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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점, 공동 초제소

 

이번 길에 그래도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흙 범벅으로 마을에 내려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배낭 속에 따로 준비한 옷을 갈아입고 마침 큰길 옆에 식당이 있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멍하이에서도 후난(호남성) 사람들이 소매점이나 식당을 하는 곳이 많은데 이곳도 주인이 호남성 사람입니다. 돼지갈비 복음, 민물고기 조림, 채소 탕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칭지아오투도스(靑椒土豆絲고추 감자 채) 푸른 고추와 감자를 얇게 쓸어 볶은 것인데 매콤하고 고소한 것이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이 요리는 중국 어디를 가도 웬만한 식당엔 꼭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비교적 잘 맞는 음식이니 여러분도 꼭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이곳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가 음식입니다. 이곳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고 각 민족마다 그들의 명절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하루건너 하루가 식사초대입니다.

 

무엇보다 차농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매번 참석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실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또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특별히 챙기고 제 앞으로 수북이 음식을 쌓아 놓습니다. 육해공군이 총출동한 고기차림인데 평소 육식을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 채소 몇 가닥만 들고 있자니 차린 성의를 봐서 미안하고, 억지로 먹자니 뒤탈이 두렵고 그야말로 대략난감입니다.

 

거기다 여기서는 대부분 집에서 만든 위미지우(옥수수 술)라는 50도짜리 술을 마시는데 잔도 소주잔의 세배정도 크기입니다. 평소에 소주만 마시다가 이 술을 주는 대로 홀짝홀짝 마셨다간 정말이지 큰일 납니다.

 

알코올 도수로 대략 계산해보면 한잔이 소주 한 병 이상입니다. 희한하게도 술 권하는 문화는 한국이나 어찌나 비슷한지 계속 권합니다. 쬐끔 마시고 내려놓으면 또다시 채우고 채우고를 반복합니다. 지금은 웬만큼 적응이 되었고 인연 있는 차농들은 대부분 저의 식성을 아는지라 무리하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반찬입니다. 산길을 그것도 미끄러운 흙탕길에 우산을 접었다 펼치기를 십여 번 하면서 내려온 길이라 순식간에 세 그릇 뚝딱입니다. 식당 아줌마가 우리 자동차에 적혀있는 오운산로고와 석가명차 글씨를 보고 차업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아는 사람이 조금 준 차라면서 마셔보라고 합니다. 눈이 번쩍 뜨입니다. 어디서 온 차냐고 물으니 그곳에서 50키로 정도 떨어진 산골에 사는 친척이 준 차랍니다. 바로 수첩 꺼내들고 메모 들어갑니다. 도부장은 여러번 격은 일이라 담담히 귀 기우리며 메모하기에 바쁜데 젊은 부부는 걱정이 많습니다.

 

직업병인지 좋은 차만 만나면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눈동자가 커집니다. 엉덩이가 털썩 털썩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확인 하고픈 마음이 앞섭니다.

 

너무 늦었다느니! 비도 오고 길이 험해서 지금 갔다가는 큰일 난다느니, 날 좋을 때 자기들이 먼저 가서 확인해보고 연락 한다느니 젊은 부부가 갑자기 바쁩니다. 부인 되는 사람은 울상이고, 젊은 남편은 연신 종아리를 만지작거리며 그곳에 가면 씻을 곳도 잠잘 때도 없답니다.

 

저도 그날 당장 갈 생각은 없었는데 멋모르고 따라 나섰다가 무작정 밀어 붙이는 저 때문에 고생한 젊은 부부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티엔 부취. 今日不去오늘 안 간다. 이 한마디로 바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처럼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은 차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직 직접 가서 차산의 환경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맛으로 봐서는 확실한 고수차이고 향이나 밀도가 아주 좋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 내내 감미로운 회감이 목안에 가득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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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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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국경검문소를 통과하고 오분 정도 달리면 만파이(曼派)라는 미얀마 첫 번째 마을에 도착합니다. 포랑족 마을인데 300여 가구의 비교적 큰 마을입니다. 산골이지만 사방이 탁 트인 분지형태의 마을이고 길옆으로 올망졸망 올라간 계단식 논에 진녹색 벼들이 장맛비로 넘치는 물에 찰랑이고 있습니다.

