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오명진

8월 27일 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 모임에서 제2대 회장에 오명진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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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 경주시장, 국회의원, 김은호 회장, 대구은행본부장

 

경주에서 개최한 보문호반 둘레길 100석 찻자리는 한 마디로 대성공을 거둔 행사로 안전하게 마쳤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지진으로 인한 전국민의 놀람과 계속된 여진으로 인한 지역 불안이 이어지고 있던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 국내의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 중국에서도 50여 명의 관계인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진사제 무이산차엽연구소 소장

 

차 행사에 있어 한중 교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지만, 이번처럼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차 행사에 참가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두 지역이 중심이 되어 잘 알려진 차인들이 참가하였다면, 이번 경주국제차문화제에는 운남성, 복건성, 절강성, 강서성, 북경 등에서 그들의 끼를 엿볼 수 있는 차인들이 2-3명씩 팀을 이루고 왔다는 점이다. 일본 차인들도 말차와 부쿠부쿠차를 시연하였다. 한곳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차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장취호 연출

 

특히 중국 무이산에서 대홍포 모수를 관리하고 직접 생산한 진사제 소장의 참석은 특별히 조명받아야 할 부분이다. 무대에서 펼친 장취호(長嘴壺, 주전자) 묘기는 그 분야에서 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동영상

..이복규 교수의 녹차 찻자리

 

근래 경주 지역의 차문화 행사를 살펴보면 여러 번 100석 찻자리를 펼치고자 하였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무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녹차 특우전으로 한국식 찻자리(이영주 원장 찻자리 준비)

숙우회 홍차 찻자리

그 오랜 징크스를 아사가차관 김이정 대표의 용기와 결단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김 대표가 이런 역사적인 일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경주시장 이하 관련부처에서의 관심과, 김은호 상공회의소 회장님의 적극적인 후원 및 참여와 경주 지역 상공인의 후원이 있었고, 거기에 중국 각 지역에서 골고루 다양한 차와 특기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깊은 관심을 가진 한국향도협회 정진단 회장의 노고가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다.

또한 아사가 차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 들이 하나로 뭉쳐서 이루어낸 결과이다.

동영상

 

예정된 5시 마감을 1시간 연장하면서까지 찻자리가 이어졌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의 경쟁적인 지진 보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경주는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는데, 경주 시민의 침체한 분위기를 한 번에 역전시키는 듯한 분위기는 시간이 가면서 이어졌다.

일본 말차

 숙우회 홍차 찻자리 동영상

부산, 울산, 대구, 서울에서 이 행사를 보기 위해서 온 분들을 만날 때, 이런 형식의 찻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만 처음 시도된 100석 찻자리는 규모를 너무 넓게 잡아서, 산책하면서 보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차를 마시는 찻자리의 동선을 생각한다면 조금 고려해야할 부분도 있었다.

안길백차

 

찻잔에 차를 넣고 물을 부어 잠시 기다린 후에 마신다.

아사가차회 동정오룡

 

시민을 위한 행사인가, 차문화 발전의 한 축을 경주에서 이루어 보겠다는 가슴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해답은 간단하다. 다른 축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자랑스럽고 성공의 바로미터로 여겨왔지만, 찻자리 형식에서 만큼은 그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일본과 대만의 오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부쿠부쿠

무량산 고차

봉황단총 찻자리

무석 차인들의 찻자리

 

행사는 923-24일로서 첫날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는 개회사 환영사 축사가 있었다. 기조강연은 김봉건 교수의 한국의 차문화 방향’, 주제발표는 중국 무이산 차엽연구소 소장의 대홍포의 역사와 무이암차 산지대한 강의가 있었다.

