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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관한 객관적인 평을 할 수 있는 분 가운데 국내 몇 안되는 한 분으로 필자가 추천한다면 [축천향실]블로그를 운영하는 박창식 선생님이다. 노차에 대한 식견이 높기 때문에 생차에 대한 입장을 필자는 여러 체널을 통해서 자료를 보았지만 개인의 의견에 자신을 가진 분이 몇 안된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래 <보이 생차도 보이차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는 그동안 필자와 수년간의 관계 속에서 일관성있는 의견이었기에 최근에 논란이 있는 생차도 보이차인가 하는 문제에서 한 개인의 진중한 의견이라고 생각되어 그대로 소개한다.

보이차가 녹차처럼 불 발효차라면 녹차는 햇 차의 품질을 더 높이 평가하기에 햇 생차는 그냥 보이차가 아니라 더 좋은 보이차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차를 녹차와 같은 계통의 차로 생각하고 보이차를 구입하여 마시며 보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차의 분류상 발효정도에 따라 차를 구분하면 보이차는 후 발효차로 분류되며, 또한 6대 다류의 분류에 따라서는 보이차를 흑차로 보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차가 다른 종류의 흑차들 과는 그 제작과정이 다르며 무엇보다 최대의 특점인 후 발효를 통한 소위 월진월향 을 내세우며 보이차는 6대 다류인 흑차에 속하는 차가 아니라 하나의 특종 차에 속한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저는 발효정도로는 후발효차로,그리고  6대다류로는 분류할수 없는  하나의  특종차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햇 생차에 대해서 한번 생각 해 봅시다.
햇 생차는 아직 후 발효가 되지 않았으니 후 발효차로 볼 수도 없고....
또한 차의 외관이나 탕색이 흑차의 기준에도 맞지 않으니 흑차라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월진월향을 가진 특종차도 아니고....
오히려 녹차에 가깝지만 딱히 녹차라 하기엔 또 그렇고....
(저는 긴압된 운남쇄청녹차라고 봅니다만)
여러분이 생각하고 계시는 보이차는 과연 어떤 차인지요?
그리고 어떤 이유로 보이차를 구입 하시는지요?
녹차 처럼 올해 바로 마시기 위해 햇 생차를 구입하시는지요...

아님 숙성시켜 마시기 위해 구입 하시는지요...
아직 후 발효가 되지 않은 햇 생차를 단지 개정된 보이차의 신 표준에 "생차도 보이차라 한다" 라는 내용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생차를, 후 발효가 특점인 보이차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가요?

생차는 숙차(인공발효)를 만들거나,  생차를 몇년동안 후발효(자연발효)시켜 판매하는 것 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쉽게(?) 만들어 바로 팔수있는 잇점이 있어 신표준의 제정시 일부 차엽전문가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차도 보이차라는 신표준을 보이차의 열풍속에 2006년 새롭게 제정하였습니다. 과하게 표현하면 신 표준은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운남성 정부와 차업계 관계자들이  차엽 생산자, 차창 경영자, 차 판매상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만들어진 다분히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제정된  표준입니다.

신표준의 제정 후 생차를 구입하여 저장하면 여러모로 좋다는식의  다음과 같은 논리가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陳(오랜시간)은 보이차의 핵심이다 좋은 차를 잘 골라 적당한 방법으로 보관해야 한다.
보이차의 구입시 그 목적과 기호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장기간 저장해서 가치의 상승을 바란다거나 노생차의 비싼 가격이 문제가 된다면 생차를 구입하여 보관저장 하는 것이 좋다."하고 생차를 구입하면 이익을 얻게된다고 하면서 소비자들을 부추키는거죠.

