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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병배차를 만들어 선물하는 모습

 

언젠가 중학생 딸내미랑 차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빼곡히 실려서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돼지를 보고 깔깔거리던 딸내미의 웃음이 생각납니다. 저는 보는 순간 저 녀석들은 어디로 실려 가는 걸까? 다른 데로 팔려가는 건가? 혹시 도살장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딸내미는 뭐가 우스운지 계속 깔깔거리기만 합니다.

 

아빠 아빠 봐 봐 뒤뚱거리는 게 우스워 죽겠어! ”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생각이 만든 생각에 침윤되어 뒤뚱거리고 있을까! 3의 누군가가 나의 생각을 보고 있노라면 우습지는 않을까?

 

차업을 하면서 늘 부닥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이 생각의 굴레입니다. 가급적이면 보이는 그대로 맛보는 그대로 그 차를 평가하려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판매하는 차인지, 누구랑 마시느냐에 따라 늘 조금씩 변합니다. 이 문제는 사용하는 물, 그리고 도구의 선택에서 오는 차이와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일종의 느낌으로 그날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제가 차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저는 구정물을 마시더라도 마주한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면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주하는 사람의 그릇이 옹졸하고 사기성이 있는 사람과는 아무리 좋은 차를 마셔도 맨송맨송합니다. 그러나 차를 만들어 여러분에게 제공해야 하는 마음은 다릅니다. 차를 가지고 온 차농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도 차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그 차를 취급할 수 없습니다.

 

그 차농과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차를 같이 만들 수는 없습니다. 차를 가져온 사람은 개차반인데 희한하게 차가 맛있으면 그 차는 구입합니다. 차만 구입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그 차가 생산된 지역을 탐문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오운산의 방식으로 생산하곤 합니다. 다행이 차도 좋고 사람도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오리려 여러 가지로 애매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차를 사업으로 하는 사람은 당연히 모든 면에서 최선에 최선만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로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제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차이지만 그 사람의 사정을 보아서 조금씩 구입할 때도 있고 아무리 좋은 차이지만 내 팽개칠 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좋은 차 찾아 삼만리! 심심산골을 돌아 나오다가 우연찮게 맞닥뜨린 팔순 할머니가 삶은 옥수수를 건네주시면서 당신이 만든 차를 보여 주면 저는 그냥 맛도 안보고 조금씩 사가지고 옵니다.

 

오운산 차에는 그러한 연고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구매한 차들도 일부 들어 있습니다. 주로 이러한 차들은 작년부터 출시하고 있는 당해년도 오운산기념병 원료에 포함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비율은 10% 미만이라고 장담합니다. 어떤 날 오운산 차가 유독 맛없게 느껴지시면 그냥 정서를 마신다? 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차는 입으로 마시고 몸으로 반응하지만 느낌은 다분히 정신적인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작용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현실은 늘 이러한 경계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어떤 차를 마시느냐는 여러분의 선택이지만 어떤 차를 만드느냐는 저의 선택입니다. 오운산 차는 저의 일생을 담아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에는 지은 자의 정신이 녹아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오운산 차 한편한편이 모두 자식 같은 마음이지만 제 자식이라고 완벽할 수 없듯이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인연 따라 여러분의 소중한 자리에 놓일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적어도 차로서는 솔직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1121일 귀국하여 23일부터 개최되는 부산차박람회에 참가합니다. 123일 대만으로 잠시 출장을 다녀와서 1214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중국 심천차박람회에 참가합니다. 박람회를 마치고 광조우 가게에 잠시 들렀다가 12월 말에 다시 멍하이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가게로 오시면 손수 차한잔 올리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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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부스 광고

 

한국에서도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도로변에 새워진 커다란 광고 간판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국도 변 어디에나 쉽게 이러한 간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징홍에서 멍하이로 오는 국도에도 여러 개의 보이차 관련 대형 간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모두들 자신들의 상표를 홍보하고 생산하는 차의 가치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형 간판의 홍보비용은 일년에 이천만원정도 됩니다.

