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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앙동에서 중국차 전문점을 오랜 기간 운영해온 ‘다례헌’ 서재홍 대표를 만났다. 지난 6월에 다례헌에서 만났을 때 <시민시대>에 중국차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중국차를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천량차의 제조 과정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 나오는 천량차 부분에서 5명이 발로 굴리며 포장하는 사진 사용에 대한 허락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나는 즉석에서 하시라고 하였고, 필요하면 사진 데이터를 보내드리겠다고 했는데, 서 선생님은 웹상에서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즉시 전달할 수 없었다.

책에 나오는 사진을 사용하라고 하였기에 나는 생각하기를 내 책의 사진을 스캔해서 원고로 사용하지 않았겠나 하면서 이젠 책이 나왔을 텐데 어떻게 원고를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찾아뵙게 되었다.             [사진 위, 다례헌 서재홍 대표] 이제는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과거 미처 확인하지 못한 자료를 조금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서 선생님은 1995년 이전의 책에서 원문을 번역하고 계셨기에 더욱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사진은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화시켜서 사용하였고, 원고가 작성된 7월호 책을 한권 주셨다. 자연스럽게 천량차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사모님은 집에 보관된 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며 보여주셨다. 차생산 년도를 보면 1950년대 차라고 할 수 있다. 좋은차를 맛볼 때면 꼭 꼬장꼬장한 봉지에서 나오는데 이 차도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다.

[1950년대 천량차] 일단 외형으로 볼 때 입맛이 돌게 했다. 어떤 맛이 나올까를 예측할 수 있는 외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동안 한국과 중국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많은 차를 접하였다. 중국 현지의 차 생산 과정을 촬영하면서 지금도 그 현장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차를 보고 시음해 보면 제조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량차로서는 노차라고 할 수 있는 그 차의 맛을 보면 이런 맛을 우리는 천량차라고 하는데 보통의 경우 이 맛을 모르기 때문에 등급으로 친다면 낮은 등급의 천량차를 표준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천량차의 참맛을 잘 모르고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례헌 사모님] 중국 호남성 백사계에서 작업자들이 몸에 땀이 범벅 되어 있는 상황에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서 마시는 천량차의 맛을 보고 놀라워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이 한국에서와 같이 작은 다호에 천량차를 넣고 우려마시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큰 통에 담아두고 수도꼭지 같은 것을 이용하여 틀어서 넓고 큰 찻잔에 차를 받아 마셨다. 나도 함께 마셨다. 시원스런 맛이며, 갈증을 순간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날 마신 천량차는 세월이 주는 맛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차의 성질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조건에서 보관되어 차를 귀하게 다루는 집에서 관리되었기에 이런 맛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 선생님은 백사계 천량차와 천식방(天植坊) 천량차를 나란히 세워두었기에 두 개를 손으로 짚어가며 비교 설명을 하셨다. 같은 천량이라도 외형적으로 보면 천식방이 더 꽉 차고 긴압이 잘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달된 부분을 보면 천식방 천량차가 좀 더 짙은 갈색을 띄고 있다.

[사진 위, 백사계 천량차] 차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종류의 천량차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최근에 제조한 호남성 백사계(白沙溪) 천량차와 그 인근에서 만든 천식방 천량차의 외형을 비교하고 ‘천식방’차의 맛을 나누게 되었다. 서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3년 된 차를 비교하면 백사계 차는 먹을 수 없는 상태이나, 생솔 가지를 태워서 천량차를 만들 때 사용한 천식방차는 한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궁금하여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말에 즉석에서 긴압이 꽉 찬 느낌의 ‘천식방’을 조금 뜯어서 개완으로 마셨다.

개완에 넣기 전의 상태로 보면 노랑곰팡이 같은 것이 보였다. 서 선생은 부분적으로는 흰곰팡이 같이 보인다고 하였지만 내 눈엔 노랑곰팡이였다. 순간 5-6년 전 서울 인사동의 중국차 전문점에서는 천량차를 세워두고 노랑 곰팡이를 자랑하며 차를 팔았던 몇몇의 주인들과 당시 분위기가 잠시 떠올랐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곰팡이를 자랑하며 마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진 위, 천식방 천량차] 노랑 곰팡이라고하여 복전차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복전차는 오래되면 흔히 전문 용어로 ‘금화’(유익균으로서 독특한 균화 향기가 있으며, 국가표준의 금화균수까지 정해져 있다)가 핀다고 하여 양질의 흑모차를 원료로, 악퇴와 발효, 발화(發花) 공정을 정상적으로 거치면서 생기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차에서 보이는 노랑 곰팡이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달랐다. 어찌되었든 ‘천식방’이라고 하는 차는 차의 맛이 제조일이 3년 정도 지난 것으로 일반적인 천량차의 맛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순한 맛으로 마시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이 작용하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약재와 생솔가지를 태운 솔향기가 흡입되어서 그런 맛이 나는지는 모르지만, 백사계 천량차의 맛과는 다르다. 하지만 생산하고 3-4년 뒤에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좋은 차라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차인들이 좋아하는 차맛을 논하는 것은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차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백사계 천량차와 천식방 천량차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잠시 생각할 수 있다. 차를 마시면서 엽저를 보니 백사계 차와 ‘천식방’ 차는 백사계 차에서 볼 수 있는 살청과 퇴적 과정이 고르게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천식방의 차 전체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차들이 유통되면 좀 더 시간이 가면서 충분이 우열이 가려지는 인프라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역적으로 차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기도 하기에 낯선차일 수 있다. 3-4년 지난 백사계 천량차에서 나오는 강하면서 떫은맛보다 순한 맛이 난다고 하여 좋은 차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더 많은 종류의 천식방 천량차의 시음과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본다.