무석 차인

려원다례원

HICO에서 개회사 환영사 축사 기조강연 주제 발표 진행

동영상 김봉건 교수 기조 강의

동영상 진사제 소장, 주제 발표(통역 정진단)

 

경주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차 행사가 가능했다는 점을 알렸기에, 내년에 있을 국내 차 박람회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의 찻자리로 만날 수 있게 한다면 경주는 차문화의 발전을 위한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야외 차회에서 유료 티켓을 발급받는 형식은 참신했다. 앞으로 운영의 묘를 좀 더 살린다면 한국적인 유료티켓의 성공신화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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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건 교수 찻자리에서 본 뒤 벽면

 

지난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살고 있었던 김봉건 교수에게 연락을 했는데 부산시에서 외곽 도시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노포동 터미널에서는 20분 거리인데 아주 조용하고 청정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아래 행랑채에는 옛날 고옥으로 그대로 있다. 집은 기와집인데 거실 가운데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놓여있다. 진공관 앰프와 함께 어우러진 이 공간. 차인이면서 악기를 다루고 음악을 가까이 하는 생활. 집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으면서도 음악성과 차의 조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재미난 공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옛날 주택이라서 가운데 거실을 중심으로 정면과 양쪽에 방이 있다. 차탁은 서재와 같은 공간에 책 향기가 가득한 곳에 놓였다. 보이생차 두 가지를 마시고 육보차를 마셨다. 그리고 보이죽통차를 마시는데 세월이 좀 묵은 차로 보였다. 혹시 육보차인가 싶어서 자세히 음미해 보았는데 보이차였다. 이전에도 죽통차를 자주 마셔보았지만 실제로 고유의 맛을 내는 차는 드물었다. 그래서 그간 죽통차를 마시지 않았는데 오늘 이 차는 세월의 맛이 함께 우러난 차를 음미할 수 있었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동서양의 고전이 즐비하다.(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철학박사의 차실에서 책의 향기와 더불어 마신 차.

을미년 새해에 맞이한 첫 찻자리에서 김봉건 교수의 차실이 개방되었음을 확인했다.

이제 한적한 시외 고택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고운 음률과 같이

깊은 차향이 세상에 퍼져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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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비비비당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발표회

2014년 2월 5일 해운대 비비비당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정기모임을 가졌다.
올해 신입 회원으로는 금지수, 서정임으로 모두 중국 차문화에 대한 연구가 깊은 분들로서 향후 기존 회원들과 공동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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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정 2014.02.14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발전을 기대 합니다. "동양차문화연구회" 여러분.

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 모임(장소, 호정다실)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가을 차회가 10월 31일 부산 호정다실에서 열렸다. 연 4회 모임에서 논문발표 2회(겨울, 여름), 차회 2회(봄·가을)로 1년 회기를 마쳤다. 금번 회원동정에서 중요한 내용은 첫째, 김종경 교수의 회원영입. 둘째, 김봉건 회장의 국제학술대회 발표 내용과 함께 동참하여 사천성 문화를 탐방하고온 회원들의 소식, 셋째, 오명진 원광대학교 대학원 출강, 넷째, 조은아, 청와대에 퓨전 티 납품 다섯째, 필자의 <차도구의 이해> 출간 등이다.

일시: 2013년 10월 31일 12:00/장소: 호정다실(부산 문현동 소재)
참석회원: 김봉건, 박홍관, 오명진, 조은아, 김평순, 선미용/신입회원: 김종경
초청내빈: 김말기, 권옥희, 이유주

[진행순서]
1. 공양전 차실 관람
2. 점심 공양
3. 회장 소개
4. 내빈 소개
5. 신입회원 소개(최근 활동 상황, 역·저·논문 등)
7. 회원 동정
1)김봉건: 10월18일-20일 중국 사천성 성도 국제학술회의 참석 ‘남헌(南軒) 張栻선생 誕辰 880주년 기념 논단’ 논제: 退溪李滉的聖學十圖和朝鮮的性理學(퇴계이황적성학십도화조선적성리학) 11월 29일(금) 2:00 제1회 부산인문학포럼 발제「아시아적 가치」
2)박홍관: <차도구의 이해>(형설출판사) 저서 출판
3)오명진: 원광대학교 대학원 출강
4)조은아: 중국 상해 활동 상황, 청와대 퓨전-티 납품
8. 퓨전 티 발표 및 시음(조은아)

2014년 논문발표는 1월 부산에서 개최된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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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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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초의의순 백선과 한일도자교류전 등 큰 전시를 준비하고 보내는 초대장

