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호 보이차 생산기지의 사무실 건물

석가명차(대표 최해철)에서 석가명차 대리점주들과 함께 2014년 6월 운남성 차문화 기행을 다녀온 내용의 기행문을 읽게 되었다. 기행문 작성자는 최해철 대표로서 매년 봄마다 운남성 차문화 기행을 해왔다. 필자도 2013년에 함께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운남성 보이차 생산지 탐방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허락을 얻고 석우연담 독자를 위해 올리게 되었다. 원고 내용은 가감없이 원본 그대로이다. 다만 이해를 돕고자 사진은 필자가 첨부하였다.

 

떠남이란 늘 약간의 설렘을 동반합니다. 일상에서 잠시 이탈하여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새로운 충전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매년 여러분들과 함께한 차문화 기행이었지만 올해는 봄부터 준비한 일정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연 또 연기되어 6월말에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중국 여행..!

준비 과정이 어려우면 진행 또한 어려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김해공항에서 교수님과 오자매님들을 반갑게 만나고 탑승하여 인천공항에서 예전님, 진주님들, 목포님들, 성연님, 차예님, 회자님, 오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상하이 공항에서 저희 가게에 줄 물건을 내리고(아차! 깜박 차창 방문시 줄 선물도 같이 내림) 국내선으로 이동 쿤밍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해발 2000m 고원이자 꽃의 도시 곤명! 중국인들도 평생에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한다는 그곳으로 우리 일행은 머나먼 한국에서 새벽길을 나서서 날아갔습니다. 몇은 졸고, 몇은 설렘에 창밖으로 코박고 있고, 몇은 늘씬한 스튜디어서 구경하고 있고ㅎㅎ.. 세시간여를 지나 드디어 곤명 장수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규모만큼이나 긴 이동 통로를 지나며 하관에서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금과철마 철병의 광고판을 반갑게 보았습니다. 지난번엔 대성반장 차의 광고가 새겨져 있던 자리입니다. 하관이 지난해부터 새로운 시스템으로 도약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곤 합니다. 공항에서 광조우에서 진미호와 노동지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김사장부부를 만나고, 버스가 한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하관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공부차를 만나서 봉경차장 곤명 사무소를 찾아 갔습니다.


사무실을 북경으로 이사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두명의 차예사들이 나름 정성껏 차를 우려 주었습니다. 대리에서도 12시간을 가야하는 봉경차창을 이번 일정엔 포함 시킬 수 없었지만 지금 현제 전 세계 최고령 차나무로 인정받고 있는 향죽청 차왕수(수령3200년)가 봉경차창 차밭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언젠간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은 곤명에서 유명한 버섯요리 (송이버섯 등 온갖 진귀한 버섯을 한꺼번에 넣어 탕으로 우리고 각종 야채와 고기를 사브사브로 익혀먹는 요리)를 먹었습니다. 봉경차창 한국총판을 맡고 계신 예전 사장님께서 한국에 도착하면 홍차를 이번 여행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한통씩 주신다는 고마운 말씀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얼마 전 티벳의 위그루족 칼부림 난동이 있었던 쿤밍역 근처의 호텔에서 장시간의 여장을 풀고 쉬고 있는데 세창흥 차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에 오기 전부터 쿤밍에 오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샘플 차만 주면 한국에서 시음해보고 답변 드리겠다고 했는데, 멀지 않은 곳이라 늦어도 좋으니 꼭 만났으면 한다기에 열두시가 넘어서 강락시장 근처의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여러 가지 차들을 꺼내놓고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는 사장님의 성의에 감탄했지만 바로 와 닿는 차가 없어서 그냥 몇 개 샘플로 사가려고 했는데 굳이 선물로 주셔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시음해보니 그때 마셨던 것 보다는 훨씬 나아보여서 구매 고려중입니다. 지나시는 길 있으면 다 같이 다시 시음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 방문 때마다 이처럼 종종 중소 차창에서 연결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격대비 품질이 아주 우수한 경우가 있어도 구입을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십년 후 이십년 후에도 공장이 남아있어야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불확실한 시장 상황 속에서 당장 먹을 차라면 모를까 소장, 투자용 차로는 중소 브랜드의 차들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날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안녕의 해만차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탔던 버스가 약간 낡아 보여서 새로운 버스로 바꾸는 과정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바쁜 마음으로 한 시간여를 달려 해만차창에 도착했습니다. 입구가 확장 공사 중이라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환하게 맞이해주시는 추병량대사님의 얼굴을 뵙게되어서 다행스러웠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해만 측의 답변에 근심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올해 나이가 76세이니, 평균 수명이 한국보다 한참 낮은 중국 측에서 보면 장수하시는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차가 세간에 회자된 이후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 초청장을 보냈지만 자신은 그저 차만드는 사람일뿐이라며 정중히 거절하시다가 2012년 저희 석가의 초대에 기꺼이 노구를 이끌고 방문하시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각종 세미나 및 강연회에 참석하시어 부족한 저희를 한국의 대표 차상으로 키워주신 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조그만 보답으로 집사람이 보이숙차로 염색한 옷을 선물해드렸는데, 지금도 각종 모임에 참석하실 때면 그 옷 입는 걸 즐기시고 꼭 한국 말씀을 하신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이라며 불편한 와중에도 굳이 나오셔서 일행을 맞이해주신 추병량대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 올립니다.

해만차창의 작년 생산량은 1400백 톤이며 중국 전역에 100여개의 1급대리상이 있고 아래로 수백 개의 전문점이 형성되었다는 현황보고를 들어며 어려운 시기에도 추병량대사님을 필두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해만차창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사님과의 간단한 질문 답변 시간을 갖고 차창 견학을 마친 후 저수지 뚝길 건너에 아담하지만 정갈한 식당에서 오골계탕 및 여러 가지 천연 재료로 만든 찬들을 먹었습니다. 음식 맛이 풍경처럼 정갈하고 신선해서 다들 맛있게 먹은 것 같습니다.

해만차창에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받고 하관차창이 있는 대리를 향해 출발 했습니다.

하관 차창이 있는 운남성 대리(大理)는 남송, 당나라 때 남조, 대리국이 있던 곳입니다. 중원에 당나라가 있던 시절 이곳엔 태족(傣族)과 백족(白族)이 주를 이루어 세운 대리국(大理國BC 937-1252)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지금도 운남성 대리시는 백족자치구에 속해 있음) 왕의 자녀까지 일정 연령이 되면 출가하는 철저한 불교 국가였던 대리국은 군대가 없었으며 혹여 외적이 침입해오면 상인들이 앞장서서 모병을 하고 백성들이 협력하여 외적을 몰아내었다고 합니다.


무협소설 ‘영웅문’으로 유명한 김용의 또 다른 명작 ‘천룡팔부’의 무대가 바로 이곳 대리이기도 한데, 후에 김용이 이곳에 와서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下關風, 上關花, 倉山雪, 洱海月)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하관에서 이 일화를 차용하여 풍,화,설,월이라는 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관차창은 사시사철 창산을 넘어온 깨끗한 바람이 보이차 건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관차창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창립되었으나 실제 제품 생산의 역사는 백년이 넘습니다. 1902년 ‘송학패(松鶴牌)’ 타차가 생산되었는데 하관이 그 역사를 계승하여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티뱃으로 연결하는 통로인 이곳은 옛날부터 차마고도로 유명한데 지금도 보염패(寶焰牌)란 상표로 티벳쪽으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습니다.