다례헌 서재홍 대표는 1990년 부산 차계를 대표해서 [제1회 항주국제차문화연토회]참석을 위해 홍콩을 거쳐 항주로 갔다. 회의를 마치고 25박 26일간 중국 차산지를 견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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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효능에 관심있는 분들은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마시는가? 또한 어떤 종류의 보이차가 보이차로서의 효능을 가지는가? 등등으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한국에서 누구도 그 부분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보이차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서 나보다 더 비싼 차를 마시는 사람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비싼 차가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하면서 혼동 속의 보이차 시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작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과학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말로 할 수 없기에 그냥 많이 마시면 되겠지 하는 초보자들의 공통된 심리가 보이차 시장의 왜곡을 함께 안고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데파트 뒷길에 위치한 산다원(대표 김성진)이라고 하는 차와 차도구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있다. 여기서 차라고 하면 일본 말차와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 차도구를 취급한다. 일본 차도구는 보급품에서부터 높은 수준까지 취급하는 곳이다.

 

[사진 위, 삼다원은 10월 경에 이사를 간다]

항상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주인의 찻자리 앞에는 차가 담겨있는 자사호가 5-6개 있다. 보이차라도 같은 차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호 하나에 매일 같은 종류의 차를 새로 넣고 하루 2-3탕 우려 마신다. 마실 때도 당일 차를 마신 후 어제 넣고 마신 차 등으로 지난날에 마신 다호에 끓인 물을 넣고 음미한다. 토요일에는 한주 동안 마신 다호 안의 차를 큰 호에 가득 담아둔다. 또 그렇게 해서 하루 동안 그 차의 맛을 본다. 토요일 퇴근 때는 그 차의 찌꺼기를 담아서 집에 가지고 간다.

  월요일에는 또 새롭게 시작한다. 이렇게 마실 수 있는 차의 공통점은 차의 품성이나 성질이 좋다는 것이다. 즉, 좋은 차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 향기를 간직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동안 하루 2-3탕씩 우려낼 것이 없다.

  이번 만남에서도 80년대 후반의 차, 98년도에 만든 차 등등을 시음하고 왔다. 마시는 차에도 선수들끼리 이야기하고 마시는 차가 있다. 포장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 자체를 두고 말한다. 이 차가 '야생보이차'니, '고산차'니 하는 말이 필요 없다. 사람이하는 말이 아니라 차가 말을 한다. 건강한 차의 공통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차의 기운으로 말이다. 차를 담아내는 다호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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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관한 책을 국내에서 발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이나 지방에서는 보이차에 대한 깊은 식견을 나누고자 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책을 한 권 낼거다’는 말도 하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보이차에 대한 책은 전무하다. 물론 번역서 출간은 간간히 있어 왔다.

2007년 여름에 광주에 사시는 박용모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 보이차에 대한 책을 한 권 내시지요?” 하고 권유해 보았다. 박 선생님은 자신이 번역서로 출간이 되어 있고, 또한 보이차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중국차를 번역해서 하는 일인데 굳이 나의 저서라는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럴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일견 맞는 말이다.

이번에 개인의 저서 형태는 아니지만 ‘글을 읽다’에서 <보이차 수첩>이 발행되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참 잘 엮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개하는데 약간 머뭇거리게 된 것은 이 책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했고 약간의 실체가 드러날 때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어제 그 출판사의 내용을 잘 아시는 건국대학교 정기웅 교수를 만나면서 실제 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신대학교 교수인데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에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출판사 엮음으로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서문에서 밝힌 중문과 조재송 교수님으로 보인다.