차의 메카 부산에서 열리는 차 행사 가운데 가장 규모있는 행사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부산국제 차 어울림 문화제다. 이런 규모의 행사가 연속해서 성황리에 만들어지는 것은 집행부의 협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미자 대회장과 이경순 집행위원장의 일에 대한 욕심과 함께 부산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해마다 내용이 다양하고 심층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어울림 문화제의 행사 내용을 보면 이번에도 아주 내용이 많지만 필자가 관심있는 순서로 몇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추사(金正喜). 초의의순(草衣意恂) 百選전
다선, 차마시는 신선의 뜻이다. 조선후기 차문화의음아층과 시서화 중흥으로 은둔생활을 하는 선인들의 마음을 그렸다. 차문화의 근원으로 토대를 만들어 사회에 음다층을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

한일도자교류전(韓日陶瓷交流展)
한국 작가: 경북 영천 정점교(도곡요), 경북 문경 이정환(주흘요), 경기도 가평 김시영(가평요), 김경수(김해요), 문경 김영식(조선요), 밀양 강영준(단장요), 기장 이수백(황산요)
일본 작가: 나카자토 타로우에몬, 카와카미 키요미, 후지노키 도헤이, 오카모토 사쿠레이, 마루타 무네히코, 카지하라 야스모토

 

 


은천 김성태 강연
녹차의 역사와 녹차다구의 원리 - 동양에서 녹차의 시작은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루차에서 녹차로 전환되는 녹차의 역사와 변천과정을 설명하고, 녹차에 맞는 다구의 원리를 설명한다.

차실에 어울리는 사진전 ‘구성수’
그동안 시카고, 런던,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그룹전과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구성수의 ‘포토제닉 드로잉 플렌트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표본화된 식물과 화석화된 식물 시리즈를 선보이는 회화, 조각, 사진 세가지 매체가 혼합돼 있다는 뜻이다.

짱유화 강연
차과학의 진실과 오해 - 강사의 말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차과학 부분을 심층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류건집 강연
시문을 통해 본 우리 차 정신 - 우리 선조 차인들의 시문을 통해서 우리의 차의 정신은 어떤 것이었나를 보고, 이런 정신ㅇ이 어떻게 구현되어 우리의 생활 속에 구현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차가 우리 정신문화에 기여한 바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추전 김화수 차꽃 동양화 전시
수 백종의 초목중에 가장 귀하면서 기이한 것이 바로 차나무라 하겠다. 여기에다 꽃의자태까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가 만물이 조락(凋落)하는 가운데 핀다는 것이다. 초목이 귀근(歸根)하는 시기인 가을에 피니 그 신령함을 어찌 대단하다고 아니 하리오. 그것도 혼자피기 너무 거만 할 까봐 국화가 나란히 병발(竝發)하면서 가을의 뜰은 고상우미(高尙優美)하게 장엄해 주어 참으로 좋다.

선고 다인 헌다
차문화의 원류를 구축하신 다성 금당 최규용, 목춘 구혜경, 다촌 정상구, 원광스님, 범하스님께 개막식날 추모헌공다례를 올려 후배들은 선생님들께 헌공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진다.

조선통신사-공동작업(부산문화재단)
차문화 연구가인 박정희(53)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외래교수의 저서<17~18세기 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의식다례>에서 조선 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외교의례 변천 과정을 분석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9차례 파견됐던 조선의 통신사를 영접하는 일본 측의 의전 변천을 보면 그 역학이 확연히 드러난다. 외교 의전은 당사국 간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작품이다. 통신사의 사행록을 통해서 에도시대의 차문화의 실제 모습을 재구성하여 알아보고, 양국 간의 외교의례에서 차(茶)가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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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 강연
한국여성의 정체성
중국 차문화의 오랜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나름의 독자성을 키워온 한국 차문화의 특성은 매우 상징적이다. 찻자리의 손님을 편안하게 하는 겸손 위에 차살림을 펼치는 행위 등이 그렇다.

숙우회 행차 해운선차
해운은 좋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차를 들며 수행하는 다법으로 네 명의 시자가 만자형의 차단(茶單)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해운처럼 소용ㄷ돌이치듯이 회전하면서 차와 향과(香菓)를 나누는 일사불란함이 특징인 다법이다.