 

저도 처음에 오운산을 창업하면서 이런 간판 하나쯤은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보고는 아예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 돈이 있으면 차라리 좀 더 좋은 원료를 구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오운산 차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리차를 마셔보라고만 해서 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저희 가게를 방문할수록 더욱 홍보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고민 끝에 큰 비용들이지 않고 가장 효과적인 홍보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시다시피 모든 것이 꽌시(關係)로 연결됩니다. 한국에도 그런 부분들이 있지만 중국은 특별히 꽌시즉 아는 사람과 연결된 친분을 중요시합니다. 그동안 멍하이에서 맺어 온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 사람이 멍하이 시내에 유일하게 보이차 가게를 오픈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찾아오곤 합니다. 이제 멍하이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운산 가게를 아는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각 지역의 차농들 또한 저희가 직접 방문한 곳도 많고, 조금씩이라도 샘플들을 구매하고 다기셋드 선물까지 준다는 게 소문이 나서인지 이제 오운산은 멍하이에 내려 온 차농들의 단골 방문 코스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볼일이 없어도 이야기도 주고받고 가게 앞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자기 지역의 모차 시세 등을 확인하곤 합니다.

 

현재 멍하이에서 라오반장-이우-징마이-파샤-빠다-나카 등 대부분 유명 차산으로 가는 방향의 국도변에는 조그마하게나마 저희 오운산 로고를 새긴 간판이 세워져있습니다. 간판하나에 20만원정도의 비용인데 인맥을 총 동원하여 도로변의 지주에게 연락하고 허락을 받은 다음 직접 곡괭이를 들고 가서 심었습니다. 더러는 마땅한 땅 주인을 만나지 못해서 그냥 밤중에 몰래 도로변에 심어 놓기도 했습니다...

 

사유지가 아닌 곳에 심어 놓은 간판들은 도로공사에서 수시로 철거해버립니다. 예를 들면 노반장으로 오르는 길목에 세워 놓은 오운산 간판은 벌써 네 번째입니다. 일단 멍하이에 내려온 차인이라면 대부분 노반장을 오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위치인데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유달리 철거가 잦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가장 좋은 위치에 위에는 노반장 방향 표지판을 아래에는 저희 로고를 집어넣어 시멘포장까지 단단하게 해 놓았는데 얄밉게도 노반장 표지판은 그대로 두고 아래의 우리 로고만 달랑 떼어 버렸네요. 직원은 벌금이 안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제가 아닙니다. 조만간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중국에서 안 된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간 정말 아무것도 못합니다. 자꾸만 부닥치다보면 결국은 해결됩니다. 우선은 도로공사 사람들에게 확실히 오운산을 알린 것 같습니다...

 

기타 한글, 중국어, 영어 세 가지의 언어가 지원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동영상 등을 제작하여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털사이트인 타오바오에 오운산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의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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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각

 

팡시에지아오(방해각螃蟹脚) 라고 불리는 차에 기생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주로 고차수의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는데 징마이(景迈) 지역에서 생산되는 량이 가장 많고 유명합니다. 혹자는 징마이 지역의 방해각만 진품이고 기타지역은 가짜라는 인식이 있는데 난누어샨, 멍송, 빠다, 등지에서도 조금씩 생산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우나 뿌랑산 등에서는 아주 희소합니다.

 

저는 라오반장이나 이우 지역의 차산을 비교적 자주 다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차산 중에서도 그늘지고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방해(螃蟹:) (:다리) 즉 바다에 사는 게의 다리처럼 마디가 있고 생긴 모양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차나무에서 자라는 모습은 녹색인데 채취하여 그늘에서 며칠간 말리면 점점 연한 갈색으로 변합니다.

 

오래된 것은 검은색 계통입니다. 한국에서도 산을 오르다보면 가끔 볼 수 있는 참나무 가지 끝에 자라는 겨우살이 비슷합니다. 다만 겨우살이는 비교적 크고 굵은 반면에 방해각은 가늘며 손가락 정도의 크기입니다.

 

방해각

 

이천년 초 일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방해각의 약리적 효능이 발표되면서 갑자기 가격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신장염 등의 치료에 좋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차가 아니라 약재 쪽으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다만 고수 차나무에서 자라기 때문에 차의 효능과 연결하여 생각하게 되고 방해각을 일부 섞어서 생산된 차들도 있습니다.