어떤 분은 “생차는 보이차가 아니며 숙차나 노차가 보이차이다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기호와 그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다. 방금 만든 생차가 보이차가 되지 않으면 노생차도 마찬가지로 보이차가 되지 못한다.“  고 말씀 하시던군요.
과연 그럴까요....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찻잎--건조--쇄청모차--가공--생차(=후 발효 되지 않은)--숙성--보이차(후 발효된 차)
벼(찻잎)---건조---나락(모차)---정제가공---쌀(생차)---숙성---밥(보이차)
배추(찻잎)--절이기--절인배추(모차)--버무르기--속 넣은 배추(생차)--숙성--김치(보이차)
콩 가지(찻잎)--건조--콩(모차)--삶아서 덩이만들기--메주(생차)--장담그기--된장(보이차)
쌀이 그저 밥이 됩니까? 속넣은 배추가 그냥 김치가 됩니까? 메주가 된장입니까?
허나 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다 하고 치부 하시는 분들께는, 더 이상 어떻게 이해 시켜 드릴 뾰쪽한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방금 만든 생차 즉, "햇 생차도 보이차다" 하시는 분들의 생각 또한 그분들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햇 생차는 결코 보이차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의견이 결코 숙차나 노생차만 보이차로 보는것이 아니라, 아직 후발효되지 않은 햇 생차를 보이차로 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이차라는 후발효차 물품에 대한 상품개념으로 볼 때 결코 잘못 된 의견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셔야 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운남에서 차사업을 하시는 어느분의 말씀 "93년도에 이곳 중국에 와서 보이청차(=생차)를 살때 어떤 차가게에서도 그해에 생산한 청차(생차)는 보지 못했다. 청차(생차)는 보통 1년-3년 정도 창고에 보관한 후 시장에 내어놓았다" 그리고 20년 이상 차엽업계에 종사한 중국 차상인의 말씀을 빌리면  "2000년 이전에는 숙차는 3년, 생차는 5년 정도 창고에 보관했다가 시장에 내어놓았다" 이른바  먼저 만들어 보관된 보이차는 내다 팔고 새로 만든 보이차는 다시 보관 저장하는 이른바 순환판매방식이  보편적인 보이차의 판매 방식이였던거죠.

왜, 그렇게 순환판매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보이차는 후발효차이기 때문입니다.

생김치도 김치? 생된장도 된장?
생김치는 날김치라고도 부르는 아직 익지 않은 김치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생김치 [生김치][명사] 같은 말: 날김치
날김치[명사] 아직 익지 아니한 김치.

김치
• [식품영양] kimchi (영어). 무, 배추, 오이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였다가 고추, 파, 마늘, 젓 등의 양념을 버무려 넣고 담근 반찬
• [생명과학] kimchi (영어). 배추, 무 등을 고추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채소의 젖산 발효에 의해 만들어 지는 한국 음식.
그리고 생된장은 금방 만든 된장이 아니라 끓이지 않은 된장, 즉 숙성된 된장 그 자체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생된장 [生된장] [명사] 같은 말: 날된장.
날된장 [날된醬] [명사] 끓이지 않은 된장.
된장 (한국 음식)
장의 한 가지로 간장을 담아서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
우리나라의 조미료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기본 식품이다. 된장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가 장양(贓釀 : 장 담그기·술 빚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 제조를 잘 한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된장·간장을 담가 먹다가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장 담그기 의 기술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우리들이 된장이나 김치를 담그는 주목적은 바로 먹기 위해서가 아닌 담아서 숙성시켜 먹기 위한 것 이죠! 마치 우리들이 보이차를 생각하면 먼저 후 발효라는 개념을 가지고 보이차를 구입하여 마시고 보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김치를 만들기 위해 버무리기를 막 끝낸 속 넣은 배추 일 뿐인 이른바 생김치를 막연하게 김치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한 일일가요? 된장을 담기 위해 만든 메주를 된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인가요?
마찬가지로 보이차를 만들기 위해 쇄청모차를 긴압한 상태일 뿐인, 된장의 경우라면 메주에 해당하는 아직은 후 발효 되지 않은 생차를 보이차라고 부르는것은 온당한 일이 아닙니다. 해서 2006년 보이차의 신표준이 제정될 때 많은 차엽 전문가들이 생차는 결코 보이차가 아니다.

