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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휴가 지나서 18일 금당차문화원 강옥희 원장 댁을 방문했다. 설이라고 해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약속을 하다보니 우연히 그 날을 취하게 되었다.

금당 최규용(1903~2002) 선생님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책 작업에 관해서 전부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좀더 격조있고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는 뿌리깊은나무 발행인 한창기 선생에 대하여 엮을 책을 가지고 만났다.

먼저온 손님이 계셨다. 두 분은 금당차문화원 회원이고 한 분은 지인으로서 인사차 방문한 것이라 한다. 강옥희 선생은 새해에 만났으니 말차 한 잔 합시다. 특별히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마음입니다  하시며, 우리를 차실로 안내 했다.

[사진, 차실에서 강옥희 선생] 차실의 공간은 작지만 주인을 포함하여 다섯 명이 앉기에는 아주 넉넉한 공간이다. 차실은 일본 다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다미 방이며 무쇠 솥(로, 爐)은 열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특별한 차를 내기 위한 날이 아니라 새해에 만났으니 차(茶) 선생으로서 마음을 낸 것이다. 강옥희 선생은 최근에 밀양에서 활동하는 사기장에게 구입한 다완이라고 하며, 금(金) 색(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의 다완에 농차로 말차를 내는 것이다. 익숙한 솜씨로 솥의 뚜껑을 열고 히샤쿠로 물을 떠서 다완에 따르는 모습이 이런 자리를 익히 해 보신 솜씨다.

처음엔 금색 다완으로 두 번 째 잔은 은색으로 된 다완에 농차(濃茶)를 내었다. 다완 하나에 두 사람이 나누어 마셨다. 농차로 마실 수 있는 좋은 차를 맛 볼 수 있었다.

그 날 강옥희 선생의 차 내는 모습은 의복을 갖추고 완전한 일본식의 어느 정통 계보를 그대로 이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의 찻자리로 새해가 되어 찾아온 손님께 숯불을 지펴 무쇠 솥에 물을 끓이고 농차로 대접한 것이다.

나는 새해에 들어서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차를 마셨다는 기쁨, 이에 더하여 금당선생님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장소와 또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이 더욱 기쁜 탓이다.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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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날에 전혀 뜻밖의 뉴스를 접했다.

밀수한 보이차에서 살충제에 사용하는 일부 차를 분석해보니 농약 성분인 BHC(벤젠 헥사클로라이드)가 허용 기준치보다 두 배에서 다섯 배 이상 검출됐다는 것이다.

살충제에 쓰이는 BHC는 음식과 같이 섭취하면 체내지방과 같이 축적되면서 암을 유발해 식품에는 첨가가 금지돼 있다고 한다.

그동안 정식 수입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보이차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과대광고로 인해 많은 물량이 풀린 것이다. 이번 단속에 적발된 한 곳의 경우만 해도 4톤을 수입하여 이미 3톤 판매가 완료된 것이다.

이런 일로 인해서 선량한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친 [운남보이차유한공사에서 유기농으로 제작한 보이차]판매상 마저도 불신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우려되는 바이다.

국내에서 중국 차 상인을 통해 반입되는 보이차는 품질 특성상 식양청의 검역을 거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건전한 유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이 지속될 때 중국 보이차에 대한 불신을 제거할 수 있다.

특히 2003년 부터 2010년까지 보이생차(보이청병)수입을 중국차 상인들이 경쟁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차들을 수입 또는 개인적으로 상인의 말만 믿고 구입해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감을 느낄 수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기도 한 보이차의 농약 문제는 보이차에만 국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식품 전반에 관한 내용이다. 현재 그들이 살충제를 사용한 농약을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차 밭에서 생산된 차가 건강한 것이다. 과거에 규제되지 않을 때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사용한 농가라면 이미 그 밭은 오염되어 차 나무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반입되는 모든 보이차가 중금속이나 살충제에 오염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서는 가급적 정식으로 검역을 받고 통관된 제품을 취급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 과정에서 수입한 상인은 별도의 검역비를 지불하고 안전한 차를 수입하고자 노력하는 곳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번 일로 인해서 정직하게 건강한 차를 수입하여 판매하고자 하는 분들이 용기를 잃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보이생차의 경우는 중국에서도 위생적으로 만드는 공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필자가 운남성 탐방에서 확인한 회사 가운데는 유기농 재배에서도 생산량을 늘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농약 문제에서도 자체적으로 검사와 실험을 철저히 하는 회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좋을 거라는 기대로 마시는 차의 농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번 단속 결과로 인해 출처가 불분명한 보이차의 유통은 정상적인 시장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보충: 2010년02월15일 17:00

이번에 뉴스를 장식한 유학생 신분의 수입 업자는 인터넷 카페에 보이차의 시음기와 보이차 시음사진을 올려놓고 구매를 희망하면 택배로 차를 보내면서 대금의 송금은 자신의 계좌가 아닌 타인의 계좌로 넣도록 한 것이 압수수색의 결정타가 되었다고 한다.

