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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축제장에서 연주하는 태족

 

오늘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윈난성과 시쐉반나 멍하이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윈난성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북회귀선이 통과합니다. 면적은 394,100 km2로 남북한 합친 크기의 두 배 정도 됩니다. 성의 북쪽은 고원지대로 티베트, 귀주성 등이 있고 동쪽은 광시 장족 자치구, 서쪽은 미얀마, 남쪽은 라오스 베트남등과 접하고 있습니다.

 

남부의 저지대에는 아열대성 기후도 있으며, 북부의 고산 지대에서는 아한대성 기후도 있어 다양한 기후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식물 상이 풍부하고 특히 원예 분야에서는 신종 화훼의 산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1월 평균기온은 8~17 °C이고 7월 평균기온은 21~27 °C입니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2300mm이고 이 중 절반이 7월과 8월에 집중됩니다. 윈난은 민족전시장이라고 일컬을 만큼 많은 종류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공인된 55개의 소수민족 중 25개 민족이 윈난에 살고 있는데, 윈난성 전체 인구는 2016년 기준 4800만명 정도이며 그중 소수민족은 1800만 명정도 입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는 없고 오로지 윈난성에만 거주하는 소수민족이 15부족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도 시쐉반나는 태족자치주로서 전체 인구는 120만 전후입니다. 징홍시를 중심으로 크게는 이무지역인 맹랍현과 포랑산지역인 맹해현으로 나뉘어지고 그 외 맹송, 파달, 격랑화 등이 있으며 다수의 유명 차산을 품고 있습니다. 한족 40, 태족35, 하니족20만명 정도와 기타 포랑족, 라후족, 이족 등 십여개의 소수민족이 골짝골짝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특히 멍하이는 보이차 산지와 공장, 상가 등이 밀집된 지역으로 최근에 보이차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봄이 되면 전 세계의 보이차 애호가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윈난성의 네 가지 기둥 산업은 담배, 농업, 광업, 관광산업이었습니다. 아직은 윈난성 전체에서 보이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차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점점 중요성이 확대되리라 예상합니다.

 

중국차엽유통협회에서 2016년 발표한 윈난성의 2016년 차 생산 통계자료에 따르면 차엽 총생산량은 36만 톤이며 그중 녹차16만톤, 보이차13만톤, 홍차7만톤으로 나와 있습니다. 전 중국에서 복건성(38만톤) 다음으로 차엽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 바로 윈난성입니다.

 

윈난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보이차를 떠올리는데 오히려 녹차 생산량이 조금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중국으로 확대해보면 아직도 녹차 생산량이 63%이고 보이차는 7%정도입니다. 열배정도의 차이인데 윈난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윈난성의 보이차 생산량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이시에 가보면 보이차보다 녹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더 많습니다. 홍차의 생산량도 생각보다 많은데 주로 임창지역의 봉경현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디엔홍(滇紅)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전이 윈난성의 옛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전홍은 곧 운남홍차란 뜻입니다. 지금은 전홍집단이란 회사에서 상표등록을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이차 생산량은 올해 일기불순과 과채엽등의 원인으로 봄차 생산량이 급감하였는데 전체적으로는 이천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천년 초에 3톤정도이던 것이 0607년도 보이차 붐을 타고 10톤 가까이 급증하였다가 0809년 오히려 감소하더니 10년 이후 현제까지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수차의 생산량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변경지대인 미얀마. 라오스. 태국. 라오스 등지의 차들도 계속 유입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럼 보이차 생산량에서 고수차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넉넉하게 보아서 전체 생산량의 5%정도로 추산합니다만 시장에선 흔한 것이 고수차입니다...고수차의 생산량과 종류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다시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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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26 - 차농들의 진화 -

 

오늘은 저희가 차를 생산 하면서 매일 같이 만나고 있는 차농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해마다 봄철이면 전 세계에서 보이차업을 하는 분들 또는 마니아 분들이 윈난성으로 몰려듭니다.

 