제9회 부산국제 차어울림 문화재 조직위원회
대회장: 이미자/집행위원장: 이경순/조직위원: 전정현, 김향자, 조정미, 이근주, 이수백, 이영자, 임숙련, 최순애, 권옥희, 백영선, 이자현, 김말자, 김말기, 조봉제, 한복순, 임정선

운영위원: 강옥희, 김현자, 박수자, 김화숙, 홍순창, 김가희, 차기정, 서광자, 김옥희, 이관구, 오미희, 이순자, 강미자, 조경태, 류효향, 이정임, 강경희, 박지형, 이용환

초대회장: 김순향/고 문: 강수길, 류화산스님, 박수복, 수불스님, 이시영, 이영채, 윤석관, 정여스님, 황수로, 혜성스님/자문위원: 김대철, 오세춘, 김봉건, 천선수, 강영환, 박기봉, 김학용, 이종상, 감응관, 박태룡, 남은진, 김민근/사무국: 오석영, 권보령
기념식: 2013년 9월 27일-29일 / 장소: 부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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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손정열 2013.09.23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홍관선생님 즐거운명절 보내셨는지요?
    김천 명륜다례원 손정열 입니다.
    전화를드리니 안됩니다.
    선생님 책이 나왔던데 보내주세요.

차와 차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잡지. 이번 호에서는 '동양의 차관문화, 일본 차도구'라는 주제 하에 한국, 중국, 홍콩 등 동양의 차관 문화를 소개한다. 또한, 각종 차도구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목차
박홍관의 차도구 감상
발행인의 변
차도구의 세계, 최미경(일본 차도구)
차도구를 찾아서, 김현지(사모바르를 찾아서)
차도구 전문점, 풍천당, 차경원, 죽평다관
차도구 발표작, 향산 김승수, 갈평요 신석용
아름다운차도구 소장품 대회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일본인
한류다도 태극다례 교류, 김복일(국제창작다례협회회장)
남청의 발원지 상림호, 팔금산 김덕기 대표
신년하례 다례, 권옥희(통도사선다회, 아란야다회 강사)
차주론(茶酒論), 김봉건(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차상인터뷰-석가명차 최해철
동양의 차관문화
한국-비비비당
홍콩-클리퍼 라운지
중국-자원(紫苑)
중국-보윤창
인급차회-아사가
보이생차 사진으로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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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차문화연구회는 2012년 10월 20일 부산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회원들과 함께 발표회가 있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원 개개인의 사정이 많아서 참석 인원은 적었지만 부산 해동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돌로 만든 둥근 차석에 둘러 앉아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발표문 첫 번째는 김봉건 회장의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유학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한 내용이며, 두 번째는 필자로서 이번에 출간한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에서  16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록을 엮은 책에서 참가자 전원 혈액으로 구분하여 차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차를 마시는 이유, 즐겨마시는 차 등등을 통계학적으로 분류한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와 결과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아래 발표문의 전체 원문은 향후 간행될 연구지를 통해 보급될 예정이다.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김봉건

<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였으면서도 또 가장 불우한 생애를 보낸 선비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세 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세종(世宗) 임금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다음에 크게 쓰일 것이라는 전지(箋紙)를 받고 오세(五歲)라는 호로 불리었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목도한 후 무도한 세상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하고 방외(方外)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때로는 승려의 행색으로 팔도를 유람하는가 하면, 세상이 바뀌자 다시 관직에 진출하고자 경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고 끝내 사환(仕宦)의 길은 좌절되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유자(儒者)였지만 때로는 산수에 묻혀 차나무를 기르는 유인(幽人)이 되었다가, 다시 환속하여 결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가의 양생술에 심취하여 도교의 내단(內丹)과 외단(外丹)을 닦기도 했다.


그의 한 평생은 도무지 대요를 파악하기 힘든 회오리 같은 생애였으나 지조는 오히려 뚜렷하여 후세인들에 의해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다. 그의 시문(詩文)을 접해보면 뛰어난 시재(詩才)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얼마나 경서(經書)에 해박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끝내 조정의 동량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자로서의 비분강개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士林)의 절의정신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산수에 묻혀 유유자적했던 삶의 자세는 걸릴 것 없는 진인(眞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매월당 김시습을 통해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으며, 한 인간의 위대함은 반드시 세속적 목표의 달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 또한 유교다, 불교다, 도교다 하는 식의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침착(沈着)되었을 때라야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김시습은 세속의 뜻이 좌절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인생을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시습의 신세


김시습은 조선 초 세종17년(1435년)에 태어나 성종24년(1493년)에 죽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 어머니는 선사(仙槎) 장씨(張氏)이며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설잠(雪岑), 동봉(東峯), 매월당(梅月堂) 등이 있다. 태어난 지 여덟달 만에 글을 알기 시작하여 집안 어른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비상함을 알아보고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는 3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고 『유학』『소학』 등을 공부했다 하며, 5세(세종21년) 때에는 세종(世宗)이 승정원을 시켜 그를 시험한 뒤 능력을 칭찬하여 비단을 하사하였다 하여 오세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후 모친의 정성으로 선비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서 13세까지 이계전, 김반, 윤상에게 사서삼경을 배우고 역사서와 제자백가를 독학했다 한다.