네 시간 정도를 달려 오후 다섯시 쯤 드디어 대리에 도착했습니다. 유럽의 해안 도시만큼이나 깔끔한 시가지 풍경에 우선 놀라웠고, 해발 2000M고지에 자리한 얼하이(洱海)의 맑고 탁 트인 면적에 놀랐고, 숙소를 물어 도착한 호텔의 웅장한 규모에 놀랐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하관 왕부사장의 영접을 받으며 지난번과 달리 하관측에서 여러 가지로 손님맞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서 흡족한 마음으로 잠시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 연회장으로 향했습니다. 대리 최고의 호텔과 연결되어있는 하관차창 전용 매장과 연회장을 둘러보며 대리 지역에서의 하관의 위상을 짐작케 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백족의 전통요리와 하관에서 자체 주문제작한 백주의 잘 숙성된 알콜이 저녁 만찬과 곁들어 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성연님과 하관의 어여쁜 인테리어 담당자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함께하신 분들만의 안복이었습니다...ㅎㅎㅎ

즐겁고도 화려했던 저녁 만찬이 끝나고 모두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저희가 주문 제작하기로 한 제품들의 시음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슬라이드 자료로 잘 정리된 자료와, 하관의 병배 최고책임자의 설명 그리고 일급 다예사 3명이 우려 주는 차는 정성으로는 이미 합격점이었지만 사업은 사업인지라 제삼 제사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진 자리였습니다.

세째날

대리에서 맞이하는 아침 저는 하관 왕부사장과의 한국총판업무관련 회의를 하고, 일행 분들은 하관의 박물관과 공장 내부 견학을 했습니다. 병차와 전차, 타차라인이 따로 구분되어있고 한조가 하루에 생산하는 량은 약 300~500kg 정도라고 합니다.

하관차창에서 대리 공항까지는 얼하이 호수를 돌아 약30분정도의 거리입니다. 제공해준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해발 4000m 창산을 넘어온 맑은 바람과 얼하이의 수려한 풍경에 매료되어 아! 여기서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대리에서 서쌍판남의 성도인 징홍까지는 약 900km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 체 안 되는 거리지만 버스로는 13시간을 달려가야 합니다. 2012년 일행 40여분을 모시고 비행기 티케팅이 안되어 버스로 밤세워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짓굿은 일행들의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동했습니다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추억입니다.ㅎㅎ

징홍 공항에 도착하니 대리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해발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맹해에서도 차산은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진미호 고객담당 경리의 영접을 받으며 이무까지의 일정이 만만치 않아 간단하게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징홍 시내에 있는 유일한 한국 식당인 그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배달도 가능하다기에 급할때면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충 서서 먹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며칠만에 맛보는 한국 음식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미호측에서 준비한 녹색버스(19인승 차산 탐방용으로 좋음. 짐은 따로 진미호 차량에 실어 호텔로 이동함)에 올라 이무로 향하였습니다.

남나산 차산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맹해에서 이무가는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둘러볼 시간이 없었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을 지나는 길엔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공품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벳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이라는 대문간판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하고 ‘마흑,을 지나 ’낙수동’에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이무천년 고차수를 친견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미호 낙수동 초재소에 들러 간단히 올해 생산된 낙수동 고수차의 향을 음미 했습니다. 마침 집을 수리중이라서 차마을의 운치는 덜했지만 손녀뻘 되어 보이는 꼬맹이의 해맑은 눈망울이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차마고도 출발점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잠시 머물며, 5000 ~ 8000km북경으로 티벳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동했었던 마방들의 고달팟을 생애를 반추 해 보았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 청나라 때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이무 탐방을 마치고 맹해로 돌아가는 길 모두들 아침부터의 강행군에 지쳐서인지 불편한 좌석 흔들리는 차 안이었지만 대부분 주무십니다.(심지어 코를 고시는 분도...ㅎㅎ)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부끄러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우다가,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 점점 나도 느긋해지는? 경향으로 변한 것 같은 생각입니다. 때론 급할 것도 없는데 괜히 서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 숨 되돌려보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자연은 결코 서둘지도 조급하지도 않습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훌훌 날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무에서 맹해까지 약 세 시간 반 늦었지만 맹해차창을 들러 입구에서 간단히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갔을 때도 박물관등의 수리 때문에 참관을 못했는데 아직까지 수리중입니다. 역시 중국스럽다는 생각.... 올 가을엔 꼭 완공 한다지만 그때 가봐야 압니다.ㅎㅎ


넷째날

아침 여덟시 진미호에서 제공해준 산악용 차량 네 대에 일행이 나누어 타고 포랑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가는 길에 노반장으로 유명해진 진승차창에 들러 간단히 올해 생산된 차들을 시음 했습니다. 저희가 2009년부터 12년까지 한국총판을 했던터라 모두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진승의 역사는 비록 6년에 불과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진승하 창장(진승의 회장 지금은 아들이 창장을 맡고 있음)이 포랑산 꼭대기 마을 노반장 고수차밭에 독점 투자하고 도로를 새로 건설하면서부터 불기 시장한 고수차 열풍은 단순히 노차와 신차로 분류되던 차시장의 흐름을 고수차와 대지차로 새롭게 분리시켰습니다.


나아가 고수노차, 고수신차, 고수병배차, 고수단미차 ,고수숙차 등으로 의미를 확장시켰습니다. 2010년 저희가 진승하 회장을 한국에 초청하여 부산대학교, 백스코 등에서 강연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진승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승 제품을 공식적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한국 방문시 해운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기우리며 생선을 직접 골라 썰고 구우며 이 부위가 맛있다며! 옛날 호텔 경영을 하며 익힌 노하우들을 알려주시던 진승하 회장의 호탕 소탈한 성품과 인간적인 면모들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맹해에서 20분여를 달리면 포랑산 초입입니다. 길고도 넓게 펼쳐진 평야를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라 벌써 벼가 누렇게 익었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부지런함이라면 이곳에서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겠다는 얘기들을 하십니다. 이렇게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강수량이라면 무엇이던 심고 가꾸면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길로 접어든지 20분정도 길량입니다. 이 지역은 고수차와 소수차가 혼재되어있어 순료 고수차를 구하기 어려워 진미호 차품으로는 생산하지 않는다는 진미호 구대표의 얘기가 언뜻 떠오릅니다. 지역 촌민들은 고수차와 소수차가 혼재되어있는 차밭에서 고수차만 분리해서 구매하겠다는 진미호 측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촌민들의 입장에서 다른 차창에서는 구분하지 않아도 구매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할 수없이 구대표는 ‘진덕차업유한공사’를 따로 설립하여 소수차를 따로 분리하여 모차로 팔거나, 진미호 로고가 새겨진 차가 아닌 비교적 저렴한 차의 주문 제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량을 지나 만난, 포랑향으로 가는 길 원시림 속에 조그마한 오솔길처럼 난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절경입니다. 상큼 달콤한 공기를 그대로 씹어 꿀덕 꿀덕 삼킵니다. 차를 타고 달리지만 삼림욕을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포랑산 고수차

정오를 지나 포랑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 부근에 자리한 포랑향은 포랑산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한국으로 보면 면 소재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작지만 슈퍼마켓도 있고 식당도 제법 몇 군데 눈에 뜨입니다. 전망 좋은 자리에 식당을 잡고 쓰레트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아래 산골 시장이 열렸습니다. 손수 재배한 채소들과 약초들 그리고 갓 잡은 짐승들의 사지가 이리 저러 널부러저 있습니다. 다소 흉물스러울 수도 있지만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스스럼이 없습니다. 꾀죄죄한 도마에 무디어 보이는 칼로 툭툭 처서 비닐봉지에 담아 줍니다.

