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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차
흔히 차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마셔온 구력을 10년 단위로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20년 30년이 넘어가면 그 세월동안 그저 한, 두가지 차만 마셔본 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80년대 초, 우리나라 하동과 보성 차 밭을 자주 다녔다. 봄에 새싹이 돋는 그 차밭이 너무나 아름다워 매년 5월이 되면 차 밭에서 하루 밤을 자고 와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았었다.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나서는 중국의 차 밭과 차 제조 공정을 반복적으로 탐방 하면서 자연스럽게 절강성, 복건성, 운남성을 포함하여 14개의 성을 다녀보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차를 접했겠나 싶다.

그런 과정 중에 <중국차 도감>, <중국차 견문록>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만약 필자가 안마셔본 차라면 거의 없다 할 정도의 자부심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요즘은 <보이차 도감> 작업으로 중국 대부분의 차 산지에서 생산되는 보이생차를 마셔보고 있다.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보이 대수차’는 재료가 일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전에 잘 못 만난 생차와는 확연히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지난날 중국차 도감 작업을 위해 녹차와 청차류에 집중적인 사진 작업이 있었다면 지금은 보이차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사진 작업을 하지만 결국 몇 종류로 압축되고 있는 시점에 마시는 차류는 더욱 늘어갔고 그간 몰랐던 차에 대한 신비감은 차츰 줄어든다. 비싼 차만 마시거나 ‘보이차에 투자’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마시는 차와는 분명다르다.

이런 상황에 지난 목요일 부산에서 흑차 뿐 아니라 청차에 있어서도 좋은 차를 마시는 해운대 C 씨의 집을 밤 11시에 찾아가게 되었다. 오랜 만에 왔다고 하시며 내는 차가 처음엔 세월이 많이 지난 대홍포를 마셨고 두 번째로 내는 차가, 차를 다호에 넣기 전의 모습을 볼 때도 처음 본 것 같고 마셔보면서는 더욱 처음 느끼는 맛과 향기였다.

그동안 참 많은 차를 접해본 나로선 약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잎과 줄기가 뚜렷한 엽저에는 윤기가 나고 있었다. 향기는 푹 삶은 채소에서 나오는 깊은 맛이다. 보이차로 비유할 수 도 없다. 주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호남성에서 오래전에 구입할 때 ‘흑모청차’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하며, 공식적으로 차의 이름이 거론하기 위해서는 좀더 자료를 찾아 보아야 된다고 한다.

이런 이름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처음 접한 차다. 더구나 세월도 60년이 훌쩍 넘은 차이다. 주인도 호남성에서 누군가 “이쪽 사람들은 옛날에 이런 차를 마셨다”고 해서 오래전에 우연히 구해놓은 차라고 한다. 요즘 좋은 차는 구하기 어렵고, 또 그 때의 차를 맛보고 싶어 보관한 곳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신선한 경험이었고 또 무척 반성을 하게 되는, 아니 차라는 의미를 두고 다시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그런 충격과 찰나의 회고였다.

그동안 내가 먹어왔고 향기를 기억하는 차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임의로 정해놓은 차를 가지고 그것만 바라보고 살고 또 그러한 이름에 끌려다니며 맛을 보니 그 맛은 하나같이 한결같았고 또 그 와중에 등급도 나눠졌던 것이다. 결국 누군가 정한 그 맛에 익숙할 뿐이다. 그렇다, 차는 사람들이 각기 근처에서 일구어 당시에 필요한 차를 만들어 마셨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덖어놓고 그들이 두고 두고 마시려했던 자연발생적인 음료일 수도있다. 그것이 정형화되기 이전의 차문화요, 그 차생활 속에 지역의 특징이 그대로 묻어나는 생필품이었다.

다시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검은 빛으로 윤기나는 찻잎을 바라보며 듣는 주인의 말, 그리고 개완에 가득 넣고 우려마시고 거꾸로 뚜껑에 담은 엽저에서 자신의 몸을 그대로 드러낸 찻잎은 자신만만하게 검은 빛에 윤기를 드러나며 사람들에게 세월과 차의 역사를 내비추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www.seoku.com/523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http://seoku.com/442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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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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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복동에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다례헌이라는 찻집이 있다. 이곳에서 책 원고 작업을 위해 만남을 약속한 최 선생님과 1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최 선생님이 먼저 와 자리에 앉아 계셨고, 마침 주인장 서재홍 선생님도 계셨다.

중국차 전문점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언제나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고 딱히 분위기가 동떨어진 곳이란 것은 아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장소는 분명 아니면서도 뭔가 쉽게 다가갈 수 없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주인의 강한 개성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오늘은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

최 선생님과 자리를 함께 하고 메뉴판이 없는 이 집에서 무슨 차를 주문할까 망설이다가 무이암차인 육계를 주문했다. 원래는 주인에게 물어보고 시켜야 되는데 문득 생각난 것이 오래된 찻집에서 나오는 육계 맛은 어떨까 하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안주인이 우리 집은 20년 된 육계라고 이야기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개업한 지가 20년이 되었고, 그 당시에 차를 많이 확보한 상태였고, 세월을 품은 차가 기본적으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깡통으로 된 차 통을 그대로 들고 오셨다. 마실 만큼 차를 넣고 우려 보았다. 탕색은 등황색에서 붉은 쪽이다. 필자가 육계를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진년차에서 느낄 수 있는 홍배 맛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기에 요즘 만들어져 나오는 차와는 무언가 기본 맛이 달랐다. 단순히 세월 맛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세월 홍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요즘 맛있다고 하는 암차의 전형적인 암골화 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무이암차의 잔향은 그대로 녹아있다. 약간 고풍스런 실내 분위기와 주인장 부부의 고아한 멋이 함께 배어나오는 것 같다. 필자는 우리가 앉은 옆 테이블 에서 책을 보시는 주인 서재홍 선생께 요즘 어떤 차를 즐겨드세요 하고 물었다.

“보이차!”

보이차 마니아시라니 당연한 대답이시리라. 우선 마시기 편해서 좋다고 하신다.

안주인은 흑차의 매력을 더욱 느끼시는 것 같다. 작은 도자기 탕관으로 끓여 맛있게 우러나온 사천성 금첨을 주셨는데, 표정과 손길에서 주는 즐거움과 행복이 그대로 전해온다. 인생의 선배 같은 모습이다.

손님과 육계를 맛있게 마시고 덤으로 주신 금첨의 맛은, 최근에 호남성 공첨과 천첨을 통해 세월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깊은 맛을 알게 된 데에, 새로운 한 가지 맛을 더하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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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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