 

방해각이 많이 붙어 있는 차나무는 수액을 빼앗기므로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고사될 수도 있습니다. 차나무 입장에서 방해각은 달갑지 않은 존재이지요. 최근엔 찻값보다 오히려 비싸게 거래됨으로 차농 입장에서는 부수입을 올려주는 고마운 식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엔 가격이 많이 오르다보니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 들어온 것들과 다른 나무에서 자란 것들도 같이 방해각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교보문고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박홍관 - 교보문고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는 형설출판사에서 발행된, 일명 ‘중국차도감’으로 더 많이 알려진 책이다. 대부분 차 산지를 방문하여 그 지역의 정확한 품종을 확인

product.kyobobook.co.kr

제 생각엔 일단 지역과 상관없이 차나무에서 자란 것이라면 방해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 생산되는 바나나라고 바나나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중국에서 생산된 인삼도 당연히 인삼입니다. 다만 자라는 지역에 따라 맛과 성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인삼이 그렇고, 윈난의 보이차가 그렇듯이 그 지역의 환경과 생태에 가장 잘 맞는 품종이 결국엔 명품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차나무가 아닌 일반 나무에서 자란 방해각은 약간 애매합니다. 같은 품종일 수는 있겠지만 매개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나무에서 자란 것이라고 밝히고 판매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이차에 있어서도 항상 습창차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연도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습창에서 쾌속 발효시킨 차라고 밝히고 판매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맛의 호불호를 떠나 습창 발효도 시장의 요구와 사람들의 음다 습관에 기인한 일종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순간의 이익에 현혹되어 습창차를 수십년된 노차로 소개하거나 일반나무에서 자란 방해각을 징마이 정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징마이산 정품 방해각은 일키로에 백만원 가까이 합니다. 기타지역은 보통 이십에서 오십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미얀마 등 변경 지역에서 들어온 것은 십만원 전후입니다.

 

이렇듯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시장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 방해각을 물으면 무조건 징마이 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격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고 모양도 약간 틀립니다. 징마이 정품은 비교적 가늘고 크기도 작습니다. 맛은 약간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있습니다. 내포성이 좋아서 오래도록 우릴 수 있고 끓여 먹으면 한결 맛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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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량즈 차산

 

시쐉반나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주량즈(活竹梁子)에 다녀왔습니다. 멍하이에서 멍송(勐宋) 방향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정도 달리면 만시량(曼西良), 바오탕(保塘)을 지나 빠멍(坝檬)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해발 2429m 화주량즈를 오르자면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이곳입니다.

 

하니족 마을로 70여가구에 3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해발이 높다고 꼭 최고 품질의 차가 생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반장이나 빙도 등의 해발은 1750m 전후입니다. 이상하게도 고급차가 나오는 지역의 해발이 대부분 비슷한 고도인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해발이 높은 지역의 차일수록 산운(山韻)이 좋습니다.

 

산운을 어떻게 표현 할까요! 원시삼림을 거닐 때 문득 들려오는 이름 모를 꽃향기라고 할까요? 이른 아침 구름 덮인 산봉우리가 햇살에 씻기는 맛이라고 할까요?

 

고수차가 있는 다른 대부분의 마을이 그렇듯이 2007년 이후 이 마을의 주요 산업 또한 차업입니다. 그전엔 주로 깐즈라고 부르는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을 재배하였다고 합니다. 화주량즈산을 중심으로 빠멍, 허난, 뽕간, 멍롱쟝 등의 마을이 빙 둘러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멍하이에 가게를 오픈하면서부터 쭉 이 지역의 차에 관심을 가지고 몇 번 원료를 주문 제작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가공이 생각보다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지 않아서 여러 차례 다시 가공하기를 거듭했는데 올해 가을차를 보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해발 2300m 고지에 야생차와 더불어 드문드문 고수차밭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생태환경이나 평균적인 차나무 수령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빠멍에 있는 총각하나가 자주 우리가게를 들러 제일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자기 집 차밭에는 고수차가 많지 않아서 아직은 가난합니다. 92년생이면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인데 아직 장가를 못 갔습니다.

 

정상에 간판을 세움

 

한국이라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지만 이곳은 이십대 중반에 대부분 장가를 갑니다. 사람은 정말 진국이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눈에 뜨입니다. 장가를 가면 신방을 꾸며야 되는데 아직도 옛날 하니족 건물에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이래저래 여의치 않습니다.