설 날 오후 방송 3사에서 특보로 발표된 보이차 농약 뉴스는 보이차 판매 사업을 하는 분들과 보이차 애호가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안일하게 판매해온 점, 우리나라 녹차는 농약으로 믿을 수 없다고 하며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보이차는 가장 안전한 차인 것 처럼 과대광고를 한 점들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하는 소식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차 유통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상적인 식품 겸역을 마친 보이차에 대해서는 가격이 좀 상승하드라도 바른 유통 질서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건강한 차를 만나기 위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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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성 곤명의 보이차 시장에서는 보이차 판매의 호황은 끝났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보이차의 보관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08년 부터는 보이생차 작업을 위해서 중국 상인들은 차의 보관과 판매에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 상인들은 고유 상표를 자신있게 알리거나 다른 상인들과의 구분을 위해서 비슷한 중량으로 비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규격으로 만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훗날 판매가격에서 높고 낮음에 대해 피해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전 보이차 규격을 기초로 하여 357g을 전후로 400g, 500g 중량으로 만들고 있으며, 특별하게 고수차라고 하여 1kg, 2kg 짜리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복년차장(福年茶莊)에서 기고한 글을 죽천향실 블로그 운영자 죽천향(박창식) 선생이 번역한 글이 최신 중국 자료이기에 올려본다.

普洱茶的包裝與特征  作者:福年茶莊 작자:복년차장


傳統普洱餅茶規格單位,坊間亦稱”支”。一件十二筒,一筒七餅共八十四餅,整件;爭重30千克。近年普洱茶風盛行,茶餅重量與包裝多樣化,整件重量也隨之改變。

件건: 전통 보이병차의 규격단위로 민간에서는 "支(지)"라고도 한다. 1건은 12통이며 1통은 7편, 해서 총 84편인 1건의 무게는 약 30kg이다. 최근 보이차의 성행으로 차병의 중량과 포장이 다양화해지고 따라서 1건의 무게도 바뀌고 있다.

*** 1편 100g, 200g, 250g, 357g, 400g, 500g등, 또한 1통도 5편, 7편, 8편,10편 등 다양화 되고 있으며 1건도 전통적인 12통 1건이  아닌 6통을 1건으로 하기도 한다.


傳統普洱餅茶規格單位,一筒七餅茶,淨重2.5千克。2000年,昌泰茶行開始大量生產石模400克/餅,開啟茶品規格上另一新風格。

筒통: 전통 보이병차의 규격단위로 1통은 병차 7개, 무게는 2.5kg이다. 2000년 창태차행이 석모를 이용하여 1병 400g 규격의 차품을 대량생산하면서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내었다.

***현재 1통 5편, 7편, 8편, 10편 등 다양화 되고있는 추세이다.

竹殼包裝
又稱”竹箬”,20世紀60年代以前普洱茶傳統筒身包裝,早年采用雲南天龍竹、香竹殼做爲筒身包裝,此類竹殼較爲柔軟無剛毛。近年因銷售量大增,竹殼相對不足,以其他質地較硬、剛毛較多的竹殼替代。

竹殼包裝죽각포장 :竹箬죽약(대껍질)이라고도 함. 20세기 60년대 이전의 전통보이차 통 포장은 운남 천룡죽, 향죽의 껍질로 만들었는데. 이 종류의 竹殼죽각 포장은 비교적 부드러워 뻣뻣하지 않다. 최근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죽각이 부족하여 질이 다른 단단한 죽 껍질을 사용하거나 뻣뻣한 죽각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竹簸
將竹皮削成軟條狀,用以包紮筒身。20世紀60年代以前,爲傳統工藝印級古董茶所使用。1999年開始,在昌泰茶行”易昌號”開始大量使用後,又爲市場所認同。