 

야생에서 자라다시피한 오골계 탕에 각종 산나물들이 곁들어진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신반장을 지나 노만아로 접어듭니다. 흡사 우리나라의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연상케 하듯 온통 공사판입니다. 고수차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토착민들의 소득 상승에 기인하겠지만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나무기둥에 조각기와를 올리거나 갈대로 이은 고즈넉한 옛 촌락의 아취는 사라지고 시멘트 기둥에 파란 지붕으로 일괄개량입니다. 지나는 사람 보기 좋으라고 무조건 옛것을 지키라고 할 순 없지만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차밭과 어우러지는 산촌의 행정적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마을을 뛰어 노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여전이 초롱초롱합니다. 지붕을 유리로 덮어 새로운 아이디어로 건설 중인 진미호 노만아 초재소로 걸어가면서 공사용으로 쌓아 놓은 모래톱위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천진무구한 표정은 여실히 들어납니다. 사탕을 하나 주니 말갛게 웃습니다. 새하얀 치아가 햇볕에 반짝입니다.


한 시간여 다시 흙탕길을 달려 드디어 노반장입니다. 마을 입구에 노반장이라는 대문 간판이 세워져 있고 바로 곁에는 진승차창에서 세운듯한 촌민들과 진승 식구들의 사진을 합성한 대형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 산골짜기에 웬 은행인가 잠시 의아해 하다가 현재 노반장의 가구수는 126가구 정도인데 촌민들의 가구당 년 소득이 사억을 상회 한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의 신반장, 노만아, 방분채, 허카이등의 가구까지 합친다면 고차수로인한 촌민들의 년 소득은 상상을 띄어 넘을 것 같습니다. 고수차 열풍이 광풍이 되어 오솔길과 촌민들의 지붕을 날려버리더니 머지않아 차산마져 삼켜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노반장 최고령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차왕수’ 와 ‘여왕수’를 친견하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마치 논란과 화제의 중심점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경제원리로 보건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차수의 개체수는 한정되어 있고 힐링의 가치는 날로 높아가는 시대에 순료 고수차의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어서 바람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카이 지방정부 4호 보로수

방분채를 지나 허카이에 도착했습니다. 군데군데 새롭게 조성한 차밭들도 보입니다. 육 칠십년대 문화혁명 시기는 타율적 경제작물로의 전환기였다면 지금은 자율적 전환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허카이 지방정부 4호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800년 고차수 바로 옆에 진미호 초재소가 있습니다. 해마다 4호 ‘단주’ 차라며 진미호 구대표가 조금씩 선물로 주는 차를 시음하고 있습니다. ‘보호수’ ‘천년 고차수’라고해서 다른 고차수에 비하여 특별한 향과 맛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희소가치에 의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있다 할 순 있겠지요! 고차수의 향과 운치는 그 자체로 정말 특별하고 황홀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차는 역시 차일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만병을 통치하는 약도 아니며, 신선이 마시는 음료도 아닙니다. 억만금을 벌어주는 재산 가치는 더더욱 아닐 것 입니다. 혹여 차업을 하는 저 자신이 광풍에 휩쓸려 본질을 망각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초재소 찬간에서 주변의 산나물과 마당에서 자란 날짐승을 요리해서 저녁을 차렸습니다. 재작년에 40여명의 한국 손님을 모시고 왔을 때 여기 이 자리 산꼭대기 초재소 잔디 깔린 마당에 전선을 연결하여 어둠을 밝혔습니다. 운남산 고급 와인에 그라스까지 챙겨 각종 야생화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연이은 건배와 숯불 바비큐로 무르익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로서는 함께 했던 일행들과 평생 기억에 남을 만찬이었는데, 이번엔 일정상 간단히 준비한 저녁이었지만 정성스러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저녁 여덟시 쯤 진미호 차창에 도착했습니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날렵한 차창입구에 ‘한국차우들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하관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인들은 환영의 표시로 플랜카드 걸기를 좋아 합니다. 은근히 먼 한국에서도 우리차창을 방문한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 간지러운 속내도 살짝 비칩니다.ㅎㅎ


진미호는 2006년 구명충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군인 출신인 구대표는 처음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 왔지만 맨 먼저 시작한 일이 촌민과의 유대 관계 구축이었습니다. 각 지역 산채를 일일이 방문하여 그들과 뒹굴다시피 살면서 형님 동생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모차 장사를 시작했고, 조금씩 좋은 원료를 확보하여 진미호 차를 생산, 출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각종 투차대회(시음회)를 통해 차품을 인정받아 마니아층이 형성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저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2011년 저희가 본격적으로 진미호에 투자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쌍판납 아홉 개 명산의 정선된 고수차 원료와, 백프로 석모 긴압, 위조 방지를 위한 절편 내비, 경면주사로 찍은 제품표시, 풀어 헤칠수록 느껴지는 포장의 정성 등 진미호의 장점은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진미호 구명충대표는 사람에 투자하자는 저의 신념에 걸맞는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동안 진미호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숙원 사업은 자체 생산 공장의 구축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금 사정 때문에 미루고 있었는데 작년에 마오타이주 원료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인 아중이라는 분이 진미호에 거금을 투자하면서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것도 운남의 보이차창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치 공원처럼 조성된 대규모의 차창입니다. 이번 대리상 회의 때 현판식도 같이 했는데, 진미호차창 간판을 걸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구대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해마다 진미호 차의 출시 가격은 그해의 모차 수매 가격의 인상 분 만큼만 반영합니다. 공장도 이렇게 커지고 종업원도 늘었는데, 운영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저의 우려석인 물음에 “그래도 손해 보진 않아요!” 하고 씩 웃습니다 ..

모차 가격이 너무 올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좋은 차 못 사 먹을까봐 늘 걱정이라는 구대표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구대표은 해마다 봄차 출하가 끝나면 중국의 각 지역 대리상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등을 취합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직접 차를 몰고 빼이징까지 도착해 있을 때 우리 일행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비행기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의례 있으리라 짐작하고 미리 연락 못한게 미안해서 그냥 다녀가겠다고 했는데도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을 인사도 못하고 보낼 수 없다며 날아와 준 구대표에게서 중국 특유의 꽌시(관계 또는 의리)를 다시금 느끼고 새깁니다.


물론 진미호가 갑자기 너무도 화려하고 큰 날개를 단 형국이라 처음엔 다소 힘에 부치리라 예상합니다만 조만간 고수 보이차 업계의 진정한 리더가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다섯째날

어제 저녁 일행님들의 여러 가지 좋은 질문과 구대표의 성실하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답변으로 일정이 늦어젔어나 아쉬움이 남아 다음날 오전에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시작이라 견제 세력들이 별로 없을 수 있지만 앞으로 진미호가 크면 클수록 품질유지 측면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 할 수 있는데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진미호는 언제든 수면 아래에 두겠다고 합니다. 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현으로 들렸는데, 태풍이 불어 강물이 넘처나도 바위처럼 꼼짝않고 진미호를 진정으로 믿고 구매해주는 다우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구대표의 다짐을 들으며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진정 차를 사랑하는 차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1시쯤 일행 각자의 이름이 내비에 새겨진 진미호 차를 한편씩 선물로 받고 차창을 출발하여 징홍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내심 정말 하늘이 도운 여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십여년 운남을 다녔지만 이번처럼 포랑산의 알려진 모든 지역을 한번에 돌아 본적은 없었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나빠도 특히 신반장 노반장 길은 오르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일행님들의 복일 것입니다. 또다시 김밥입니다.ㅎㅎ 머나먼 구름의 남쪽에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평소 같으면 생각지도 않았을 일들을 여행을 통해 우리는 가끔 경험합니다. 공항 대기실 귀퉁이에서 눈치 봐 가며 후딱후딱 김밥을 삼킵니다. 서로 마주보며 밥알을 튕기며 웃습니다.ㅎㅎ


징홍에서 곤명을 경유하여 남경까지는 비행기로 약 세시간 반정도 거리입니다. 이 구간은 딜레이가 잦은 지역이라 특히 단체 손님을 모실 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한번 일정이 틀어지면 다음의 모든 일정들을 다시 조정해야 되기 때문에 티케팅 문제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다행이 이번 여행은 일정 내내 순조로워 정시에 남경에 도착하여 의흥을 안내할 최선생을 만났습니다. 자사호 수집 전문가로 알려진 최선생을 우연히 알게되어 이번 일정 안내를 부탁드렸습니다.