 

집들이 한국의 농촌 주택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아늑하고 정겨운 풍경입니다. 특이하게도 마을 입구 좌측엔 절이 있고 오른쪽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중국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포교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거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정치체계는 사회주의 형태이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는 종교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에 설립된 교회, 성당, 사찰에서 성직자들이 활동하는 것 까지 강제로 막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국에도 의외로 많은 사찰 등 종교시설이 남아있고 종교시설 내부에서 예배나 예불도 올리고 있습니다. 윈난성에도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스님이 들어와서 절을 짓거나 포교 활동을 한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종교적 특색이 포교 활동에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 국경마을에 절과 교회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니 한편 신기하기도 하고 중국인의 신앙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 멍하이는 주로 소승불교로 각자의 수련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해탈을 추구합니다. 타이족 마을엔 한국과는 건축형태가 다르지만 거의 모두 절이 있습니다.

 

옛날엔 교육 문화 등 공동체 생활의 모든 의사 결정을 스님이 했습니다. 지금도 아이가 태어나면 절에서 이름을 지어주고 장례 절차도 절에서 주관하곤 합니다. 현제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각종 기념일 등에서 생활 깊숙이 배여 있는 그들의 신앙관을 봅니다. 잠시 종교 이야기로 흘렀네요. 종교 이야기는 너무 오래하면 머리 아픕니다...저는 소싯적에 이집 저집 다 둘러봤는데 아직도 도통 모르겠고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자기 팔 자기가 열심히 흔들고 좋은 일 하면서 살다 죽으면 사후가 허전하지만은 아닐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차산을 안내할 젊은 부부의 친구 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면서 내온 차들을 마십니다. 시기적으로 맛있는 차가 나올 시기가 아니고 좋은 봄차는 대부분 판매하고 없어서 차맛은 그냥 그렇습니다. 기독교 집안이라서 그런지 벽에 걸려 있는 예수님이 처량하다는 듯 저를 봅니다. 저도 잠시 이 먼 곳에 누추하게 걸려있는 그를 처량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좋은 차밭이 있는데 빗길이라 차는 오르기 힘들다고 합니다. 운전 잘한다고 자랑해도 막무가내 지금은 탱크도 오르기 어렵답니다...

 

빗길을 뚫고 국경까지 넘어 왔는데 차밭도 못보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정 안되면 걸어서 가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잠시 우중에 골치 아픈 놈 만났다는 듯 이리저리 궁리를 하더니 그럼 산꼭대기 마을에 부탁해서 오토바이를 내려오게 하겠답니다. 중간에 하천이 있어서 여기서는 타고 갈수 없고 조금만 걸어가서 교각 없는 하천을 맨발로 건너서 기다리면 된답니다. 오케이! 갈 수만 있다면 그까짓 하천이야 바지가랭이 동동 걷어 올리고 건너면 그뿐입니다.

 

도부장, 젊은 부부 둘, 저까지 일행이 네 명이라 오토바이 넉대가 흙탕길을 내려왔습니다. 별달린 미얀마 군복을 입고 온 전사가? 저희를 뒷자리에 태우고 마치 특수 공작을 하듯이 흙탕길을 오릅니다. 어찌나 짜릿 쩌릿한지 이 나이에 더구나 남자인 제가 젊은 총각 허리를 사정없이 끓어 안습니다. 중간쯤 올랐을까?

 

오토바이가 흙에 파묻혀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습니다.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하고 걸어서 산을 오릅니다. 태산이라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참 힘듭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디엔(曼点)이라 불리는 산꼭대기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웬걸 대부분 소수차입니다. 고수차가 있는 곳을 물어 찾아가 보았더니 고작 서너 그루 수령 일 이백년 전후의 깡마른 나무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다른데도 몇 그루 더 있다고 보러 가자는 걸 간곡히 만류하고, 차 맛은 보나마나, 그래도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니다. 바로 하산입니다. 오토바이 기사는 아직도 헤매고 있는지 멀리서 웽웽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또다시 걸어서 하산입니다.