이 책은 보이차의 역사, 보이차의 명칭, 분류, 보이차의 저장, 효능 등에 대해서 중국에서 발행된 책을 중심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이차를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 단원마다 팁을 달아서 [보이차의 제다 과정], [보이차와 차의 성질], [녹차의 항암 작용, 카테킨], [보이차의 극품 ‘반장’] 등을 박스처리하여 편집되어 있다. 책의 판형이 작아서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내용에서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주관에서 올 수 있는 차이로 볼 수 있다. 보이차는 정답이 없다. 그 없는 정답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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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 조선시대 규범서를 중심으로 한 구용의 몸가짐과 차예절

최근 차관련해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논문도 나오지만 급조된 것이 많다 보니까 이제는 책이나 논문이 나와도 관심에서 좀 멀어지는 듯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부분은 번역서로 출간이 되기 때문에 조금 안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게 아닌 상식 수준에서 거론되는 것 뿐이다. 오전 외출을 하려는데 우편물이 막 도착한 것이다. 부산에서 이임선(원광대학교 예다학과 석사과정) 학우님이 보낸 것으로 논문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들고 나갔다. 시원한 커피숍에서 한 장 한 장 읽어보면서 최근에 석사논문 가운데 이만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연구자는 그동안 차 예절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논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만한 자료를 확인하고 정리되었다는 것은 우수한 석사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小學』이 중요시되었던 것은 신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왕조가 건국 되면서 시작되었다. 유교를 국교로 하였던 조선사회에서 유교이념을 사회질서로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연구자는 문헌연구의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주로 많이 인용된 것으로『小學』을 바탕으로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아용 윤리교재인 『童蒙先習』, 배우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인 『擊蒙要訣』,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가르침이 실려있는『內訓』,『규중요람』,『戒女書』,『土小節』등을 연구하고, 선행 연구를 중심으로 규범서에 나타난 몸가짐을 고찰하여 기거동작의 기본으로 가르쳐온 구용을 바탕을 행다례를 살펴본바 제한점을 갖는다.고 하였다. 선행연구에서는『小學』등 문헌에서 나타나는 몸가짐에 관한 것은 많으나 표와 관련된 것을 찾기 어려운데 이 논문에서는 소학, 격몽요결, 내훈, 규중요람, 사소절 등의 내용을 표로 만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차 생활에서의 몸가짐 편에서는 차생활에서의 구용을  연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차예절과 연관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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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류건집 교수님을 만나뵈옵고 학위 논문도 전해드리고 그동안 차계의 여러사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최근 출간되는 번역서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류교수님은 최근들어 번역서가 많이 나오지만, 차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기에 많은 번역의 오류가 있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현하고. 여러가지 사항에 대하여 본의[本意]가 왜곡되어가는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발행된 "다부 주해"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역자인 류교수님의 뜻을  "석우연담" 블로그를 통해서 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누게 되면서 그 첫 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茶賦에 나온--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류건집

내가 다부주해(茶賦註解)를 쓰면서 긴 지면을(p80-p100) 할애하여 역점을 둔 것 중의 하나가 한[艹 +寒]과 파[菠]에 관한 것인데, 이에 관해서 아직도 나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요약해서 첨부한다.

먼저 결론은 “한[艹 +寒]은 맛이 시고 씁쓸하지만 약효가 많은 고차(苦茶) 계통의 차를 말하고, 菠는 여린 잎을 따서 만든 달고 부드러운 계통의 차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艹 +寒]과 菠”는 꽈리나 시금치로 만든 대용차가 아니고, “茗과 荈, 檟, 蔎, 같은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곧 앞에 나오는 “茗과 荈”이 차잎의 채취 시기에 의해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면, 한[艹 +寒]과 菠”는 色香味에 의해서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결론이지 무슨 “꽈리차나 시금치차”라는 대용차를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논리를 편 것은 아니다. 중간에 “꽈리나 시금치”라는 글자 곧 ”한[艹 +寒]과 菠“에 어떤 특징이 있기에 한재가 그렇게 분류해서 사용했을까 라는 것을 究明하기 위해서 차로 만들어 본 것이지 대용차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한재가 중국에서 가서 들었던지, 혹은 어떤 글에서 읽었던지 “한[艹 +寒]과 菠”라는 차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제시한 여러 기록들과 특히 “고대에 쓴맛을 가진 일종의 음료였다(古代一種含有酸味的飮料).” [『제민요술(齊民要術)』, 대소릉인(大小夌) 인(引)『범승지서(氾勝之書)』]는 기록으로 볼 때 확실한 것이다. 즉 한재 생존 당시에 차를 분류하여 부르는 “茗과 荈”처럼 “한[艹 +寒]과 菠”라는 차에 관한 명칭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는 한재같은 도학자가 근거도 없이 임의로 이름을 만들어서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둘은 어떤 차이로 구분해서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한[艹 +寒]과 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기록들을 조사해서 제시하고 또 만들어 보기도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 둘의 차이가 확연한 것이 들어나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래 차를 뜻하는 “荼는 씀바귀에서, 茶는 동백나무에서, 檟는 가래나무에서, 蔎은 풀의 이름에서, 茗은 단술[酩]에서, 荈은 쓴 씀바귀에서 轉義된 글자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艹 +寒]과 菠”도 “꽈리와 시금치”에서 전의된 차의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더욱 자세한 것은 졸저 <다부주해 ; 이른아침> p80-p100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소개 : 도학의 정종(正宗)을 이어받아 군자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설파하고 있는 명저인 『다부』는 원문 자체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지만 기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구, 설명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편역자 류건집은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원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풍성한 의미를 얻어낼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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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0일 배재학당 역사발물관 3층에서 (사)국제차문화교류재단 이진수 이사장의 특강이 있었다. 한국 차마케팅 전략과 인재육성에 대한 주제였다. 강의 시작 10분전에 도착 했지만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소슬다원 오영순 사장 님이 들어오셨다. 차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잘 안된 것 같아서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고 하시며 종이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나는 혼자 생각으로 차는 언제 주는가 하고 조금은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종이 컵을 가지고 복도로 나가서 물을 담아 와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마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컵을 가지고 나가면 준비된 차를 주고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그 순간 강의를 위한 파워포인트 화면을 열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강의실에는 학우님들이 계속들어오면서 나의 빈 컵을 보고는 들고 나가서 물을 담아 왔다 앗! 근데 이게 이럴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아닌 종이 컵이 진화된 티백 컵이었다