남경에서 의흥까지 버스로 약 한시간! 버스에 오르자마자 최선생의 열정적인 자사호 예찬론이 솟아집니다. 순간 약간은 뜨악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정에 참여한 님들에게 괜한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자기가 알고 있는 의흥의 자사 제작 친구들을 소개하고, 더불어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최선생의 순수한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오히려 장사꾼이 아니기에 덜 세련된 어투들이 듣기 나름으로는 삼류 약장수의 멘트 같아서 ㅎㅎ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최선생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일정을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의흥 시내에 새로 생긴 5성급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여섯째날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하여 북송시대 소동파가 유생들을 가르쳤던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동파서원 둘러보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황룡산으로 갔습니다. 칠 팔십년대 왕성했을 자사 광석 채굴 현장은 거대한 연못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은 자원보호 차원에서 채굴이 금지 되었지만 이미 채굴하여 노적되어 있는 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사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박물관 부속 건물에 작업장을 가지고 있는 허시연(국가급공예미술사)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각층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는 명작들을 감상하였습니다.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시대적 가치로서의 작품이 있고 최근 작품이지만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국가급 대사의 작품에서부터 조리 공예사의 작품까지 차업을 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났습니다. 때론 직급에 짖눌린 생각 때론 형태에, 니료에 천착하면서 과연 실용을 넘어 예술로서의 자사호는 어떤 것인지 아직도 깜깜합니다. 그저 이름에 끄달리지 말고 적당한 니료에 원만한 형태를 갖춘 호를 골라서 내가 아끼고 다듬은 세월이 나만의 명품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 갔습니다. 단체로 움직일 땐 시간 관계로 여러 곳을 방문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 전시실에 허시연, 왕안봉, 주건표 작가등 6명의 작가들이 작은 전시회 겸 시연 발표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곳에서 여러 작가들의 면면과 작품을 둘러보고 제작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뜻 깊은 자리였다고 생각됩니다. 프로가 아니기에 다소 서툴렀지만 우연찮은 인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저희를 안내해준 최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일곱째날

어제 저녁 상하이에 도착하여 일부는 발마사지로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일부는 호텔 근처의 야외 꼬지 집에서 맥주를 나누며 늦게까지 그동안의 소감과 회포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홍교 공항 근처의 고완성에 있는 저희 중국 가게에 들러 주변의 각종 골동 상품들을 감상하고 상하이 가게 형님의 횟집에서 여행 마지막 오찬을 나누었습니다. 일정을 마무리 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행이 이번 일정은 날씨가 좋아서 계획한 거의 모든 일정을 소화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즐거이 일정을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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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마을 부사장 김복남, 회원전용 코너에서 차를 대접하는 모습 

지난 6월 4일-7일, 서울 코엑스에서 제12회 국제차문화대전이 열렸다. 이날 차전문 쇼핑몰의 대표격인 ‘차예마을(대표 박경찬)’에서 국내 업체로는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열었다. 차전문 박람회에 처음 참가한 차예마을은, 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부스를 운영하기 보다는  그동안의 고객들과의 만남이 부족한 온라인의 맹점을 파악하고 그들과 오프라인에서의 차 한잔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차예마을 부스에서 보이차 시음

차예마을에서 취급하는 보이차 시음

차예마을은 온라인에서 가장 대표적인 회사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선택한 그 차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상담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들을 김복남 부사장과 심문섭 전무와 직원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차향보다 진한 사람의 향기를 맡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참으로 진지하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관차창의 대성반장, 가격대비 맛이 좋은 진미호 고죽 등이 인기품목이었다.

 

진미호 제품들

특히 부스 10개를 한쪽 벽면을 기준으로 길게 진열한 것은, 차를 시음하는 자리로서나 회원 전용 테이블의 효율적인 운용 면에서 한층 돋보였다. 차예마을은 올해부터 진미호를 비롯하여 대표격 보이차의 대부분을 취급하고, 백사계 차창의 천량차와 복전까지도 취급하면서 6대 다류 대부분의 차를 취급하게 되었다. 이러한 건강차 부분에서의 체계적인 상품 구성은 다시 한 번 ‘차예마을’의 성공적인 변신을 기대하게 하였다.

 


차예마을 부스 현장 모습(석우미디어 동영상)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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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정 2014.06.14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는 참여를 하고 올핸 하지를 못하여, 마음이 많이 적적하였는데. 역시 올해도 그 규모가 대단하였나 봅니다. 특히, 그 유명한 下하關관의 沱타茶차 로 유명한 松송鶴학牌패의 부스가 제일 컷다고 합니다. 올해 참관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듯 합니다. 또 내년을 기대하여 보아야 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seoku.com BlogIcon 석우(石愚) 2014.06.16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차 박람회장 분위기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대형 부스가 많이 나오고 고수차를 판매한 부스에서는 인기가 좋은 것 같았습니다.

  2. 김이남 2014.06.14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예마을, 이런 쇼핑몰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알았습니다.

[한중다예연구소(원장 이영자)에 설치된 "보이생차"로 만든 차벽의 일부, 2010년 5월 설치]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많은 책들을 새롭게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그 당시엔 그때의 관심사만 보았을 뿐이다. 이젠 차학이란 분야에서 접근해 보면 “차의 선진국(필자 주)”에서 만들어진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보이차에 집중되는 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는 차지하고 차에 대한 비전문가 들이 알고 싶어하는 차(茶)가 ‘보이차’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홍인이 언제부터 제조되었는가 대한 논리는 ‘호차급(號茶級)’ 차(茶) 생산 이후에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 포장 인쇄술에까지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된 내용으로 볼 때 박창식 선생(필명 죽천향)의 블로그(죽천향실)에 올려진 2009년 8월 28일 ‘인자급 홍인의 진실’에 대한 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여러 논저에서 나온 인급차(홍인, 녹인 등)의 생산 기간을 (1938-1970)에서 [인급차(印級茶) : 1951-1970]으로 하게 되었다.