굳이 생차를 보이차의 범위에 넣는다면 생차가 아닌 原보이차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생차는 이제 부터라도 생차라는 용어보다 메주가 된장의 원재료이듯이, 쌀이 밥의 원재료 이듯이 보이차의 원제료나 원제품이라는 개념을 가진 原보이차로 불려지거나 아니면 우리들이 생김치와 김치를 구분하듯이 보이차 와는 구별이 되도록  生보이차(아직 익지 않은 보이차)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더불어 구입하시는 原보이차(生보이차)도 만들어진 당해 연도에 바로 구입하시기 보다는 적어도 1년 정도는 지난, 후 발효과정을 어느 정도 거친 차들을 구입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들이 견지해야할  바람직한 보이차 구입 행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야만 2006년 생차도 보이차로 정의한 <보이차 신표준>의 제정이후 벌어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수많은 보이차 생산차창들이 쏟아낸  혼잡한 품질을 가진 생차의 범람이나,  무분별한 생차의 사재기 같은 보이차 시장의 혼란, 그로인한 모차의 가격폭등  같은 무질서가  어느 정도는 정리되면서 보이차 시장이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차의 보이차 편입이후 벌어진 보이차의 광풍과 부침을 보면서,  보이차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보이차의 발전과 운남 차농들의 삶이 조금은 더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 죽천향_()

출처 http://blog.daum.net/36254598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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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에 생산된 소형 주니호]

대만에는 보이차 전문가도 많지만 자사호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메니아들도 있다. 상인이면서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壺에 대한 애착은 특별하다.

2007년 대만의 모 차전문점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의흥에서 만들어진 자니 수평호 5개 보았다. 근데 팔기위해서 진열대에 올려진 것 보다는 주인이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격이 높다는 것을 중간에 차를 마시면서 알게되어 사용하는 호를 갖고자 한다고 하니까, 처음 들어올 때 10개가 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지고 격조있는 것을 본인이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가지고 온 것 중에서 약간의 흠이 있거나 격이 좀 약한 것을 골라서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찻물에 의해서 색이 바뀌고 세월감이 묻어나면서 처음 가져올 때의 생경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양호라는 구실로 사용한다. 사실은 흠을 보이지 않게 하는 의도가 더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그런 것이 아니지만 간혹 그런 문제에 당면하는 경우가 있기에 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에 판매가 빨리 되기도 한다. 자사호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판매되었던 시기도 이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대만의 그 상점에서는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고 더 빛나게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우리도 가장 좋은 것을 손님에게 보여 줄 수 있는 풍토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을 팔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이유보다 그 다호를 한 번 더 보러가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또 그와 같은 양질의 다호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인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자사호를 보여주는데 몸통 지름이 4.5cm다 이런 작은 호에 차를 마시는가 하는 고민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호의 니료는 현재는 생산이 되지 않는 것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베여나오는 맛이 특별하다. 중국차를 즐기고 다호를 수집하는 호의 한 종류이다.

같은 상술이라도 대만의 상술이 더 멋지지 않는가?
과연 그런 호에서 나오는 차 맛은 어떠할까?
시종(始終) 호를 다루는 사람의 몫이다.

중국의 차 상세보기
박홍관 지음 | 형설출판사 펴냄
중국 차 입문서. 이 책은 중국에서 차가 생산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12개 성(절강성, 광동성, 운남성, 안휘성, 대만 등)을 각각 수차례 반복하여 조사한 중국차와 그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보고서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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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호 몸통의 지름이 4.5cm인 아주 작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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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지홍인 , 2009년 1월 부산 해운대의 P찻자리에서]

보이차를 두고 말하면서 동경호나 강성, 홍인 등등을 거론할 때 실제적으로 그러한 차를 마셔본 경험자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런 차를 소장하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인연으로 마셔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어떤 글을 대하면서 나의 의견을 남기게 되는지 모르겠다.

얼마전 모잡지에 나온 글에 의하면, “대표적인 호급(號級)보이차인 동경호(同慶號 : 중국 발음으로는 통칭하오)는 숙병(熟餠)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운남의 원로 차인인 장순고(張順高 : 중국발음으로는 쟝슌까오이며, 맹해차엽연구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면서 마지막 10년은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분으로 1997년 중국과학원 시솽반나열대식물원 연구원을 끝으로 은퇴) 선생을 만나 나눈 내용을 담은 것이다. 지난주 다른 보이차 전문가와 이야기를 하면서 숙병이라고 제시한 것에 일반적으로 전후사정을 모르면 요즘에 만들어진 숙병(熟餠)으로 혼돈하면 곤란할 것 같다는 의견을 서로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이차에 대한 지식이 깊다고 필자가 인정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인 죽천향님께서 반대의견을 올린 것을 보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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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글을 죽천향님께 양해를 구하고 ‘석우연담’으로 옮기면서도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소개하면 ‘죽천향’님은 우리나라에서 호급차를 실질적으로 즐겨 마셔온 분 가운데 한 분이기며 그냥 중국 글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님을 밝힌다.
별첨: 동경호에 대한 소개글입니다.<죽천향 님의 글> 출처 람가헌