 

여동생이 있었는데 사 년 전에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답니다. 매번 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세 살 밖이 꼬맹이를 할머니가 돌보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이생에 남겨놓은 생명이라는 걸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번번한 약 한번 못써보고 떠나보낸 여동생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착하고 순수한 청년입니다. 이번에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집을 새로 짓고자 하는데 자금이 조금 모자라서 시작을 못하고 있답니다.

 

각설하고 장가도 가야되고 부모님 모시고 족하도 돌 봐야 되고 일단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모자라는 자금은 우선 내가 도와줄 터이니 내년 봄차로 갚으라고 했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기에 내심 감동해서 그런가! 했더니 웬걸 자기 집 고수차는 량이 많지 않아서 내년 봄차 만으로는 다 갚을 수가 없답니다...

 

짜식이! 나 같으면 일단 고맙습니다. 하고 받고 차차로 방법을 강구할 텐데... 아러따 그러면 몇 년이면 다 갚을 수 있겠냐니까? 삼 년은 돼야 될 것 같답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고 손을 잡아주니까. 사내자식이 눈을 못 맞추고 자꾸 먼 산만 바라봅니다.

 

내년부터 시쐉반나 최고봉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서 화주량즈를 본격적으로 개발해볼 생각인데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채엽부터 가공까지지 모두 직접 지켜볼 수도 없고 또 지켜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사람 마음먹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늘 자금에 쫒기지만 작은 정성이나마 그들에게 우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멍하이 일기 67 - 화주량즈2 계약 -

 

시쐉반나 최고봉인 화주량즈에 저희 간판을 심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먼저 마을 촌장에게 부탁하여 허락도 받았습니다. 저번에 올라보니 오래전에 시멘트로 조그마하게 만든 표지석이 있긴 한데 낡아서 글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회는 곧 찬스입니다. 내려오자마자 저희 전용 광고사에 간판 제작을 의뢰하였습니다.

아담한 사이즈로 윗부분은 시쐉반나 최고봉임을 알리는 해발표시와 화주량즈라는 지명을 크게 쓰고 아래에 저희 로고를 약간 작게 넣어서 제작 했습니다. 전에 라오반장 간판처럼 아래의 우리 로고만 때어 버리는 불상사를 예방하기위해 아예 일체형으로 제작했습니다...

 

계약서 작성

 

이젠 시쐉반나 최고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른 사람이라면 반드시 저희 간판을 이정표 삼아서 기념 촬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운산도 홍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빠멍에 사는 차농 친구들이 간판을 짊어지고 오르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짊어진 사진만 몇 장 찍고 빈 몸으로 정상에 올라가서 천지신명께 술한잔 차한잔 부어드리고 간단한 예를 올렸습니다.

 

삼배를 올리는 잠시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멍하이에 오운산을 창업하고 삼배를 올린 곳은 지금까지 딱 두 곳입니다. 전에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같이 방문했던 펑징(凤庆) 샹주칭(香竹箐)3200년 세계차왕수 와 이곳 시쐉반나 최고봉 화주량즈입니다.

 

기념사진

 

기념사진 몇 장을 찍어서 마누라한테 보냈더니 그 깊은 산속에 간판 심어서 뭐하냐고 핀잔입니다. 무슨 에베레스트도 아니고 직원들 힘들게 간판까지 세워가며 등반 기념촬영을 하냐고 웃습니다. 아내도 내가 애쓰는 마음 알면서 괜히 그러는 줄 알지만 나도 왕복 네 시간 간판 들고 산행하느라 죽을 뻔 했다고 괜히 엄살을 부려봅니다...

 

옛날에 성철스님에게 어떤 보살님이 기도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으니 이렇게 하라고 했답니다.

일체 대중이 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

 

천지신명께 머리를 조아리며 차업을 하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 멍하이 일기를 읽는 사람 모두 행복하시기를 빌어봅니다. 어저께 빠멍의 노총각에게 오운산 빠멍 기지 관리소장 직책을 주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월급도 없는 봉사 직입니다.