박창식 선생의 논저를 믿는 것은 첫째 ‘호차급과 인급차’를 수년 전만 해도 실제 생활에서 완편을 쪼개어 마셔온 차꾼으로서 ‘등시해 교수 책과 짱유화 교수의 논저’ 및 중국내 신문을 인용하여 그 근거가 매우 논리적인 점이다.  http://blog.daum.net/36254598/13385065

『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오늘날 맹해차창 복원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 나뇐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

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下关茶厂的制式茶品

(상략)
饼茶篇 印级圆茶 自上世纪50年代初,下关茶厂生产了现在称为“印级圆茶”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这些产品,长期以来的普洱茶书籍中都误解为勐海茶厂生产。但前不久,在早期勐海、下关厂的相关史料中,发现了勐海厂早期只有经营原料收购、调配业务,而印级茶都是下关茶厂生产的相关证据。并且,坊间所称的印级茶年代承接也被进出口公司的纪录所修正。印级圆茶,最早生产的是绿印(蓝印)系列,后因绿色原料在卫生检疫中未能过关,而改印全红包装。

"인급원차
20세기 50년대 초,하관차창은 현재 “인급원차”로 불려지는 홍인、록인、람인 갑을급 원차를 생산하였다。이 생산품은 오랫동안 보이차 서적에는 맹해차창이 생산한 것으로 잘못되어있는데 맹해, 하관차창의 상관사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맹해차창은 초기에 경영과 원료를 거두어 사들이고 배급을 조절하는 업무를 보았다. 이는 인급차가 하관차창에서 생산되었다는 관계있는 증거이다 (하략)....。 "


그리고 1949년 12월 중국차엽공사 정식성립,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성립 1951년 말 팔중차 로고의 (중차패) 등록, 이라는 기록을 감안하면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지시로 맹해차창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차창으로 보내어 1952년부터 인급차를 생산하였다는 정황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해서 초기에 하관 차창에서 만든것이라 하여도 인급차의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1951년 말 - 1952년 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여기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 5 - 홍인 에서 발췌한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얼차’서적에 따르면 홍인원차의 역사 기원은 40년대 국민당정부(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 50년대 공산당정권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괴력이 발휘되어 1950년에 설립된 회사의 명칭이 40년대의 제품에서 등장하게 되고 1951년에 설계한 로고가 40년대의 제품에 인쇄되어 출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홍인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이며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답이다.

상품이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의 능력껏, 재주껏 파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나 상술에도 격이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는 제품을 존재하는 것처럼 고가에 판매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분명히 격이 결여된 상술이다.

푸얼차 상술에 관한 대가들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에 모여 있다. 세계 푸얼차 상품의 출고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이들을 가리켜 푸얼차계의 큰손이라 한다. 이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필자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얼차에 관한 상업적 정의는 대부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필자는 이들과 푸얼차의 역사에 대해 적잖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학자의 논거에 대해 귀를 기울여 지난날의 실수를 대부분 인정하는 반면 이들을 통해 푸얼차를 취급하고 있는 개인상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부정하는 것을 보면 푸얼차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요원한가에 대해 한탄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급차의 역사가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해서 보이차의 왕자로 불리는 인급차 홍인의 명성과 품격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등시해 선생의《普洱茶》에 쓰여진 자료에 오류들이 있지만 운남보이차에 대한 전고가 미비했던 시절, 나름대로 수많은 보이차를 접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을 수합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냄으로 보이차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차에 대해 알게 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오늘의 보이차세계가 있게 한 그분의 공로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홍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차는 그 생산 년대를 떠나서 현대보이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차는 그저 차일뿐이고 홍인의 맛과 향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죽천향_()_

참고 (중국신문의 기사)

http://www.yxdaily.com/yxnews/cate/xxb/2007_5_18/239399.shtml
http://www.yuxinews.com 2007-5-18 8:07:00

富豪陈茶庄里的印级茶
玉溪新闻网讯(实习记者 马瑞华 文/图)说起来应该算是缘分,才第一次去富豪陈茶庄,店家就给我介绍了三款市场上很少见的印级茶,分别是八十年代朱砂红印铁饼、八十年代大红印生茶饼和八八九二生茶饼。

据了解,印级茶指的是上世纪五十年代初至六十年代后期下关茶厂生产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以及后来的蓝印铁饼等茶品。(인급차 지적시 상세기 오십년대 초 지 륙십년대 후기 하관다차창 생산적 홍인、록인、람인갑을급원다,이급 후래적 람인철병등 차품)。印级圆茶的外包装纸,上方自右向左横书大字“中国茶叶公司云南省公司”,下方为小字“中茶牌圆茶”,中间为八个中茶商标,内有印刷了八个中茶商标的方形小纸条,没有其他字样。
印级圆茶整体品质优异,尤其以红印、无纸红印等为佳品。这些茶的原料主要来自西双版纳勐海地区的班章、巴达、布朗等茶山的野生、野放型老茶园,所以茶质厚重、茶韵深沉。印级圆茶,是由石磨手工压制而成的。

印级圆茶有着悠久的历史,它见证了中国普洱茶国营生产及社会主义计划经济时代的开始,凭借着为“红火江山,生生不息”创造的高品质,成为市场中高级普洱茶的代称,是普洱茶中高陈期、高价位的杰出典范。在经历了四五十年的陈化后,他们现在的身价都已超过了万元,所以渐渐从流通市场上退出。印级茶是陈茶中的陈茶,精品中的精品。因其用料考究、做工精细,除了饮用之外,也是一款馈赠、珍藏佳品。

[2010년 5월에 <보이생차>로 설치된 차벽이다. 사진은 벽면 전체의 일부, 1년이 지나면서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는 현상이 보인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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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간 “공부차도”가 출간되었다. 발행인은 중국차 전문점 “공부차” 박성채 대표다. 국내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책을 발행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기존 경륜이 깊은 잡지와 비교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비교대상이 아니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그런 쪽을 기대한다면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문헌에 의존한 글은 담지 않는다는 것이 발행인의 주관이다. 차를 학문으로 공부하거나 그러한 정보를 학문적으로 얻고자 한다면 기존 발행되고 있는 잡지가 그 기능을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보다 사진에 대한 비중을 늘리고자 하며, 현재 차 시장이 정체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살아있는 차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차를 이론으로 배우고 보이차 품평을 이론에 의존해서 하는 것은 진정한 품평이 될 수 없다는. 그의 확실한 신념이 앞으로 "공부차도"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9월에 출간될 2권에서는 확실한 전투복을 입고 나올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예를들면, “차 시음기”다. 차 자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발행인 이름으로 시험기를 공개한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개적으로 받게 되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이 분야에서 차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26종류의 차를 시음하고 시음기를 올렸지만 다음엔 더 다양한 차가 나온다.


01년 8653 철병 / 생산연도: 2001년 / 제품명: 8653 / 종류: 철병 / 생/숙: 생차
중량: 357g / 차창: 하관차창 / 권장소비자가격: 1편 35만원
품질대비가격: 8점, 탕맛: 8점, 수장가치: 8.5점

1번 해괴를 잘 해서 우렸습니다. 하관 특유의 향과 적절한 고삽미가 매우 좋습니다. 뒤에 살짝 남는 단맛과 고미의 느낌이 좋습니다. 하관차는 고미가 삽미보다 높은 편인데, 하관차가 주는 고미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이 맛 빠지면 하관차창 보이차 마니아가 됩니다.

2번~5번 충족된 고삽미가 매우 좋고, 회감과 회운도 빠른 편입니다. 입안에 차 맛이 감도는 느낌이 부드러운 가운데 톡톡 쏟아주는 고미는 감칠맛을 끌어내어 주어 쉼 없이 차 한 잔 더를 외칠 수 있게 해 줍니다. 6번~8번 뒤로 갈수록 감도는 단 맛은 은은하니 좋습니다. 약 3그램 넣고 연하게 우려서 마시면 감칠맛 나게 즐길 수 있는 내포성 좋은 철병입니다.

