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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3년 전부터 차를 내는 법, 즉 행다법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과거에도 행다법 연구는 계속되어 왔지만 5년 전부터 중국 다예사 제도가 한국 차문화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차의 위상이 흔들리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중국 다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단체로 중국을 다니고, 이젠 그것을 영업으로 하는 단체들도 성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차를 공부하는 차인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면서 한국차의 행다법 연구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주최, 한국차문화포럼에서 행다법의 비교 연구를 1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 회의실에서 손연숙 교수의 개회사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사진 좌, 가예원 행다법 시연] 이번 행다법 비교 연구에는 ‘가예원’ 전정애(원광대 한국문화학과 박사과정),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은 윤지인(원광대 한국문화학과 박사 과정), ‘한국차문화협회’는 이순옥(전남도립대학 초청 교수), 한국차인연합회, 김길령(원광대 예문화와 다도학과 교수)의 해설로 구분하여 행다법의 시연과 해설이 있었다.

방법으로는 찻상보 걷기, 다관을 예온하여 찻잔에 따르기 등의 동작을 구분하여 각각의 해설 담당자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다법의 비교 연구를 보면서 중요하게 느낌 점은 단순히 행다법을 비교한다고 비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 박정희 교수의 사회로 진행] 참가한 팀에 따라서 다법에 숙련된 사람이 나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시연을 보이는 곳과 법인체 이름으로 참가하였지만 법인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을 보면서 아쉬운 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행다법 연구는 어려운 것이다. 어떤 수준으로 비교 연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 즉, 방법론적인 면을 더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행사 마지막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많은 분들도 느낄 수 있는 궁금한 점을 필자가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하였다.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의 행다법에서 물 항아리와 화로의 위치가 찻상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은 차를 내는 사람의 동선에 상당한 무리가 있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공개 질의를 하였다. 답변은 찻자리에서 손님이 찻상을 마주하는 자리가 아니라 손님 옆에서 차를 내는 것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질문으로 차를 다 내고 나서 주인의 찻잔을 찻상 아래에 두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 부분은 멀리 광주에서 참여하신 혜명다례원 장문자 원장님께서 답변을 하였고, 설옥자 원장님도 보충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블로그에서 상세한 글을 올리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두 분 답변의 핵심은 원칙적으로 겸손이라는 입장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서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까지 이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점도 하나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성세대보다 좀 젊은 축에 든 사람의 입장에서 겸손의 한계를 생각하고 질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행다법을 연구한 사람들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사진, 설옥자 원장의 행다법에 대한 설명] 이번 행사에 가예원 설옥자 원장이 참여하여 비교 연구 발표장에 열기를 더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더 다양한 방법으로 발표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설옥자 원장님의 1분 인터뷰/

원장님, 오늘 비교 행다법을 보시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하나 부탁드립니다.

설옥자 원장 답변 : 하나의 행다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첫째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둘째 정신 상태가 바로 서야 하고, 셋째 한국의 차를 영원토록 남기게 하려는 마음과, 넷째 우리 옷 바로 입기, 다섯째로 우리 절 바로 하기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 단순히 손 동작 연구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였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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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음악이 있는 다회를 지난 금요일 포스팅을 했지만

블로그 사정으로 그 글을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글을 포스팅 했는데 다음뷰에 홍차에 대한 제목이 삭제되지

않고 이미 검색에서 제목이 변경되지 않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그래서 신규 포스팅 한 글을 삭제하고