同慶號老圓茶采用最好的竹箬包裝,表面是淺金黃色,捆綁所用竹篾及竹皮,顏色與竹箬相若。其茶筒頂上面片,用金紅色朱砂寫著“陽春”兩字,右邊的一直行是“易武正山”,左邊一直行是“陽春嫩尖”,中間一行字大,乃墨寫的“同慶字號”四號。每筒的每餅間都壓著“龍馬商標”內票一張,白底,字爲紅色。圖上方寫“雲南同慶號”,中間爲白馬、雲龍、寶塔圖案,下方署“本莊向在雲南久曆百年字號所制普洱督辦易武正山陽春細嫩的白尖葉色金黃而厚水味紅濃而芬香出自天然今加內票以明真偽同慶老字號啟”字樣
동경호노원차채용최호적죽약포장,표면시천금황색,곤방소용죽멸급죽피,안색여죽약상약。기차통정상면편,용금홍색주사사저“양춘”량자,우변적일직행시“역무정산”,좌변일직행시“양춘눈첨”,중간일행자대,내묵사적“동경자호”사호。매통적매병간도압저“용마상표”내표일장,백저,자위홍색。도상방사“운남동경호”,중간위백마、운룡、보탑도안,하방서“본장향재운남구력백년자호소제보이독판역무정산양춘세눈적백첨엽색금황이후수미홍농이분향출자천연금가내표이명진위동경로자호계”자양 **** 여기서 우리는 숙차,숙병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현대적 보이차가 나타나기전인 (일반적으로 1973년 이전) 옛 보이차 에서의 숙(熟)이라는 의미는 인공발효시킨 오늘날의 숙차나 숙병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후 발효된, 즉 익은차라는 의미의 숙병(후 발효되어 익은 차)을 칭하는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옛 보이차의 숙병은 후발효된 이런바 陳茶를 뜻하는 것으로 아직 익지않은 생차에 비교하여 익은차 즉, 숙병으로 불렀습니다. 해서 골동보이의 황후로 불리는 동경호는 인공숙발효시킨 현대적 개념의 숙병이 아닌 어느정도 자연 후발효된 모차(= 陳茶)를 이용하여 만든 차 라고 보아야합니다.

동경호는 숙병이였다? 라는 글에서도 <1910년대에 운남(윈난)에서는 지금 말하는 홍차는 아직 만들지 않았고, 운남에서 홍차를 생산한 것은 그로부터 몇 십 년 뒤부터라고 한다. 여기서 당시 수출한 홍차는 발효시킨 보이차, 즉 보이차 숙병을 말한다.>고 되어있으며 또한 < 동경호는 보이차를 만들 때 안에는 발효된 숙차, 겉면에는 발효되지 않은 생차를 써서 만들었는데... >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말하는 홍차도 아직만들어 지지 않은 그시기에 현대적 개념의 보이차 숙병 =인공숙차는 당연히 존재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결국 이 이야기는 먼저 만들어져 어느정도 익은 陳茶와 익지않은 生茶를 병배하여 동경호를 만들었다는것이고 이런 병배방법은 후발효에 매우 유익한 도움을주는 하나의 기법으로 쓰여진것입니다.

따라서 장순고(張順高) 선생이 던지는 메세지는 동경호는 후발효된(익은) 찻잎을 일정부분 이용하여 만든 차라는 것으로 동경호 보이차의 "葉色金黃而厚水味紅濃而芬香出自天然엽색금황,후수미홍농,분향출자천연" 이라는 내표에 쓰여진 동경호의 특점도 생차가 아닌 익은차의 특점을 소개한것으로 결국 보이차의 특점은 후발효에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는것입니다. 보이차는 후 발효차입니다. 해서 보다 빠른 후 발효를 위한 발수법이나, 조수악퇴법, 심지어 습창저장법, 미생물접종 같은 여러가지 인공적인 속성발효 방법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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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돌 솥에서 물을 끓인다]