*철병은 우릴 때 최대한 해괴를 잘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차 후에 진정한 맛을 느끼기에 부족하고 매우 연하게 우려 나옵니다. 해괴가 잘 안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세차 시간을 늘리거나 첫 번째 차를 우리를 시간을 길게 하여 탕 맛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사진, 정복초당]
그외 중요 기사를 보면, 보이차 전문 생산업체인 두기차창 소개와, 중국 차예를 연구하는 동양차예연구소 오명진 소장의 차예란 무엇인가? 한국 차도구 작가의 작품소개로 우해요 정재헌, 단장요 강영준의 작품세계, 중국 차관문화를 볼 수 있는 "동리고진의 야경을 배경으로한 정복초당" 기사가 나온다.  
한국에서 중국차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곳을 취재한 처음 삼인행을 향했던 날" / 박예슬, 드립으로 보이차를 마시는 법을 상품화 시킨 부산대유정차관 최정림/중국 북경차시장에 대한 현장이야기/ 보이차 애호가에게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는 보이차가격/맹해차창, 하관차창 제품의 가격 공개 등이다.
 [사진, 두기차창에서 보이차 제조 과정]

두기차창 창업 목적과 생산 이념
두기의 출발은 비록 06년부터이지만 창업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차 제작에 깊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보이차에 대한 깊은 열정과 지식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2006년 보이차 대표 고급 브랜드인 ‘두기’를 창업하였다고 한다. 두기의 생산 이념은 ‘용심주차, 주호차(用心做茶, 做好茶)’로, ‘정성을 들여 차를 만들면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특별한 기사로는
차예란 무엇인가 / 오명진(동양 차예연구소 소장)

차예는 결국 다도, 다례와 같은 것이며 어느 부분을 좀 더 드러내는가가 다를 뿐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스스로 중국 육대다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입장에서 단순 기예는 차예가 아니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차를 최상으로 우려내기 위해서는 좋은 차를 가릴 수 있는 눈이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육대 다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한다. 또한 각각의 차에 어울리는 다구에 대해서, 우려내는 물의 성질과 온도 등에 대해서도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잔의 차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포차의 예술 적인 손동작, 기물의 아름다움, 단아한 차실의 분위기, 아울러서 예술적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차문화 전반에 학문적으로 접하고 반복수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철학적 소양이 따르지 않으면 이 모두는 공허한 것으로 남고 만다. 이는 차예 뿐 아니라 ‘다도’, ‘다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다도의 완성자라 칭송되는 센리큐도 다도는 예술적 안목 없이는 완성되기 어렵다고 간파했으며 차에는 마음의 행복이 있고 이로 인해 도로서 성행할 수 있었으며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차의 미의식을 말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차예는 결국 다도, 다례와 같은 것이며 어느 부분을 좀 더 드러내는가가 다를 뿐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한국의 차가 다도나 차예가 될 수없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때에 따라 다도, 다례라는 말을 종종 쓰기도 한다. 그리고 차예 표현은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창작으로 변신하고 있다.- 

보이차가격/차시장 가격표는 향후에는 다양한 차류의 가격이 공개되겠지만 창간호에서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맹해차창과 하관차창의 차 가격을 중국차 시장 소비자 가격으로 올렸다. 예를들면 아래와 같다.
맹해/7572의 2011년 생산한 숙차/병차 357g 33,000원
맹해/보토영재 2011년 생산한 생차/병차 357g 58,000원  
맹해/오채광작세트 2008년 생산된 생차/병차 2000g 250,000원

박홍관의 자사호 이야기 (양장)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박홍관
출판 : 도서출판이른아침 201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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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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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목표: 보이차는 차(茶)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향과 맛이 있다. 독특하고 다양한 향과 맛을 이해하면서 객관적 주관적 기호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보이차를 한층 더 즐길 수가 있다.
지난주에 이어 5주 째 강의록은 아래와 같다.


5주: 보이차 향과 맛의 특징 이해

1, 70~80년대 생산된 차 종류

70~80년대의 국영차창 시기에 차창에 따라 생산된 차는 주로 곤명차창은 타차를 많이 생산하였으며 맹해차 창에서는 주로 병차와 타차를 많이 생산하였다. 하관차창은 타차와 병차를 주로 많이 생산하였다.

1)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병차의 종류

(1) 청병종류

① 8582병차: 80년 초기에 7582 이름으로 생산 유통되기 시작하였으나 85년도에 홍콩의 “남천공사”가 7582 배방 방식의 차를 주문하여 유통 시키면서 8582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는 다시 7582의 이름으로 병차가 생산되어 유통 되었다. 가장 큰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맛의 특징은 떫은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따로 느껴지지 않으며 다른 차에 비해 강렬한 맛이 특징이다.

② 7542병차: 1979년도 이후에 시장에 생산 유통되기 시작한 차로서 중간 정도의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맛의 특징은 떫은맛이 먼저 와 닿으며 쓴맛은 한 옥타브 낮게 느껴진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황인은 7542 배방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7542계열에 속하는 차로서 7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73청병이 있으며 88년도에 생산되어 88청병으로 이름 붙여진 차가 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생산된 등황인 역시 7542계열에 속하는 차이다.

③ 7532병차: 가장 어린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맛의 특징은 혀끝에 쓴맛이 먼저 와 닿으며 떫은맛은 한 옥타브 낮게 느껴진다. 80년대 초반에 생산된 차로서 포장지 중앙 茶의 표시에 눈이 내린 것처럼 분이 있는 녹인 종류를 설인이라고 부른다.

(2) 숙병종류

① 7432병차: 가장 어린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악퇴발효 시킨 숙차이다.
② 7572병차: 중간 정도의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악퇴발효 시킨 숙차이다.
③ 8592병차: 가장 큰 찻잎으로 병배 된 병차로서 악퇴발효 시킨 숙차이다.

2, 보이차의 맛의 특징

보이차는 매 종류마다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맛은 떫고 쓴맛과 발효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깊고 부드러운 맛, 보관과정에서 과발효된 차와 제다과정의 숙차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운 맛(얇고 가벼운 맛)을 구별해 볼 수가 있다.

(1) 보이차의 향과 맛의 특징: 향은 크게 모차의 산지, 제다과정, 보관과정에 따라 향과 맛이 독특하게 형성되어져 있다. 또한 잘 보관된 차에서는 향과 맛 외에도 추가적으로 마실 때 느끼는 뜨거운 정도를 말하는 열감이란 것이 보이차에는 있다. 열감이 높은 차를 마시면 몸이 훈훈해지는 것을 빨리 느낄 수가 있다.

① 향의 특징

※ 건창차에서 나는 향

- 햇차에서 나타나는 풋풋한 향
- 잘 진화되고 있는 차에서 나타나는 청량한 향
- 발효된 독특한 난향과 장향

※ 습창차, 번압차에서 나는 향

- 미생물이 관여된 매변(곰팡이)향의 정도 차이

※ 숙차화된 차에서 나는 향

- 먼지향, 삼향, 하향, 조향

※ 악퇴시킨 숙차에서 나는 향

- 악퇴향, 삼향, 하향, 조향

② 탕색의 특징

발효정도에 따라: 등황색→선홍색→갈홍색→진홍색→암흑색의 특징을 지니지만 보관과정의 기간에 따라 심도의 차이와 끈적이는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③ 맛의 특징

오미(떫은맛, 쓴맛, 단맛, 짠맛, 신맛)를 참고하여 감칠맛을 느낀다.

- 얇고 가벼운 맛이다(싱겁다).
- 두텁고 무거운 맛이다(짜다).
- 떫은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오미가 풍부한 맛이다.(고삽미)
- 발효된 독특한 깊은 맛이다.
- 단맛이 풍부하다.(후미에서의 단맛과 찻물에서의 단맛을 구별)
- 떫은맛이 강하다.
- 쓴맛이 강하다.
- 신맛이 강하다.
- 목을 마르게 한다.(아린맛)

(2)생차(병)의 향과 맛

① 건창차(병)의 향과 맛

청량한 향에서 발효된 독특한 향으로 진화되고 있는 과정을 참고하여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맛은 찻잎이 생산된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오미를 참고하고 맛의 특징(어우러진 정도)과 발효정도의 깊은 맛에 따른 부드러운 정도, 열감등을 즐긴다.