 

미끄러운 흙길에 내리막이니 하체가 달달 떨립니다. 무릎도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내려오는 중간에 입이 남산만한 오토바이 기사를 만났는데 도부장이 눈치 없이 다시 아래 하천까지 태워줄 수 없겠냐고 물어봅니다. 자기는 괜찮은데 우리 사장님 연로하셔서 힘들다고 쓸 때없이 챙깁니다...

 

나리나리한국말로 어데요! 어데요! 괜찮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손사래를 치며 제가 막았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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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엽하는 농민

 

어제 빗길을 달려 미엔디엔(미얀마)을 다녀왔습니다. 차 철엔 원료 수급 때문에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어 차산을 개발하기 어렵습니다. 미얀마는 시쐉반나에서 린창까지 길게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연결되는 통로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멍하이를 출발하여 징홍(京紅)-동펑(東風)-따멍롱(大勐龍)-멍송(勐宋)-만산(曼傘)을 거쳐 중국 최후의 마을 뤼상춘(呂相村)을 경유하는 코스입니다. 만산에서 저희와 인연이 있는 젊은 부부를 동반하여 국경을 통과합니다. 오래전부터 기회가 되면 안내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에 시간을 내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 결혼하여 두 살배기 딸내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둘 다 첫눈에 선량하게 생겼는데 생긴 만큼 착합니다. 집안 어른이 하고 있는 고무나무 경작 일을 도와왔는데 기회가 되면 꼭 차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입니다. 오랫동안 차업을 해온 사람보다 처음부터 아예 모르는 젊은 친구를 교육시켜서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빗길이라 비포장도로에 접어들면 차가 휘청휘청합니다.

 

다행히 우리 차는 비록 중고차를 구입했지만 밑판이 높아서 비포장도로나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합니다. 구입한지 삼년 만에 십만키로를 달렸으니 산길에 단련된 도부장의 운전 솜씨 또한 이젠 웬만한 산악 전문 레이서 못지않습니다...

 

저도 중국에서 따로 필기시험을 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산길은 웬만하면 직원에게 맡깁니다. 뤼상춘은 하니족 마을인데 2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주로 바나나 농장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을을 지나 10여분 중국 국경 검문소가 나옵니다.

 

대나무 작대기 하나를 걸쳐 놓았는데 검문소라기보다는 톨게이트 개념입니다. 큰 차는 50위안 작은 차는 30위안의 통과료를 받습니다. 마침 젊은 친구의 마을 사람이 검문소를 지키고 있어서 무료 통과입니다. 다시 또 산길을 10 여분 달리면 미얀마 국경검문소가 나옵니다. 총도 들고 있고 제법 그럴 듯합니다 만 대나무 막대기 하나 걸쳐 놓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가냐? 뭐하러 가냐고? 묻습니다. 젊은 친구가 우리 자동차에 쓰여져 있는 석가명차와 오운산 상표를 가리키며 차업하는 사람인데 차밭 보러 간다니까 오케이! 세세! 그냥 통과입니다. 앞으로 종종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차농들에게 선물로 주고자 만든 오운산 다기셋드 두벌을 건네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네니 자주 오랍니다...

 

근처에 사는 중국 사람들은 국경이라는 개념도 없이 그냥 편하게 왕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중국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묻지도 않는데 굳이 밝힐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국경인지라 엄밀하게 말하면 밀입국이고 차를 가져오면 밀수가 되는 것이지요.

 

괜히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긴장도 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젠 좋은 차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린창지역의 미얀마 국경지대인 고간이라는 곳은 아직도 내전중이라 수시로 총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정말로 좋은 차가 있다면 방탄복 입고라도 찾아 가고픈 심정입니다.(쫌 심했나? 글을 써놓고 보니 약간 이상합니다...)

