우며 떫지 않는 맛에 약간의 송연향을 띤다.

저자는 흑차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흑차는 호남성 설봉산맥 차 재배지역의 대 · 중엽 군체 품종을 원료로 하여, 살청 · 유념 ·악퇴 · 송시명화건조 등 4대 작업 과정을 거쳐 제조된 것으로, 건차는 흑갈색의 윤기와 광택을 띠고, 찻물은 맑고도 진한 붉은 빛을 띠며, 독특한 송연의 향을 지닌 흑모차와 그것을 원료로 증압(蒸壓)하여 만든 긴압차의 총칭이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광서성의 육보차(六堡茶)가 가공 과정과 품질의 특성상 호남 흑차와 매우 근사하여 흑차류로 분류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운남 보이차와 사천의 변차를 흑차류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 학계의 진일보한 연구와 검토가 요구된다고 하였다.

책의 내용에서 호남흑차의 기원과 변천, 호남 흑차 제품의 변천에서 감인(甘引)과 섬인(陝引), 복전차(茯磚茶), 호남 청전차, 천첨차, 공첨차, 생첨차, 화권차, 화전차, 현대 호남 흑차의 신품종으로 나누어 구분하였다.

제조편에서는 변차의 분류(작색 기법에 따른 변차 분류, 긴압 형상에 따른 변차 분류), 흑모차의 가공, 인차(引茶)의 제조법, 복전차의 제조법, 천량차(화권차)의 제조법, 화전차의 제조법, 흑전차의 제조법, 천첨 · 공첨 · 생첨의 제조법, 청전차의 제조법으로 되어있다.

각 차의 제조 공정을 사진으로 설명이 되었다면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차에 대한 지식이 짧은 사람은 사진이 없는 제조공정 설명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국내에서 흑차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년 전부터 부산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복전차, 흑전차 등에 관심도 높았으며, 흑차에 대한 정보에 메말라 있는 시기에 나온 것이라,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흑차의 역사적인 고증이나 생산 지역, 생산량 등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책값이 50,000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정된 수요에 맞추어 경제성을 고려해서 책정된 것이겠지만 책의 판권을 가진 다인무역에서 차 홍보를 위하고 흑차를 바르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조금이라도 우선되었다면, 책값은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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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홍차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현대식 CTC 기계를 이용하여 발효시킨 후 건조하는 방법으로 만든 차를 마시는 경향이 많은 편이다. CTC 기계로 만든 차의 큰 장점은 대량 생산을 하면서도 일정한 맛을 균일하게 내고 제품을 규격화 표준화시키는데 가장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틱 홍차로서 알루미늄 재질로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는 티백 제품도 환경친화적인 상품으로 개발 되어 가고 있으며, 차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티백 제품은 등급이나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 편이고 티백의 한계성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회용 포장의 변화가 차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볼 때 유럽 상품은 동양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아이디어 상품을 볼 수 있다. 창원의 모레스토랑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티백 홍차가 아닌 스틱 홍차를 후식으로 가져온 것을 보고 함께 앉은 사람들이 놀라적이 있다.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스틱의 재질과 디자인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이 유럽 홍차를 즐기는 분들이 보면 당연한 것을 가지고 왜 그러나 할 수 있겠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맛보는 사람들은 순수 차맛을 즐기는 것으로 홍차라고 하면 중국 홍차의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맛은 유럽 사람의 음식 문화 속에서의 입맛과 그들의 기호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게 순수한 차 맛을 즐겨온 사람들이 립톤 같은 곳에서 나오는 티백은 뭔가 다가갈 수 없는 맛이었고 브랜딩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티백은 티백이었기에 눈으로 보는 맛으로 치자면 티백 홍차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다. 스틱 홍차는 알루미늄 재질에서 오는 유해 요소는 분명히 그 나라의 의학규약에 맞게 만들어진 것으로 믿고 본다면 스틱 그 자체는 굿아이디어이다.

우리나라도 차를 마시기 불편해서 팔리지 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형태나 도구의 사용이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그날 스틱 홍차에 찬사를 보내는 바람에 주인장이 나와서 정식으로 홍차를 즐길 수 있도록 다구 세트를 들고 우리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다즐링 홍차를 한 가지 더 서비스로 즐길 수 있었다.

CTC 기법 - 찻잎을 눌러 으깨고 절단하여 궁글게 말아 형태를 잡는 것으로 3가지 공정을 영문 이니셜(crush, tear, curl)로 표기한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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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대한 담론은 앞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아도 더 이상의 특별한 모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자료는 나올만큼 나왔다. 여기서 기존의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는 보이차에 대한 자료적인 접근에 가능한 사람은 중국인으로서 전문 차학자이거나 언론만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대만과 홍콩의 차시장에서 거래되는 차를 구매해서 마셔보지 않았다면 현실과는 [사진, 대만 보이차 전문점에서 차를 내는 모습] 동떨어진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실제 홍인을 차의 수준별로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급의 다른 차들도 다양하게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과의 대화는 같을 수가 없다.

즉 흔히 골동보이차에 대해서는 죽천향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박창식 선생님의 의견을 믿고 있다. 위에 말한 인급, 호급의 모든 차들을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이고, 늘 중국의 실제 동향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에게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블로그에 여러사람의 글을 비교해서 올려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르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석우여담에 올려본다.

아래 글의 원본 보기 http://blog.daum.net/36254598『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易武茶山)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즉 지금의

맹해차창(勐海茶廠) 복원(復原)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廣東省)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普洱縣)(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으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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