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국제차문화대전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중국차 관련 부스가 많이 참여하였다. 대부분 보이차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쪽의 부스에 ‘육보차’라는 글이 눈에 확 띄었다.
흑차 중에서는 보이차 다음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용한 시간에 그 부스를 지나는데, 마침 이미선 선생이 팽주 자리에서 차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는 최원화 선생님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오래간만인지라 합석을 하였는데 육보차라고 내어주는 차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더니 1960년대 차라고 한다. 60년대 흑차 대부분의 공통점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그 맛을 다시 보았는데, 귀한 차로 여겨졌다.
엽저를 살펴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맛과 향, 그리고 기운이 좋은 차였다. 이미선 선생은 이 차의 주인을 불러서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남당차방의 김태형 씨였다. 차의 맛과 성질을 두고 육보차 마니아 입장에서의 대담이 이루어지니 한층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국의 차문화는 어느덧 중국차와 차도구로 찻자리가 만들어지고 우리 것을 찾거나 구분하는 것보다 차를 맛있게 마시는 도구를 찾는 일에 더 열심히 진력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사호를 찾는 일에서도 유명한 작가를 찾아나서는 것 보다는 좋은 니료로 만든 실용적인 작품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황주니
보이차로서 중국 현지 생산과 판매 그리고 대리상을 넓혀나가고 있는 석가명차 최해철 대표는의흥에서 백년주니 상호로 작품 활동을 하는 양상곤 작가를 초청하여 티월드 차 박람회에서 전시행사가 열리고 있다. 주니만 고집하여 만들고 있는 이 작가는 이번에 20여 종류에 100점을 제작하여 한국 자사호 애호가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금황주니, 원광주니로 전시된 작품들은 주문에 의해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이지만 원광 주니로서 실용성 높은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차의 세계에서 검증된 노차를 중심으로 차회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노차를 중심으로’라고 하는 말 자체가 여러 어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차회를 기획할 때 ‘실제 50년대 차의 품질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하는 문제는 가장 먼저 검증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대홍인
이번 홍인품감차회는 일점홍인과 대홍인이 중심이 된 차회로, 입맛을 깨우는 수준에서 80년대 8582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이번 차회를 주관한 이루향서원 정진단 원장은 이미 한국에서 2018년 복원창 차회, 동경 차회 등 ‘골동보이차회’를 명가원 김경우 대표와 공동 개최한 바 있다. 이런 특별한 차회는 차회 문화라는 범주에서 보이차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일점홍인과 대홍인
필자는 차회 기록시, 반드시 한자리에서 인급 이상의 차를 두 가지 이상 마시는 자리에서만 ‘골동보이차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스스로 기준을 정한 바 있다. 오래된 차라고 해서 무조건 ‘골동보이차’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보이차의 마니아층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지만, 차를 마시는 기회 중에 이런 호사를 누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과 중국 차인16명
일점홍인과 대홍인을 차례로 마시면서 비교되는 점이 있었다면, 일점홍인을 마실 때 찻잔에 찌꺼기가 좀 보인 것은 차를 긴압 할 당시,긴압하기 전에 쌓인 찌꺼기가 들어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맛은 고미가 풍성하면서도 강한 맛이 이 차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周子 대표에게 대홍인 차를 따르는 정진단 원장
다음으로 마신 대홍인은 강한 쓴맛으로 일점홍인과 차별된 맛을 느낄 수 있고, 세 번째 차탕 이후부터 단침이 올라오는 강한 회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단침이 어찌나 강한지 시간이 지날수록 입이 벌어지지 않게 될 만큼, 그 차의 매력은 아주 대단하였다.
차회 중간 다식을 먹는 시간에 사굉 경매 회사의 주 대표는 전기훈향기를 가져와서 녹기남을 올려 훈향하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향은 필자가 매우 관심이 많은 분야라, 훈향기를 코 가까이 바짝 가져와 흠향의 기회를 맘껏 누렸다. 두 번째, 세 번째 그 향을 즐기는 찰나의 아쉬움을 영원히 붙잡는다는 느낌으로 향을 즐긴 시간이었다.
사굉 경매 회사 周子 대표의 배려로, 오늘 경매에서 낙찰 받은 50년대 산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 순간 필자는 살짝 망설여졌다. 대홍인의 맛을 좀 더 간직하면서 충분히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자 옆에 앉은 한수동 선생은 입안의 단맛이 무척 좋아서 다른 차를 마실 수 없다고 하며 50년대 산차를 마시지 않았다.
사굉 경매 周子 대표와 이원제 회장
만약 일반적인 찻자리였다면, 어느 누구도 이어서 다른 차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50년대의 차를 경험할 좋은 기회이기에, 필자는 기록의 의무를 상기하며 하나하나 세세하게 음미하기로 했다. 50년대 산차를 마셔 보니, 흔히 70년대 보이산차라고 하는 차에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차회 전체 모습
보이차의 경매회사 내에서 차를 마시고 즐기는 차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점에서도 반갑고, 주 대표의 통 큰 배려로 감상하는 차와 시음하는 차로 호사를 누린 기쁜 날이었다.
이번 차회에서 사용한 도구 가운데, 경매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의 수준 있는 일본 순금 히고 상감 무쇠탕관이 있었는데, 차를 내는 정진단 원장은 이 탕관을 사용하는 손맛이 매우 좋다며 흡족해 했다.
