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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은 추는 남자상 1]

풍휘묘, 28인의 악사와 무용수 죽어서도 풍악을 울린다. 머리에는 검은 복두를 썼고 몸에는 소매가 긴 붉은색 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검고 넓은 띠를 맸다. 검은 장화를 신었으며 몸은 옆으로 틀었다. 오른발은 반쯤 들고 왼발은 땅을 디뎠으며, 오른손은 앞으로 들고 왼손은 뒤로 돌렸다. 배와 땅을 엉덩이가 튀어나와 몸의 입체감을 표현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가 높으며 입은 약간 벌렸고 수염이 무성하다.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살짝 올린 채 춤에 심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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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은 추는 남자상 2]

검은 복두를 쓰고 몸에는 소매가 긴 도포를 입었다. 머리는 움츠리고 어깨는 들어올렸으며 오른 손바닥을 도포 밖으로 펴서 벌리고 발은 춤추는 듯 구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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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생을 부는 남자상]

날개가 약간 늘어뜨려진 검은 복두를 쓰고 붉은색 도포를 입었다. 실눈을 뜬 채 노생을 불고 있다. 노생은 한나라 이전부터 있었느며 원래 운남(雲南) 지방 소수 민족의 악기이다. 노생은 일반적으로 생이라고 하는 악기의 한가지로 한국의 생황에 해당한다. 생황은 신라시대 계유명아미타불삼존석상. 상원사 범종(725년)의 비천상애 조각되어있다.

오대(五代) 907~960년
오대 때의 묘(섬서성 빈현 저점향 전가취촌 풍휘묘)에서 무덤안으로 들어가는 양 쪽 옆으로 왼쪽 벽에 남자 14명, 오른 쪽 벽에 여자 14명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채색 부조 벽돌이다. 이 벽돌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춤을 추는 남자상 1]에서 보이는 모습으로는 얼굴이나 채형이 중국인이 아니다. 당시에 춤을 잘 추는 서역사람들을 수입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지에서 그런 유형의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권력층이나 귀족들은 자신이 필요한 말이나 사람등도 함께 수입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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