 

사실 현제 가격대비 가장 품질이 좋은 차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지만 미얀마 쪽의 차라고 생각합니다. 윈난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미얀마, 라오스, 배트남입니다. 미얀마가 접하고 있는 국경선이 가장 길고, 라오스는 이무 괄풍채와 가까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홍허 위엔양(紅河元陽)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태국 차들도 가끔 보이는데 라오스와 인접하고 있어서 라오스 차들이랑 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차맛의 특징들이 있으나 대체로 가공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은 덜 알려졌지만 생태 환경과 차나무의 수령 또한 좋은 지역을 발굴하여 독자적으로 잘 개발한다면 좋은 고수 원료를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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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차 제조 과정

 

고수차가 인기를 끌면서 보이숙차도 고수차로 만들었다는 차들이 시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원료가 좋으면 당연히 만든 차맛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원료를 사용하여 숙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숙차 제조법은 지난번 멍하이 일기 7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숙차는 일차로 가공이 완료된 쇄청모차를 이차 가공 즉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다시 만든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차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이지요. 즉 일차 가공이 끝난 쇄청모차는 보이생산차라고 하고 그것을 각종 형태로 만들면 보이생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효라는 또 다른 과정을 거치면 보이숙산차가 되고 같은 방식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보이숙차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고수차도 마찬가지로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서 숙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수차는 생차 그 자체로 향기도 좋고 회감도 좋으며 가격 또한 좋으므로 굳이 숙차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더구나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면 고수생차 특유의 향기 등이 소실될 우려가 있고, 일반적으로 숙차는 시장에서 고수생차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원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수원료라고 해서 모두 비싼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덜 알려진 지역이나 변경 지역, 그리고 봄차 보다는 여름차, 가을차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료를 사용하여 고수차를 만들면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운산에서 작년과 올해 출시한 차가 바로 이러한 종류입니다. 변경 지역인 미얀마의 가을 고수차와 포랑산 지역의 여름 고수차 원료를 사용한 것이지요. 그래도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숙차 즉 대지차 원료를 사용한 제품보다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현제 숙차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대지차 원료는 일반적으로 대지차 중에서도 등급이 낮은 원료를 사용합니다.

 

대지차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고급은 주로 생차로 생산하고 숙차는 발효 과정에서 찻잎이 파괴되기 때문에 기계로 채엽한 원료나 수령이 낮은 찻잎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숙차는 발효라는 제조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쳐서 생산되는데도 대형 차창에서 출시되는 비슷한 생차보다도 가격이 오히려 저렴한 것입니다. 그리고 숙차는 발효를 시켜서 출시하기 때문에 경년신차(經年新茶) 즉 세월이 흐르면 매년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보이차 고유의 특질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물론 숙차도 세월이 흐르면 거풍이 되면서 점점 맑아지고 맛 또한 좋아지기는 합니다. 그러나 쾌속 발효차의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 생차가 진화하면서 발생하는 화려한 변화와 빗댈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보이숙차의 가치가 형편없이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숙차의 개발은 보이차의 역사에서 하나의 신기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차가 윈난성 소수민족들의 차에서 대중차로 나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윈난 특유의 강열한 맛을 순화시켜서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차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숙차라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좋은 원료를 사용하여 잘 만든 숙차는 확실히 다릅니다. 특히 고수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차는 맛의 무게감이 다릅니다. 대지차 보다는 내용 물질이 풍부해서 그런지 맛의 밀도가 높고 숙차 특유의 텁텁함도 덜합니다.

 

생노차(生老茶)의 맑음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숙차 보다는 월등히 맑고 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중의 고수차에서 보듯이 고수숙차도 유행을 타고 이름뿐인 고수숙차들이 허다합니다. 숙차는 제품의 특성상 원료 산지의 이름을 표기해서 출시하는 경우는 적은데 노반장숙차, 빙도숙차 등 화려한 이름의 숙차들이 매장의 전시대에서 날 잡아 잡소하고 행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중국에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맛을 보고 이름을 떠나 맛있으면 구입해서 먹습니다. 원료 산지의 진실성을 떠나 자신의 입맛을 믿고 사는 것이지요. 사실 숙차는 원료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숙련된 발효기술자의 경험도 아주 중요합니다. 잘 만든 대지 숙차가 못 만든 고수 숙차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수차를 만들면서 더구나 숙차를 만들면서 백프로 고수원료만을 사용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어떨 땐 저같은 바보나 하는 짓이 아닌지 반문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자신만은 속일 수 없기에 뚜벅뚜벅 그냥 갑니다.