최근에 전국적으로 차 전문점에서 교육과 차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차 교육이 이루어지면서도 실제 그에 해당하는 좋은 품질의 차를 시음하는 자리를 찾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교육의 표본이 될 만한 차를 준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고지한 교육비로는 이 비용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가원 김경우 대표가 80년대와 90년대 7542 세 종류를 가지고 ‘8090품감회’라는 이름으로 차회를 열었다. 마침 필자가 그 자리에 초대받아 부족한 지식이지만 함께 차 이야기를 나눈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시음한 차는 다음과 같다.
94年 業 青餅 7542
80年代 末 薄紙 7542
80年代 中 厚紙 7542
김경우 씨는 이 자리를 ‘7542의 시기에 따른 맛의 변화를 알아가는 찻자리’라고 했다.
필자는 80년대 박지 7542가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후지 7542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후지는 가격은 박지보다 더 비싸지만 맛이 기대보다 심심한 편이라 80년대 박지나 94년 청병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사호 안에서 풍겨 나오는 엽저의 풍미로 보자면 노차의 깊은 베이스가 깔리는 후지 7542가 좋다는 점은 참석자 모두 인정하였다. 이를 더 잘 익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 차회를 주관한 김경우 씨에게 물었다. 그의 답변은 찻잎의 종류에 따른 맛의 차이라고 한다.
이렇게 실제 실물을 만져보면서 지질을 확인하고, 세 종류를 시음하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차회는 국내 여건상 회비 30만 원을 받고 진행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번 차회는 보이차 전문가로서 김경우 대표 자신의 흥미와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보여준 자리로 느껴졌다.
차도구는 기본적으로 찻자리에서 사용되는 기물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차를 마시는 공간 즉, 차실에 있는 모든 기물이 차도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벽에 걸린 글씨와 그림, 가구와 기물부터 찻물을 담아 둔 물항아리, 차탁 위의 수건까지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며, 좁은 의미에서는 차를 내는데 사용되는 직접적인 차도구와 기물들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한 기물들은 차의 맛과 향을 잘 느끼게 할 수 있고, 격조 있는 품질로 우아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차도구의 예술이라는 거대한 제목에 맞는 도구들만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차도구라고 사용되고 있는 전반적인 기물들 중에서 필자가 관심을 두고 살펴보던바, 값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도구의 실용성과 미적인 요소가 있는 것을 정리해 보았다. 다시 말해 차실에서 자주 보거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영기 어옥 다완
이 책에서 한국 도예가들의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은 필자가 2004년 사기장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작가를 만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도구 전문 작가로서 국내외에서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는 단 몇 분 외에는 대부분 작품 활동이 정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 스스로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유행에 편승되거나 평범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잘 팔리는 작품을 만들어 박람회에 나가서 성과를 올리는 작가도 있지만, 그것은 유행에 불과한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익히 깨닫고 있다. 이 책은 유행의 바람을 타고 만들어진 기물을 다루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밝힌다.
김시영 작, 건요천목 재현
우리가 차의 성인으로 여기는 육우의 “정행검덕”을 잘 살펴보면 차는 어떠하고 차도구는 어떤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 차원에서 금이나 은을 도자기에 응용하여 대단한 작품으로 생각하는 도구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인들이 차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동열 작/건요 천목 재현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첫째 그동안 아름다운 차도구에서 필자의 차도구 감상을 통해 다루었던 내용을 정리하고, 둘째 일본과 중국의 차실에서 만난 차도구들에서 선별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도구를 만났지만,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기에 책으로까지 내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필자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여 기록된 것이니 부족한 부분은 널리 이해를 구한다.
중국의 자사호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사호는 명대 포다법이 유행하면서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전다도에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일본 전다도에서 자사호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경매 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사호는 이전에 선인들이 애용한 것이 많이 등장하고 그것이 한국의 자사호 애호가들 손에서도 애용되고 있다. 즉, 자사호는 동양 3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로서 꼭 중국 것이라고 이유를 붙여 멀리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차문화는 침식 아닌 침식을 당하고 있음을 익히 느끼고 있다. 일본의 차도구는 자국에서 외면받고 중국과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중국의 차도구들은 변화무쌍하고 격조 있는 디자인으로 우리네 찻상 위에 올라와 앉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네 사기장들은 찻잔과 다호를 만드는 형상이 중국과 일본의 기물 사이에서 다시 한번 우리네 것은 무엇인지 찾는 시기인 듯하다.
청대 자사호/자하연티아카이브 소장
한국의 자사호 수장가들의 호를 보면 중국의 찻자리에서도 빠지지 않을 만큼의 수준 높은 기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전에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사용되어 왔고 중국 본토에서 수출되어 사람들의 손에 돌아다니며 존재하는 기물, 또 시대별 기물의 각종 변화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받아들인 선택적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이 책에서 다루게 되었다.
사람의 손이라는 것은 매우 예민하기도 하고 보편적이기도 하다. 이전에 사람 손을 타는 기물은 그것이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상기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전부터 늘 기본적으로 사용되었거나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애용되고 있는 기물들은 모두 다 사람 손에 잘 맞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전통적인 기본과 기물에 대한 철학을 올곧이 지키면서 디자인을 더하여 만들어지는 현대공예 중, 차도구에 대한 판단은 단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다.
문화의 차이가 곧 기물의 차이를 보여준다.
도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아름다운 도구를 찾아내는 것은 그보다 어렵다.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과연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아름다운 기물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이번 출간의 의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