이 공간은 조만간 홍차에 대한 다른 글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혹시 홍차에 대한 제목을 보고 찾아오신 분께는 사과드립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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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대 차역사라고 하면 해방 이후 1960년부터 도시에서 차생활을 즐겼다고 해도 49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것뿐이다. 일본에 비해 차에 관해서 내세울 게 없는 것은 차와 그 문화에 대해서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전해진 역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찻자리의 유형을 가지고 차를 어떤 방법으로 무슨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여 손님께 낸다고 하는 규범적인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아름다운 찻자리’라고 하여, 각 단체에서 두리차회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찻자리가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실내의 큰 행사장에서는 지역에서 찻자리 심사와 행다법을 시연하는 사례를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 그만큼 행다법이나 연출된 찻자리를 발표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도 유발하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예전에 한 번 해보고 싶은 행다법이 발표되고 찻자리에서 사용되는 도구도 직물을 이용하는 것에 관심은 가졌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차인들은 누군가의 행위를 보고 자신도 유사하게 해보게 된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먼저 발표한 사람이 저작권 운운하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같은 색깔의 방석도 만들어주지 못하게 하거나 처음 주문한 사람의 것 말고는 해주면 안 된다고 하는 말도 듣게 된다. 바느질 하는 사람들은 이러저런 이유로 좋은 찻자리에 기품 있게 등장하여 잘 사용되어 수요가 많아지면 좋은 일이다. 그것이 특정인에게만 사용되어야 하는 논리는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김순진 계명차문화 연구소 소장, 바닦에 다포를 크게 깔고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상의 규정도 없었고, 입식이 아닌 좌식일 때, 어떤 상을 차리고 다식과, 찻잔의 규격이 규범적으로 나온 것이 없다. 옛날 선비들이 바닥에서 직물을 깔고 술이나 차를 마시는 경우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바닥에 자리를 깔더라도 반드시 상에 술이나 차를 차리고 마셨다.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에 직물을 깔고 연출하여 차를 내는 것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 전차도 다법 발표장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며, 대만에서는 현대에 와서 직물을 이용한 행다법이 가장 먼저 시행된 나라이기도 한다.

중국은 탁자를 이용한 찻자리가 대부분이라면 대만에서는 바닥에 다포와 유사한 형식이지만 규격이 다양화되어 그날 차를 내는 장소나 손님에 따라 변화를 주는 아주 재미있는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직물의 염색 방식도 다종다양하다. 작은 다포의 경우는 무아차회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더욱 발전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다포 색깔과 같은 것으로 차를 내면 안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정로다례원 임미숙 원장의 행다법 발표전, 쪽염으로 염색한 다포에 먼저 향을 피움]

한국에서 누군가 찻자리에 대한 가장 트렌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 찻자리의 중심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아우라를 펼질 때, 그것이 많은 한국인의 감정의 문을 두드리고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있다면 모두 그를 따를 것이다. 아직은 행위만 보여지는 것이 전국에서 대두되다 보니까 단순히 누가 먼저 했다는 원조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일본과 대만의 다양한 찻자리를 먼저 본 사람이 한국 고유의 색을 응용한 천연염색으로 미적인 감각을 돋보이게 하여 자신의 대단한 창작품인 것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 일본의 전차도 선생이나 대만의 차선생들이 보면 ‘수고하셨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무엇을 보여 주려고 우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국적인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옷만 한복을 입었다고 그들이 한국적인 다법을 보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반복된 학습으로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한 번 발표하고 저작권 운운하면서 일본과 대만 차인들에게 더 이상 웃음거리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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煎茶(전차) 용어가 일본말이라고 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煎茶(전차)달일 煎 = 달여서 마시는 차,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데 우리는 현재 잎차를 우려서 마시고 있습니다. 우려서 마신다는 뜻의 한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 달일 ‘煎’을 사용합니다.(은근한 불에서 100도가 넘지 않게 합니다)

예를들면, <주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酒), 달일 전(煎) - 데워서 마시는 것은 있어도 [사진, 말차(가루차) - 전차의 뜻과 상대어] 술을 달이거나 펄펄 끓여서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전자>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전차(煎茶)라는 말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말이기에 사용하지 말자는 것 보다는 말차의 상대어는 전차이며, 만약 말차가 아닌  가루차라고 할 때는 상대어는 엽차나 산차가 되겠습니다.

중국에서 포다법이라고 하는 차내는 법을 보고 유학승에 의해서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은 우려마시는 차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계파별로 차를 내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전차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우려마시는 다법에 대해서 전해져 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해방이후 일본의 전차도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차도구연구소나 석우연담을 통해서 명칭연구에 관심있는 분의 다른 의견을 수렴하겠습니다.
댓글로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고, 비공개로도 의견을 수렴하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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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현재 많은 차회가 활동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지순 원장이 운영하는 관향차회에서는 회장님이 요리연구가로서 제주도 음식문화에서 응용한 두레반 다법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두레반 다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의 전통적인 식사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 관향차회가 두레반 다법을 만들게 된 의도는 단일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녹차 밭을 품고 있는 제주임에도 불구하고 예법만을 중시하는 일부 차인들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하여 차문화가 쉽게 생활화 되지 못함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보다 친숙한 다례법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운데 중앙, 김지순 원장. 그외 관행차회 회원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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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법은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졌다.
[제주도 관향차회 회원들의 두레반 다법]