즉, 대만 오룡차 티백을 둥글게 만들어 종이컵 밑바닥에서 한쪽은 살짝 붙어있고 다른 한쪽은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다. 물을 부어면 한 쪽은 접착이 풀어지면서 차는 곤두서있게 된다. 그러면서 물에 의해서 천천히 차가 풀어지고 탕색은 갈홍색으로 농도가 짙어지면서 차를 우려마시는 느낌이 들게끔 만들었다. 마셔보았다. 이전에 나온 티백과는 전혀 다른 컨셉이다.

사람들은 강의장에서나 공공 장소에서 차를 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인 아닌데 이 종이컵은 물을 부어마시면 되는 것이다. 차를 다 마시고나면 그냥 버리면 된다.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대만은 그만큼 음료의 비중이 많은 지역이기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이 티백 컵의 발상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다면 상품화가 참 더뎠을 듯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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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까지도 홍차를 즐기는 인구가 많지 않아서 유럽의 다양한 형태의 홍차가 수입은 되었지만, 고급 홍차를 수입하는 곳이 드물었다. 수입을 하였다고 해도 유통이 원할하지 못해 고급홍차 수입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식 홍차 마시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가는 것 같다. 나는 중국 홍차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유럽의 홍차 맛에 감동하지 않는 편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일반적으로 홍차를 즐기는 분들은 유럽홍차가 멋있고, 더 우아한 다기를 다루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중국 홍차 메니아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것에 아직은 감동을 받지 못한 편이다. 최근 홍차와 관련한 논문이 자주 나오고, 차관련 세미나에서도 홍차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럽 홍차를 즐기고자 하는 메니아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전되기르 바라는 입장이다.

전국에서 규모있는 서점에 가면 차와 커피, 커피와 차, 와인과 차, 커피와 다도 코너를 업장마다 제목만 다르지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차에 관한 책이 늘어가면서 서울에 있는 대형서점에서는 특설 코너를 만들었지만 계속해서 커피코너 책이 넘쳐나서 차 쪽으로 침범하고 있는 것을 차의 책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차 보다는 커피 인구가 더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차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녹차 보다는 중국차 그중에서도 보이차에 관한 책이 일시적이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것이 대중적으로 보였다면 홍차에 관한 책은 너무 빈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홍차를 만나는 여행> 형설라이프, 서지은 저자의 책을 보면 과거에 나온 홍차와 관련된 책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구성이 되었다. 역사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알 수 있도록 되었으며, 팁을 만들어 초보자가 알고자 하는 부분이 쉽게 설명되어 유럽 홍차를 이해하기에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홍차의 원류인 중국 홍차에 관해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거나 중국차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전공이 유럽 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차의 등급이나 분류는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홍차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현재백석예술대학 외식산업학부 교수이며, 차와 커피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홍차의 발전 - 홍차 탄생의 배경, 유럽에 수출된 홍차, 홍차의 영국 전파, 미국의 보스턴 차 사건, 차를 계기로 시작된 아편전쟁, 쾌속 범선들의 차 운반 경쟁, 대영제국의 홍차 탄생
홍차의 제다 과정 - 전통방식, Orthodox, 로터반 방식, Semi Orthodox, CTC(Crush Tear Curl) 방식
홍차의 등급 - 홀 리프(Whole leaf) 타입, 브로큰(Broken) 타입, 그 외 등급
홍차의 분류 - 산지별 분류, 스트레이트 티, 블렌드(Blend)에 의한 분류, 가향(Flavored)에 의한 분류, 티타임에 의한 분류
홍차의 꽃, 다구의 선택 - 티포트(Tea pot), 티 컵(Tea cup), 스트레이너(Strainer), 메저 스푼(Measure spoon), 티코지(Tea cozy)와 티워머(Tea warmer), 타이머와 모래시계, 티캐디(Tea caddy) 그 외 도구들
홍차 음료 - 사과홍차(Apple Tea), 딸기홍차(Strawberry Tea), 티 펀치(Tea Punch), 키위 아이스 티(Iced Kiwi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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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정민 교수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글을 옮겨오게 된 이유는 이 시대의 차 제조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장이나 차관련 학자들은 구증구포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정민 교수의 글에 공감하여 구증구포에 관련된 글의 전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차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차 만든다고 모두 떡차 만들고 있습니다. 차의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제법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실 수있는 좋은 차가 필요합니다 http://jungmin.hanyang.ac.kr/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 