竹簸죽파: 대나무 겉껍질(竹皮)을 부드럽게 하여 차를 담는 통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20세기 60년대 이전의 인급골동차의 전통공예에 사용되었다. 1999년 창태차행이 이창호에 사용하면서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牛皮紙包裝
最早應於1973年開始,國營下關、猛海茶廠用以外銷之茶品包裝,配合牛皮紙筒裝,成件包裝則改以紙箱(七子黃印、七子鐵餅、中茶簡體字、廣雲貢餅等等) 代表性早期茶品如七子黃印、中茶簡體字、七子鐵餅、中茶繁體字8653等等, 後期則以1997年茶商訂制茶品”老樹圓茶”。

牛皮紙包裝 우피지 포장 : 1973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국영 하관, 맹해 차창 에서 수출 차품을 포장시 우피지로 1통을 포장했고 1건 포장은 종이 박스로 했다(칠자 황인, 칠자 철병, 중차 간체자, 광운공병 등)대표적 조기차품은 칠자황인、중차간체자、칠자철병、중차번체자8653등, 후기 1997년 차상 주문차품 인 ”노수원차”가 있다.

大票
廠方標示茶品品名、數量、規格、編號、重量等等,如同茶品說明書。

大票 대표: 차창에서 차품의 품명, 수량, 규격, 편호(일련번호), 무게 등을 표시한 것으로 차품에 대한 설명서이다.

直式大票
1984年以前計劃經濟時代,采用統購統銷制度,省公司旗下所有茶廠茶品居均交由省公司出貨,所以茶品大票均爲省公司名義,下書寫”中國土產畜產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市場稱之”直式大票”

直式大票 직식 대표: 1984년 이전, 구매와 판매에 통일적인 제도를 실시하는 계획경제시절, 성공사 에 속한 모든 차품을 성공사에서 출하 시켰다. 때문에 차품의 대표에는 모두 성공사 이름으로 되어있고 아래부분에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라고 적혀 있다. 이를 시장에서는 "직식대표"라고 한다.

橫式大票
1985年以後,省茶司終止統購統銷的模式,廠方可自行接訂單,以致從此時開始大票由以前直式”中國土產畜產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改爲廠別”猛海茶廠出品”、”下關茶廠出品”的橫式大票。大票上主要標示商標、茶品、嘜號、毛重、淨重、總箱數、廠別。

橫式大票횡식 대표: 1985년 이후 성차사에 의한 통일적 구매, 판매방식이 사라지고 각 차창별로 구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직식대표의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라는 명칭이 맹해 차창출품 , 하관차창 출품 등의 횡식 대표로 바뀌게 되었다. 대표에는 상표、차품、마호(마크번호)、모중(毛重 순수 차엽무게)、정중(총 중량)、총 상수(상자 갯수)、창별(차창명)이 표시되어있다.

外包紙
茶餅外包紙,坊間亦稱外飛。從外包紙質、印刷、印色、板模等等,可約略推測茶品制作概略時間。

外包紙 외포지: 차병의 바깥포장지로 외비라고도 부른다。외포의 지질、인쇄、인쇄색、판모등등으로 차품의 개략적인 제작시기의 추측이 가늠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筒票
早期茶品較多,置於筒內,每一筒一張。介紹茶品產區、品種、制作方式、功效或廠方說明等等。

筒票통표: 조기 차품에 많이 있다. 매 1통 안에 1장이 들어있는데 차품의 생산구역、품종、제작방식、효능 혹은 차창의 설명 등이 적혀있다.

內票
可能由筒票演變而來,內容類似筒票,每一餅均有,置於外包紙內。一般分爲大內票與小內票,大內票約15厘米×10.5厘米,小內票約13厘米x10厘米。

內票 내표 : 통표가 변화 된 것으로 ,내용은 통표와 유사하며 매1병의 외포지에 들어있다. 일반적으로 대내표와 소내표로 나누는데, 대내표는 약15mm×10.5mm, 소내표는 약13mmx10mm이다.

內飛
壓在茶菁中的廠方或訂制者標記,可作爲辨識依據。

內飛내비: 압재된 차청안에 차창이나 주문제작자를 표기함으로, 판별의 근거가 된다.

草紙
七子黃印、中茶簡體字、七子鐵餅、73青餅、早期紅帶青餅等等所使用的外包紙張。手工制作,條紋明顯,有厚薄之分,薄者居多。

草紙초지: 칠자황인, 중차간체자, 칠자철병, 73청병, 조기홍대 청병등에 사용한 외 포장지. 수공 제작이며 문양이 분명하고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으며 얇은 것이 더 많다.