15세(세종31년)에 어머니를 여의고 삼년상을 치른 뒤 18세(문종2년)에 훈련원도정 남효례의 딸과 혼인하고 과거 공부를 했다. 그러나 19세(단종원년)에 과거에 낙방하고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던 중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 단종(端宗)의 양위 사실을 전해 듣고는 통곡 끝에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은 후 방랑길에 올랐다.


22세(세조2년) 때에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에 묻었다. 24세(세조4년) 때에는 함께 어울리던 인사들과 더불어 정몽주, 이색, 길재의 초혼제를 지낸 장소인 공주 동학사(東鶴寺)를 찾아가 사육신을 위한 초혼제를 지냈다. 이후 수년간 승려 차림으로 팔도를 유람하면서 학문과 유교, 불교에 대해 토론했다. 김시습은 이때 관서, 관동, 호남 지방을 유람하면서 백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등 우리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을 형성했다. 또 이때 직접 목도한 민초들의 생활에 대해 한없는 연민의 정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많은 불경을 읽으며 여러 절을 전전하기도 했다.


28세(세조8년) 때에 경주에 이르러 정착할 결심을 하고 금오산(金鰲山) 중턱 용장사(茸長寺)에 머물렀다. 29세(세조9년) 때에는 경주의 유적을 돌아보는 한편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을 읽고 직접 차를 길렀다. 그리고 이 해에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서울에 올라 가 열흘 동안 궁중의 내불당에 머물면서 『묘법연화경』의 언해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를 보면 그는 몸은 비록 낭인의 행색을 하고 있어도 여전히 왕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31세(세조11년) 때에는 경주 용장사 부근에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하여 살았다. 다시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석하였고, 세조의 환도(還都) 명령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37세 무렵까지 금오산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


그리고 38세(성종3년) 때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새 조정에서 임금을 보필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경전을 다시 익혔다. 그러나 관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꿈은 좌절되었고 수락산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41세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에서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았다.


46세(성종11년) 때에는 『황정경(黃庭經)』을 읽는 등 도교의 내단, 외단 사상을 익히고, 도가의 양생술에 관심을 가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주목했다.

47세(성종12년) 때에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환속 후 안씨의 딸과 혼인하나 이듬해 안씨부인이 죽고 조정에서는 폐비 윤씨의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 지방으로 방랑길을 떠났다.


53세(성종18년) 때에는 양양 부사 유자한(柳自漢)과 친밀하게 교유하다가 유자한의 청으로 구황책에 관한 상소문을 대신 짓고, 유자한에게 『장자(莊子)』를 가르쳤다. 이 무렵 유자한이 여인을 주선했으나 돌려보내고, 벼슬에 나가라는 권유도 사양했다.

59세(성종24년) 때에 부여 무량사(無量寺)에 머물면서 절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에 발문을 썼다. 그리고 이곳에서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중종16년(1521) 이자(李耔)가 십 년에 걸쳐 자신이 수집한 김시습의 시문을 모아 책을 만들고,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를 썼다. 선조15년(1582)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집』이 편찬되었고 이이(李珥)가 왕명을 받아 『김시습전』을 지었다. 선조16년(1583) 이산해(李山海)가 「매월당집서」를 짓고, 이 무렵 운각(芸閣)에서 『매월당집』 시집 열다섯 권과 문집 여섯 권이 간행되었다.

정조6년(1782)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8년(1784) 청간공(淸簡公)의 시호를 받았다.

1927년 김시습의 후손 김봉기(金鳳起)가 『매월당집』 시집 15권 4책, 문집 6권 1책, 부록 2권 1책, 총 23권 6책을 신활자로 간행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64호, 충남 부여군 무량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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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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