 

비는 내리고

웬종일 비만 내리고

이역만리 멍하이 하늘아래

비젖은 태극기가

물끄러미 저를 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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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고수차를 보관한 통

 

지난번에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고수차의 문제점에 대하여 잠시 소개해드렸는데 가게마다 진열된 수없이 많은 고수차들 중에서 과연 어느 제품이 진정한 고수차인지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중국 정부 관련 기관에서 발표되는 생산량 통계부터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 발표하는 곳마다 다르고 편차 또한 아주 큽니다. 이제는 보이차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수차가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수령 백년이상의 진정한 고수차는 제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만치 않습니다. 오운산을 창업하고 삼 년여 동안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고수차 산지 이백여 군데를 직접 발로 띄며 살펴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직도 곳곳에 고수차들이 적지 않게 자라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소수차와 같이 섞여 있습니다. 특히 이무 쪽의 고수차 생산비율은 1%도 안 됩니다. 길가에 그 옛날에 줄지어 자라던 고수차는 문화혁명을 거치며 대부분 경제작물로 전환되었고 지금은 바나나 밭으로 고무나무 숲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주관을 잘라버려서 뿌리에서 다시 자란 아이화(왜화倭化)차들 종류이고 올곧게 남아있는 고수차를 보려면 보통 두세 시간씩 걸어서 산을 올라야 합니다. 험로여서 개발의 손길이 닷지 않아서 아직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 또한 많지 않습니다. 한 지역에서 모차로 몇십 키로 혹은 많은 곳이라도 몇백 키로 정도이지요.

 

 고수차는 한정되어 있고 소수차의 생산량은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전체 생산량에서 고수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무지역에 비하여 포랑산이나 임창지역은 상대적으로 고수차의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포랑산 지역은 이무지역과 함께 많이 알려진 편이고 강열한 맛의 특징 때문에 원료가격이 평균적으로 보이나, 임창지역 보다는 비싼 편입니다. 변경지역의 차들은 아직은 고수차라도 저렴한 편인데 가공 기술이 일정치 않아서 잘 선택해야 됩니다.

 

문제는 중국은 문화적으로 고수차에 소수차가 섞여있어도 그냥 고수차라고 부릅니다. 사실 소수차가 조금 섞여있어도 맛으로 정확히 구분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제작자의 양심 문제이지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오운산이 진정한 고수차 원료만을 고집하는 것이 때론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생태차 등을 조금 섞어서 생산 단가를 낮추면 공급 가격도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고객 분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저는 그냥 그대로 가겠습니다. 세상에 바보 한둘 쯤 있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지금은 많이 달라진 느낌이지만 처음엔 제가 같은 고수차밭의 차라도 수령이 높은 것만 골라서 채엽 해달라고하면 의아하게 쳐다보곤 했습니다. 다른 곳에선 그냥 구입해 가는데 유독 까다롭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비용을 더 주겠다고 해도 작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문을 거절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차농 입장에서는 일꾼을 고용해서 하루하루 이곳 저곳을 옮겨가며 채엽하는데 일부는 채엽하고 일부는 남겨두고 하는 것이 비능률적이고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차왕수차, 단주(單株.고수차중에서 특별히 수령이 오래된 차나무를 따로 부르는 이름)차 등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분류되고 있기는 한데, 일반적으로 고수차라고 하면 진정한 고수차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반드시 살펴보아야합니다.