윈난성에서도 시솽반나 멍하이는 노반장을 비롯한 유명 고수차 산지가 집중되어 있고 전통적 보이차 산지인 이무 지역 또한 가까이에 있어서 보이차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엔 날씨나 온도가 보이숙차의 발효에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알려지면서 린창이나, 푸얼 등에서도 원료를 멍하이로 옮겨와 발효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이차를 압병하는 차창도 빠공리(8키로)라고 부르는 멍하이 도심에서 8km 거리에 있는 지역에 공단 형태로 집중되어 있고, 각종 모차 보관 창고도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모차 시장은 기존의 멍하이 시내에서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신하이화위엔(鑫海花園), 하오위차청(浩宇), 찌아밍차후이(佳茗), 티엔푸샹차예시창(天福祥), 쓰하이차청(四海)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600여 곳에서 최근에 3000여 곳으로 증가하였는데 지금 짓고 있는 가게까지 합하면 조만간 5000여 곳을 상회할 것 같습니다. 멍하이가 보이차 생산 전진기지에서 점차 적으로 수도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차 가게가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물론 보이차 음용 인구의 증가에 따른 산업의 발달에 기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현제 멍하이에 있는 가게의 80%정도는 차농들이 오픈한 가게입니다. 고수차 가격의 폭등으로 인하여 차농들에게 여유 자금이 생기고, 옛날엔 큰 차창에 생엽을 납품하던 단계에서 초제소를 짓고 가공하여 모차를 납품하는 단계로 발전하더니 지금은 시내에 가게를 오픈하여 직접 손님을 상대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입니다. 차밭을 가지고 있는 많은 차농의 자손들이 이미 멍하이에 가게를 오픈했거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더러는 일찍이 외지에 나가서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찻값이 오르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분들도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부모들이 가게를 차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아가 아직은 소수지만 직접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차박람회 등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농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역시 원료의 자가 조달일 것입니다. 자기 차밭에서 자기가 수확하여 자신이 가공한 원료이기 때문에 원가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잎이나 모차를 수매하여 생산하는 저희와 비교하면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 하게도 차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차밭 가까이 자라왔고 일상처럼 차를 생산해 왔으면서도 차의 가치가 오늘날 이렇게 폭등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집중해서 차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찻값이 오르니 생계형으로 차업을 시작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에 관한 역사나 맛의 철학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무지한 편입니다.

 

참외 밭 주인이 참외 맛을 잘 알까요?

참외 장사가 잘 알까요?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참외 사먹는 사람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차도 많이 집중해서 마셔본 사람이 맛을 가장 잘 압니다.

 

괜히 죄 없는 차농들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농사꾼이라고 평생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지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좋은 자산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좋은 차 만들어서 차 업계에 우뚝 서는 차농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바도 있습니다. 다만 잠 안 오는 날 구름의 남쪽 한편에서 생각하니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 건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모르거나 알고도 내팽개치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농사꾼은 농사 열심히 잘 짓고, 장사꾼은 양심껏 장사하고, 정치꾼들은 정치... 아이고 마 잘 쫌하고, 차인들은 좋은 차 잘 구분해서 마셔주면 좋은 세상 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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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맛을 논할 때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만이 앞선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차의 맛을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판단 할 수 있을까?

가격 대비를 기준으로 음식을 잘 하는 집이라고 소문이 난 곳은 누가 와서 식사를 해도 맛이 있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다.

보이차의 붐이 거세게 몰아쳤을 때에는 보이차 이외의 차(茶)는 차가 아닌 것처럼(일부 상인들 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 손의순 육안차] 그 반면에 일정 수준 이상의 보이차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보이차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인은 보이차의 유통 자체를 부정하며 다른 종류의 흑차가 사람의 몸에는 더 좋은 차라고 내세우는 현상이 오늘날의 우리나라 차문화의 한 단면이다.

덕분에 한 때 차의 축에도 끼어들지 못한 복전차가 대 유행이다. 차꾼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취향대로 움직이면서 차를 즐기고 있다. 자신이 마시는 차가 진짜로 몸에 좋은 차라고 하면서. 이런 경우는 약간의 주관적 견해의 개입을 부정할 수 없다. 지방과 서울은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유행과 함께 순환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중심에서 육안차는 논외의 차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이영자, 박정호]

육안차는 누구나 맛을 좋아하거나 즐길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특별히 이유를 논할 필요는 없지만 첫째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둘째로는 좋은 차를 접할 기회가 잘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육안차에 대한 가치 평가에 개인적인 주관이 개입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또 비교해서 맛을 볼 수 있는 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주변에서 양질의 육안차를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몇몇 마니아층에서만 즐기는 차라고 하는데 크게 부정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필자도 최근 10년간 육안차로서는 명차라 할 수 있는 손의순 육안차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또는 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셨다. 하지만, 명성만큼이나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차를 만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월 13일 부산에 있는 중국다예연구소 이영자 원장과 회원 5명이 함께 대구 쌍어각(대표 박정호)에 방문하여 대접 받은 차가 손의순 육안차였다. 그날의 육안차 맛은 필자가 이전에 마셨던 손의순 육안차에 대한 선입견을 일시에 지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육안차로서 좋은 차가 무엇인가라고 할 때 한 마디로 답변을 할 수 없는 것이 차의 맛이지만, 흑차 가운데 관심을 받지 못해서 차의 중심에서 밀려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맑고 깨끗한 맛이 세월의 기운과 함께 풍겨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고, 가슴과 눈과 입으로 느끼고 보고 들으면서 마음까지 맑아지는 맛을 음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필자에게는 손의순 육안차에 대한 이미지가 오랜 기간 청명한 마음으로 간직될 것 같다.

육안차 이전에 마신 대오룡차는 극품. 박정호 선생의 깊은 내공이 함께 어우러져 나온 맛으로, 차가 가진 진정성이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알게 하였다. 운남성(윈난성)에 들어가기 하루 전에 귀한 시간과 차를 내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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