 

그러나 월급보다 소중한 믿음이 서로에게 있습니다. 화주량즈의 어께격인 해발 2300m 부근에 야생차가 자라고 있습니다. 대충 짐작으로도 수령 천년은 훌쩍 넘긴 것 같은 야생차 네그루를 2018년부터 22년까지 오년간 임대 계약을 하였습니다. 관리는 차밭 주인이 하고 매년 채엽 시기에 같이 올라가서 채엽은 우리가 직접 하는 조건입니다. 기타 여러 가지 조건을 계약서에 명기 하였습니다만 간단히 말씀 드리면 앞으로 오년간 위의 네그루 야생차의 소유권은 오운산에 있다는 것입니다.

 

야생차가 나오는 지역은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파샤의 뢰이다산(雷達山), 푸얼의 쩡위엔(鎭沅), 린창의 따쉬에산(大雪山) 등이 있는데 지역마다 독특한 향미가 있습니다. 이번에 오운산이 개발하는 화주량즈 야생차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단맛이 특별히 좋습니다. 대부분의 야생차는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데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찻잎 가장자리에 톱니바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다른데서 야생차를 마실 때 궁금하면 차를 마신 후 엽저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겠습니다. 고산의 운치가 특별히 좋은 이지역의 고수차들도 매년 조금씩 생산할 계획이라서 노총각인 빠멍 관리소장 집도 새로 지을 계획이니 장가 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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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주인이 거주하는 곳

 

멍하이에서 보이차를 만드는 한국 사람이 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가게로도 차철이 되면 종종 한국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 또는 인터넷으로만 아는 분들 그리고 저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조금씩 자기만의 차를 만드시는 분들 다양하십니다.

 

멍하이 시내에 가게를 열고 한국인 이름으로 정식으로 유한공사를 오픈한 것은 제가 처음이지만 징홍이나 쿤밍에서 저 이전에 사업자등록을 하신 분들은 몇 명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 명의로 직접 한 경우도 있겠고 상황에 따라 부인이나 현지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여 사용하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모두들 일찍이 윈난으로 와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보이차 시장을 직접 개척하신 분들입니다. 2014년 저희가 오픈을 준비할 때부터 여러모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손님들 중에 다른 분들이 만든 차에 대하여 물어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멍하이에서나 한국에서도 가끔 다른 분들이 만든 차도 시음하지만 저는 가급적이면 평가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한국 분들이 만든 차는 각자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섣부른 평가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혹여 누가 될 수도 있겠기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차맛이란 일종의 문화 맛이기도 하기에 그 맛의 가치를 개인의 주관으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자기가 만든 차는 무조건 최고고 다른 분이 만든 차는 모두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열정의 오류라고 할까요? 자신의 일에 너무 깊이 파묻히다보면 다른 세계가 잘 안보일 때도 있습니다. 저도 늘 경계하고 있지만 가끔 자신도 모르게 경거망동하고 있는 꼬라지를 볼 때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특히 경쟁 관계일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일 조심해야 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일을 떠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가끔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냥 다녀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언젠가 터놓고 좋은 이야기 나눌 때도 있겠지요. 이역만리 타향에서 한국 분들을 만나서 한국말로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을 나누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운산을 제가 중국 땅에 설립한 목적은 보이차의 본 고장인 멍하이에서 한국인의 시각과 기술 그리고 한국인의 사상으로 보이차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평생 꿈꾸어 오던 차를 직접 만들어 당당히 한국인이 만든 보이차를 세계인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서입니다.

 

한국으로도 물론 오운산 제품이 들어갑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주요한 시장은 우선 중국에 있고 나아가 전 세계에 지점망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꿈으로만 머물러 있는 부분이 많지만 언젠가는 결실을 맺고 싶습니다. 그럼으로 저는 차업을 하던지 안하던 상관없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멍하이에서 만나면 무조건 반갑습니다. 그분들을 결코 경쟁 관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부터 숨기고 감추고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면 마음 편합니다. 다른 차보다 보이차에 있어서는 아직도 약간의 비밀스러운 경향이 있는데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괜히 감추고 비밀스럽게 하기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입장이니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는 적당한 이윤은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각자가 필요한 부분을 충족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멍하이 일기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입니다. 멍하이 가게 입구에 각 지역의 모차 가격을 그때그때 표시하는 LED 전광판을 걸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손님들에게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가게로 들어와서 전시되어 있는 차들을 시음하고 원료를 조금씩 구해달라는 분이 있는데 표시된 가격에서 약간의 이윤을 더하여 구해드리곤 합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96년 처음 장사를 시작하고 2001년 본격적으로 차업을 시작하면서 늘 가슴에 새기고 있지만 때론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칠 때도 있습니다.