차문화 전문 카페에서 문화적인 요소를 볼 수있을까? 어떤 면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단순히 회원 증가 속도만으로 볼륨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이 디지털문화의 최근 추세이다. 람가헌을 알고 지나온 시간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러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카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회원이 몇 명인가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진다. 충성도 높은 회원 확보도 중요하지만 조용히 침잠하면서도 해야할 일을 해나가는 것 크게 생색나는 일은 아니라도 묵묵히 지향점을 향해 나갈 때 돌아오는 것은 회원증가로 인한 매출증가가 아니라 어느날 카페 주인장의 덕이 쌓여 돌아오는 것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람가헌을 출입하면서 알게된 안미루 님과 송유식 님의 결혼이야기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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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부부 안미루님, 송유설님] 사진출처 람가헌

그와 더불어 지난해 임신한 젊은 부부의 방문에 난, 우연히 함께하여 사진을 담은 분이 출산을 하여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을 카페 사진방을 통해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면서 람가헌은 새로운 모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난, 최근 논문을 준비하느라 몇 개월 동안 아무일도 못하고 전진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로인해서 잃은 것도 많이 생겼다. 이제 몸을 추스르고 책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디지털자료를 정리하다 보니까 람가헌에서 국내 답사중 일지암에서의 여연스님과 좁은 방에서 함께한 시간을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에 편집없는 상태 그대로 올려본다.

이런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차문화의 중심에서 유통을 한다고 볼 때 아주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일자암의 암주는 바뀌었다. 우린 그 날 또 하나의 역사를 보고 왔고, 차와 관련해서 어떤 카페에서도 시행하지 못한 이런 일들이 람가헌의 영업과는 무관하게 우리 차문화의 근저에서 정리되어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람가헌을 찾고 또 그곳에서 공명에니어그램을 연구하는 공명 소장을 만나면 위의 일들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seoku.com/523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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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1일까지의 찻자리 이아야기를 책으로 담는 작업을 6년간 해왔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해를 넘기고서도 아름다운 멋진 찻자리를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동안 힘든 일들이 많은 관계로 얻는 것 하나에 잃은 것 10가지는 될 것 같다.  올해는 하나하나 결실을 보이고자 한다.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한 달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만들지 못해 사진 한 장 찾는데 또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 와중에 엉뚱한 사진을 찾곤 한다.
설 연휴 3일간 노트북과 휴대용 하드에 있는 디지털 사진자료에서 용량만 잡아 먹는 사진 삭제 작업을 하다가 또 엉뚱한 동영상 하나 발견하고 휴지통에 넣기 직전에 살려서 간단하게 제목만 넣고 올려본다. 김경우 사장의 멋진 돈들어오는 웃음 한 번 들어보세요...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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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완의 명칭은 급조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도자의 명칭과 같이 오랜 세월 속에서 명칭이 정형화된 것이기에 새로이 명칭을 만든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그 명칭은 사용 용도와 형태를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형태에 있어서의 명칭은 그 기물의 용도와 맞물려 명명함에 있어 전형적인 기준을 가지기 마련이다. 요즘 정호다완, 교맥다완, 두두옥다완 이라보다완의 형상을 빌려, 자신만의 특별한 흙과 유약으로 기물을 제작하여 다른 이름을 붙히는 형향이 있다. 예를들면, 00정호다완, 신정호다완 등의 이름을 붙히는 것은 이는 잠시 별칭으로 명명될 수는 있지만 사용 용도가 같고, 형태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분류되고 명칭함에 있어서는 근본을 넘지 않게 된다.

즉, 자신만의 재료로 새로운 정호다완을 만들었다고 선언하면서 00정호다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서 정한 규범속에 들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명칭이 새로워 질 수 있는 조건은 용도를 달리하던가, 아니면 형상이 달라져야 한다. 같은 형상, 용도로 다른 이름이 붙는 것은 "별칭"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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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연담에서 차도구 명칭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합니다. 뜻있는 분은 댓글로  참여바랍니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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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길령
출생 : 1961년생
현재 : 원광디지털대학교 외래교수
         청백다례원 실장
학력 :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예절다도학 전공)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문화학과(예다학 전공)
        
문학박사

<논문>
박사학위논문: 嶺南地域 不遷位祭禮에 관한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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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文抄錄

嶺南地域 不遷位祭禮에 관한 硏究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김 길 령

朱子學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유교적 예학이 강조되는 사회였다. 이에 따라 국가사회의 지도자격인 수많은 인물과 명문거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은 忠孝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와 함께 조정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있어서도 崇慕의 대상으로 이른바 不遷位祭禮를 받게 되었다.