厚棉紙
以早期8582爲代表,跨期從20世紀80年代中期開始,直至1992年最後一批厚棉紙。其間生產厚綿紙7542、7532、8582、8592、7572等。其特色爲於工制作、單面油光、條紋不明顯,稍有厚薄之分。於1996年開始亦有廠家生產厚棉紙,然紙質差異甚大,容易辨識。

厚棉紙 후면지: 조기 8582가 대표적이며 20세기 80년대 중기에 시작되어 1992년 까지 이다. 이 기간 동안 생산된 후면지를 사용 차품은 7542, 7532, 8582, 8592, 7572 등으로 특징은 수공 제작이며 한 면에만 유광이 있는데 문양이 분명하지 않고 후박지와는 두께 차이가 있다. 1996년부터 다시 후박지를 사용하는 공장이 나타났는데 종이의 질 차이가 커서 분별하기 쉽다.

網格紙
應較厚棉紙稍晚出現,大約出現在1987_1992年間,8582、8592、7532、7542、7572等猛海茶廠常規茶品均有使用這類紙張,下關茶廠代表性茶品則爲1986_1987年間之86530其特征爲手工制作,紙張有明顯之網格點狀。

網格紙 망격지: 그물지(원고지). 두터운 면지 보다 늦게 나타났는데 대략1987_ 1992년간에
8582,  8592, 7532, 7542, 7572등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정규 차품은 모두 이런 종류의 종이를 사용 하였다.

하관차창의 대표적인 차품은 1986_ 1987년간에 생산된 8653이다. 특징은 수공제작이고 종이에 분명한 그물 모양(원고지 줄모양)이 있다.

手工薄棉紙
較網格紙稍晩出現,期間在1990_1994年間,以7542、7572爲代表茶品。其特征在於不規則紙漿紋路,厚薄差異較小,更較網格紙薄,易破損。

手工薄棉紙수공박면지: 얇은 수공면지로 그물지 보다 조금 늦게 나타났는데 1990_ 1994년간의 7542, 7572등의 차품이 대표적 이다. 특징은 불규칙적인 무늬가 있으며 두께 차이가 작고 그물지 보다 얇아 파손이 쉽다.

機器薄紙
大量出現在1995年開始,國營廠時代多數常規七子餅茶品均使用。主要特色爲短細纖維紙漿均勻而無不規則纖維條索。

機器薄紙 기기박지: (얇은 기계지) 1995년부터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국영공장시대의 칠자병차에 많이 사용했다. 주요특징은 짧고 세밀한 균일한 섬유지질로 불규칙적인 섬유질이 없다.

外包薄油紙 (黃、白)

專指磚茶外包紙,從1973年之73厚磚開始,至1994年昆明茶廠最後一批7581時期,所使用的磚茶外包紙張均爲亮面油紙,有黃、白色之分,亦有橫條紋紙張。

外包薄油紙 (黃、白)외포박유지: 얇은 기름지 외포장 (황,백) 전차 전용의 외 포장지로 1973년의 73후전 부터 1994년 곤명차창의 7581까지 사용한 전차의 외포장지 모두가 기름기가 도는 종이인데 황색, 백색이 있으며 가끔 횡(가로)무늬 종이도 있다.

薄油紙細字內飛

爲雲南七子餅早期茶品內飛特色,七子黃印以至1995年等猛海常規茶品。主要特色在單面薄油紙,以及不明顯之網格紋。1996_1997年亦出現薄油紙張,然與1995年以前之特色不同。

薄油紙細字內飛 박유지세자내비: 얇은 기름지 가는 글자 내비. 운남칠자병의 조기 차품 내비의 특징으로 칠자황인 부터 1995년 맹해 정규차품 까지 이며 주요 특징은 얇은 단면 기름지 그리고 명확하지 않은 그물 무늬이다. 1996_ 1997년에도 이런 박유지가 나타났지만 1995년 이전 것과는 다르다.

朱砂紅
印級茶品部分茶品外包紙張印刷色料十分鮮豔,市場稱之朱砂色。另一朱砂印刷爲早期8582、7542、7532內飛印刷亦十分鮮紅,尤以早期7532(雪印)爲代表。

朱砂紅주사홍: 인급 차품과 몇몇 차품은 외포장지의 인쇄 색채가 선명한데, 시장에서 주사색이라 불리었다. 다른 주사인쇄는 조기 8582, 7542, 7532의 내비인쇄로 역시 색채가 선명하며 특히 조기 7532 (설인)가 대표적이다.