 

현제 고수차라고 부르는 차들 중에선 아예 이름뿐인 고수차, 소수차와 적당히 섞은 고수차, 진정한 고수차, 단주차 혹은 차왕수차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판매되고 있는 가격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가서 돼지 꿈꾸고 노반장을 한편에 삼만 원에 사 오셨다는 분들을 가끔 뵙는데 꿈은 꿈일 뿐입니다.,,노반장 원료가격을 알면 절대 그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차가 아니란 걸 알게 되겠지요.

 

여행 기념으로 친절한 가이드의 열정에 감복하여 한두 편 사주는 것 정도는 이해하지만 절대 많은 양을 구매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못 먹을 차는 아니고 다만 출처 불명의 차란 것이지요. 실제로 몇 년 전에 우연찮게 한국 단체관광 손님을 주로 상대하는 가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리따운 직원이 어찌나 열정적으로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설명을 잘하는지 차업을 하는 저도 한편을 사들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오천 원짜리 차를 오만원에 사서 마누라한텐 말도 못하고 몇 년째 묻어두고 있지요. 알다시피 보이차는 오래두면 둘수록 맛도 좋아지고 가격도 올라가는데, 이런 차는 그냥 그때 그 감동으로 빨리 먹어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모르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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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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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축제장에서 연주하는 태족

 

오늘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윈난성과 시쐉반나 멍하이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윈난성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북회귀선이 통과합니다. 면적은 394,100 km2로 남북한 합친 크기의 두 배 정도 됩니다. 성의 북쪽은 고원지대로 티베트, 귀주성 등이 있고 동쪽은 광시 장족 자치구, 서쪽은 미얀마, 남쪽은 라오스 베트남등과 접하고 있습니다.

 

남부의 저지대에는 아열대성 기후도 있으며, 북부의 고산 지대에서는 아한대성 기후도 있어 다양한 기후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식물 상이 풍부하고 특히 원예 분야에서는 신종 화훼의 산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1월 평균기온은 8~17 °C이고 7월 평균기온은 21~27 °C입니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2300mm이고 이 중 절반이 7월과 8월에 집중됩니다. 윈난은 민족전시장이라고 일컬을 만큼 많은 종류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공인된 55개의 소수민족 중 25개 민족이 윈난에 살고 있는데, 윈난성 전체 인구는 2016년 기준 4800만명 정도이며 그중 소수민족은 1800만 명정도 입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는 없고 오로지 윈난성에만 거주하는 소수민족이 15부족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도 시쐉반나는 태족자치주로서 전체 인구는 120만 전후입니다. 징홍시를 중심으로 크게는 이무지역인 맹랍현과 포랑산지역인 맹해현으로 나뉘어지고 그 외 맹송, 파달, 격랑화 등이 있으며 다수의 유명 차산을 품고 있습니다. 한족 40, 태족35, 하니족20만명 정도와 기타 포랑족, 라후족, 이족 등 십여개의 소수민족이 골짝골짝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특히 멍하이는 보이차 산지와 공장, 상가 등이 밀집된 지역으로 최근에 보이차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봄이 되면 전 세계의 보이차 애호가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윈난성의 네 가지 기둥 산업은 담배, 농업, 광업, 관광산업이었습니다. 아직은 윈난성 전체에서 보이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차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점점 중요성이 확대되리라 예상합니다.

 

중국차엽유통협회에서 2016년 발표한 윈난성의 2016년 차 생산 통계자료에 따르면 차엽 총생산량은 36만 톤이며 그중 녹차16만톤, 보이차13만톤, 홍차7만톤으로 나와 있습니다. 전 중국에서 복건성(38만톤) 다음으로 차엽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 바로 윈난성입니다.