② 습창차(병)의 향과 맛

매변(곰팡이)향의 정도와 오미를 참고하여 맛의 특징(어우러진 정도)과 발효정도에 따른 부드러운 정도, 열감, 후미에서 단맛이 올라오는지를 즐긴다.

③ 번압차(병)의 향과 맛

매변(곰팡이)향의 정도와 오미를 참고하여 맛의 특징(어우러진 정도)과 발효정도에 따른 부드러운 정도, 열감, 후미에서 단맛이 올라오는지를 즐긴다.

(3) 숙차(병)의 향과 맛

① 제다과정의 숙차(병)
악퇴향의 정도와 맛의 특징에 따른 부드러운 정도를 즐긴다.

② 보관과정의 숙차(병)
향의 맑고 탁한 정도와 맛의 특징에 따른 부드러운 정도를 즐긴다.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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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등시해 교수의 품명편(品茗篇)
넓은 의미의 차자(茶滋)는 입에서 느끼는 차의 맛으로 여러 종류의 맛의 감각, 즉 물의 성품, 차에서 우러나오는 인후적인 느낌의 여운, 침이 돌아 나오는 것 등 이 모두를 의미한다.

①미도(味道)
푸어차는 통상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맹물 맛, 그리고 무미 등의 수종으로 미도를 이룬다. 단 맛은 푸어차 애호가들이 몽매에도 구하는 맛이고, 쓰고 떫은맛은 찻잎 특유의 맛이고, 이는 더욱이 차를 좋아하는 차의 달인들이 즐기는 미도(味道)이다. 신맛과 맹물 맛은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맛과 맹물 맛은 기피하게 되고, 무미는 미도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아주 연한 별 맛없는 푸어차의 미도(味道)를 무미라 한다.


단맛(甘)
단맛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 모두가 다 좋아하나 너무 짙은 단맛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중의 은은한 단맛은 맑고 우아하고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고 만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단맛을 탐하고 이로 인한 푸어차의 위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대엽종의 푸어차는 상대적으로 그 성분이 농후하여 오랜 세월동안 진화한 뒤에 비로소 쓴맛, 떫은맛이 없어지고 은은한 당분이 찻잎 중에 남아 차를 우렸을 때 은은한 감미가 돈다. 여러 푸어차 중에 홍연원차와 원차철병은 본래 같은 원료의 찻잎으로서 제조 방법(方法)이 다르다.

이 두 종의 차의 단맛은 꿀의 감미이고 광운(廣雲)공병의 단맛은 사탕수수의 단맛으로 입천정(윗턱)위에서 단맛이 오래동안 남아있다. 푸어차를 만들 때 청병(생차)으로 만든 차는 자연 발효 후에 감미가 순정청아(純正淸雅)하고 차성이 고귀하지만 숙병(熟茶)으로 만든 차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탈속 고귀한 맛이 없다. 더욱이 신 차원의 관목은 인공시비를 사용하여 변종이 되고 맛 또한 변하여 탕의 감미가 버터맛의 느낌이 감돈다.


쓴맛(苦)
본래 차의 성품은 쓴맛으로 옛날에는 "고차(苦茶)"라 불렀다. 야생차는 너무 쓴 맛 때문에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개량으로 "야생형"으로 바뀌고 다시 "과도형"으로 재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쓴맛은 카페인으로 장기 숙성 후에는 쓴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목에서부터 돌아 나와 진정한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현재 고품위의 녹차는 아주 어린잎으로 만들어 쓴맛을 최소화하고 있다. 연꽃향의 백침금연과 고품위의 녹차와 50년대의 복록공차, 60년대의 광운공병이 모두 쓴맛을 최소화한 푸어차이다. 쓴맛은 또한 차를 타는 방법(方法)에서도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차의 쓴맛은 일종의 미미(美味)로 시경(時經)에 쓴 차를 찬미한 말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찬사의 비유적인 말이 있다. 미인을 쓴 차에 비유한 것으로 쓴맛이 진미(眞美)란 말인가?


떫은 맛
보통 하는말에 차는 "쓰지 않고 떫지 않으면 차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진화 60∼70년 이상 된 차에는 쓰거나 떫은맛이 없다. 차에는 양강성(陽剛性)푸어와 음유성(陰柔性)푸어가 있다. 홍인 및 녹인갑을은진기가 50년이상으로 양강성의 차품푸어이고, 진기 육십수년의 말대긴차와 80∼90년의 동경노호는 전형적인 음유성푸어이다.

떫은맛은 푸어차의 탕의 강도를 의미하고 떫은맛은 입안에 베어 침이 나오게 하는 작용을 한다. 나의 직접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운남성 중부 즉 맹고, 맹롱, 봉경 일대 차는 쓴맛의 차이고 떫은맛의 차가 아니다. 이무(易武) 의 명차가 모두 떫은맛으로 침을 돌게하는 차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홍인, 녹인, 송빙, 경창, 보경 등은 모두 운남 남부 차로서 이들 차들은 모두가 떫은맛을 가진 차이다. 떫은 차와 쓴 차의 차를 타는 방법의 기교도 중요하며 각자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 처리할 수 밖에.
 
신맛-맹물맛(酸,水)
신맛과 맹물맛은 푸어차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이다. 이는 불량원료와 보관불량으로 신맛이 날 수 있고 신차관목으로 변경푸어에서 접할 수 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칠자병차, 송빙, 정흥호의 내비를 쓴 변경 푸어차, 광동병에는 신맛이 근소하게 있다. 차를 탈 때 3∼5잔 후에는 산미가 현격히 감소한다.

 
무미(無味)
무미지미(無味之味)란 입에 찻물을 넣자마나 즉화(卽化)하여 향과 맛은 즉시 고인 침에 흡수되어 맛과 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푸어차의 전문가들은 공인하기를 "무미지미(無味之味)가 곧 푸어차의 최고품이다."라고한다. 이는 세월과 유관하다. 백년 이상의 금과공차의 평(評)에 "탕색이 있고 차맛은 진화하여 담박하다."고 하였다.

나의 선친께서 남기고 간 "홍지푸어"는 야장향에 진운이 충분하고 차기가 강렬하여, 찻물이 즉시 침을 돌게 하여 아주 은은한 무미지미로 내가 소장하고있는 차중에 최상품으로 간주한다.

"무미의 맛이야말로 곧 선의 경지"이고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경계이며 수백 종의 차중에 오직 푸어차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푸어차의 차도(茶道)가 곧 도가(道家)의 진정한도(眞道)이고, 무미지미 즉 맛이 끊어진 경계의 맛을 참이라 하고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아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름하여 선재푸어.


푸어차의 차향(茶香)


※운남 푸어차는 소엽종, 변종중엽종 관목푸어차종 등이 있지만 여기 푸어차 차향을 소개하는 것은 주로 대엽(大葉)종 교목 푸어차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

기실 푸어차는 장기 발효 차종으로 완전 발효, 중발효(重醱酵)로 남아 있는 진성의 원래의 향이 반 이상 약해지고, 아주 약한 원래의 향이 남아있다.

이 향이 곧 향이 나는 원인과 원래의 푸어차의 원향(原香)을 암시하는 것으로,푸어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향을 느끼는 중요한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관점이다.