尖出、平出
雲南七子餅猛海茶廠茶品內飛上注”西雙版納傣族自治州、|勁海茶廠出品”,其”出”字下端”山”字較上端”山”字爲寬者,是爲”尖出”,若上下端”山”字爲相同大小則爲”平出”"。尖出”爲早期猛海茶品特色從七子黃印以至73青餅均爲”尖出”,期間爲1973年直至20世紀80年代中期,後於2001年開始由茶商訂制茶品始再出現。

尖出、平出 첨출,평출 : 맹해차창의 차품 내비에 "서쌍판납 태족자치구 맹해차창 출품"이라 적혀 있는데, 출(出)자중 위와 아래 山자의 크기가 같으면 평출, 위의 산자가 작으면 첨출이라 한다. 첨출은 조기 맹해 차창의 차품 특징으로 칠자황인부터 73청병이 모두 첨출로 기간은 1973~80년대 중기까지이며 후에 2001년부터 차상인들의 주문제품시  다시 출현하였다.

美術字內飛
尖出、粗字體印刷版本內飛,分爲二版本。早期7572生餅、7452熟餅印刷較爲模糊而色料較淡;少數73青餅、少數早期8582、泰國菁水藍印等內飛,印刷色料較爲鮮紅,部分字體有差異。

美術字內飛미술자 내비 : 첨출과, 굵은 글자체 인쇄판 내비, 2개의 판본으로 나뉜다. 조기7572생병과 7542숙병의 인쇄는 색깔이 연하여 분명하지 않다. 약간의 73청병과 소수의 조기 8582, 태국 차청 수남인 등의 내비는 인쇄색깔이 비교적 선명한데 부분적인 글자체에 차이가 있다.

粗字體繁體廠內飛
接續於薄油紙細宇內飛之後,爲粗字體印刷,色料較爲淡而模糊不清,薄油紙質。使用時間約爲1995_1996年間。

粗字體繁體廠內飛 조자체번체창내비: 굵은 글자체 번체 廠(창) 내비 : 얇은 기름지(박유지)에 가는 글자체 내비 이후 나타난 것 으로 굵은 글자체 인쇄의 색이 비교적 옅어 분명하지 않으며 지질은 얇은 기름지로 사용기간은 1995~1996년 이다.

簡體廠內飛
接續於粗字體繁體廠之後,字體較大。使用時間約爲1996_1999年間,1996_1997年爲薄紙,1998_1999年爲厚紙。

簡體廠內飛 간자체창내비 : 굵은 글자체의 번체 廠(창)이후에 나온 것으로 글자체가 비교적 크다.사용 기간은 대략 1996부터_ 1999년간이다.1996년_ 1997년간은 얇은 종이, 1998년_ 1999년간은 두터운 종이이다.

傣文內飛

接續於簡體廠內飛之後,字體變小,於右下角出現傣文。簡體廠、厚紙質。生產時間,原先爲1999年開始至2002年初,2003年底因猛海茶廠接受訂制茶品使用特殊內飛,從此開始至2004茸猛海茶廠改制前都有生產傣文內飛。

傣文內飛 태문(태족문자)내비 : 간자체 내비 이후 나타났는데 글자체가 작아지고 오른쪽 아래에 태문이 있다. 간체厂(창), 두터운 지질이며 생산기간은 1999년부터 2002년 초 까지 인데. 2003년 말 맹해 차창에서 차의 제작 수주를 받아 사용한 특수 내비는 2004년 맹해 차창의 체계가 바뀌기 전까지 모두 태문 이였다.

小七(丁勾七)、大七

專指雲南七子餅外包紙印刷中,”雲南七子餅”中的”七”字印刷版本。”七”字較爲細,字狹長者爲”小七”,較爲寬扁者爲”大七”"。小七”出現時間從七子黃印至1994年止,後於1996年開始又重新制作印刷,然版本與紙質差異甚大。”大七”起至於1993年。

소七(칠),대七(칠) : 운남칠자병차 바깥포장의 “운남칠자병”이란 인쇄글자 중 七자의 인쇄 판본에 대한 것으로 七자의 글씨가 가늘고 긴 것이 소七, 넓은 것이 대七 이다. 소七의 출현 시기는 칠자황인부터 1994년까지이다. 1996년 다시 인쇄하기 시작하였는데 지질의 차이가 너무 난다. 대七은 1993년 부터 시작 되었다.  

죽천향실 원문보기 http://blog.daum.net/36254598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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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네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의 문화와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기행문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을 남겼다. 견문, 즉 ‘보고 들은’ 경험은 곧 지식인 사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동방견문록』의 발간은 문화 교류를 앞당긴 세계 문화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가까이 위치하지만 사실상 접근이 매우 힘들었기에 근대화 이후 문화 교류가 거의 끊겼었다. 때문에 베일에 싸인 나라이자 차(茶)의 종주국인 중국과 한국 차 문화 사이의 큰 격차는 여타 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 책의 제목으로 감히 ‘견문록’이란 말을 붙였다.