불천위제례는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아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조상의 기제사를 일컫는다. 본래 4대조 이상이 되는 조상은 묘제의 대상이 되는데 불천위에 해당하는 조상과 그 배우자에 대해서는 영구히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다.

본 논문은 불천위제례의 성립과 전개 현상을 특히 嶺南地域을 중심으로 연구 조사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우선 영남지역 문헌가운데 불천위제례의 개념과 내용을 담고 있는 禮書를 고찰하여 그 특징을 규명하고, 영남사림의 학자들로 현재까지 불천위제례가 이어지고 있는 영남지역 종가들을 대상으로 그 사례를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불천위제례의 원형을 탐색하고 관련 문헌과 비교 분석하여 사상적 특징과 생활문화적 의의를 밝혀본 것이다. 이렇게 전개된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남지역에는 조선사회에 활약했던 사대부 종가가 많았던 만큼 禮學에 관한 수많은 문헌이 찬술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불천위제례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헌으로 柳長源의『常變通攷』(1783)에 기술된 通禮와 祭禮, 許傳의『士儀』(1870)에 포함되어 있는 如在篇, 宋浚弼의『六禮修畧』(1918)의 祭禮 부분에서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이들 문헌에 나타난 불천위제례의 특징으로서 사당은 의례를 위한 공간의 중심으로 정침이나 제청의 동쪽에 위치하였다. 또한 불천위제례를 지내기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경건하게 갖는 재계는 조상의 기운과 감통하기 위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준비절차였으며, 제구는 성실과 공경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절대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할 뿐 아니라, 남에게 빌리거나 파는 일이 없도록 경계되었다. 참례자들의 제복은 지위에 따라 구별되며 불천위제례에 참여하는 후손들은 제복을 갖추어 입고 고요한 마음으로 정갈하게 조상을 뵙는 준비를 하였다.

제수는 세 문헌 모두 해가 밝으려는 새벽인 궐명에 진설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으며, 절차는 參神, 降神, 進饌, 初獻, 亞獻, 終獻, 侑食, 闔門, 啓門, 辭神, 納主, 徹순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불천위제례의 전 과정은 후손이 조상을 섬기는 奉獻의 의례인 동시에 그것은 제례를 행함으로써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일종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 영남의 지역별 불천위 현황은 안동 50위, 성주 3위, 경주 8위, 고령 1위, 현풍 2위, 함양 4위였다. 조선초기에는 국불천위, 도불천위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각 종가마다 구분하지 않고 불천위제례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천위를 모시는 것은 해당 문중이나 가문의 영예일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학덕을 갖춘 현인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자부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므로 불천위제례의 행례를 통해 유교적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본 사례조사에서는 영남지역 사림파인 고령 일선 김씨 文忠公 金宗直(1431~1492)종가, 경주 월성 손씨 蘘敏公 孫昭(1433~1484)종가, 함양 하동 정씨 文獻公 鄭汝昌(1450~1504)종가, 현풍 서흥 김씨 文敬公 金宏弼(1454~1504)종가, 안동 영천 이씨 孝節公 李賢輔(1467~1555)종가, 경주 여강 이씨 文元公 李彦迪(1491~1553)종가, 안동 진성 이씨 文純公 李滉(1501∼1570)종가, 성주 청주 정씨 文穆公 鄭逑(1543~1620)종가를 대상으로 不遷位祭禮의 행례절차를 살펴보았다.

주요 특징을 간추리면, 각 종가별 祠堂의 위치는 정침의 동쪽 혹은 동북쪽에 위치하였으며 불천위제례의 장소는 정침이나 祭廳이었다. 또한 제사를 모시기전 몸과 마음을 정결히 준비하는 齊戒에 대해, 김굉필종가에서는 3일전에 하고 있음에 반해, 나머지 7종가는 문헌에 명시된 대로 모두 하루 전에 재계에 임하고 있었다. 祭具는 8종가 모두 유기를 사용하였다.
 