 

멀리서 기름 달카가메 오신 손님, 와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물건 값까지 물어주시니 어찌 고맙지 않으리오!” - 울엄마 말씀 -

 

한국 가게 입구에 굵은 매직으로 쓰 놓은 글귀입니다.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언젠가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써놓은 것인데 볼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최근엔 한국에 있는 날들도 점점 줄어들어서 가게를 찾아주시는 소중한 분들께 인사도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다행히 최실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저의 빈자리를 잘 매워주고 있어서 마음 놓고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사족 -

 

멍하이 일기는 제가 윈난성 멍하이에서 보이차를 직접 생산하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보이차 관련 지식과 정보 그리고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드리고자 개설 되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10여년 혼신의 노력으로 한국 최대의 차 관련 불로그로 자리 잡은 석우연담에 멍하이 일기를 초대해주신 박홍관 선생님께는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로 보이차 관련 이야기들을 해 왔습니다만 제가 차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로 오운산 관련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차업을 하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블로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늘 한국. 중국을 오가다보니 때로는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멍하이 일기는 애초에 계획한데로 내년 햇차가 출시되기 전까지 100호까지만 연제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이차 업계가 옛날에 비하여 많이 투명해 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멍하이 일기가 좀 더 밝고 정직한 차의 세계를 열어 가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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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과 기념사진

 

지난 며칠간 상하이에서 오운산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이(집사람의 조선족 친척입니다.)가 손님을 모시고 와서 이산저산을 다녔습니다. 모두 오운산 차에 관심 있는 분들인데 상하이, 우한, 등에서 오신 여덟 분입니다. 마침 산둥에서 오신 손님도 있어서 모두 열한명이 승합차 세대로 움직였습니다.

 

가을차도 거의 끝나고 산골 곳곳에는 도로공사랑 주택 개량사업이 한창입니다. 이즈음이 우기도 그치고 공사하기엔 좋은 때입니다. 매년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 또는 중국 각지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차산을 오르다보면 원료 가격이 비싼 지역과 싼 지역이 확실히 구분됩니다. 도로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징마이처럼 일찍이 차산이 개발된 지역은 비교적 잘 포장되어 있고 최근에 찻값이 많이 오른 지역은 확장공사가 한창입니다. 도로공사는 국가에서 나오는 돈으로 하기 때문에 빙다오나 라오반장을 오르는 길이라도 국가 예산 정책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멍하이에서 라오반장을 가보면 허카이 까지는 돌길로 포장되어 있는데 반펀부터 라오반장까지는 비포장입니다.

 

이번에도 공사 때문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마을에서 얼마씩 각출하여 도로정비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길이 좋아진다고 모든 게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을로 들어서면 확실히 구분됩니다. 원료가 비싼 지역은 흡사 산중의 별장촌을 연상케 합니다. 옛날의 소수민족 건물은 거의 볼 수가 없고 모두 최신 콘크리트 슬래브 주택입니다. 반면에 아직은 덜 알려진 곳으로 가보면 대부분 옛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해질녘에 집집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오르고 아이들은 맨발로 골목길을 뛰어 다닙니다. 도야지 닭 강아지들과 아이들이 공사장 모래밭에서 어울려 뒹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맑고 천진한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나도 그냥 흙먼지 속에 파묻히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 도취되어 지긋이 차산을 응시하고 있으면 만사가 다 평화롭습니다.

 

그렇다고 보는 우리 좋아라고 언제까지 이대로 있으라고 할 수는 없지요. 아직까지도 윈난의 산골 대부분의 농민들은 가난합니다. 산골에 다른 소득은 거의 없습니다. 산기슭의 텃밭을 일구고 감자나 옥수수를 심어 겨우 먹고 사는 정도이지요. 찻값이 오르면서 고수차밭을 가지고 있는 차농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더러는 국가에서 자금이 내려와서 일괄적으로 집을 지어주기도합니다.