제주사람들이 늘 먹어왔던 일반적인 가정의 일상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 낭푼밥상'이라 표현한다. 제주 여인들이 밭농사와 물질(해녀들이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이른다)로 쉬지 않고 일하던 제주의 어머니들은 '낭푼'이라는 공동의 밥을 담는 그릇에 밥을 가득 퍼서 소반 가운데 놓아두고 나간다. 젓갈이나 김치 등 밑반찬을 낭푼 둘레에 차려놓고 상보로 덮어두고 일을 나간다. 끼니때 집에 있게 되는 가족들은 사람 수 만큼 국을 떠와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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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두레반 다법은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잘 보여주는 다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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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사진은 [차문화 코드 5번] <한국 현대 차인1>에 나오는 관향차회 두레반 행다법을 촬영하면서 관향차회 회원들께 양해를 구하고 짧은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 올리게 되었다.
제주 관향차회 김지순 원장님과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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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차(茶)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기호 식품이다. 하지만 커피와 달리 차는 예(禮)를 갖추는 일을 중요히 여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음식에서 예로 발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 차와 함께 하며 살아왔다. 부산, 대구, 서울 등의 웬만한 차인들의 행다법을 지켜봐 왔고, 때로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회원권을 구입하며 준비된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기도 수차례 해왔다.

각 차회의 행다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정도로 수 없이 많은 사진 촬영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런 일에 이만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러한 시간들이 다 소중하고, 그들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 차문화의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문화의 한 분야가 발전하기까지는 그 분야 관계자들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속된다.

차인의 눈으로 봤을 때도 행다 절차는 까다롭고 어렵다. 다른 사람의 진지한 행다례 발표를 보면서 ‘춤추는 것 같다’ ‘너무 외형적으로 치우친다’고 폄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자는 한복 입고 폼 잡는 것 때문에 차문화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누군가는 ‘과도기’라 이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기라 명명한다고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미래로 향한 중요한 길에 놓여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학문으로 그 깊이를 논하고, 차를 연구하는 학자는 차의 품종을 연구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면서 다 함께 가야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분명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형적 치우침이라고 매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 긍정적 대안이 아니다. 좋은 대안을 놓고 함께 연구하고 노력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차회의 흠집 내기 발언보다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을 때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행다 발표에 있어서는 그 동안 수련했던 것을 자신 있게 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보자. 태권도가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태권무(跆券舞)라는 것도 생겨났고, 한편에서는 전통 태껸을 지켜온 이도 있었다. 무엇이 원류이고, 무엇이 본질인가? 문화는 다양성의 산물이다. 문화가 물이라면 시대의 삶은 그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변화면 물은 거기에 비추어 유연하지 않은가?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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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행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욱 깊어진다. 내년에도 전국에서 한국차를 배우기위한 노력보다는 중국차를 배우거나 중국차와 관련된 자격증을 발급하는 사업이 사업성과 명분을 가지고 각단체가 경쟁적으로 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일본 다도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 글은 지난 2005년 10월 월간다도에 기고 한 원고이지만,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면서 2006년에는 우리의 행다법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한국 行茶의 주체성’다시 한 번 올려본다.

금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고, 어떤 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진행이 되고 있다. 사건, 사고가 많은 시기에는 문화가 기를 펴지 못한다. 현대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고 급히 지나가기에 전통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높이 숭앙된다.

전통중에서도 예의를 다한 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밀레니엄도 5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행다는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이 글에서는 더할나위없이 솔직히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행다(行茶)와 다법(茶法)의 용어 선택에 대해서는 행다로 정하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행다 : 차를 내기 위해 정해진 동작에 의해서 행동을 모범적인 법칙에 맞게 한다.
다법 : 차를 내는 행위뿐 아니라 차 맛이나 차의 정신까지를 포함하며, 차 따는 법, 차 우리는 법, 차 마시는 법 모두를 포함한다.