이 책은 단순히 중국을 여행한 중국여행기가 아니라 중국차(中國茶)를 견문한 것이다.

필자는 이 시대의 차꾼으로서 차에 대한 열정적이고도 순수한 시각으로 중국 대륙을 견문했다. 마르코 폴로와는 달리 교통과 과학의 발전 덕분에 현지의 풍광을 생생한 사진으로 찍어서 책에 담아낼 수 있었다.

『중국차 견문록』은 차와 차 도구에 관심을 가진 필자가 22년간 우리 시대 차 문화 코드를 만들어가는 큰 틀 속의 한 분야로 계획한 책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동안, 차를 생산하는 중국 12개 성(省)을 중심으로 필자가 발을 내디딘 땅과 호흡한 공기,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는 차의 기운을 느끼며 기록한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대만, 당성 도예 죽계 선생의 차 내는 모습]

1장 복건성
복건성을 대표하는 무이암차 15 / 무이산 정산소종홍차의 탄생 27 / 정산소종홍차의 찻잎 수매 현장 35 / 정산소종홍차의 가온 위조 39 / 백차 공장에서 만난 자연 위조 43 / 철관음을 품평하고 수매하는 사람들 57 / 유명한 차만 명차가 아니다 63 / 옛날 방식의 안계철관음 유념 67 / 복안에서 만난 고급 말리화차 69 / 평온한 시골의 철관음 차 농가 75 / 철관음 살청기 79 / 무이암차와 대홍포 85 / 대홍포 모수 주변 찻집의 변화 91 / 무이산 무이구곡 풍경 95 / 금준미 은준미 101

2장 절강성
청하방 옛 거리와 태극차관 107 / 항주에서 만난 화차관 113 / 항주 국가차엽연구소 117 / 서호용정차 보관법 123 / 서호용정 홍보관의 뛰어난 상술 127 / 안길백차 모수가 있는 곳 133 / 차엽박물관과 1950년대 유념기 139

3장 북경 · 상해
다예사의 다예표연 감상기 145 / 세월을 품은 육보차 151 / 마련도 차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153 / 반가원 시장 사진 갤러리 159 /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보이차 전문점 163 / 인도네시아에서 재배한 철관음 165


4장 안휘성
기문홍차의 위조와 유념 공정 169 / 안휘성에서 본 품평실과 품평용 도구 177 / 보이차로 둔갑한 미전차 181 / 육안과편 공장 견학 187 / 신이 지켜주는 신차 나무 193 / 안휘농대 차 문화 교류 197 / 황산에서 만나는 황산모봉 199 / 희망의 차 태평후괴 23호 203

5장 대만
당성 차 도구점의 위폐 감식기 211 / 대만차의 건강한 유통 구조 219 / 동방미인 작업장에서 223 / 남투현 오룡차 유산차방 229 / 차 맛 기행에서 만난 귀인 233 / 순인다장의 멋 241 / 작지만 멋진 차관에서 30년 된 문산포종을 245 / 작은 것이 아름다운 기고당 249 / 대만 초등학교의 다도 교육 253 / 양가죽으로 포장한 육보차 259

6장 강소성
남경 시내의 찻집 263 / 이 시대의 명차 남경우화차 267 / 새소리와 함께한 숲속의 차나무 273 / 중국 최대의 차 유통점 천인명가 275 / 자사호의 고향 의흥 279 / 자사호를 만드는 사람들

7장 광동성
다예낙원에서 만난 거상 진국장 291 / 방촌 시장의 무이암차 전문점 297 / 봉황산의 봉황단총 301

8장 호남성
청량감 가득한 천량차 313 / 찻집에서 만난 흑전차·복전차·화전차 319


9장 운남성
보이차에 관한 아찔한 기억 327 / 보이차의 역사를 간직한 맹해 차창 331 / 보이차와 소수민족 다법 335 / 보이차, 100년 만의 호황? 341 / 한정판 생차로 승부하라! 345 / 최대 규모의 민족다예관 347 /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명원 351

10장 귀주성
벌레의 배설물을 차로 마시는 충시차 357

마치며 362 / 찾아보기 364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박홍관의 중국차 견문록 (양장)
국내도서>가정과 생활
저자 : 박홍관
출판 : 도서출판이른아침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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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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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부산 경남 지역을 돌아보게 되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사진 기록은 못했지만 큰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황을 보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기장에 있는 중원(대표 김희용)에서 한국의 차 시장이 아닌 중국 시장을 겨냥한 보이차 투자다.