祭器의 보관은 안채, 안방, 대청, 주방 등에 보관하며 하루 전 깨끗이 씻어 준비하였다. 祭服의 경우 8종가 종손의 제복은 갓 혹은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는데 소재나 색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종부는 천담복이나 한복, 평상복인 화려하지 않는 옷으로 성복을 하였다. 祭需의 경우 이황 종가에서만 4열로 진설한 반면, 7종가 모두 『육례수략』에 제시된 바와 같이 5열로 진설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종가별로 제수를 장만하는 규모와 분량은 다른 기제사와 구별되어 성대하게 준비하며 최대의 정성과 최고의 솜씨를 발휘코자 한다. 節次는 공통적으로 제상설치, 신주출주, 제수진설, 참신, 강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유식, 합문, 계문, 사신, 납주, 철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불천위제례의 대상은 유교사에 있어 성인의 반열에 선 현자나 영웅들이다. 이러한 불천위제례의 정신적 가치는 忠誠과 孝敬의 실증적 귀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불천위를 둘러싼 종가와 그 문중, 혼인과 학제는 유교적 생활의 연장선에 있고 유교의 변화와 혼란 속에서 문화생활을 지속시켜갔다. 사림과 문중이 불천위로 추대해온 수백 년의 노력이 제례문화의 상징성으로 지역의 민속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현대사회에서 불천위제례의 생활 문화적 의의를 찾는다면, 조상의 행적과 공훈을 되새기고 그 분을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귀감의 대상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孝에 대한 교육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이 된다.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화 사회에서 불천위제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뿌리의식을 고취시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또한 그것은 生과 死를 일관하여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종교적 의례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아가 불천위제례는 삶과 죽음이라는 큰 관문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삶의 근원과 순환성을 알아 현실 속에서 경각심을 일깨우며, 제례에 참석하는 가족, 친지,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맡은 구실을 생각하며 나아가 질서와 조화로운 인간관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ABSTRACT

The Study o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Province

Kim, Gil-Ryeung

Dept. of korean Culture

The Graduate School of Wonkwang University

Josen dynasty which chose Juja learning as ruling spirit is a society emphasizing Confucian ideas. The Confucian ideas made the dynasty produce many celebrities and mighty clans as a leader. Since the Joseon dynasty emphasized the loyalty, they were regarded as a respectful group in court and local society. As a result, they were celebrated i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a meaningful ceremony authorized by a nation for the people who contributed to a nation or a moral person so a nation permanently preserves these people in a specific place. Originally, some older ancestors are regarded as a memorial service and some of them are celebrated permanently every deathday.

This dissertation was written for researching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province.First of all, I will examine some books including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among bibliographs related to Youngnam province and research some Youngnam families which have been succeeding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ased on such materials, I will examine the archtype of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and at the same time research some characteristics of this ceremony by comparing with other bibliographs. The results of my dissertations are as follows

First, since there were many powerful illustrious officials in Youngnam during the Jeoseon dynasty, many books related to courtesy learning have been succeeded. Among them, I referred to three bibliographs: Sangbyuntonggo(1783) written by Ryu Jangwon, Sawu(1870) written by Heo Jeon, and Yukraesuryak(1918) written by Song Junpil.

The characteristic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each bibliograph are that a shrine is the central place for the ceremony and it usually located in the East side. Cleaning one's body and spirit called 'purification' before the ceremony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is a procedure for communicating with their ancestors. Furthermore, ritual utensils which need to be preserved very carefully can not be used as other purposes and these can not be sold to others. Ritual robes are different form each position in the ceremony and descendants who participate in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prepare for the ceremony by cleaning their body and spirit through the ritual robes. The three bibliographs that I referred to in this paper show that things needed in the sacrificial service should be prepared at dawn and the procedure is as follows: Chamsin, Gangsin, Jinchan, Choheon, Aheon, Gongheon, Usik, Habmun, Gaemun, Sasin, Nabju, Cholwui.The whole procedure of the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that descendants respect their ancestors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auspicious ceremonies.