이 것이 차잎의 등급, 제작과정의 신선도, 보존과정의 적부 등을 경과한 결과로서, 이것을 아는 것이 차의 진성을 아는 것이고, 생산과 미감을 서로 공명하고 미적인 감성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차의 향(香)은 차나무의 종류,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주로 취급하고 있는 차는 오래된 적어도 30년 이상된 청병 건창 대엽종을 주고 한 차향을 주제로 한다. 주로 차품의 대엽종 교목으로 육대(六大)차산의 산품을 표본으로 하여 차향(茶香)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장나무의 기(樟氣)

예장나무와 함께 자란 차나무(有樟:예장나무)

차 나 무(無樟)

종 류













연하(蓮荷)



방란(芳蘭)

청홍(靑紅)

야홍(野紅)

담홍(淡紅)

연하(蓮荷)

청향(靑香)

차의 등급



1∼2



2∼4

4∼6

6∼8

8∼10

1∼2

3∼8

차 향


연꽃향
(荷香)


난초향
(蘭香)

청장향
(靑樟香)

야장향
(野樟香)

담장향
(淡樟香)

연꽃향
(荷香)

청향
(靑香)





 

푸어차의 진운(陳韻)

객관적으로 볼 때, 진(眞)이 곧 미(美)이다. 모든 사물에 진실성(眞實性)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도 감정의 세계 이면에 이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관이 있다.




즉 이 심미적(審美的)능력이 객관적인 진(眞)성과 주관적인 감(感)성 사이에서 하나의 평형점을 얻는다. 이 도리(道理),즉 진실성(眞實性)을 누가 훌륭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美:아름다움.훌륭한)는 반드시 진실성의 전제하에 생기는 것이다. 푸어차에서 이뤄지는 이 미(美)도 객관적 진성(眞性)과 주관적 감성(感性)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에 의하면 푸어차를 마시느데는 첫째 요구조건이 좋은 건창의 생차이고, 둘째 오랜 향과 맛과 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향과 맛, 기를 감정하는데는 ①차운(茶韻), ②차향(茶香), ③단맛(甘味), ④침이 생기는 것(生津), ⑤차기(茶氣)의 순서이다.

진운이란 일정기간 경과진화 후 발생하는 운미(韻味)이다.

신선한 색감(色感),혹은 진구(陳久)적 감각을 말한다. 푸어차의 영역(領域)중에 진운이란, 맛을 보고 느끼는 한 형태로서의 감성미(感性美)로 반드시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과 경험은 독특한 학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경험을 얻어 올 수도 없는 것이고. 아주 깊고 오묘하여 현저히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운은 일정한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완전히 경험적 감각적으로 알아야 하는것이다. 포도주 감별사가 그 혀와 감각으로 감별하듯이 일종의 식물의 진화 역정(과정)을 독특한 입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몸으로 직접 푸어차를 마셔보고 부단히 선배의 지도 아래 다른 년대의 탕 중에서 다른 진운의 감각을 익히는 길 밖에 없다. 이는 말로 전할 수 없고 언어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선(禪)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시중에서 상인들이 100년 푸어라고 판매하는 차들은 거의 근거가 없고, 그들 스스로 붙인 연대이다.

진실로 근거가 증빙되며 판매되고 있는 최고 오래된 것으로는, 동경노호(同慶老號)원차가 약80∼90년의 진기(陳期)이고, 복원창(福元昌)호가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그 이외 동흥호, 정흥호, 송빙호, 경창호, 강성호, 맹경호, 동창호, 가이흥호 등 대부분이 60∼70년 정도가 된 진년노푸어(陳年老普 )라고 할 수있다. 듣기로는 푸어차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다.

①푸어차의 미도(味道)가 너무 강렬하다.②최고로 온순하다.③위장을 깍는다.④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장수한다.



이상과 같이 조금만 들어도 상호 모순점이 두드러진다. 이상은 기실 푸어차의 진기가 같지 않은 결과에서 나온 말이다. 강렬하여 위장을 깍는다는 것은 반드시 햇차를 마신 것이고, 온순난위는 오래된 차를 마신 결과이다. 하관차창 출품 갑을급(甲乙級) 생타차( 茶)의 차성은 너무 강렬하여 유럽 시장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차품이다. 어떤 약국에서 비만에 특효가 있는 영약으로 판매하고 있는 50∼60년 된 말대긴차는 차성이 너무 온순하여 강한 미각이 조금도 없어 어떤 중의(中醫)는 대만달러 10,000NT$에사서 온화촉진(溫和促進)하는 양약으로 쓴다.

이와같이 다방면으로 볼 때 최고 오래된 차(월진월향:越陳越香)를 최고로 사랑한다. 저장과정 중, 청순한 푸어차 진성이 필수, 아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건창진화
②온도 급격 변화 불가(한냉 고온등)
③잡맛에 감염 기피(음식, 향료, 잡향 등)
④대나무 껍질 포장(잡미보호, 청순)
⑤진화 연대 수명(최저 60년 이상)



용마패 동경노호는 진화감이 최고 절정으로 반드시 밀봉 보관함이 최적이다. 계속 진화 연후에는 차성이 소실되고 맛과 향이 쇠퇴한다. 진기100년 이상의 금과 푸어는 오직"탕색이 있고 차 맛이 진화되어 담박하다"는 것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인체 내에 생명을 넣어 하나의 체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할까? 푸어차의 진운(陳韻)이 곧바로 푸어차의 구체적인 역사의 지표이다. 역사는 생명의 누적이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서 감정의 역량을 편직해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운은 음악에서의 북소리를 연상케 하고, 깊고 깊은 사람의 심장진동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진운(陳韻)은 사람에게 느끼게 한 진감 즉 월진월향(越陳越香)을 가져다준 가장 고귀한 산물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함께 진운은 인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미감이다. 이미 이루어져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일뿐.

<푸어차 진운의 분류>

  








청 (靑)


신 (新)

구 (舊)

노 (老)

진 (陳)

고 (古)





1 ∼ 5




5 ∼ 20


20 ∼ 40

40 ∼ 60

60 ∼ 100

100 이상




근 기 (近 期)

후 기 (後 期)

조 기 (早 期)

선기(先期)

원기(遠 記)




70 ∼ 90

50 ∼ 70

30 ∼ 50

30∼청말

청말이전
(淸以以前)

차품
茶品


문혁전차(文革 茶)
73 전차 (73 前茶)
백침금연(白針金蓮)
홍대병차(紅帶餠茶)
칠자황인(七子黃印)
푸어방차(普 方茶)
광남공병(廣南貢餠)
7562전치(7562 茶)
농공상전(農工商 )
칠자병차(七子餠茶)
8562 차
강성전차(江城 茶)
75후전차(75厚 茶)
광동병차(廣東餠茶)


홍인원차(紅印圓茶)
홍연원차(紅蓮圓茶)
원차철병(圓茶鐵餠)
홍심원차(紅心圓茶)
녹인원차(綠印圓茶)
황인원차(黃印圓茶)
복록공차(福綠貢茶)
사보공차(思普貢茶)
광운공병(廣雲貢餠)
칠자철병(七子鐵餠)
홍인타차(紅印 茶)





보경원차(普慶圓茶)
동흥원차(同興圓茶)
가이흥전(可以興 )
송빙원차(宋聘圓茶)
경창원차(敬昌圓茶)
강성원차(江城圓茶)
양빙원차(楊聘圓茶)
동창원차(同昌圓茶)
동경원차(同慶圓茶)
홍인원차(紅印圓茶)
진운호원차
(陳雲號圓茶)



동경노호
(同慶老號)
말대긴차
(末代緊茶)
차순원차
(車順圓茶)
정흥원차
(鼎興圓茶)
홍지원차
(紅芝圓茶)
홍창원차
(鴻昌圓茶)



금과공차
(金瓜貢茶)
복원창호
(福元昌號)


인터넷 카페에서 퍼왔는데 출처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그냥 [네이버 살아가며 님의 글입니다]
라고만 되어 있어서 저작자가 확인이 되면 저작권자의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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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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