다산의 제다법과 관련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는 무엇일까? 구증구포는 오늘날 다산의 권위를 등에 업고 하나의 신화가 된 듯하다. 다산은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증구포를 줄여 삼증삼쇄(三蒸三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다산이 만년에 주장을 바꾼 것인가? 이 문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구증구포란 말 그대로 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린다는 말이다. 구증구포는 인삼이나 숙지황 등 한약재의 강한 성질을 누그러뜨려 약성을 발휘시키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를 차에다 적용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달리 예를 찾기 힘들다. 다산의 구증구포나 삼증삼쇄는 덖음 녹차가 아닌, 곱게 빻아 가루를 내 돌샘물로 반죽해 빚는 떡차에 해당하는 제법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덖음 녹차를 만들면서 다산의 이 구증구포를 적용하고, 이를 마치 절대의 비전(秘傳)인 양 떠받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째서 다산은 그 여린 찻잎을 아홉 번이나 쪄서 말려 차를 법제해야 한다고 했을까? 구증구포에 대한 다산의 최초 언급은 「범석호의 병오서회(丙午書懷) 10수를 차운하여 송옹(淞翁)에게 부치다(次韻范石湖丙午書懷十首簡寄淞翁)」란 시의 둘째 수에 나온다.


小雨庭菭漲綠衣 보슬비가 뜨락 이끼 초록옷에 넘치길래

任敎孱婢日高炊 느지막이 밥 하라고 여종에게 얘기했지.

懶拋書冊呼兒數 게을러져 책을 덮고 자주 아일 부르고

病却巾衫引客遲 병으로 의관 벗어 손님 맞이 더뎌진다.

洩過茶經九蒸曝 지나침을 덜려고 차는 구증구포 거치고

厭煩雞畜一雄雌 번다함을 싫어해 닭은 한 쌍만 기른다네.

田園雜話多卑瑣 시골의 잡담이야 자질구레한 것 많아

漸閣唐詩學宋詩 당시(唐詩) 점차 물려두고 송시를 배우노라.


1구의 ‘녹의(綠衣)’는 마당에 깔린 이끼다. 아침부터 조찰이 내린 비로 뜨락의 이끼 옷이 자박자박 젖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마냥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갑자기 책을 덮으니 무료하다. 공연히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불러 심부름을 시킨다. 의관을 풀어헤친 채 지내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허둥지둥 의관을 정제하느라 손님맞이가 늦어진다.

5구에 구증구포가 나온다. 직역을 하면 “지나침을 줄이려고 차는 구증구포를 거친다”는 말이다. ‘설과(洩過)’는 『좌전(左傳)』에 “부족함을 건져서 지나침을 줄인다. 濟其不足, 以洩其過”란 표현이 있는데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차의 성질이 지나치게 강한 것을 감쇄시키려고 구증구포, 즉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과정을 거친[經]다고 했다. 6구에서는 조촐한 살림이라 닭도 두 마리만 기른다는 이야기를 대구로 얹고, 쓸데없는 잡담에 마음 쓰지 않고, 지금까지 보던 당시를 접어두고 송시를 더 읽겠노라는 다짐을 적었다.

차를 법제할 때 구증구포 하는 이유를 ‘설과(洩過)’에 둔 것이 흥미롭다. 지나치게 강한 차의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이다.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가운데 「호남사종(湖南四種)」이란 항목에 한 번 더 나온다.


강진 보림사의 죽전차(竹田茶)는 열수 정약용이 얻었다. 절의 승려들에게 구증구포의 방법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 품질이 보이차에 밑돌지 않는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치니, 이를 일러 우전차(雨前茶)라 해도 괜찮다.