 

기존 마을의 근처에 새로 터를 닦고 같은 구조로 집을 지어서 집단 이주하는 것입니다. 뿌랑산 정상부근에 있는 웨이동’(衛東)이라는 마을도 집단 이주한 지역인데 가축을 사육하는 공간을 단체로 주택과 멀찍이 구분하여 위생적인 문제도 고려한 면이 있습니다.

 

차농들에게 자금이 생기면 대부분 먼저 주택개량부터 합니다. 사실 소수민족들의 고택은 밖에서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안으로 들어가면 불편한 부분이 많습니다. 주방이나 침실 거실이 거의 한 공간에 배치되어 있어 구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화장실은 건물 밖에 있어서 야간이나 비가 오면 더욱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창이 거의 없는 구조라서 깜깜합니다. 어떤 집은 들어가서 한참동안 동공을 조절해야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길은 멀고 무작정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차맛을 보고 값을 묻고 차밭의 생태환경 등을 확인합니다. 하산 길은 늘 밤중입니다. 멀리 첩첩산맥의 가슴팍에 자리 잡은 차농들의 마을이 산길을 따라 아련한 불빛처럼 점점 멀어져 갑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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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시차

 

흔히 우리가 차 벌레라고 부르는 것 중엔 죽각충 (竹殼蟲), 차충(茶蟲), 지충(紙蟲) 등이 있습니다.

 

죽각충(竹殼蟲)은 대나무 껍질에서 주로 서식하는 벌레인데, 갈색 계통의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를 포장 할 때 죽피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물에 한번 적셨다가 마르면 포장합니다. 죽피가 충분히 마르지 않았거나 자체의 물기가 완전히 마른 가을 죽피가 아닌 봄, 여름의 죽피를 사용하는 경우에 더욱 많은 벌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차충(茶蟲)은 차 자체에서 생기는 벌레로 흰색 계통의 색깔입니다. 오로지 차만 먹는 벌레이며 숙차나 노차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용주차 혹은 충시차로 알려진 차의 매개체입니다. 인체에 해가 없고 오히려 보이차의 후발효를 촉진하기도 한다지만 시각적으로 또는 위생적으로 별로 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충

 

지충(紙蟲)은 종이 포장지를 갉아 먹는 벌레로 주로 오래 보관한 노차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종이가 삭아서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더욱 왕성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이차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벌레로 흰색 계통의 색입니다. 퇴치 방법으론 차를 며칠간 밀봉했다가 열어보면 차속에 숨어있던 벌레까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타 여러 가지 벌레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들만 말씀드렸습니다. 벌레가 보이면 일단 포장을 벗기고 햇살에 한 두 시간 노출시킨 뒤 깨끗이 털어내고 다시 포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마철이나 습도가 높은 여름에 주로 발견되다가 겨울이 되면 현저히 줄어들며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아직 이러한 충들이 보이차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음용할 경우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정확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은 없습니다. 보이차는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므로 생물인 상태로 섭취할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벌레라는 이름에서 오는 거부감도 있고 차는 식음료이므로 맑음을 추구함에 있어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좀 더 위생적이고 과학적인 생산과 관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충시차(蟲屎茶) 혹은 용주차(龍珠茶)라고 부르는 벌레의 배설물로 만든 차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차의 배설물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에 용주차(龍珠茶) 즉 용의 구슬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붙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원래 충시차는 광시성 꾸이린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합니다. 야생등나무, 찻잎, 환향수 등의 줄기와 잎을 쌓아놓으면 화향아(花香蛾)라는 벌레가 잎을 갉아 먹고 배설한 것과 벌꿀 그리고 찻잎을 일정한 비율로 섞고 솥에 덖어서 차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만든 차는 보통 100g3만원정도 하는데, 충시차도 오래되면 될수록 맛이 순해지고 묵은 노차향이 있습니다.

 

최근엔 이무 등지에서 찻잎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를 찻잎 채로 집으로 가져와 채반위에 놓고 길러서 배설물이 아래로 떨어진 것을 모아 만든 충시차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충시차는 야생형이라고 해서 엄청난 고가에 거래됩니다.