중국 광동성 남방차시장(방촌시장)내에 동천다장(東天茶莊)이 오픈 된다. 보이차 하나 하나에 포장 디자인이 완성되고 포장지 마다 고유 번호가 중국식으로 식별 번호가 만들어진다. 흔히 중국 보이차 포장지는 아무것도 아니라 하지만 그래도 큰 사업을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의 디자인 작업을 시도한 것은 그냥 다른 회사 상표와 다른게만 한 것과는 다르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중국 광동성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규모있는 사업을 벌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이차에 대한 확신에찬 김희용 대표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한다. 이젠 큰 시장에서 판을 벌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날 중원 사장의 책상 위에는 샘플용으로 도착한 약 3kg 무게의 복전차(광서성 복전, 호남성 복전, 사천성 복전) 3종류가 도착해 있었다. 시간 관계로 광서성 복전과 호남성 복전만 포장을 열고 시음해 보았다. 호남성 복전 보다는 광서성에서 제조된 복전의 맛이 더 좋았지만 매력있는 맛을 내어 주지는 못했다.

다음 기회가 되면 광서성, 호남성, 사천성 복전을 비교 시음하며 김희용 대표의 흑차로서의 복전차와 보이차에 대한 향후 전망을 듣고 싶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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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차 한잔'

 

이력서에서 내가 가장 많이 썼던 문구이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차 한잔을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것도 그 한잔을 대신 할 가치는 없다.

내자리에 놓여진 그 한잔을 위해서 물의 온도를 맞추고 농도를 위해 너무 이르지도 않고 오래 지나지 않기 위해 적당한 담소로 시간을 끈다. 그리하여 다려진 차는 우리 한명 한명을 위해 찻잔에 따르게 된다.

가끔은 궁금하다. 옆에 있는 사람의 차 맛은 나랑 다를까? 어렸을 때 아빠가 직접 내주셨던 차를 마시면서 엄마하고 오빠의 차 맛은 나랑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까?

하지만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차 한잔을 낸다는 것은 믿는다. 난  차물을 버리고 처음 우려낸 차가 가장 맛있어 늘 엄마한테 먼저 내어드린다. 그 차는 누구도 마실 수 없다. 내 마음이니까...

마셔본 사람만은 알기바란다. 당신의 찻 잔을 채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려 당신만을 위해 준비해온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의 글은 중국어를 전공한 대학 졸업반인  딸의 글이다. 

오늘 문득 딸(예슬)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눈에 익은 사진이 보여서 자세히 보니 지난 달에 이영자 선생님의 <오룡차 다예>의 책 작업을 위해서 함께 촬영하러 갈 때, 중국어를 전공한 딸에게 통역 도움을 받았다. 그 때 대만 잉커시장에서 모 선생으로부터 대오룡과 고산 금훤 차를 대접을 받을 때의 사진이다.

사진 작업은 내가 한 것이지만 많은 사진 가운데 한 장을 택하여 쓴 글을 보면서 딸이 엄마에게 차를 내는 마음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로서 참 좋은 글이구나 하는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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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남투현을 3년 만에 방문하였다. 이번에는 유산차방 소유의 차밭 촬영이 목적이었다. 유산차방은 아리산오룡, 동정오룡 등을 생산하는 전통있는 차공장이다.

3년전에는 유산차방 소유의 차 생산 공장으로 방문할 때 중간 지점에서 조생종과 만생종이 한 곳에서 재배되고 있는 차 밭을 기록한 일이 있었기에 기대를 하고 갔는데 겨울 차밭의 아름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곳에서의 촬영은 포기하고 골짜기에서 나오는 길 옆의 차밭이 더 좋아보여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혼자서 돌아가 촬영을 했다. 봄에 볼 수 있는 녹색의 푸른 맛은 없지만 겨울 차밭의 경치를 감상하는데는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사진, 포크레인으로 차 나무를 갈아업고 있다] 차 밭 사진 한 장을 담고 나오는 길 모퉁이에서 포크레인 작업을 보면서 다가가 보니까 밭을 갈아 없는 것이 일반 농작물이 아니라 차나무를 뽑아내고 있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 곳에서는 차(茶)라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올해부터 밭 농사를 경제성이 더 좋은 농작물로 바꾸기 위해서 기존에 해온 차 밭을 갈아 없는다고 한다. 훗날 또 차 농사가 더 좋을 때가 오면 또 갈아 없고 차나무를 심어면 된다는 뜻이다.