康津寶林寺竹田茶, 丁洌水若鏞得之. 敎寺僧以九蒸九曝之法. 其品不下普洱茶. 而穀雨前所採尤貴. 謂之以雨前茶可也.


중요한 기록이다. 보림사의 죽전차를 처음 개발한 사람이 정약용이라고 밝혔다. 다산이 보림사에 갔다가 절 둘레의 야생차를 보고,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차를 법제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 품질도 중국의 보이차만 못지않다고 했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쳤다는 것은 앞서 다산이 백운동에 보낸 편지에서 곡우 때가 되었으니 서둘러 따서 떡차를 만들어 보내달라고 한 언급과 일치한다.


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

이유원은 「호남사종」외에도 문집인 『가오고략(嘉梧藁略)』에 「죽로차(竹露茶)」란 장시를 지어 보림사 차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도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뿐만 아니라, 차의 법제 과정 및 차 맛까지 자세히 적었다.


普林寺在康津縣 보림사는 강진 고을 자리 잡고 있으니

縣屬湖南貢楛箭 호남 속한 고을이라 싸릿대가 공물일세.

寺傍有田田有竹 절 옆에는 밭이 있고 밭에는 대가 있어

竹間生草露華濺 대숲 사이 차가 자라 이슬에 젖는다오.

世人眼眵尋常視 세상 사람 안목 없어 심드렁이 보는지라

年年春到任蒨蒨 해마다 봄이 오면 제멋대로 우거지네.

何來博物丁洌水 어쩌다 온 해박한 정열수(丁洌水) 선생께서

敎他寺僧芽針選 절 중에게 가르쳐서 바늘 싹을 골랐다네.

千莖種種交織髮 천 가닥 가지마다 머리카락 엇 짜인듯

一掬團團縈細線 한 줌 쥐면 웅큼마다 가는 줄이 엉켰구나.

蒸九曝九按古法 구증구포 옛 법 따라 안배하여 법제하니

銅甑竹篩替相碾 구리 시루 대소쿠리 번갈아서 방아 찧네.

天竺佛尊肉九淨 천축국 부처님은 아홉 번 정히 몸 씻었고

天台仙姑丹九煉 천태산 마고선녀 아홉 번 단약을 단련했지.

筐之筥之籤紙貼 대오리 소쿠리에 종이 표지 붙이니

雨前標題殊品擅 ‘우전(雨前)’이란 표제에다 품질조차 으뜸일세.

將軍戟門王孫家 장군의 창 세운 문, 왕손의 집안에서

異香繽紛凝寢讌 기이한 향 어지러이 잔치 자리 엉긴 듯 해.

誰說丁翁洗其髓 뉘 말했나 정옹(丁翁)이 골수를 씻어냄을

但見竹露山寺薦 산사에서 죽로차를 바치는 것 다만 보네.

湖南希寶稱四種 호남 땅 귀한 보물 네 종류를 일컫나니

阮髥識鑑當世彦 완당 노인 감식안은 당세에 으뜸일세.

海橽耽䔉檳樃葉 해남 생달(栍橽), 제주 수선(水仙), 빈랑(檳榔) 잎 황차(黃茶)러니

與之相埓無貴賤 더불어 서로 겨뤄 귀천을 못 가르리.

草衣上人齎以送 초의 스님 가져와서 선물로 드리니

山房緘字尊養硯 산방에서 봉한 편지 양연(養硯) 댁에 놓였었지.

我曾眇少從老長 내 일찍이 어려서 어른들을 좇을 적에

波分一椀意眷眷 은혜로이 한잔 마셔 마음이 애틋했네.

後遊完山求不得 훗날 전주 놀러가서 구해도 얻지 못해

幾載林下留餘戀 여러 해를 임하(林下)에서 남은 미련 있었다네.

鏡釋忽投一包裹 고경(古鏡) 스님 홀연히 차 한 봉지 던져주니

圓非蔗餹餠非茜 둥글지만 엿 아니요, 떡인데도 붉지 않네.

貫之以索疊而疊 끈에다 이를 꿰어 꾸러미로 포개니

纍纍薄薄百十片 주렁주렁 달린 것이 일백 열 조각일세.

岸幘褰袖快開函 두건 벗고 소매 걷어 서둘러 함을 열자

床前散落曾所眄 상 앞에 흩어진 것 예전 본 그것일세.

石鼎撑煮新汲水 돌솥에 끓이려고 새로 물을 길어오고

立命童竪促火扇 더벅머리 아이 시켜 불 부채를 재촉했지.

百沸千沸蟹眼湧 백 번 천 번 끊고 나자 해안(蟹眼)이 솟구치고

一點二點雀舌揀 한 점 두 점 작설(雀舌)이 풀어져 보이누나.