주지하는 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우리의 행다는 참으로 묘한 형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순 조선식도 아니고, 순 일본식도 아니었다. 수많은 차 선생의 입장은 든든한 반석이 아닌 눈총을 받는 입장인 경우가 더 많았었다. 양반 가문에서 차(茶)를 통한 전통은 미미했고, 일본식 차 마시는 법이 올바른 법도인 양 행세를 해 왔다.
 
차 마시는 일과 그 주변적 행위가 문화적인 형태이기에 평범한 가정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했고, 속칭 상류에서의 유형이 근년에 이르러서야 여러 계층이 공유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장되었다. 아는 사람만 알던 보이차의 이론이 흔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차인 확대의 결과라 하겠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역사적 배경 속에 사람들이 살아오던 정신적, 물질적, 생활적인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일본은 실생활에서의 음료로 굳혀진 중국에 비해 역사적, 지배 이념의 특수성, 계층의 분화 등 철학적, 이념적 특성을 가지고 있되, 그 근본적 외양과 형태로 중국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차 마시는 일에 굳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한 . 중 . 일 세 나라가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특성이 고유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 이념과 방식을 가지고 차 마시는 행위를 완성시켰을까? 진실로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다법을 배우고, 중국에 가서 이국적인 것에 자격증도 가지고 오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지고 또 공감하는 우리네 전통 행다법은 어디에서 배워오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 일부 우리식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발표한 것은 외면당하거나, 정통이 아니라는 식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다법이 일본식(日本式)이라는 현실은 그러한 바탕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주변은 확대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진실된 전통성이 있는 행다법을 보여줄 의무가 차인들에게 있다. 우리는 유가식(儒家式) 행다가 있었고, 전통 가내(家內) 행다법이 남성, 여성을 구분하여 존재 했었다. 관혼상제에 존재했으며, 그 의식의 수준과 차의 선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연습은 많이 되었다. 이젠 우리의 행다법이 나타날 차례가 아니겠는가? 외국의 형식이 모방되어 펼쳐진다 해도 그 내면에 우리의 정신이 표출될 수 있을까?

혹자는 일본식 다도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시간적인 이유를 들어 한국식 행다법을 형성케 했다고 한다. 일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차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창기 차인들이 일본의 전차도 및 말차 행다를 모방하면서 행다 발표를 해 왔다.

양반 문화가 소멸되다시피 한 근대화 이후 식민 산업, 그 후의 전환, 다시 산업화된 사회의 조류는 그 이전의 전통성을 까마득히 망각하게 만들었던 것의 주된 이유라 하겠다. 현재 우리의 행다법은 일본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 우리식도 아니다. 일본식 행다법에서 생략되고, 사찰에서의 선다법이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에서 표현되고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서의 전차도는 각 유파마다 국지적인 특성이 나름대로의 철저한 동작이 이미 굳혀졌고, 그 본질인 차의 맛과 사용되는 기물의 수준을 논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은 차의 맛으로까지는 접근치 아니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면에 치중하고 있다. 혹여 비판받을 현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발전은 긍정적인 것이다. 의례라고 하는 것은 철저한 외양상의 절차와 격식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런 형식적인 면이 굳어져야만 그 후에 차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형식을 멀리한 경우에는 높은 평가의 기준이 차 맛에 있겠지만, 행다법에 있어서의 1차적 급선무는 형식의 정립임에 두말할 나위 없다. 중국에서의 선차와 불차,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련의 중국식 다예표현의 일면을 살펴보자. 생활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튀어나온 문화상품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화려한 동작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성에 의거했지만 실제로는 근래에 만들어진 행다에 그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에 따라 행위 하는 것이 수준이다. 우리의 수준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또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의 수준을 똑바로,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단이 무엇인지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의 격식과 예절을 지니고 의례가 넘쳐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고 잘 갖추어진 한국의 행다법을 만들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내면에 철저히 다듬어진 우리의 철학과 의식이 살아 숨 쉬고 찻잔에서도 한국차의 향과 맛이 그득히 넘쳐흐르는 한국의 행다법이 자연스레 정립이 될 것이다.

무조건 모방하고 제 것인 양 만들어 보이는 일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과 역사적 유구함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다. 한국의 행다법이 무엇이 될까,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行)하고 생각(思)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렵게 베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과 몸으로 체득하여 이루어지는 생활이며, 더 나아가 전통이 되어야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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