Secondly, the present condition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Youngnam is as follows: Andong(50th), Sungju(3rd), Kyungju(8th), Goryung(1st), Hyunpung(2nd) and Hamyang(4th). In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divided into both Kukbulchunwi and Dobulchunwi, but now each family does not distinguish these two services. Worshipping Bulchuwi sacrificial ceremony is regarded as the pride of a family and it shows there were many sages in the area. On top of that, it also shows descendants' passion to preserve and develop Confucian culture.I studied the procedure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based on some famous families in Youngnam province and they are as follows: the family of Kim Jongjik(1431-1492) with goryung Ilsun Kim, the family of Sohnso(1433-1484) with Kyungju Wulsung Sohn, the family of Jung Yochang(1450-1504) with Hamyang Hadong Jung, the family of Kim Guningpil(1454-1504) with Hyunpung Sohong Kim, the family of Lee Hyunbo(1467-1555) with Andong Youngcheon Lee, the family of Lee Unjeok(1491-1553) with Kyungju Yugang Lee, the family of Lee Hwang(1501-1570) with Andong Jinsung Lee, and the last family of Jung Gu(1543-1620 with Sungju Chungju Jung.

The main characteristic of each example is that each family's shrine is located in the east or northeast side. The place of the ritual ceremony is the main rome in the house and the term "purification" means one cleans body and spirit. The family of Kim Guningpil(1454-1504) started the purification procedure three days earlier, and the rest seven families did it one day. The whole eight families used brass ware as ritual utensils. Dishes used in the ceremony were usually preserved in hall, room or kitchen and these were cleaned before doing the ceremony. In case of robes, eight families wear Korean hat or black hat made of black cotton, but both materials and colors for these robes were different form each other. Especially, wives usually wore Korean clothes called Hanbok or casual clothes. In case of things needed in the ceremony, only the family of Lee Hwang arranged in forth line and other families did it fifth line as the book. Yukraesuryak(1918), indicates. Each family carefully prepared for the whole things in the largest scale because it is the most important ceremony. The procedure is ordered as follows: Sinjuchulju, Gaesujinsul, Chamsin, Gangsin, Choheon, Dokchuk, Aheon, Gongheon, Usik, Habmun, Gaemun, Sasin, Nabju, Cholwui.

Third, the focu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sage respected as a holy man, a humanistic person, or heroes. The phenomena of this ceremony is based on faithfulness and respectfulness and it is consolidated as a role model for people and descendants Family, marriage, and the education system related to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s a part of Confucian life and such a valuable system have been preserved while experiencing changes in Confucian values.

Bulchunwi which many powerful ancestors have been preserved for hundreds years are now maintaining local customs as a symbol of traditional culture. If we find some values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modern life, it is educational value that many people remember their works and respect them sincerely. This meaningful ceremony makes us realize the self-existence in a nuclear family society and at the same time strengthen unity. Moreover, the ceremony links life and death. It is also beneficial because the ceremony makes us realize the true meaning of life, learn the originality of life. By doing so, we will be able to be aware of our life in a society. Lastly, the ceremony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forming harmonious relationship amo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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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논문의 초록은 원광대학교 한국문화학과 예다전공 문학박사 김길령의 학위논문의 초록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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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다기’라고 하는 것은 ‘격格을 갖춘 다기‘라는 말과 상통한다.


만든 이의 정성과 기술에 속俗됨이 없어야 한다. 장인의 작품으로 재료의 선택에서 마무리까지 정성이 묻어나야 한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사용하면 할수록 격조가 있어 보여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품격 있는 차도구’라고 한다. 비싼 다기는 무조건 값이 비싸다는 것은 이벤트와 함께 브랜드의 인식을 심어 놓고, 그 후 값을 마구 올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비싼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게 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품격 있는 다기’라는 말과 ‘비싼 다기’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좋은 것을 들여 놓았다’와 ‘제일 비싼 것을 사 왔다’는 말도 비슷한 예이다. 레오나르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그림을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않은 사람이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화면 앞에 서면 잘 그린 그린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러 그림을 명화名畵라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가 그 당시에 가장 비쌌던 그림이라는 설명은 그 어디에도 없다.


노블noble과 익스펜시브Expensive는 뗄 수는 없지만 구별은 된다.

---<찻잔이야기> 2007년 개정 증보판에서


<찻잔이야기> 개정 증보판을 다시 보면서 유독 ‘품격 있는 茶器’라고 한 말에 대한 글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당시에 이 글을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차도구 전문 작가들 가운데 너무 터무니없이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가격을 올려서 그릇의 가치까지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우리나라 차도구 시장을 불안정하게 할 수도 있다. 이 글은 특정인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성실한 작가들이 앞서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심정으로 쓴 것이다.   - 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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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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