 

윈난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보이차를 떠올리는데 오히려 녹차 생산량이 조금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중국으로 확대해보면 아직도 녹차 생산량이 63%이고 보이차는 7%정도입니다. 열배정도의 차이인데 윈난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윈난성의 보이차 생산량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이시에 가보면 보이차보다 녹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더 많습니다. 홍차의 생산량도 생각보다 많은데 주로 임창지역의 봉경현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디엔홍(滇紅)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전이 윈난성의 옛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전홍은 곧 운남홍차란 뜻입니다. 지금은 전홍집단이란 회사에서 상표등록을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이차 생산량은 올해 일기불순과 과채엽등의 원인으로 봄차 생산량이 급감하였는데 전체적으로는 이천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천년 초에 3톤정도이던 것이 0607년도 보이차 붐을 타고 10톤 가까이 급증하였다가 0809년 오히려 감소하더니 10년 이후 현제까지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수차의 생산량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변경지대인 미얀마. 라오스. 태국. 라오스 등지의 차들도 계속 유입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럼 보이차 생산량에서 고수차가 차지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넉넉하게 보아서 전체 생산량의 5%정도로 추산합니다만 시장에선 흔한 것이 고수차입니다...고수차의 생산량과 종류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다시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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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모차 공급자

 

멍하이에 도착한지 며칠째 멍하이의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윈난성 시솽반나는 보통 5월말부터 9월말까지 우기가 이어집니다. 이곳 사람들이 ‘위라고 부르는 비의 계절엔 멍하이의 많은 가게들은 아예 문을 닫거나 가끔 필요할 때만 문을 열곤 합니다. 그러나 오운산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설날과 추석을 빼고는 문을 닫지 않습니다. 일요일도 직원이 번갈아 가면서 쉬고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석가명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고 오운산은 아직은 신생 브랜드이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 홍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비수기 이지만 가끔씩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근처의 상인들이 놀러 와서 종종 밤늦게까지 차를 우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운산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농 관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멍하이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온 저희와 인연이 있는 각 지역의 차농들은 반드시 오운산 가게를 들립니다. 별일이 없어도 늘 친절히 맞이해주는 저희 가게가 편한 것 같습니다. 이즈음 차농들은 대부분 집 주변의 공터에 채전을 경작하거나 사냥 등을 하며 여유를 즐깁니다.

 

이곳은 공원, 스포츠 경기장 등의 특별한 놀이시설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한들 차농들은 그런 것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사드문제 등으로 한중관계가 긴장일로인데 차농은 그저 농사짓기에 바쁠 뿐입니다. 밤에는 다른 가전제품은 없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꼭 있는 대형 TV 앞에서 연속극 보기를 즐깁니다. 뉴스 시간이 되면 그냥 TV끄고 잡니다...

 

사드가 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보수적이고 여유로운 세계관이 참 좋습니다.

 

멍하이에 정식으로 한국인 명의로 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장기 체류하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어킬수도 있는데 일체 묻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재일먼저 대장금이야기를 하거나 유명 아이돌 가수의 근황을 물어보곤합니다. 저는 뭐 그 유명하다는 대장금도 본적이 없고 아이돌 가수야 그들보다 더 모르는 한국 촌놈인지라 오히려 갸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되묻곤 합니다...

 

어떤 차농집에는 한국의 누구누구 가수라면서 벽면을 사진으로 도배해놓다시피 한 곳도 있습니다. ‘한류로 지칭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전파력이 이곳 중국의 변방 오지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문화의 전파력은 알게 모르게 생활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투하여 알게 모르게 그들의 일부가 되고 또 다른 창조를 일구어 내곤합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도 분명 하나의 문화입니다. 세계 각국엔 다양한 형태의 차문화가 존재합니다.

 

영국의 귀족 사교모임에서 비롯된 에프트눈 티그리고 일과 후 식사와 함께하는 서민 문화인 하이 티미국의 무더위 속 갈증 해소용으로 개발된 아이스 티추운 러시아에서 항시 따뜻하게 차를 우려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사모바르일본의 고도로 발달한 형식 문화인 고이차/우스차인도의 길거리 차문화인 마살라 차이 티등 각 나라마다 상황에 잘 맞는 문화들이 개발되어 향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차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중국만의 특별한 형식의 차문화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일상다반사처럼 너무 일반화 되어 있어서 특별한 형식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광동성 일대의 식당에서 아침과 차를 겸하여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닌 자오차(早)’ 문화가 있습니다만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멍하이의 차문화는 어떨까요! 천년의 차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제 전세계 보이차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지만 이렇다 할 대표적인 음차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위에 올리고 좋은 찻잎은 내다 팔고 황편 부스러기 등을 넣어서 물처럼 끌여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포랑족의 수안차(酸茶)’처럼 대나무통에 차를 넣고 땅에 묻었다가 귀한 날에 반찬으로 꺼내어 먹는 등의 소수민족 특유의 산골 차 문화들이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따름입니다.