胸膈淸爽齒根甘 막힌 가슴 뻥 뚫리고 잇뿌리가 달콤하니

知心友人恨不遍 마음 아는 벗님네가 많지 않음 안타깝다.

山谷詩送坡老歸 황산곡(黃山谷)은 차시(茶詩) 지어 동파 노인 전송하니

未聞普茶一盞餞 보림사 한잔 차로 전별했단 말 못 들었네.

鴻漸經爲瓷人沽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도공(陶公)이 팔았으나

未聞普茶參入撰 보림사 차를 넣어 시 지었단 말 못 들었네.

瀋肆普茶價最高 심양 시장 보이차(普洱茶)는 그 값이 가장 비싸

一封換取一疋絹 한 봉지에 비단 한 필 맞바꿔야 산다 하지.

薊北酪漿魚汁腴 계주(薊州) 북쪽 낙장(酪漿)과 기름진 어즙(魚汁)은

呼茗爲奴俱供膳 차를 일러 종을 삼고 함께 차려 권한다네.

最是海左普林寺 가장 좋긴 우리나라 전라도의 보림사니

雲脚不憂聚乳面 운각(雲脚)에 유면(乳面)이 모여듦 걱정 없네.

除煩去膩世固不可無 번열(煩熱)과 기름기 없애 세상에 꼭 필요하니

我産自足彼不羨 보림차면 충분하여 보이차가 안 부럽다.


죽로차는 앞서 「호남사종」에서 말한 보림사 죽전차(竹田茶)의 다른 이름이다. 보림사 대밭에 차가 많이 자라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게 차인 줄도 모르고 잡풀 보듯 한다고 했다. 그것을 다산이 와서 보고 절의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어 비로소 보림사 죽전차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곡우 이전의 일창일기(一槍一旗)의 여린 잎만 골라 딴 것을 구리 시루로 찌고 대소쿠리로 말려 구증구포를 거쳤다. ‘아침(芽針)’만을 골라 뭉쳐 쥐면 마치 머리카락이 엇짜인듯 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다산처럼 방아를 찧어 가루로 만든 것은 아니다. 한 점 두 점 작설이 풀어져 보인다고 한 데서, 구증구포한 일창일기 여린 찻잎을 쪄낸 후 그대로 뭉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유원이 마신 보림사의 죽로차는 대나무 발로 짠 작은 그릇에 담아 ‘우전’이란 상표까지 붙인 최고급의 떡차였다.


이유원은 젊은 시절 자하 신위의 집에서 초의가 자하에게 선물로 준 보림사 죽로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 후 백방으로 그 차를 구했으나 다시는 마셔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경 스님이 찾아와 차 한 봉지를 선물하였다. 둥근 떡을 실로 꿰어 꾸러미로 만들었는데, 세어 보니 떡차가 110개였다. 차를 마신 소감은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했다. 효능은 번열과 기름기를 제거해준다고 적었다.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중국의 보이차에 대해서도 자세한 언급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마셔본 결과 보림사의 죽로차가 결코 중국의 고급 보이차에 못지 않은 품질을 지녔다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그 맛을 기려 후대의 증언을 위해 보림사의 죽로차를 기록으로 남긴다고 했다.


증쇄를 거듭할수록 차의 독성이 눅는다. 냉한 성질이 따습게 변한다. 향과 맛이 부드러워진다. 다산은 이러한 약리를 잘 알았다. 이러한 제다법은 확실히 약용으로 차를 음용하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위 시를 통해 이유원이 「호남사종」에서 말한 구증구포로 법제한 보림사의 죽전차, 또는 죽로차는 잎차 아닌 떡차임이 더 확실해졌다. 또 다산이 처음 제다법을 알려주었다는 보림사 죽로차를 초의가 그 방식대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초의차 또한 다산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로 이어진 떡차 제법

보림사의 구증구포 죽로차가 떡차였다는 사실은 조선의 차에 관심이 많았던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 1879-1946)와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1900-1982)가 1938년 전남 나주군 다도면 불회사와 장흥 보림사 등을 직접 답사하여 조사한 결과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답사기에 수록된 불회사의 전차[磚茶] 제다방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차를 만드는 기본은 순을 딴 뒤의 남은 잎을 채취해서 이것을 하루 안에 3,4회 찐(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식히는 정도로 하여 찌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다) 것을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하게 충분히 찧은 뒤, 지름 아홉 푼(약 2.3cm), 두께 두 푼(약 0.5cm)이 되게 손으로 눌러 덩어리 모양으로 굳히고, 이 복판의 작은 구멍에 새끼를 꿰어서 그늘에 말리며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기간에 만들어 사용한다.