 

그리고 차 벌레가 노차를 갉아먹고 배설한 것과 차 부스러기 등을 모아서 판매되는 충시차도 있습니다. 생산된 방식이 완전히 다른 것인데 같은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어서 약간은 혼란스럽습니다. 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맛은 조금 다릅니다. 찻잎 등을 갉아먹어서 나온 차는 약간 달고 쓰며 탁한 맛이 있는데 차를 갉아 먹은 것으로 만든 것은 묵직한 노차 향과 걸쭉한 느낌이 있습니다. 가격도 차를 갉아먹어서 만든 것이 훨씬 비쌉니다. 소개서를 보면 여러 가지 효능을 이야기하는데 대표적으로 위장에 좋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상한 이야기만 잔뜩 했네요. 차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합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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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랑산 지역 차산지

 

멍하이 일기는 다양한 분들이 읽는 글이라서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쓰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가끔 차를 전공하는 교수님들이나 전문가들의 질문을 받을 때는 따로 메일로 답변 드리곤 합니다. 이번에 올린 멍하이 일기 58에서 위조와 유념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서 다소 복잡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들 드려 볼까합니다.

 

질문하신 것 중에 보이차에서 다소 강렬하고 자극적인 쓴맛과 떫은맛을 내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혹자가 이야기하는 농약 문제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품종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고수차들 중에 단맛이 좋은 지역은 이우 쪽의 차들과 징마이, 빙다오, 시꾸이, 나카 등이 있습니다. 대체로 고급차들은 단맛이 풍부한 경우가 많습니다. 쓴맛이 강열한 지역은 크게 뿌랑샨의 라오만어-신반장-파량으로 이어지는 라인과 따멍롱-미엔디엔 쪽으로 이어지는 라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떫은맛은 뿌랑샨의 허카이 지역에서 거랑허의 파샤로 이어지는 라인 그리고 멍송 지역의 허지엔, 바오탕, 멍번 등의 차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차들은 대체로 떫은맛이 많은 편이고 맹하거나 오히려 자극적이란 느낌도 있습니다. 고수차도 강열한 맛이 있지만 마치 약이 캡슐에 들어 있듯이 동그라미 안에 쓴맛과 단맛 떫은맛이 들어 있어서 자극적이지 않고 술술 잘 넘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위조와 유념의 문제로 조금 더 자극적인 쓴맛과 떫은맛이 돌출하기도 합니다.

 

유념이 강한 차를 우리면 찻잎 표면의 파괴가 많아서 처음부터 찻잎속의 물질이 많이 우려져 나옵니다. 탕색은 약간 혼탁하지만 구감은 풍부하며 강열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만든 차는 그해에 먹기엔 밀도가 높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장기보관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맛이 뚝 끊어지는 듯한 단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봄차철에 찻잎이 한꺼번에 생산되다보면 위조를 하지 않고 바로 살청을 하는 차농들도 있습니다.

 

살청시간도 솥 온도를 높여서 10~20분 만에 끝내고 유념도 기계 유념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념은 오히려 손으로 대충하는 것보다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조와 살청은 아직까지는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날씨와 찻잎의 상태를 즉시에 감지하고 대처하기엔 기계의 힘으론 어렵습니다. 위조와 살청도 기계의 힘을 빌리는 곳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는 합니다.

 

현재 소수차들은 모든 과정을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차들은 대체로 맛이 거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위조나 유념의 문제로 처음부터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강열한 맛이 나는 경우는 일단 당장 먹기보다는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념이 과하여 찻잎의 내 물질이 과다하게 우려져 나오는 경우라면 외부의 영향을 적게 받는 밀봉 보관법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차를 비닐 랩 등으로 완전히 감싸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한국에서도 2013년에 다시 쓰는 보이차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양중위에라는 중국의 보이차 연구가가 줄 곳 주장하는 방법인데 보이차의 발효를 외부환경의 작용을 완전히 차단하고 찻잎 자체가 지니고 있는 효소에 의한 발효만으로 한정할 때 가장 좋은 보이차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차를 이렇게 보관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다만 품종 자체의 원인으로 강열 한 맛이 있는 것이라면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취향에 따라 즐기면 그만이지요. 애초에 생산할 때 이런 모든 부분을 머릿속에 그려 두어야 훗날의 명차를 기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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