 

문화란 원래 대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지역이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커다란 물결이 되기 위해서는 인류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차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운산이 늘 생각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생각하는 차의 정신을 오운산에 담아서 세계인에게 전달하고,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비록 멍하이의 조그마한 골방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의 이 노력들이 차의 역사에 한줄 기록으로 남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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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울 박람회장

 

710일 밤 비행기로 인천에서 쿤밍이로 들어와서 차창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정규 제품들과 주문 제작 차들의 생산 현황을 점검하였습니다.

 

올해 생산 되는 오운산의 정규 제품은 2017년 진.선.미를 포함하여 전부 12종류입니다. 주문 제작 차들은 현제 8가지입니다. 작년에 비하여 주문 제작차가 많이 증가 하였습니다.

 

오운산의 포장 디자인은 그대로 사용하고 상품명만 주문 제작자가 원하는 이름을 넣는 방식입니다. 회갑을 기념하여 제작하시는 분,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상호를 넣어서 생산하시는 분 등 다양한 형식의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최된 서울, 부산, 대구의 박람회에서 확인 하였듯이 한국에서는 벌써 오운산이 확실히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고도 두려운 마음입니다. 고마움은 저희의 노력을 인정하고 찾아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고객들의 마음을 만남에 있었고 두려움은 앞으로도 믿음을 견지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다짐에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고전중입니다만 이번에 참가한 한국의 박람회에서 참으로 많은 차인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차인으로 널리 알려진 님을 비롯한 많은 보이차 마니아들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소문으로 찾아오신 분들 특히 멍하이 일기를 읽어 보시고 보이차의 생산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며 오히려 감사하다고 덕담을 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석우연담 박홍관님의 제안으로 우연찮게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거쳐 많은 분 들게 전달 된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현장에서 그때그때 올리는 글이라 앞으로도 때론 오자들 투승이고 때론 사실 관계가 명확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제가 보고, 듣고, 만드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전한다는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멍하이 일기를 위해 큰 맘 먹고 최신형 핸드폰을 하나 새로 구입하였습니다...(사진 자료가 부족하다는 분들이 많아서 좀 더 좋은 사진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박람회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와서 보름여동안 여전히 바쁜 날들이었지만 모처럼 한국 음식도 실컷 먹고 된장찌개도 끼니때마다 먹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사실은 마누라 자식보다 된장찌개입니다...모국에서 잘 먹고 잘 쉬다보니 한 달 만에 체중이 2kg이나 불었습니다.

 

원래 체중 변화가 크지 않은 체질인데, 그만큼 타국 생활이 팍팍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또다시 쿤밍을 거처 어저께 멍하이로 왔습니다. 이곳은 지금 위지(雨季)라고 부르는 비의 계절입니다. 매일같이 비가 내립니다.

 

가끔 맑은 날에 위지차라고 부르는 여름차를 생산합니다만 향이나 맛이 현격히 떨어져서 숙차용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가격 또한 봄차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중엔 그래도 슬만한 모차들이 더러 있는데 오운산에서 생산한 숙차 속에도 포랑산 여름 고수차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아주머님이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해주셔서 아직도 곱씹고 있습니다.

차는 뭐로 만들어요?

차이파리로 만들어요!

차이파리는 어디에 열리나요?

차나무에 열려요!

차는 어떻게 만들어요?

차이파리 따서 만들어요!

차는 왜 마셔요?

그냥..

차는 어디에 좋아요?

몸에..

어느 몸에?

.

마음?

.

처음엔 별 생각 없이 그냥 대답했는데 생각할수록 재미있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해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훗날 좀 더 아름다운 답변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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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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