몇 번을 찌든 차 잎을 딴 그날 낮과 밤 안에 여러 번을 찌는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아진다고 언급한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완전히 건조시키지 않고, 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뜨거운 기운을 식히는 정도로만 말린다. 이렇게 여러 번 찌고 말리는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향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다. 여러 차례 찌고 말리기를 되풀이한 뒤에 비로소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찧는다. 찌는 회수를 3,4회 정도라고 했는데,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다산의 떡차 제조법과 한 치의 차이가 없다. 또 당시 보고서에는 보림사의 청태전(靑苔錢) 제조 방법도 보인다.


이(보림사) 부근에서는 청태전을 보통 차라고 하여, 1919년경까지 부락 사람들이 만들었으나, 그 뒤 작설차(雀舌茶)를 마시게 되면서 만들지 않는다. (중략) 가져온 날잎차는 곧장 가마에 넣고 쪄서 잎이 연하게 되면 잎을 꺼내(찻잎이 누런 빛깔을 띨 무렵) 절구에 넣고 손공이로 찧는다. 찧을 때는 떡을 만드는 것처럼 잘 찧는다. 이때 물기가 많으면 펴서 조금 말리고, 굳히기에 알맞게 되었을 무렵, 두꺼운 널빤지 위에서 내경 두 치(6cm), 두께 5리(0.15cm), 높이 1푼 6리(0.48cm) 가량의 대나무 테에 될 수 있는 대로 짜임새가 촘촘한 얇은 천(무명)을 물에 적셔서 손으로 잘 짜서 펴고, 그 안에 찧은 차를 넣고, 가볍고 평평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붙인다. 그것이 조금 굳어갈 때에 꺼내서 자리 위 또는 평평한 대바구니 위에 얹고 햇볕에 쬐어 절반쯤 말랐을 무렵에 대곶이로 복판에 구멍을 뚫는다. 잘 마른 다음 곶이를 꿰면 차가 부서지므로, 연할 때에 하나씩 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날 안에 말리도록 한다.


찐 차 잎을 절구에 찧고 말리는 과정 또한 다산의 방법과 같다. 대나무 통을 얇게 잘라 차 잎을 담을 틀을 만들고, 거기에 찧은 차를 눌러 담아 말렸다. 당시 보고서에는 50년도 더 된 청태전이 이 마을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언급도 있다. 다산 이래로 초의가 만들고 이유원이 마셨던 죽로차를 거쳐, 보림사 인근에서 생산된 청태전, 즉 떡차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던 셈이다.


다산은 구증구포가 차의 강한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함이라고 했고, 위 글에서는 차의 향과 맛을 더 좋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포를 거듭하면 강한 성질이 감쇄되면서 향과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이유원은 위 시에서 차를 마시자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해서 이를 뒷받침했다.

구증구포는 여러 차례 되풀이한다는 의미이지, 꼭 숫자를 세어 아홉 번 하란 말이 아니다. 9는 만수(滿數)이므로, 여러 번의 뜻으로 흔히 쓴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삼증삼쇄(三蒸三曬)’로 횟수를 줄여 말한 것도 이해가 된다. 다산이 말한 구증구포는 꼭 숫자를 헤아려 아홉 번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3회 이상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는 의미로 보아 무리가 없겠다. 즉 다산이 만년에 횟수를 줄이는 쪽으로 견해를 수정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오늘날의 구증구포설처럼 교조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산이 직접 말한 증거가 나왔으니 구증구포는 마땅히 삼증삼쇄로 바뀌어야 옳다. 하지만 찌는 횟수가 몇 번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이때 구증구포는 녹차 아닌 떡차를 전제로 한 언급이 아닌가?

이제껏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을 살폈다. 다산이 통상 마신 차는 잎차 아닌 떡차였고, 구증구포로 법제한 차 또한 덖음 잎차가 아닌 떡차였다. 다산이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구증구포의 방법을 도입한 것은 당시 조선에서 차가 약용으로 사용된 것과 관련이 깊다. 또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당시 조선의 식습관에 비추어 녹차는 성질이 너무 강해 위장에 강한 자극을 주고, 정기를 손상시킨다. 차의 냉한 성질을 감쇄시키고 떫은 맛을 부드럽게 하며 단맛을 강화시키는데 구증구포의 제다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자들의 과학적인 검토가 더 필요하겠다.


필자는 이글에서 다산 선생께서 마신 차가 떡차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차도 떡차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떡차는 진공 포장이나 냉장 보관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당시에, 잎차를 덖을 경우 장마철을 넘기기도 전에 차가 발효되어 맛이 변해 버리는 상황에서 나온 제다 방법이었다. 떡차가 잎차보다 맛이 더 좋아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시대가 다르고 기술이 발전하면 제다법도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연암 박지원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과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을 말했다. 옛 것을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능히 법도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자취를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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