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이루향서원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동행한 김 경우 대표가 96등중등을 마시자고 하여 차를 준비하였는데, 필자는 광주에서 새벽에 도착하여 작업을 하고 나온 뒤라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정진단 원장에게 혼미한 정신을 맑게 할 만한 향이 있으면 품향을 하고 싶다고 했다.
뭔가 강한 기운으로 조금은 정신을 맑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바로 향 조각 하나를 내밀면서 이것을 맡아보라고 했는데, 온기가 없는데도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침향이든 기남이든 일정한 열이 가해졌을 때 향이 나는데 이것은 향이 자체에서 풍기는 것 같았다.
녹기남이라는 향으로 지난번 3조각을 낸 것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만져보고 코끝에 가져가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기분이 고양되는 시간, 정 원장은 다른 기남을 품향할 만큼 향 칼로 잘라내었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시면서 전기 향로에 향을 올려 품향을 하게 되었는데, 한 번에 쓰윽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두터운 향 기운이 층층으로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요청하여 향을 맡게 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풀렸는데, 차와 향이 어울려 함께 나누는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좋은 향을 흠향하면서도 이를 대단하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香人의 요청에 무엇이든 좋은 향을 무심하게 내어 그 자리에서 즐거움을 가질 수 있고, 차를 마시며 품평을 하지 않고 한 마디 던지는 것을 좋은 의견으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자리가 좋은 것 같다.
이날 좋은 향을 무심하게 칼로 툭툭 잘라 품향할 수 있게 해준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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