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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제품을 포장하는 동작

 

생산이 완료되고 박스에 포장되어 쌓여 있는 차들을 보면 한편으론 뿌듯하고 한편으론 약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저 많은 걸 언제 또 다 팔아서 자금을 만들고 내년을 준비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입니다.

 

어쩌면 다 같은 생산자 이지만 차농들과 저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차농들은 큰 투자 없이 그저 자신들의 차밭에서 체엽해서 팔면 전부 소득입니다. 저희는 일일이 좋은 원료를 찾아서 오운산의 기준에 맞도록 주문하고, 차창에서 생산하고 포장 설계까지 모든 곳에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자해야 합니다. 오운산을 출시한지 올해로 꼭 삼년 그동안 조금씩 저축했던 모든 자본을 솥아 붇고도 턱없이 모자라는 게 사실입니다.

 

다행히 부족한 저를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아직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윈난에서 오로지 좋은 차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판매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차를 만들어 본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늘 고민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차를 만들 것인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좋은 차는 여러 가지 공통분모들이 있지만 개인의 기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어야겠지만 차맛이란 일종의 문화이기 때문에 제작자의 차에 관한 철학이 꼭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내용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가격 또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해야합니다. 무조건 차산지의 명성만 쫒아가다 보면 비싼 차를 생산할 수밖에 없고, 비싼 차는 비싼 이유들이 있지만 반드시 최고의 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무조건 저렴한 원료만 쫒아 가면 품질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당한 가격에 품질까지 잘 갖춘 차를 만드는 것이 오운산의 목표입니다만 양 극단을 어우르는 차를 생산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일련의 노력 끝에 탄생한 차를 앞에 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오운산의 모든 제품을 선 계약으로 생산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매년 1월에 그해에 생산할 차들을 진실한 차 벗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선 입금을 받아서 해당하는 금액만큼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타 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주문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좋은 구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저로서도 더 이상의 자본투자 부담에서 해방되어서 좋고 오로지 좋은 차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는 선 계약을 받고 있습니다만 박람회 참가 등 기타 부분의 지출 때문에 적당한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운산은 기타 차창들의 오로지 수익만을 추구하는 제품들과는 차별화 하고 싶습니다.

 

오운산을 애초에 창업한 목적이 수익을 떠나 정말 좋은 차를 만들고 싶다는 제 오랜 세월 갈망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차업에 몸 담은 지 이십여 년 사업적으로 보면 이젠 더 이상의 모험은 필요 없을 정도로 석가명차는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애초에 큰 욕심은 없고 재벌이 될 그릇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여생을 그냥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우연찮은 인연으로 기회가 주어졌고 여러 뜻있는 님들의 조언과 열망을 모아 시작한 것이 오운산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차의 변방이랄 수 있는 한국에서 중국의 변방 멍하이에 정식으로 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초재소를 짓고, 직접 차산을 누비며 생잎을 수매하고, 압병에서 포장까지 전부 제 손으로 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한국은 물론 중국의 대도시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박람회에 한국인이 만든 보이차라는 문구를 새기고 참가하여 홍보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작년에 제가 비행기를 탄 횟수를 체크해보니 모두 106번입니다. 평균 3일에 한번 꼴로 비행기를 타서 이젠 비행기만 봐도 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물론 직원들도 있고 여러 고객님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올해로 애초에 목표한 삼년을 어렵게 어렵게 다져 왔습니다. 그동안의 결실을 토대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선주문 체제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신에겐 아직도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라고 장엄한 일성을 남겼습니다만 저는 뭐 이순신도 아니고...감히 장군의 기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에겐 이제 더 이상의 자본 여력도 없고 더 이상 여러 좋은 님들께 무작정 제가 만든 차니까 구매하시라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양심이 있습니다...이제 시장에 나온 저희 차들을 냉정한 기준으로 평가해주시고 결과에 따라 내년의 생산량을 결정 하고자 합니다.

 

오운산의 경영이념으로 새운 당년호차 경년신차즉 그해에 만들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를 시음해보시고 혹시라도 마음에 드시면 마시거나 나눌 수 있는 만큼씩만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오운산 차는 결코 투자의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 시장에서 횡횡하고 있는 투기의 대상도 아니며 다만 한 차꾼이 일생을 바쳐 진솔하게 만든 차일 뿐입니다. 그래서 오운산은 여러 사람이 조금씩 구하는 차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창고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늘 곁에 두고 마시다가 남는 차들은 자연스럽게 세월 속에 새로운 맛으로 거듭나는 차이길 바랍니다. 실제로 전량 구매를 제의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단호히 거절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차업을 하면서 언제나 차는 차일 뿐 약이나 재산적 가치는 아니라고 말해 왔습니다. 차로 인해 건강이 좋아지고 때론 재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차를 마시는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운산 차에 제가 담은 정신은 맑음입니다. 맑은 차 맛있게 드시면 좋겠습니다.

 

* 저는 68일 새벽에 윈난성 쿤밍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서울 박람회에 참가합니다. 15일부터는 부산박람회에 참가하고 7월 초에 다시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멍하이 일기는 그때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늘 성원해주시는 님들께 일일이 답변 못 드리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가게로 방문하시면 손수 만든 오운산차 한 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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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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