2년 전에 제주도에서 귤 농사가 안된다고 모두 갈아업고 차나무를 심는 것을 볼 때 조금 이상해 보였는데 이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디서든 차나무를 특별히 대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 도착하여 희망적인 소식을 접한 것은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신경과학센터 박사 연구팀이 커피와 녹차에 들어있는 카페인을 섭취하면 뇌암세포의 성장 및 전이가 둔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보도를 접하였다.

얼마나 반가운 보도인가? 3년 전에 우리나라 녹차 생산지역인 하동과 보성에서의 농약 살포에 대한 TV 보도로 인하여 녹차 판매가 급감하고 농약에 의한 피해를 더 우려하는 분위기로 인해서 차 산업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농가에서는 차밭을 갈아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다르다지만 최근에는 복건성 무이산에서도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수금귀, 반천요 차밭은 갈아업고 다른 품종을 심는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차농가에서 서로가 감시하며 농약 살포를 금지하고 우리차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다면, 이번에 발표한 녹차의 카페인에 대한 긍정적 보도가 조금씩 확산되면서 차 밭을 갈아업는 일들이 차츰 사라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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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 견문록의 출간을 몇일 앞두고 대만을 다녀왔다. 이영자 선생님의 <오룡차 다예> 책에 사용될 대만 오룡차의 다법에 대한 사진 작업이 주된 목적이었다.

대만의 잉커(鶯歌)공예촌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면서 이틀째 되는 날 한국과 상해에서도 잘 알려진 차도구 전문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매장에는 기본적으로는 차도구가 주된 품목이지만 보이차와 복전차가 눈에 잘 들어오는 자리에 있었다.

[사진, 양가죽으로 만든 복전차 포장과 복전차]             그런데 내 눈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양가죽 포장을 보면서 역시 짝퉁은 이렇게 발견되는가 싶은 복전차를 보게 되었다.

양가죽으로 된 것을 보면 철저히 준비된 짝퉁이란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중국차 견문록 대만 편에서 <양가죽으로 포장한 복전차의 실체>라는 글을 보면 아래와 같다.

“무더운 날씨에 택시를 타고 도심 속에 있는 보이차 창고를 가게 되었다. 대만에서 보이차 보관 창고를 가기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창고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아파트 모양의 공장처럼 생겼는데, 짐을 실어 나르는 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보이차를 보관하는 창고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일반적인 창고에 보이차를 쌓아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주인 책상 위에는 ‘골동 보이차’가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는 듯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확 띈 것은 양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복전(茯磚)의 포장이었다. 복전차(茯磚茶) 여러 개를 하나로 포장한 것이다.

나는 옆에 보이는 또 다른 복전차를 그 위에 놓고 렌즈에 담았다. 한쪽 면에는 안에 있는 것이 복전차라고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흠집까지 자연스럽게 나 있었다. 이 공장에서 만난 양가죽으로 만든 복전차의 포장이 정직한 세월의 맛을 기대하는 차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상기의 글에서 우려한 내용의 실체를 가게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호기심에 물어 보았다. 그 차의 연대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1970년대 차라고 한다. 내가 2008년에 어느 창고에서 만난 양가죽으로 겉 포장을 만든 복전차를 보았을 때는 1990년 대에 만든 차라고 들었다.

지금 본 것 보다는 30% 더 길게 만든 것이다. 그만큼 차가 많이 들어간 것으로 책에서는 규격이 크게 보인다. 그래서 그와 유사한 포장을 보았을 때는 40년 전의 차라고 믿기에는 솔직히 자신을 가질 수가 없다.

[사진, 금화 핀 상태의 복전차]  황금색 균락(菌落)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속칭 “금화(金花)”라고도 하는 금화(金花)가
잘 피었길래 사진 작업을 해보았다. 마침 이 일을 보고 계신 분이 한 번 마셔보자는 제의를 하고 마셨는데 맛이 아주 부드러웠다. 이러한 부드러움이 복전차를 분별하는 것에는 명퇴한 답변을 얻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차 자체를 잘 못 만든 것이 아닌데 그냥 오래되었다고 하거나 199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표현이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부풀린 세월에 차 자체에 대한 신뢰성 뿐 아니라 그 집에서 취급하는 보이차 전체에 신뢰의 눈길을 줄 수 없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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